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51)
작전 3일째. 현재시간 00시 00분
은빛의 찬란한 보름달이 먹구름에 가리어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이맘때. 골목 어둠속에서 꿈틀거리는 세 개의 인영이 있으니, 한사람은 번뜩이는 한손직검을, 한사람은 몽둥이에 가까운 지팡이를, 다른 한 사람은 진짜 몽둥이를 들고 있다.
세 사람의 움직임은 은밀하고 신속했으며 정확했다. 그들은 다잔의 생활패턴에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었고, 굶주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다.
신속하게 타깃의 뒤로 접근하는 게르덱, 타깃 앞에서 슬며시 허벅지를 까며 시선을 돌리는 카스티바, 타깃의 시선이 잠깐이라도 돌아간 순간 게르덱은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다.
타깃의 주머니로 손이 향하는 순간 허공을 날아다니는 파리를 낚아채듯이 빠르게 팔을 휘두른다. 일말의 소리도 남기지 않는 깔끔한 소매치기. 하지만 그 실력이 미숙하여 타깃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인기척을 숨기는 것은 힘든 듯 했다.
인기척을 느낀 타깃은 곧바로 등을 돌려 엉덩이 부분을 확인. 자신의 가죽주머니가 없어진 것을 보고는 눈앞의 게르덱을 정색하며 바라보았다.
보통사람이라면 여기서 당황하고 도망치는 것이 대부분이리라. 하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안토니오가 천장에서 떨어지며 몽둥이로 후두부를 가격! 콤비는 생각보다 황당하면서 완벽했다.
“게르덱 형! 때려요!”
“알겠습니다!”
게르덱은 한손으로 푸른 마력을 끌어 모았다. 동시에 번쩍이는 섬광이 일제히 터지더니 거체의 타깃이 허공으로 퉁겨져 날아갔다. 떠오른 거체는 가게 밖 골목 콘크리트 벽에 찍혀 들어갔고 벽에는 방사형의 그물이 수십 가닥의 선을 그리며 갈라졌다.
“으궯!”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기괴한 비명과 함께 기절해버리는 타깃. 게르덱과 카스티바는 서둘러 달려가 타깃의 옷가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일단 실링부터······.”
“잠시 만요 그러니까······ 아, 10만 실링정도 있네요. 이정도면 오늘 끼니걱정은 필요 없겠는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거의 사기꾼 콤비나 다름없었다. 소매치기에 실패하면 타깃을 기절시키고 물건을 강탈. 하지만 실은 다른 사연이 겹쳐있기도 하다.
안토니오가 두툼한 가죽 주머니를 위아래로 흔들어보고 가죽 주머니에 쓰여 있는 ‘미셀S’라는 글자를 지적하며 말했다.
“의뢰자의 돈이 맞는 것 같아요. 이중에서 50% 떼는 거니까 5만 실링이네요.”
게르덱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신세한탄을 내쉬었다.
"하아~ 이걸로 한숨 돌리겠네요. 이 남자는 꽁꽁 묶어둬서 으슥한 곳에 숨겨두죠. 정신 차리면 알아서 탈출하겠죠 뭐.”
“당신 꽤나 과격하네.”
카스티바의 지적에 게르덱이 으쓱였다.
“과격하긴요. 바드님과 비교하면 세발에 피죠. 하여간 그 분은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하아~ 벌써 물들어버린 건가? 바드의 생존방식에······.’
카스티바는 의미 없는 한숨을 연신 내쉬었다.
“일단 돌아가자. 의뢰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남은 돈으로 뭐라도 사먹어야지.”
무작정 도둑질을 하거나 사람 패서 돈을 약탈할 수는 없으니 돈을 도난당한 사람을 찾아서 일부 금액을 받는 거래. 안토니오의 발상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다잔은 돈 도둑이 하도 많다보니 이런 의뢰가 널리고 널린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대뜸 안토니오가 걱정스럽게 한 마디 했다.
“쿠샨 아저씨는 괜찮을 까요?”
게르덱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안토니오와 어깨동무를 나누었다.
“방금 바드님하고 통신하지 않았습니까? 쿠샨님은 멀쩡하다고. 게다가 바드님이 전설의 재료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니, 이번 일은 잘 마무리 될 거 같습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안토니오.”
“그럼 다행이지만요······.”
카스티바는 헛기침을 날리며 게르덱의 텅 빈 손을 주시했다.
“대화하는데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돈 자루 또 도둑맞았다?”
“아앗! 어느 틈에! 이곳은 한 순간이라도 방심할 수 없는 마을이군요! 젠장!”
동시에 늙어가는 안토니오와 카스티바였다.
“어휴······.”
***
감시팀과 남아있는 유도팀은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둡고 조용하고 칙칙한 도시에서 먹은 음식은 아무리 호화스럽다봐야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식사를 해결한 세 사람은 다잔의 가장 높은 철탑의 꼭대기로 향했다. 그곳은 다잔 전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이며, 엠페러의 입구 근처이기 때문에 감시에 최적화 된 장소였다. 단점이 있다면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새벽이 되면 기온이 상당히 내려간다는 정도. 그나마 게르덱이 마나를 태워 불을 지속적으로 피운 덕에 안토니오와 카스티바는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게르덱은 등대구조와 비슷한 원형의 참호안쪽에서 벽에 기대어 앉아 틈만 나면 파이어를 외치며 화력을 높이는 중. 카스티바는 어둠에 뒤덮인 다잔을 상공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안토니오는 추위에 떨며 질문했다.
“꼭 이런 곳에서 감시를 해야만 하나요? 조금은 밑으로 내려가도······.”
카스티바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안 돼. 지난번처럼 엠페러에서 급습할지도 모르니까. 추우면 이거라도 입어. 안토니오는 먼저 자도 되니까 푹 쉬고.”
그녀가 가죽 털로 기워낸 담요를 넘겼다. 안토니오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끌어당겨 몸을 덮는다.
“아니에요. 저도 교대할 테니까 꼭 깨워주세요.”
카스티바가 피식 웃으며 눈썹을 모았다.
“알았다니까. 어서 자둬. 당신도 미리 자두지 그래? 여긴 나 혼자서 충분하니까.”
“카스티바님은 또 선잠자려고요?”
무리다. 그녀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추구하는 기사라 한들 여성은 여성 아닌가? 이틀연속으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뭐야 그 눈은? 설마 내가 여자라고 쓸데없는 참견하는 거 아니지?”
“하하하! 그럴 리가요.”
“능청스럽게 웃어봤자 소용없거든. 그쪽이나 신경 쓰지? 가뜩이나 허약체질인 마법사인데······.”
그녀가 주먹을 쥐고 내 명치를 툭. 밀쳐내면서 가볍게 미소 지었다.
저기요. 이거 지금 무시하는 거죠? 맞죠? 마법사는 다 체력저질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마법사도 전사 못지않게 체력 강합니다. 그런 편견은 버려주세요.”
“그럼 당신도 내가 여자라고 무시하지 말지? 내가 정신력하나는 자신 있거든?”
카스티바는 지난번 엠페러 길드와의 협곡 난투에서 홀몸으로 몇 명의 암살자와 맞선 경험이 있다.
카스티바의 승률은 0%였지만 그녀는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와 확고한 신념, 그리고 뛰어난 정신력으로 암살자 한명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데 성공했다. 이는 카스티바의 정신력이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임을 증명한다.
“후우~ 알겠습니다. 하기야 카스티바님 같은 분이 지쳐서 쓰러진다니 생각도 못할 일이죠.”
게르덱은 긴 하품을 내뱉으며 철탑 벽면에 등을 기대었다. 어께에 두른 백색 로브를 꼬옥 끌어안고 한쪽 단안경을 안주머니에 넣는 순간, 그는 잠에 빠져들은 듯 고개를 수그렸다.
카스티바는 지친 기색을 숨기며 게르덱과 2미터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꾸벅. 꾸벅. 꾸벅.
감겨가는 시야 속에서 카스티바는 꿈을 꾸었다.
과거인지, 현실인지, 미래인지. 아니면 그저 악몽인지 분간 못할 꿈을.
‘흠?’
자연스럽게 떠진 눈. 나는 정면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은 어둡고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다. 하지만 눈앞의 얼굴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나는 벽에 기대어 잠들어있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게르덱과 떨어진 거리하며 안토니오가 잠든 위치하며, 내가 잠들기 직전과 동일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유체이탈이라는 것인가? 갑자기 왜?
“눈을 떠라.”
낯선 이의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듯 상공을 감돈다. 나는 반사적으로 발검자세를 취했지만 유체이탈이 된 지금. 칼잡이가 잡히지 않았다.
“누구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카스티바는 사주경계를 잊지 않으며 경각심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세상에 퍼지는 목소리는 희열을 머금은 채 기학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니,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네 과거를 안다 카스티바.”
“······!”
“엠페러 길드를 증오하나?”
“······.”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었다.
“대답이 없군. 네 인생을 완전히 망쳐놓은 엠페러 길드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나?”
“너는 누구지? 어디에 있는 거야?”
“내가 어디 있는지는 네가 더 잘 알 테지. 15년 전 그날 네가 지하실에서 주운 그것 말이야······.”
사아아아악.
정지된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먹구름이 차차 흘러가고, 달빛은 조금씩 구름 틈새를 파고들었다. 정신을 되찾은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맨 아래 칸의 아이템을 오브젝트했다.
은은하게 하늘색이 감도는 손바닥 크기의 타이머. 섬세하게 조각된 그림과 적당히 고급진 무늬들이 요동치는 듯하다. 갑자기 무슨 이변이 벌어진 거지?
피곤에 찌든 그녀가 혼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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