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50화 (50/202)

Master Smith (50)

어둡다.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으면 또 다른 감각이 예민해지기 마련.

나는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리드미컬한 소리가 들려온다. 모종의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 강렬하고 폭발적인 무언가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때로는 신비로운 동굴 안쪽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소리, 때로는 화산이 분화하는 폭발적이고 뜨거운 소리. 때로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때로는 흥분되고 강하게────.

이 느낌 알고 있다.

모든 감정을, 내 모든 것을 담아내는 소리. 이 소리는 분명 ‘망치질’이었다.

떠엉──! 떠엉──! 떠엉──! 떠엉──!

한명의 망치질 소리가 아니다. 두 명, 세 명, 수백 명의 망치질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했다. 아니, 느낄 수 있다. 이 망치질은 분명 나의 망치질이라고.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이곳에 있고, 어둠속에 묶여있지 않은가? 손에 망치가 들려있다는 느낌조차 없다. 그렇다면 ‘나의 망치질’인 저 소리는 나의 것이 맞는가?

정답은 ‘나’의 망치질이 아니라. 나와 같은 대장장이의 망치질이라는 것이다. 누가? 나 이외에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지?

누가 나와 동급의, 혹은 그 이상으로 망치질을 잘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런 사람 있을 리가 없어······.

‘아니야.’

없기는 뭐가? 존재한다. 결코 도달해본 적 없는 경지에 이른 또 다른 사람. 전설에 도달한 누군가는 분명 존재한다. 코지부락에서 우연히 얻은 묠니르가 분명한 증거이다. 어쩌면 내가 실패한 이유는······.

보고 싶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인간일까? 아니면 신일까? 나도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나도 이만한 망치질을, 이만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왜 나는 이렇게 까지 못하는 건데? 한평생 망치만 쥐고 살아왔는데 어째서············?

‘인정하지 않아서 인가?’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측량하지 않았다. 한평생 나 자신이 최고라 단언했고, 때문에《장인의 혼》이라는 존재여부 불확실한 히든 패시브를 달고 살았으니까.

장인의 혼? 장비의 우월함? 뭐가 장인의 혼이냐? ‘최고’조차 되지 못한 내가! 최고에 이르지 못한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젠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위를 보지 않게 돼.’

더 높은 곳을 봐야만 성장할 수 있다. 지금 자신이 최고라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성장은 없다. 인정하자. 나의 한계를.

그 순간 시끄럽게 떠들던 망치질이 일제히 멈추었다. 한없는 침묵, 고요와 정적. 그리고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은 적막함.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갈 수 있다.”

익숙한 목소리다. 없이 인자하고, 그립고, 쾌활하고, 재치 있는······ 그럴 리 없다. 그 남자는, 그 사람은 이미······.

‘죽었잖아?’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게 늘어뜨린 흰 수염을 새끼줄처럼 꼬아낸 걸걸한 노인은 쭉 찢어진 눈매에 인자한 눈웃음을 그리고 있었다. 구부러진 허리하며 쭈글쭈글한 이맛살, 한평생 망치를 잡아온 굳은살 박힌 손. 그리고 그 온기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은 금방 사라졌다. 대신 다른 사람이 홀연히 나타난다.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사제복을 입고, 가느다란 지팡이를 착용한 여성. 남색 머리카락을 말아 올린 그녀는 할아버지 다음으로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앳된 얼굴엔 수수하지만 세련된 미모가 적나라케 드리워져 있었다. 이렇게나 뼛속 깊은 곳까지 간질간질하게 예쁜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레이나?”

“할 수 있어 바보야.”

그녀는 방긋 웃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내가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꿈? 그보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이곳에서 뭘 하고 있었지? 그 이전에 나는·········

‘나는 누구지?’

그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토끼 귀가 달린 수인족, 사자처럼 생긴 험악한 인상의 장군, 붉은 포니테일의 여검사, 벽안의 귀족 청소년, 지적인 단안경의 남자 등.

그들은 내게 같은 말을 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할 수 있다”라고. 내게 말해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나만 더 대답해줘라.

“나는 누구냐?”

“······.”

빛의 그림자가 뭐라고 속삭였다.

아, 그런가.

그제야 이해했다. 왜 이런 상황이 찾아왔는지. 그냥······ 부정하고 싶었던 거겠지. 최고가 아닌 나 자신을. 그렇지?

“나는 대장장이 바드다.”

하나의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묵직한 저항감. 나는 주변의 공기밀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두웠던 시야가 점점 회색으로, 흰색으로, 순백색으로 밝아지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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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엉!!

***

누군가 내손을 감싸 쥐고 있다. 작고 아담하다. 부드럽고 하얗다. 손에 이어진 팔은 가늘고 가녀리다. 시선이 팔을 따라가니 그 끝에는 앳된 허물을 벗어나지 못한 여자가 서 있었다. 꿀처럼 흘러내리는 호박색 눈동자와 티끌하나 묻지 않은 하얀 백발과 콕. 눌러주고 싶은 오똑한 콧날. 입가에는 작은 송곳니가 수줍게 튀어나와있었다.

“미호였냐?”

“코는 왜 눌러?”

미호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제야 상황 돌아가는 게 정리가 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바보같이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최고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 결국 나는 나다. 내가 못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그에 대해 크게 신경 쓰면서 좌절할 이유도 없다.

바보 같잖아?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지금의 한계를 인정해놓고선 좌절해버리는 것은······. 한번 실패했다고 자신을 잃어버릴 뻔하다니. 나도 아직 어수룩하다.

“오빠야 이제 괜찮아?”

아무것도 모르는 미호가 콧잔등을 붉히며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덕분에 정신이 확 깬다. 얼굴 좀 치우지?”

“뭐야아~ 칭찬이야 욕이야?”

사춘기 소녀 미호는 새침하게 콧방귀 뀌며 두세 걸음 떨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성급했다. 전설이라는 경지에 너무 집착했고, 때문에 잘 진행되던 계획 또한 말아먹을 뻔 했다.

“몇 번이고 만들어 주마. 빌어먹을!”

나는 묠니르를 꺼내들었다. 내가 동경한 경지를 실현시킨 장비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역시 장비의 재창조보단 이게 우선이려나? 내구도가 간당간당하지만 버텨낼 수 있지? 묠니르.

“후읍!”

떠엉!

대장간 망치대신에 묠니르를 이용한 망치질. 이번에 실패하면 묠니르도 완전히 파괴된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시도였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나의 모든 걸 한 번의 망치질에 전부 쏟아내야 한다.

떠엉!

새빨간 불똥과 아름다운 불꽃의 환상적인 케미! 청색의 번개가 공기를 불태우고, 거대한 폭음이 고막을 찢어발겼다. 공기를 떨쳐내는 농밀한 진동은 파장을 일으키며 땅굴 벽면에 충격을 가했다. 전하가 허공을 부유했고 따끔한 공기를 만들었다. 망치질마다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라 시야를 가린다.

떠엉!

녹여서 화합한 재료들과 묠니르가 부딪쳤다. 그때마다 강렬한 청백색 번개가 사방으로 융기하여 바드의 몸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않고 망치질을 이어갔다.

떠엉!

묠니르의 내구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장간 망치도 아닌데 이런 용도로 사용해도 될까 싶었지만, 이렇게라도 담고 싶다. 전설을 향한 내 욕심을, 내 바램을, 나의 꿈을······.

떠엉!!!!!!!!

“내 모든 걸 걸고 맞부딪쳐 주마!”

바드가 하늘 높이 묠니르를 들어 올려 복합재료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쳤다. 뒤이어 천재지변 못지않은 거대한 폭음과 함께 땅굴 전체가 흔들렸다. 옆에서 황홀함에 젖어있던 미호도 뒤늦게 긴급한 상황을 이해하고 귀여운 비명을 질렀다.

콰쾅──────────────────────────────!!!!!!

“뀨아아! 흐아앙~! 미호살려!”

쿠르릉············ 천장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바닥이 함몰된 것은 아닌지 안중에도 없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새빨갛게 달궈진 검은색 크리스털 큐브였다. 크기는 10센티미터 정도 되는 ◇모양의 4차원 입방체였고, 끊임없이 운동하며 차원이 다른 기괴한 활동을 하는 중이다. 두 눈으로도 믿기 힘은 운동이었다.

‘이게 가능한 모양인가?’

나는 달궈진 조각을 한동안 상온에 냉각시켰다. 식어버린 크리스털 큐브는 완전한 칠흑색을 발했고, 모든 빛을 흡수하여 검은 빛으로 반사해냈다. 그 어둠은 우주 그 자체였으며, 아름답고 몽환적이었다. 아니, 이 세계의 언어로 감히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와아~ 예쁘네.”

총총거리며 옆으로 다가온 미호가 눈을 빛내며 검은 조각을 주시했다.

우주를 담은 어둠에는 황홀함과 아름다움이, 안쪽에서 반짝이는 빛의 입자에는 아득히 멀어지는 아련함과 그윽한 광활함이, 보석에는 알 수 없는 모든 감정이 담겨있었다.

“성공한 거야?”

“누구 덕분에.”

“아이참~ 헤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대도. 오빠야가 잘한 거지.”

말은 그렇게 해도 기분은 좋은지 뒷머리를 긁적이는 여우소녀는 헤실헤실 천진난만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정말 멋지더라. 오빠야가 왜 대장장이를 하는지 납득이 갈 것 같아.”

“전설의 망치로 내리쳐서 그런가, 쓸데없이 소란스럽긴 하더군.”

미호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나는 망치질하는 오빠야를 말하는 거였는데? 정말 최고야!”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펑! 흰색 뭉게구름이 미호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 구름이 전부 걷어지기 까지는 1분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어라? 몸이 돌아왔네.”

봉긋해진 가슴, 기다란 다리와 성숙해진 얼굴. 아무래도 미호가 말한 모종의 시간이 다 흐른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 질문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재료부터 확인해볼까? 성공한 것 같긴 하다만 정보를 확인할 때까지는 단정할 수 없으니까.”

“응! 주인님. 아무튼 멋졌어. 에헤헤~”

그녀가 뜬금없이 와락 안겨들었다. 모습은 성숙해져도 정신연령은 거기서 거기라는 건가? 뭘 이렇게 안겨드는지 모르겠다. 사춘기 소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수밖에.

나는 제작한 재료를 주시했다. 재료의 정보를 알리는 정보창이 시야에 떠오르고, 나는 재료이름 옆에 적힌 하나의 단어를 발견했다. 그토록 바래온 단 글자.

노란색 글씨의··················《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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