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49)
“주인님아 나 왔어.”
무뚝뚝한 억양으로 인사하며 등장한 쪽은 쿠샨을 짊어지고 있는 미호의 분신이었다. 본체와 성격이 완전 딴판인 녀석인데,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군.
분신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체는?”
“아직 안 온 것 같아. 그나저나 쿠샨 꼴이 이게 뭐야?”
“가보니까 이미 이 모양이던데? 사천왕은 잘 쓰러뜨린 모양이야. 다른 애들은 잘 도망친 모양이고. 아마 게르덱이 블링크를 사용했겠지. 볼일 끝났으면 나는 가도 되지?”
“그래. 수고했다.”
미호의 분신을 퍼엉~! 뿌연 연기로 변해 완전히 사라졌다. 그나저나 미호 이 녀석은 자꾸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본체가 분신보다 늦게 오는 게 말이 돼?
나는 쿠샨의 의식을 확인한 뒤 상처를 꿰매고 붕대를 둘러맸다. 마지막으로 HP회복 포션을 조금 들이켜면······.
“쿨럭쿨럭! 케엑, 캬아아악! 퉤!”
“요란하게도 일어나는 군.”
정신을 되찾은 쿠샨이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엠페러의 대장간. 뭐, 감방이나 다름없지만 말이야. 미호의 분신이 널 데려왔다. 사천왕이 한 명이 사라진걸 알고 곧장 손써뒀지. 그보다 사천왕 한명을 직접 손봐준 모양이더군. 제법인걸?”
쿠샨은 속옷 한 장뿐인 자신의 모습을 보며 좋지 못한 쓴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수천만 실링이나 되는 최고급 장비를 전부 날려야 했지만 말이지. 그나저나 미호는 어디 간 거냐? 고맙단 인사를 해야겠군.”
“본체는 아직 안 왔거든. 이쪽으로 오는 게 대충 느껴지기는 하는데······.”
미호의 특유한 마력이 가까워진다. 단지. 그 마력이 갈팡질팡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을 뿐이다. 설마 진짜로 길을 잃은 건가?
“엎드려 쿠샨!”
바드는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쿠샨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었고 머잖아 그가 서있던 옆쪽 벽을 날렵한 무언가가 통째로 깨부수고 나왔다. 만약 쿠샨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면 그 무수한 파편에 휩싸여 가뜩이나 흉측한 쿠샨의 얼굴에 수많은 흉터가 더해졌으리라.
콰앙! 소리와 함께 꽃가루처럼 피어오르는 뿌연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포근해 보이는 꼬리를 가진 ‘소녀’였다.
잠깐만, 소녀? 생김새나 마력, 분위기를 보아하면 분명 미호가 분명한데······.
‘───어째서 소녀가 된 거냐?’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멀뚱히 나를 바라본다. 어쩐지 내 반응이 궁금하다는 눈치다. 나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미호가 성인에서 소녀로 변한 것을 다시금 확신했다. 대략 스물 중반에서 10대 후반쯤으로······.
“미호? 미호 맞아?”
“맞거든? 왜? 어려지니까 정 떨어져?”
팔짱을 깬 채로 새침하게 대꾸하는 미호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꾸물거렸다. 어째 분위기가 차가워진 느낌이다. 사춘기의 질풍노도시기에 빠지기라도 한 걸까?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튼 시간 맞춰서 돌아왔네. 조금 심하게 거창하긴 했지만 말이야.”
바드는 처참하게 부서진 벽을 주시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 어려진 이유에 대한 질문은 나중에 하는 것이 좋으리라.
어려진 미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이제 뭐해?”
“쿠샨은 다쳤으니까 잠깐 쉬고 있고, 너는 대장간 입구 쪽에서 조용히 망이나 봐줘. 누가 들어오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니까.”
쉽게 말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거다. 그래봐야 5일정도지만 지금 미호의 상황은 엠페러 길드 안에서 들켜서는 안 되는 침입자와 다름없지 않은가? 조용히 몸을 숨겨주는 것이 좋겠다마는,
“아씨! 여긴 지하면서 왜 이렇게 날벌레가 많아?”
어린애처럼 짜증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아하니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주기에는 무리 아닐까싶다.
“쿠샨. 네게는 조금 성가신 부탁이 있다. 괜찮겠어?”
“말만해라.”
나는 쿠샨의 귓가에 입을 대고 조용히 조근 거렸다. 쿠샨은 벙찐 얼굴로 ‘굳이 왜?’하고 암묵적으로 질문했다.
“이간질 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뭔지 알아?”
나는 엄지와 검지 끝을 붙여서 동그라미를 만들며 이어 말했다.
“돈만 있으면 동료든 뭐든 없거든. 특히 엠페러 같은 범죄 집단이면 말이야.”
정말 악마 같은 녀석이구나. 쿠샨은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징그러운 녀석. 아군이라 다행이길 망정이지.’
***
깊은 땅굴 안에서 울려 퍼지는 망치질 소리. 창조의 소리는 몸과 마음을 울리는 심혈의 울림이 되었다. 바닥이 진동하고 주변 공간이 떨렸다. 천장이 무너질 것 같은 강렬한 이펙트가 터졌고 사방으로 불똥이 튀겼다.
뜨겁게 달궈진 금속의 온도는 수천 도를 넘어섰다. 그 불덩이 앞에 서있는 바드는 몸 위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쉬지 않고 망치질을 이어갔다.
“후하암~ 흠냐······.”
바드가 장비를 제작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미호가 긴 하품을 뱉으며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끔뻑였다. 고양이처럼 엎드려 턱을 괸 미호는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오빠. 그거 재밌어?”
깡! 깡! 깡! 깡! 깡!
“무시하지 말고~ 나 심심하단 말이야!”
화르륵! 치이이이······.
“에이씨! 나 몰라!”
미호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자기 삐졌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어린애 마냥 쿵쾅쿵쾅 발을 옮겼다.
“가만히 앉아있어라.”
“······알았어······.”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발라당 누워버리는 19세 여우요괴. 몸이 어려졌다한들, 크게 바뀐 점은 정신연령과 아주 조금 어려진 몸이 전부였다. 아무리 자각이 없다지만 얇은 옷 한 장 걸치고 배꼽을 드러내는 행위는 보기에 좋지 않다.
“몸 가려라.”
“이씨······.”
미호가 잔뜩 불만인 눈으로 나를 째려본다. ‘니가 내 부모야?’ 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마음의 소리가 목줄을 통해 들려왔다. 이에 대해 벌을 내릴까 진심으로 고민했지만 아직 철도 안든 꼬맹이에게 무슨 소용이겠나 싶다.
“저기~ 그 재료는 전설의 장비를 만드는데 쓰이는 거지?”
“······.”
“오빠아아~ 나 심심해~”
발을 좌우로 까닥이고 몸을 이리저리 뒹굴 거리는 미호의 모습은 영락없는 애완견이었다. 그런 그녀의 애교라든가, 애교라든가, 애교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말이다.
나는 잠시 망치를 내려두고 손가락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무수한 방정식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마법진은 자연 원소와 함께 특이반응을 일으키면서 마법으로 전환되었고 이내 뜨거운 화염이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그 불길은 바드가 두드린 몇 가지 재료를 한 번에 녹여내고 하나로 섞어버렸다. 이 작업은 쉽게 말해『재료의 합성』이란 것이다. 재료를 합성하는 데에는 까다로운 조건과 주변 환경의 영향이 많이 끼치지만 내게는 《1000년의 추억을 이어온 낡은 모루》가 있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100% 차단가능하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게다가 전설등급 재료의 제작서가 있으니······.’
준비물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제작법에 나와 있는 에픽등급 재료 150가지. 그리고 별빛촉매제와 마력의 불꽃이다. 특정한 재료들은 전부 보물창고에 찾아낼 수 있었다.
별빛촉매제는 1년에 한번 오는 성환일식에서 얻어낼 수 있는 희귀아이템인데, 우연인지 아닌지 몇 년 전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가 구해둔 것이 있었다. 마력의 불꽃은 대마법사만이 피워낼 수 있는 순수 마력의 불꽃을 말하는 것인데, 화염마법 숙련도가 극에 달해야만 피워낼 수 있는 청염을 말한다. 물론, 이 또한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이므로 패스.
한순간 무지개색의 섬광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눈부신 빛과 따듯한 온기, 그리고 온몸을 짜릿하게 만드는 미묘한 감각.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
.
.
.
.
.
실패했다는 사실을······.
***
이유가 뭐냐. 나는 재료를 제작하는데 전심전력으로 온 힘을 쏟았다. 도중에 미호의 방해도 있었지만 말 몇 마디 건넨 것으로 재료제작에 실패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마음가짐은 확실하다. 망치질이나 불꽃재련에도 아무런 실수도 없었다. 그 중요하다는 재료 선정도 아무런 실수가 없었는데.
‘······.’
한평생 대장장이 일을 하면서 이런 상황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대장장이 숙련도가 정점에 이른 이후로 이런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럽고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기에 더욱 어려웠다.
전설의 경지가 이렇게 어려운건가? 내 전력으로 맞부딪쳐도 안 된다고? 그럴 리 없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 실수가 있었던 거겠지. 다시 한 번 시도해보자.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말이다. 재료는 넉넉하다. 몇 번이고 재시도할 수 있다. 밤은 길고, 시간은 많다. 조급해 할 필요가······.
“오빠야. 진정해.”
“떨어져 있어.”
“아니~ 얼굴에 조급해하는 게 뻔히 보인단 말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모습 본 적이 없거든. 혹시 실패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충격인거야?”
미호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나는 쓸데없는 참견이라며 망치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강하게 내리치려던 순간,
“그건 오빠야 움직임이랑 달라.”
그녀가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망치를 멈추었다.
“당신이 내게 옷을 만들어 줬을 때는 좀 더 아름답고 황홀한 움직임이었어. 청파와 백파의 옷을 만들었을 때······. 그때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고 있었지?”
떠올리는 것? 그딴 거 없었다. 그저 전력을 다해야겠다는 생각 뿐. 애당초 그때와 별반 다른 게 없다고 생각한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이전에 비해서 많이 변했어.”
“그냥 일시적인 현상이야.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빠야 정신상태 같은데?”
어려진 미호가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등 뒤에 엉켜 붙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인 것 같다.
“오빠답지 않아. 이 땅굴 안으로 들어온 이후로부터 계속 불안해하고 있잖아.”
“아닌데.”
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하면서 손아귀에 힘을 주었지만 어려진 미호는 오늘따라 이상하리만큼, 이상하게도, 이상한 분위기를 흘렸다.
“내 주인님이라면 좀 더 다정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
.
.
.
.
.
───────떠엉!!
그 순간 전례에 들어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세계에서만 들을 수 있을 법한 환상의 소리가 가슴 한편에 깊이 조각되었다.
이번엔 확신할 수 있었다. 성공할 수 있다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