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60)
인간과 짐승의 차이가 뭘까? 가장 큰 차이는 머리다. 인간은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을 배운다. 무언가를 만들고 활용해서 실생활을 더욱 이롭게 한다. 확실한 것은 인간만큼 똑똑한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통점은 뭘까? 이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능이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말 그대로 생득적 행동. 살기위해 먹고, 배설하고, 잠을 자는 행위. 위험을 느끼면 도망을 치거나 그밖에 생존하기 위한 모든 행위. 마찬가지로 살기위해 음식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문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잔 으로부터 복귀한 우리들은 곧장 이사벨라의 메리데이로 향했다. 굶주린 육식동물의 눈으로 음식을 갈망하던 안토니오와 카스티바, 게르덱은 초면인 이사벨라에게 심한 민폐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를테면 “토끼고기!” 라던가, “밥이다!”라던가, 실례되는 발언 말이다. 이사벨라는 한 시간 내내 나를 꾸짖으면서 “어디서 빌어먹을 들짐승만 들여와서 행패야!”하고 투정을 부렸지만 레이나가 잘 달래준 덕분에 어찌어찌 넘어가게 되었다.
요컨대. 인간은 굶주리면 안 된다는 소리다. 눈에 뵈는 게 없어지거든. 이사벨라가 작고 어려보이기는 하지만 진짜 토끼마냥 소형 사이즈도 아니거니와, 귀와 꼬리를 빼면 영락없는 인간이다. 그런 그녀를 고기라고 소리치며 팔을 물어뜯었으니 말 다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배고픔에 눈이 먼 두 사람이 쿠샨을 들짐승으로 잘못 판단해 사냥당할 뻔한 일이다. 둘의 공격을 막아냈기에 망정이지 썬더볼트와 파이어소드가 유효타 처리 되었다면 쿠샨은 상처가 중상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히잉~ 아파라아······.”
이사벨라는 이빨 자국이 머무른 팔을 매만지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짜냈다. 하기야, 며칠을 굶은 사람이 있는 힘껏 물었는데 멀쩡한 것이 말이 안 된다.
레이나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사벨라의 곁에 앉아서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달래주고 있었다. 마치, 어린 딸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는 애정이 담긴 손길이다.
레이나는 바드의 시선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강아지 같은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그대로 5초간 아이컨택. 묘한 긴장감이 흘러가는 것도 모르고 나는 레이나의 눈동자를 헤엄쳤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본 것 같지? 평소와 다르게 묘한 긴장감이 심장을 찔렀다.
“바드 씨. 우리 레이나 너무 빤히 보지 말아줄래요?”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이사벨라가 바드를 지적하자 그는 잘못을 들킨 어린아이마냥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미호도 한 마디 했다.
“거기 여자! 우리 주인한테 눈독들이기만 해봐!”
바드가 자기 것이라는 마냥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주인을 보호하려는 애완견 같았다. 레이나도 황급히 눈을 돌렸지만 미호의 경계심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도끼눈으로 레이나를 바라본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미호는 바드를 자신의 품으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커헉! 가, 갑자기 왜 이래?”
“주인님은 내꺼야! 아무한테도 안줄 거다! 베에~”
미호가 레이나를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 레이나는 부들부들한 심정을 표정으로 보여주었다.
“레이나? 갑자기 왜 그래?”
“으므긋도 으니그든······.(아무것도 아니거든.)”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대를 세운 레이나. 그녀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바드는 미호를 떨쳐내며 갈비뼈를 부여 쥐었다. 방심했다고 하나 미호의 무식한 근력이 뼈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사벨라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배고파서 인사도 못 드렸네요. 게르덱이라고 합니다.”
카스티바는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던 샌드위치를 목구멍으로 넘기고 힘겹게 인사를 이어갔다.
“저는 카스티바라고 해요.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거든요.”
“안토니오라고 합니다. 다잔으로 떠나기 전에 잠깐 얼굴 뵌 적 있었죠? 거의 초면인데 실례만 저지르네요.”
“얼마나 굶었으면 그랬겠어. 그나저나 바드 씨는 언제 그런 애완동물을 길들여 오셨어요?”
이사벨라는 바드 옆에 달라붙은 미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호는 “애완동물이라니!” 하고 부정했지만 바드는 그녀의 주둥이를 가로막으며 설명했다.
“여우 숲에서 만났습니다. 싸울줄도 알고 능력이 신통방통해서 길들였죠.”
“꼭 그것 때문이야?”
레이나가 은근슬쩍 질문하자 바드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밥 대신 사람 생명을 먹여야 할 판이라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할지 골치가 아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거였는데······.
“주인은 나를 아끼거든~★”
“제발 사람들 오해할만한 소리 좀 하지 말라고.”
아까부터 레이나의 눈초리가 따갑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지만 괜한 질문으로 화만 돋우는 것 같아서 입 다물기로 했다.
이사벨라는 뽀송뽀송한 미호의 꼬리를 목에 두르며 말했다.
“레이나를 놔두고 꽤 귀여운 여자를 만나셨네요?”
“거기서 레이나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녀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영 내키지 않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레이나도 덩달아 실망한 모습. 아니, 완전히 풀이 죽은 얼굴이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왜 자꾸 과대망상을 하는 거야······.
그런 해프닝이 이어지는 동안 메리데이 안에서는 맛있는 음식냄새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얇게 썬 햄과 치즈사이에 달콤한 꿀이 듬뿍 발라졌고 그 위로 싱싱하고 아삭한 상추가 놓였다. 막 구워낸 고소한 밀빵은 입안의 침샘을 그득히 자극하고 있었다.
한입 가득 빵을 베어 문 세 사람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물을 터트리며 상상속의 팡파르를 터뜨렸다.
“맛있다!”
“한개 더!”
그들 옆에 높이 쌓여있는 빈 접시들은 한 바탕 식사전쟁을 일으킨 모습이었다. 버터를 바른 베이글, 상큼한 키위드레싱을 뿌린 셀러드 볼. 슬라이스 햄 치즈 샌드위치. 디저트로 당근케이크까지. 세 사람의 식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엠페러 길드는 어떻게 되었어요?”
이사벨라가 턱을 괸 채로 시큰둥하게 질문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어떤 결과인지 대강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엠페러 길드는 거의 궤멸입니다. 활동이 아예 불가능 하진 않지만 한동안 잠잠해질 겁니다. 며칠 안으로 세계 곳곳으로 보도될 대사건이니까요. 그보다 그놈들 좋은 아이템 많이 가지고 있던데요?”
“헐······. 설마 했는데 보물창고 진짜 털었나보네. 소문으론 수억 실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데 그걸 다 가져온 거예요?”
“아마 넘을 걸요?”
에픽 재료만 수백 가지다. 광물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며 각종 귀금속도 널렸다. 솔직히 마법가방 크기만 더 늘려놨다면 싹 다 가져오는 거였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 많은 돈으로 뭘 하려고요?”
“생각해둔 게 있긴 하죠. 길드창설.”
나의 뜬금없이 발언에 주위에 있던 다수의 사람들은 경직된 듯 굳어졌다. 길드라는 의미가 얼마나 큰 건지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길드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세간으로부터 길드원의 정보가 일부 노출되는 것을 의미하고 존재감과 명성을 얻는 동시에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노려질 위험성도 감수해야 한다.
“길드를 창설하기 위해선 5억 실링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길드에 속해있던 카스티바는 길드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길드가 설립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5억? 그 정도야 얼마든지 투자해 주지.
“방금 못 들었어? 아이템만 팔아도 수억 실링이 나온다잖아. 까놓고 말해서 며칠 장사하면 5억 실링? 가뿐하게 마련하지.”
길드를 창설하면 길드하우스가 주어지고 각종 축복과, 버프를 몸에 두를 수 있다. 5억 실링은 미래를 위한 투자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카스티바는 바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많은 돈을 굳이 길드에 투자하겠다니? 5억 실링이면 어느 정도 떵떵거리며 즐길 수 있는 금액이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가 길드 때문에 거금을 들인다고?
“진지하구나?”
바드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레이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는 안 그랬나?”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은 질색이다. 나는 이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들과 함께할 시간을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다.
“다들 함께해주겠어? 뭐든 다 할 자신 있다. 맡겨만 줘.” “······.”
몇 초간의 침묵. 카스티바는 피식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했다.
“깔깔깔~ 뭐야? 지금 부탁하는 거야? 길드 들어와 달라고?”
“웃긴 건가?”
이런 거 처음 해보거든. 웃지만 말고 결정이나 하지?
카스티바가 내 어깨를 꼿꼿이 세워주며 말했다.
“이런 건 남자답게 당당히 말하라고. 당신이 우릴 끼워준다면 도리어 우리가 고맙지. 다들 그렇지?”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신뢰로 만들어진 따스한 온기가 가슴에 다가오는 듯했다. 이윽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소리쳤다.
““““당연하지!””””
***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결전의 장소로 나왔다.
《길드안내소》
나무를 쌓아올려 만든 이곳은 코를 찌르는 상쾌한 소나무 향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길드창설 또는 가입이나 홍보를 할 수 있으며, 대부분 길드에 가입하기 위한 사람들이지만 때때로 길드 홍보를 위해서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단정한 정장차림으로 미소 짓는 세련된 청년이 인사했다. 그런 분위기와 말투가 익숙지 않던 바드는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기, 길드창설······.”
“길드를 만들러 오셨군요! 비용은 5억 실링. 24개월과 48개월 할부가 있습니다만, 수수료는 각각 다릅니다. 어느 쪽으로 하시겠습니까?”
“일시불이 좋겠군.”
이때만큼은 어깨를 펴도 좋다. 아니, 어깨가 하늘높이 승천해도 괜찮다. 그들도 그래주길 바랄 것이다.
바드는 인벤토리에서 1억 실링이 담긴 주머니를 5자루나 꺼내들었다. 카운터 위로 올라간 묵직한 돈주머니의 위엄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했다.
“이, 일시불이요?”
“이러면 수수료 없지?”
“네에! 물론이죠. 화끈하십니다. 하하하!”
길드창설 비용이 워낙 무식하다 보니까 할부시스템까지 도입된 듯하다. 하기야 5억 실링이 호주머니에서 뺐다 넣었다 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나를 제외하면 말이지.
“여기 서류 작성해 주시고요. 계약서는 따로 준비 해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청년은 의자를 움직여 돌아섰다. 한건 제대로 따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내가 실적한번 제대로 올려줬군.
서류에 기입할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길드명:
길드장:
길드원:
가입조건:
주 활동:
서류에 작성할 내용은 복잡할 것이 없었다. 오히려 금액에 비해서 너무 단순해서 당황스러운 정도다. 이거 완전 돈만 있으면 누구나 길드를 창설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나저나 길드명이라······ 생각해둔 게 아무것도 없다. 마땅히 생각나는 이름이라면······.
“아, 하나 있다.”
할아버지와 나란히 묻혀있던 무덤주인의 이름이 플로스티아다. 만난 적은 없지만 할아버지에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세계의 영웅이라고 하더라. 그렇게나 귀중하게 다루셨던 무덤이니 그 이름 좀 빌리도록 하자.
길드명: Flostia
길드장: 바드(Bard)
길드원: 레이나(Reina), 이사벨라(Isabella), 카스티바(Kastiva), 게르덱(Gerdek), 쿠샨(Kushan), 안토니오(Antonio), 미호(Miho), 노엘(Noel)
가입조건: LV.300이상
주 활동:
······주 활동? 정해진 활동은 없다. 내게 있어서 길드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기입해야 한다면 이렇게 하자.
주 활동: 잘 먹고 잘 살기.
나는 완전히 작성된 서류를 청년에게 건넨다. 그는 진지한 눈으로 서류를 훑어보더니, 수정사항 여부를 되물었다.
“그 외에 수정하실 정보는 없나요? 추후에 길드명이나 가입조건, 또는 주 활동을 수정하기 위해선 추가 요금이 붙게 됩니다.”
“됐으니까 그대로 해줘. 길드혜택은 언제부터 적용되지?”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랍에서 문서 한 장을 꺼내들었다.
“길드혜택에 대한 정보입니다. 총 7가지 혜택이 있고요. 길드창설이후 최대 3일안으로 혜택이 적용됩니다. 플로스티아 길드 맞으시죠?”
“부탁하지.”
“납입방식 일시불이고요. 길드생성 알림은 내일 중으로 메일 보내드리겠습니다. 길드 유지료는 매달 수익금의 1.5%이고, 유지료 미납시 길드창설 및 혜택적용이 해지될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주가 서류위에 단단히 각인 되었다.
[승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