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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61화 (61/202)

Master Smith (61)

거사를 치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몸을 짓누르던 돌덩이를 완전히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니 덩달아 세상이 달라 보인다. 철부지 꼬맹이들이 나무칼을 휘두르는 모습이며, 새벽마다 울부짖던 빌어먹을 똥개마저 귀엽게 보인다.

이 기분, 이 감정을 죽는 날까지 가져가고 싶다. 결코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지금의 평화를 지키고 싶다.

랄까······ 세상은 결코 내 맘대로 흘러갈 수 없는 모양이다.

“내 돈 내놔 이년아!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냐!”

“잘못했어요······. 조금 더 시간을 주세요······.”

벌건 대낮부터 웬 소란인가? 인적 없는 골목에서 성질 더럽게 생긴 아저씨가 익숙한 소녀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행패를 부리고 있다. 세상이 얼마나 흉흉하면 대낮부터 이 난리다.

“카밀라?”

주황색 개털머리와 얼굴에 주근깨가 박힌 소녀. 코지부락 주민이라면 누구라도 알법한 사람이었다.

“이런 씨팔년도 호로자식을 봤나. 대낮부터 무슨 짓거리야!”

“바, 바드오빠?!”

카밀라가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그 조금만 몸에서 무슨 힘이 있다고 저항을 하겠는가? 가만히 맞고만 있었겠지.

바드는 돼지마냥 호식호식하게 살만 찌운 남성의 뱃살을 쫄깃하게 두들겨 주었다.

“진짜 돼지 두루치기가 뭔지 보여주마.”

퍽. 퍽. 퍽!

“그, 그만! 커헉······.”

나는 완전히 실신해버린 남자를 버려두고 카밀라와 함께 골목을 빠져나왔다. 카밀라는 한참을 걸어 나가서야 울음을 그쳤다.

“이제 괜찮아요.”

“듣자하니 금전문제인 것 같던데, 무슨 일 있는 거냐?”

“엄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됐거든요. 당장의 치료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녀의 사정은 익히 들었다. 병약한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살고 있다지? 생활비며 치료비며 매일같이 돈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더라.

그녀가 애써 거짓미소를 지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열심히 일하면 다 갚을 수 있어요. 아시다시피 저희 목장이 엄~청 잘 되잖아요? 언데커 할아버지도 많이 도와주시고요.”

“목장 주인영감 말이지? 그러고 보니 그 영감은 잘 지내? 최근 들어 얼굴보기가 힘들더군.”

“아하하······. 언데커 할아버지도 몸살로 누우셨어요. 두 분 다 제가 보살피고 있죠.”

어머니와 목장 주인영감 간병에다가 목장까지 전부 혼자 운영하고 있다고?

“그러다 너가 먼저 쓰러질라.”

“별 수 있나요? 일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거참 기똥찬 녀석일세.

“착하네.”

마음 같아선 우리 할아버지처럼 신통방통하다며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싶었다.

“아까 그놈한텐 얼마 빌렸어?”

“그건 왜요?”

“방금처럼 다짜고짜 찾아와서 무식한 짓 할지도 모르잖아. 차라리 나한테 돈 빌려. 그게 너도 나도 마음 편할 것 같은데?”

완전 무이자. 기한 상관없음.

“쓸데없는 참견이거든요. 저도 다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그녀가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나또한 한번 들인 발을 뺄만한 성격이 못 된다.

“내가 오지랖이 그냥 넓은 게 아니거든. 빚진다 생각하지 마 돈은 무조건 다 받을 테니까. 정 마음에 안 들면 이자도 조금씩 붙여서 갚든가.”

“······.”

그녀가 실눈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내가 부탁하는 거야.”

“알겠어요······. 고마워요 오빠.”

“불편한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고, 말나온 김에 목장에나 가볼까?”

“모, 목장엔 왜요?”

“치즈랑 우유 좀 얻어갈까 해서. 우리 길드원이 좋아하더라고.”

이사벨라의 도시락메뉴는 치즈와 우유가 많이 사용된다. 전부 언데커네 블루하와이 목장에서 가져온 것이라 했으니 잔뜩 가져가면 이사벨라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할 것이다.

“길드 만드셨어요?”

“그래. 네가 잘 아는 이사벨라도 함께 하기로 했어.”

“이사벨라 언니도요? 그나저나 길드창설 비용이 어마어마할 텐데······.”

“나도 한 장사 하거든. 각설하고, 짧은 시일 안으로 이곳을 떠날 예정이야.”

아무래도 코지부락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변두리 마을치고 있을 건 다 있지만 규모로만 따지면 다잔의 발톱만큼도 미치지 못할 수준이니까.

떠난다는 소식에 충격이라도 먹었는지 그녀가 당황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이유는 대강 감이 잡힌다.

“막상 간다니까 아쉬워?”

“전혀요.”

“대답과 다르게 말투는 전혀 아니군? 원하면 데려가 줄 수 있어.”

물론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말이었다. 그녀가 우리와 함께할 수 없는 것은 기정사실이니까. 아픈 부모님을 놔두고 감히 어딜 가겠는가? 카밀라 본인이 그 사실을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카밀라가 플로스티아 길드로 영입된다면 충분한 대우를 해줄 거다. 구차하게 조건은 따지지 않을 생각이며,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도 어머니를 놔두고 떠나는 것은 마음에 걸리겠지.’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마음은 고맙지만 역시 됐어요. 그나저나 목장에 도착했거든요? 우유랑 치즈만 있으면 되나요?”

“그래. 치즈 300킬로그램. 우유는 30리터로 20통쯤이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많이는 없거든요? 블루하와이 치즈랑 우유가 얼마나 유명한데요! 한 사람한테 그렇게 많이 팔수는 없어요.”

“그건 유감이군.”

하기야, 여기 치즈와 우유를 먹으려고 저 멀리 북쪽도시에서 귀족이 찾아올 정도이니 한 사람에게 팔 수 있는 재고를 한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나저나 말나온 김에 소개한다. 이곳은 카밀라가 일하는 ‘블루하와이’라는 목장이다. 10만 평방미터라는 거대한 초목들판 안에 수천마리의 젖소가 풀어진 자연 그 자체의 장소로, 365일 따듯한 기후가 유지되는 목장이다. 이곳 주인인 언데커 영감은 50년간 이 목장을 운영해왔다나 뭐라나.

이 목장을 운영하는 인원은 몇 안 되는 농부들과 최고 경력자인 카밀라 뿐이다. 때문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꽤 크다는 모양이다.

블루하와이에서 나오는 치즈와 우유의 신선도는 당연 최상급이다. 깊은 맛과 풍미가 일품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수익이 높은 이유는 어린나이에 근면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카밀라의 씩씩함이 아닐까?

나도 이유 없이 팔아줄 때가 있으니까······.

“한계치까지 담아줘. 괜찮지?”

“물론이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낡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습은 어려도 어른이구나.’

조금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웃고 있어도 지쳐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녀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나는 드넓은 목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블루하와이는 코지부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산지대에 위치해있다. 언덕 꼭대기에는 낡은 오두막 한 채와 하늘색 페인트가 벗겨진 풍차한대가 세워져 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낡은 울타리 안에서 느긋하게 풀을 뜯어먹는 젖소도 보인다.

대단하군. 이렇게 넓은 목장을 거의 혼자서 운영하고 있다는 건가? 적당히 땡땡이치면서 보수를 받아도 언데커 영감은 아무것도 모를 텐데.

“오래 기다렸죠?”

“아아~ 고마워. 양이 꽤 되네?”

“덤이에요. 가격은 조금 깎아드릴게요. 이걸로 마을에 있었던 일은 갚은 겁니다!”

무심하게 넘어가는 줄 알았더니 아까부터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내심 이렇게 신경 써주는 마음도 기특하다.

“고마워서 어쩌지? 이렇게 신세져도 되나 모르겠군.”

1실링이라도 덜 들어간 사실에 마냥 기분 좋은 바드의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카밀라는 그런 내 모습이 아니꼬웠는지,

“20만 3천 실링이에요. 돈이나 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2, 20만? 아하하······.”

결국 일시불 결재로 질러버렸다.

***

나는 메리데이로 복귀하자마자 길드생성 승인서를 높이 들어 올리고 소리쳤다. 이 종이가 효과를 발휘하는 데는 앞으로 3일이란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아무튼 의미 있는 종이인 것은 틀림없다.

“거사를 치르고 왔다!”

“오오오! 그래서 길드 이름은 뭐라고 지으셨습니까? 바드님이 떠나기 전에 길드명을 상의하지 않아서 다들 불안해하고 있었다고요. 다들 기대하고 있단 말입니다.”

게르덱이 콧바람을 거칠게 내뿜으며 흥분한 듯 소리쳤다. 그 옆에서 깨알같이 “기대하지 마.”하며, 이마를 부여잡은 카스티바가 보인다. 나는 카스티바를 향해 검지를 흔들었다. 카스티바가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가운데,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그래도 나름 고심해서 지은 이름이야.”

할아버지가 말한 영웅의 이름. 사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지만······.

나는 길드 서류를 그들 앞으로 내밀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려들었다. 맨 위에 길드이름이 분명하게 적혀있다.

《Flostia》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나는 말했다. 아무런 뜻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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