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59)
카스티바가 작정하고 내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엠페러 길드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나는 그녀가 변한 인변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계속해서 몸 주변을 확인했다. 일단 마법은 아닌 것 같다. 마법에 걸린 거라면 시전자의 마력이 조금은 느껴져야 하니까.
두 번째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각인이다. 몸 어딘가에 새겨진 각인이라면 시전자의 마력을 숨긴 상태로 상대방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몸 안쪽에 새긴 각인이라면 직접 들춰내기도 애매하다.
“······카스티바 뒤다!”
“!!”
카스티바가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뒤를 돌아보며 가드자세를 취했다. 그녀를 공격한 사람은 회색 와이셔츠를 입고 은색 반지와 십자가 귀걸이를 착용한 은빛머리의 남성이었다. 가까스로 케르드의 공격을 막아낸 카스티바였지만 그의 무력을 완전히 받아내지 못하고 멀찍이 날아가 건물과 충돌했다.
바드는 이를 갈아 마시며 추궁하듯 말했다.
“갑자기 무슨 짓이지?”
케르드는 능글맞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우릴 전부 죽이겠다는데 잠자코 당할 수는 없잖아. 게다가 다된 밥에 재 뿌리기 싫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카스티바가 저 모양이 된 이유가 있을 터. 이야기를 들어봤어야 했다.”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말이야.
“쫑알쫑알 시끄럽게 떠드는 것뿐이잖아? 아무튼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야. 저 여자가 또 일어나서 괜한 난동을 부리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야겠어.”
그가 돌아서서 손가락을 딱! 튕겨내더니 어둠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 뿐만 아니라 남아있던 8명의 공작들과 사천왕까지 전부.
“어이 케르드!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너희들이 마왕의 부활을 원했던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다. 그로 인해 네놈들이 얻는 것은 뭐지?”
“단순하잖아? 세계를 손에 거머쥐는 거다. 크리스털을 가지고 북서쪽의 어둠의 땅으로 찾아가서 회색현자를 만나면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다. 정확히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존재가 소환되지. 그렇게 되면 마왕은 완전한 부활을 이룰 수 있게 되고 세상은 파멸을 맞이한다.”
“회색현자?”
“그 현자는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는 영감이다.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모를 거다. 질문은 여기까지 받도록 하지. 다음을 기약하자고.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해두지.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원했다.”
케르드는 어둠과 함께 안개처럼 사라졌다. 얄미운 그 미소. 위아래도 모르는 애송이가 감히 먼저 발을 뗐단 말이지? 뭐? 진정한 평화를 원했다고? 별 미친소릴 다 듣는군. 놈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냈다. 완전히 미친 짓이잖아? 인류의 멸망을 바라고 있는 건가? 가뜩이나 광포한 몬스터들 때문에 모험가와 용병들이 들끓기 시작한 세상인데 거기서 마계의 문이 열겠다니?
바드는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에는 찬란한 황혼의 빛이 사라지고 화사한 광휘가 온 세상에 내려앉았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흔적은 다잔의 파괴로 남았다. 엠페러 길드의 땅굴이 붕괴 되며서 만들어진 거대한 싱크홀, 동시에 파괴된 건물들, 불타 없어진 잿더미. 무엇보다 제일 골칫덩어리였던 엠페러 길드의 몰락. 도시 내의 소란이 잠잠해지자 근방에 살던 주민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부 파괴되었군.”
“엠페러 길드가 몰락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런 것 같네. 방금 땅굴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갔는데 전부 막혀있더라고. 완전히 몰락한 거나 다름없지.”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엔 그 결과가 심하게 처참했다. 아무튼 지금 상황에선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이 분명하다. 케르드가 황급히 떠난 이유도 쓸데없는 상황에 발목 잡히기 싫어서였나?
‘슬슬 가봐야겠군. 그나저나 카스티바는······?’
나는 서둘러 그녀가 날아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벽돌에 파묻힌 빨간색 말총머리. 카스티바가 분명했다.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운 뒤 HP포션을 들이켰다.
‘이 귀한걸 두 번이나 먹이는 군.’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떴다. 이번에는 영혼이 담겨있는 초롱초롱한 붉은 눈동자였다.
“바드?”
“정신이 들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나?”
그녀는 두통을 호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기억나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뭐, 일단은 그렇다 치고 여길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주인님! 여기야 여기!”
멀리서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아니, 요괴는 미호였다. 보들보들한 귀와 부들부들한 순백색 꼬리털이 그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저렇게 멀쩡하면서 카스티바가 이 지경이 되도록 놔뒀단 말이야?’
“다녀오셨습니까. 바드님!”
“바드 형! 다친데 없죠?”
“세 사람 전부 뭘 하고 있던 거야? 카스티바 혼자서 내 쪽으로 오게 하면 어떡해. 잘못하면 크게 다칠 뻔한 상황이었어.”
“그, 그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카스티바님이 혼자서 독단적으로······.”
게르덱의 주장에 미호가 맞장구 쳤다.
“맞아맞아! 마치 뭔가에 홀린 것 마냥 슈루룩~ 하고! 가버렸다니까? 붙잡으려고 했는데 마치 유령처럼 사라져 버려서······.”
“유령?”
뭔가 있군. 우선 코지부락으로 돌아가서 정확하게 알아봐야겠어. 각설하고, 거기 쓰러져있는 남자는 설마 쿠샨인가? 완전 피범벅······.
“얘는 왜 이 모양이야? 쿠샨! 정신 좀 차려봐. 어떤 놈이 기습한 거야?”
미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그거 그냥 바위에 맞은 거라니까······.”
***
드디어 다잔에서 빠져나왔다. 약탈의 도시인만큼 엄청난 소득을 들고 돌아가게 되는군.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만한 값어치는 했다. 그나저나 돌아가면 뭐부터 해야 되나? 역시 대장간부터 다시 운영해야겠지? 약탈한 자원만 팔아도 그 수익이 어마어마할 테니 벌써부터 기대 만빵이다.
‘나도 많이 변했군.’
내가 이리도 많은 사람들과 동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여자를 만난 뒤로 인연이 이어졌던가?
겉모습은 당돌해도 몬스터 앞에서는 겁쟁이에다 한없이 약한 사제님. 그런 그녀가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줬다. 나보다 훨씬 약하면서 강한 척은 어찌나 많이 하는지······ 가끔은 그녀의 성깔이 무서울 때가 있다.
나중에는 레이나의 친구인 토끼수인 이사벨라와 만났고, 몬스터 마을침공사건에서는 게르덱과 카밀라를, 엠페러 길드와 접전이 펼쳐진 천금협곡에선 카스티바와 안토니오를, 심지어 엠페러 길드의 공작. 쿠샨까지······.
뿐만 아니라 여우 숲에서 인간이 아닌 요괴도 만났다. 그녀를 펫으로 길들여서 얼떨결에 동료가 되었지만 구미호라는 엄청난 이름값을 공짜로 얻게 되었으니 나쁠 게 없는 조우였다. 미호는 정찰이면 정찰, 마력에 관련된 일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으며, 명령에 충실히 따르고 심지어 강하기까지 하니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녀석이다.
“그나저나 쿠샨 이 놈은 언제까지 기절해 있을 셈이냐. 업어가는 것도 귀찮아 죽겠다고.”
바드가 고지가 멀구나~ 하고, 발걸음을 질질 끌었다. 그의 투정을 듣기라도 했는지,
“무슨 소리냐! 나는 기절하지 않았다!”
쿠샨이 거짓말처럼 고개를 세우더니 소리쳤다.
“뭐, 뭐야? 언제 일어나 있었던 거야?”
“처음부터 기절하지 않았다. 단지 쓰러진 척 연기해서 힘을 비축하고 있었던 것일 뿐.”
“내 등에 업힌 상태로 그런 말 해봤자 전혀 설득력 없거든. 당장 안 내려와.”
정신 차렸으면 진작 말할 것이지 왜 남에 등에 업혀서 괜한 사람 힘 빼게 만들어? 처음부터 편하게 이동하려고 했던 쿠샨의 모략이 분명했다.
“커헉! 그렇다고 바닥에 내팽개치다니!”
“피장파장이다. 멀쩡한 다리로 알아서 걸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워프게이트가 생겼으니까 서두르자. 오늘 점심 중으로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게르덱은 내 옆에 바짝 붙어선 허름한 지도를 보며 소리쳤다.
“오오! 이게 엠페러 군주에게 빼앗은 그 지도입니까? 정말 빼곡하군요. 워프게이트의 위치까지 나타나있고······. 여러모로 쓸모가 많겠습니다.”
“뭐, 그렇지. 일단 코지부락으로 돌아가면 이사벨라 씨에게 밥부터 차려달라고 해야겠어.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었거든.”
며칠째 제대로 된 식사 한 끼를 못했다. 미호는 먹을 것이 아닌, 인간의 영력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상관없겠다마는······.
“““바, 밥?!”””
카스티바와 게르덱, 안토니오까지 거의 동일하게 소리쳤다. 내가 땅굴 안에 있는 동안 어떻게 생활한 거야? 입가에 흘러내리는 침만 봐도 그들이 꽤나 궁핍하게 지냈다는 걸 몸소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굶고 다녔냐?”
“나는 베이컨에 계란프라이!”
카스티바가 번쩍 손을 들며 외쳤다.
“저는 빵이랑 수프! 아, 그리고 그란다 씨의 버터맥주도 좋겠군요!”
게르덱이 맞장구 쳤고,
“저는 아무거나 다 좋아요!”
안토니오가 마무리했다.
실컷 망상해라. 어차피 괴로움만 더해질 테니. 나는 코지부락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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