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57화 (57/202)

Master Smith (57)

“릴리엠! 디버프는 아직이냐?”

투박한 건틀렛을 착용한 녹색피부의 오크는 흑색 단발머리의 10대 여사제에게 소리쳤다. 그녀는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나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들이 크토록 원하던 디버프가 몸을 휘감았다.

“성공······.”

릴리엠이 나지막하게 소곤거리며 확신했다.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디버프였는데, 이걸 어쩌나?

《이동속도 감소 상태이상에 완벽하게 저항합니다.》

《공격력 감소 상태이상에 완벽하게 저항합니다.》

《방어력 감소 상태이상에 완벽하게 저항합니다.》

《적중률 감소 상태이상에 완벽하게 저항합니다.》

《회피율 감소 상태이상에 완벽하게 저항합니다.》

“지금이다. 놈을 공격해! 내가 오른쪽을 맡지.”

바바디 바바스의 신호에 맞춰서 연분홍색의 쌍둥이 글래머가 쌍단검을 들고 날렵하게 달려 나갔다. 그녀들의 이름은 코르크와 마르크. 치사량에 해당하는 독을 사용하는 암살자로 공작 서열8위, 9위에 달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녀들은 노을빛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우리가 왼쪽을 맡겠어.”

“전부 돌격해!”

두 번이나 나가떨어졌던 빌로스 레볼도 몸을 일으켜 맹룡스럽게 창을 뻗었다. 잠깐 혼절해있던 휴겐 또한 체력증가 버프와 방어력 강화버프를 몸에 두르고 거칠게 접근하는 중. 4명이나 되는 공작급 인물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탓인지 바드도 여유로움을 잠깐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릴리엠이란 여자는 다시 디버프 준비 중인가?’

비록 먹혀들진 않았지만 거의 모든 능력치에 악영향을 줄만한 대규모 디버프라면 언젠가 하나쯤을 걸려들지도 모른다. 캐스팅전에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은 판단이리라.

“어딜 보는 거야? 빌어먹을 자식이!”

바드의 등 뒤에서 나타난 연녹색 장발의 여자. 그러고 보니 휴겐 때문에 연환봉춘권이 먹혀들지 않았던가? 그녀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마력을 거대한 수많은 비수처럼 발사했다. 난데없는 기습은 좋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공격은 힘만 뺄 뿐이다.

그녀의 비수는 피할 필요도 없었다. 몸에 맞아도 강철보다 단단한 몸을 자랑하는 내 몸에는 일말의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쳇, 몸이 저리 단단하다니.”

이 녀석들. 필시 나의 전투력이 떨어졌음을 믿고 달려드는 모양인데. 아쉽게도 릴리엠의 디버프로 인해서 감소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체로 공격하니, 아까 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그래봐야······.

“공격이 전혀 닿질 않아.”

“이 미꾸라지 같은 녀석!”

압도적이었다. 릴리엠의 꾸준한 디버프에도 불구하고 바드의 기세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고 쌍단검으로 현란한 공격을 선보이는 쌍둥이의 공격이며, 휴겐의 육중한 몸통박치기며, 정점마법사에 달하는 9서클 마법사(vertex wizard)의 집중포화 마법이며, 그 어떠한 공격 통하지 않았다.

“쉐도우 스메시(Shadow Smesh)!”

그림자의 잔상이 본체를 따라 추가타를 가하는 공격. 바드는 그림자의 스피드마저 앞서 질러 쌍둥이의 팔을 한쪽씩 붙잡았다. 그러고는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마냥 그림자의 공격을 받아쳤다.

“이건 말도 안 돼!”

“차지 크래쉬(Charge Crash)!”

휴겐의 전차 같은 돌진공격. 거대한 방패를 내세운 몸통박치기였다. 바드는 아랑곳 않고 휴겐의 방패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연환봉춘권!”

불타오르는 봉황의 날갯짓은 휴겐의 공격마저 완전히 무마시켰다.

“끼하하하하하! 저 녀석 엄청 강하잖아! 온몸이 저릿저릿 흥분된다고. 내 마법을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볼까? 좀 더, 좀 더 나를 흥분시켜봐!”

리디에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마나로 갖갖이 마법을 발현했다. 바드는 그 마법공격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아이템으로 떡칠을 했나보군. 이만한 마법을 거의 끝도 없이 구현해 내다니······. 캐스팅 속도며, 마법의 위력이며 아주 수준급이잖아?”

하기야 괜히 9서클 마법사는 아닐 것이다. 한 번에 캐스팅할 수 있는 마법이 9개는 된다는 것이고, 9개의 마방진을 동시에 풀이하여 고차원적인 마법까지 가능한 경지니까 말이다.

나는 날아오는 겁화의 불덩이를 맨손으로 흘겨 넘겼다. 대포알만한 불덩이는 투포환처럼 날아가 민가를 불태웠다. 근처에 주거하던 다잔 주민들은 대피한지 오래. 인명피해는 없을 것이다.

“우와아아~ 강해강해! 더 쏴도 돼? 진짜진짜?”

“미친년.”

그야말로 싸움에 미친년이다. 강자 앞에선 흥분이 가시질 않는가 보지? 이런 공격 막을 필요도 없다.

푸쉬식. 푸쉭.

해왕의 갑주는 자체적인 수(水)속성을 띄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생존력을 자랑케 하는 HP, MP포인트 재생력을 부여해주니, 그녀의 마법은 맨몸으로 맞아도 끄떡 없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갔다. 리디에는 당황한 표정으로 무차별 마법을 난사했다.

“어? 어어, 오지 마. 오지 마 변태야!”

“죽음을 자초하는 군.”

리디에의 안면을 한손으로 움켜쥔 바드는 그녀를 바닥으로 내리찍어 손의 악력을 쥐어짜냈다.

“끄으으으······.”

흉측한 고깃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녀는 안면에 엄습한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게거품을 흘리며 혼절했다. 잠시 후, 레볼의 쌍철극이 X자를 그리며 등을 노렸다. 하지만 붉은 선상에 베인 것은 내가남긴 잔상이었다. 레볼은 이를 악물고 암기를 투척했지만 나 역시 암기를 낚아채 도로 날렸다.

“크윽! 놈을 공중으로 유도해라!”

“알았다.”

휴겐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대한 대검으로 바드의 하단은 크게 베어냈다. 거기서 나온 풍압은 지면을 헤집고, 몇 미터 앞의 상가를 완전히 풍비박산 내었다. 바드는 가볍게 도약하여 휴겐의 공격을 회피했다.

‘순수한 힘만으로 땅을 뒤엎어 버린 것을 보아하니, 과연 대검을 사용할만한 근력이군.’

나는 그런 생각하는 와중에도 묠니르를 들어 올려 안면을 가드했다. 멀리서 하나의 섬광이 공기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팅!

쇳조각이 가로막혀 튕기나가는 소리. 주황색 불꽃이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공중에서 화살의 궤도를 읽은 거야?!”

코르크와 마르크는 터무니없는 바드의 움직임에 전의를 상실했다.

“놈은 혼자다. 우리를 상대로 장기전은 벅찰 거다.”

바바스의 냉정한 판단에 두 쌍둥이는 확고하게 긍정했다. 이윽고 시위에 활을 걸어 재공격을 감행한다.

‘원거리 공격으로 팀을 최대한 서포트. 그 외에 대검과 창, 마법으로 꾸준히 데미지를 누적시킬 셈이군.’

좋은 팀플레이다. 하지만 이걸론 부족하지.

“우오오오오!”

휴겐이 거칠게 포효하면서 자신의 대검에 모든 마나를 불어넣고 거대한 화염검을 만들어냈다. 나는 곡괭이와 망치로 가드하고, 카운터치는 파전공세를 이어나갔다.

‘흠?’

캉! 캉! 캉캉! 캉캉캉캉캉캉!

휴겐의 공격이 가속하고 있다. 점점 빠르게. 더 빠르게······.

“죽어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가 보지 못한 위치에서 대검이 들어왔다. 고밀도의 물리적 힘을 머금은 검날이 목덜미로 빠르게 들어왔다.

카앙─────!

하지만 역시나 먹히지 않는다. 휴겐은 의문을 품었다. ‘서걱!’이라는 소리가 아닌, ‘카앙!’이라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이런 무기로는 내 몸에 상처하나 낼 수 없나보군.”

검날은 나의 목을 잡아냈으나 파고들지는 못했다. 수백 개의 패시브를 보정 받고 해룡의 장비를 착용한 바드의 몸은 웬만한 강철의 경도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이런 염병할 것!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게 안 들어가?”

그의 욕설은 귀담아듣지도 않고 나는 휴겐의 머리통에 박치기를 날려주었다.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 휴겐은 빠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눈알을 까뒤집었다.

이번엔 쌍철극을 사용하는 레볼이 바닥을 엎었다. 바드는 실망을 감추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학습능력이 없는 건가? 똑같은 수가 통할 리 없잖아.”

이번에는 쌍단검을 사용하는 두 쌍둥이의 연계공격이었다. 어림잡아 5미터를 뛰어올라서 중력가속도를 더한 공격을 공중에 떠오른 내게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승기를 붙잡았다 확신한 코르크와 마르크. 허나, 필승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바드였다.

“잡았다!”

“어리숙한 녀석들.”

두 사람의 쉐도우 스메시가 작렬했지만 두 사람의 공격은 해왕의 갑주를 뚫지 못했다. 어느 정도 HP가 소모되긴 했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나는 그녀들의 턱선에 비수를 갖다 대었다.

“이 무기 늬들 거냐?”

“어느틈에! 이, 이럴 수가······.”

“······있지.”

바드는 두 사람의 복부에 강력한 발차기를 선사했다. 튼튼히 단련된 장딴지가 끝내주게 빨려 들어가자 두 사람은 토악질을 해대며 신음했다.

“브에에엑······. 쿨럭! 쿨럭!”

“자아, 남은 건 오크 놈 하고, 창기사, 멍청한 사제님하고, 연녹색 창녀뿐인가?”

《살기를 감지합니다.》

‘갑자기 웬 살기?’

나는 통수가 따가운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케르드와 남은 세 명의 사천왕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색 망토를 두른 거대한 덩치의 인물이 뜨거운 투지를 불태우며 살기를 풍기고 있군.

슬쩍 드러난 그의 손에는 거대한 건틀렛이 착용되어있었고, 꽤 높은 단계까지 강화를 한 탓인지 멋스런 아우라도 조금씩 뿜어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색을 보아하니 아마도 화염계통. 건틀렛이면 무투가 쪽이다. 아무래도 시시한 싸움을 기다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이군.

“꺼져라 멍청한 녀석들!”

무식한 포효를 터뜨리며 남은 공작들을 뒤로 물리는 붉은 망토의 사천왕. 이봐. 아무리 그래도 내 상대였는데 당신이 멋대로 움직이면······. 그보다 같은 팀이잖아? 너무 막 대하는 거 아니야?

“저런 조무래기 하나 붙잡지 못한 책임은 나중에 엄히 다루도록 하겠다. 지금당장 전선에서 빠져라.”

“거기 탱크톱돼지. 오크라서 대가리에 살만 가득찬 거냐? 까불지 말고 잠자코 기다려라. 죽탱이 날아가기 전에.”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사천왕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묵사발을 내어 군주님 앞에 내놓겠다.”

“가능하다면 해보시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어디서 감히 기어오른단 말인가?

“진짠지 아닌지 지금 바로 보여주마.”

그가 붉은 망토를 벗어던졌다. 망토 안에서 드러난 모습은 예상대로 괴상망측한 얼굴이었다. 잔뜩 일그러진 이목구비에 침이 질질 흘러내리는 비대칭 구강구조. 하늘로 우뚝 솟아오른 엄니와 호박색 눈동자는 오크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무투가 에녹이다. 덤벼라.”

“사족이 길군.”

내가 바라는 것은 말보단 실력이다. 감히 나와 대적할 수 있는 존재와 싸우는 것. 그것이 내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란 말이다.

왜 그렇게 강한 상대를 좋아하냐고? 내 장비에 대적할만한 실력자가 있다면 그건 엄청 기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 장비를 이겨낸 상대를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어야 장비를 더욱 강하게 만들려고 더 노력할 테니까.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 누구도 어떤 몬스터도 내 장비를 이기지 못했다. 이번 상대는 어떨까? 사천왕인 그들이라면 나와 대적할 수 있을까?

“거기 다른 놈들은 지켜보는 거냐? 공작 놈들처럼 따로 들어왔다가 괜한 낭패 보지 마라.”

“우리 사천왕들은 다른 왕들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승리가 아니면 죽음뿐. 그것이 사천왕의 룰이다.”

“육갑떨고들 앉았네. 그래서 공작에게 뒤진 거냐? 그 사천왕이라는 녀석이? 중상을 입긴 했지만 어찌어찌 쿠샨이 이긴걸 보면 네놈들도 별거 없겠군.”

“쿠샨? 네가 그를 어떻게 아는 거지?”

“많이 알면 다쳐.”

에녹은 푸르륵 거리며 뜨거운 콧바람을 내뱉었다. 진득한 살기가 풍겨왔지만 역시,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하는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생각했다.

‘또 쭉정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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