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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48화 (48/202)

Master Smith (48)

뭔가 잔뜩 꼬여버렸다마는 상황은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예상치 못한 엠페러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충분한 시간과 기회까지. 무엇보다 놈들은 나에 대한 경계를 많이 풀어헤쳤다. 그 점을 이용하면 놈들의 허를 찌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이제 작전을 간추려 보자. 전설급 장비를 제작한 뒤에 반항해오는 엠페러의 뒤통수를 후려칠 것. 이로 인해 얻는 게 뭐냐면······.

1. 전설급 장비를 손에 넣을 수 있다.

2. 마왕의 부활을 저지할 수 있다.

3. 엠페러 길드의 자산을 긁어모을 수 있다.

4. 내 동료와 레이나가 안전한 모험을 떠날 수 있다.

나는 밀폐된 방안에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슨 문제 있나?”

걸걸하고 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케르드 군주 옆에서 덤덤히 앉아있던 로브를 두른 사천왕 중 한명이었다. 푸른 바다의 보주 아콰마린 보석처럼 반짝이는 갑옷과, 은은한 은빛을 내뿜는 거대한 낫을 착용한 그의 기백은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의 질문에 단답했다.

“사천왕이 괜히 사천왕은 아니군. 느낌부터가 달라.” “허튼 수작 부리면······ 죽는다.”

어둡게 음영 진 그의 로브 안쪽에서 뭉클한 살기가 베어 나왔다. 공작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함. 이런 놈이 아직 세 명은 더 있다는 소린데······.

‘잠깐만. 세 명?’

회담실에는 이런 놈이 3명밖에 없었다. 그럼 나머지 한 놈은?

“말해 봐. 나머지 한 명은 어디 갔지? 이름만 괜히 사천왕이 아닐 거 아냐.”

“클클클······. 왜 그러나? 바깥에서 기다리는 동료들이 걱정되나 보지?”

그의 발언에 바드의 표정이 삽시간 만에 굳어지기 시작했다. 바드는 사납게 이를 악물며 눈동자에 분노를 담아냈다.

“내 동료에게······ 손대면 뒤진다.”

“표정이 꽤나 볼 만하군.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네놈 같은 괴물을 힘으로 어찌할 수 없거든. 하지만 인질이 있다면 다르지. 것보다 정말 놀랐어.”

로브의 남자는 공허한 목소리로 공포스럽게 질문했다.

“쿠샨을 어떻게 꼬드겼는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반동분자. 즉각 처형이다.”

“······.”

아무래도 놈들을 너무 만만히 본 것 같군. 처음부터 내 움직임을 전부 꿰차고 있던 건가? 땅굴 침입부터, 외부에 동료가 대기하고 있다는 것 까지. 하기야 괜히 최악/최대 규모의 길드로 이름을 떨친 건 아니겠지.

상황이 변했다. 쿠샨의 목숨은 태풍 앞에 놓인 촛불신세. 그렇다면 카스티바와 게르덱, 안토니오의 목숨까지 위험하다. 여기서 지상까지 뚫고 올라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 방법은······.

“열심히 만들어 주셔야지. 우리 엠페러 길드가 사용할 전설의 무기를 말이야. 그래야 네 동료들이 살아남지 않겠어?”

그는 바닥을 뒤덮는 끈적한 목소리로 조소를 품었다. 바드는 그의 뒤통수로 한마디 날렸다.

“유비무환이란 말을 아나?”

“······.”

“사면초가에 몰린 건 니들이야 새끼들아.”

***

“이거, 완전히 노리개 취급을 받아버렸군.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던가? 쿠샨.”

“네놈이 여긴 어떻게······.”

쿠샨 앞에 등장한 남자는 쿠샨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익살적인 비웃음, 등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머스킷 건이 달려있고 그의 가죽 망토 안쪽에는 수많은 탄약이 줄줄이 사탕으로 주렁주렁 달려있으리라.

“저것 봐! 엠페러 길드의 사천왕 비르무스야!”

“젠장! 분위기를 보아하니 당장 싸울 판이군. 모두 불똥 튀기 전에 도망쳐! 싸움에 휘말리면 국물도 없어!”

마을 사람들은 악명 높기로 자자한 비르무스의 등장으로 일사불란하게 마을 광장을 떠났다. 이미 몇 번이고 엠페러 길드의 악행에 휘말렸기 때문에 위험을 미리 감지한 것이리라.

“아는 사람이야?”

카스티바가 한걸음 다가오자 쿠샨이 크게 호통을 쳤다.

“두 사람은 내게서 떨어져라! 게르덱, 안토니오와 카스티바를 데리고 다잔에서 도망쳐라. 어서!”

카스티바는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방해만 된다 이거냐! 싸울 거면 같이······.”

“썩 꺼지란 말이다!”

바드와의 통신은 두절된 상황. 미호나 바드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놈과 대적할 전력은 우리 쪽 밖에 없다는 소리가 된다.

‘비록 녀석이 사천왕 중에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놈이라지만 그 힘은 공작급 장군과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다. 내 힘을 아득히 뛰어넘은 녀석이야.’

여기서 전멸할 수 없다. 내가 녀석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해.

“뭐하냐! 어서 뛰어라!”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쿠샨님.”

게르덱은 카스티바와 안토니오의 어깨위로 손을 얹고 소리쳤다.

“블링크!”

쿠샨은 식은땀을 흘리며 정면의 남자를 주시했다.

“이제 우리 둘 밖에 남지 않았다. 비르무스.”

“키햐아~ 놀랍군. 공작 나부랭이 쿠샨이 언제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날 막아서다니 말이야! 이거 놀랍기 그지없는 장면이로세. 크하하하하하!”

“닥쳐라, 배신자 녀석.”

쿠샨의 발언에 비르무스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배신자?”

한 평생 너를 친구라 생각했다. 그런데 네놈은······.

“너를 위해 모든 걸 버린 나를, 쿠샨 네놈은 버리지 않았던가!!!!!!!!!!!!!!”

감히 배신자 녀석이 누구보고······ 누구보고 그따위 소릴 지껄인단 말인가!

“몇 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군. 내가 너와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못하는 이유. 모든 문제는 네게 있다 비르무스. 그 때의 너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닥쳐! 시시껄렁한 옛 이야기는 집어치워라 쿠샨. 이유야 막론하고 네놈은 친구를 배신한 놈에 불과해. 내게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말이다······.”

비르무스의 입가가 귀까지 걸터앉더니 공허한 눈동자가 쿠샨을 응시했다.

“이젠 길드까지 배신했으니 말 다했지. 네놈은 내 손에 죽는 거다. 정당한 이유로 말이야. 변명은 받지 않겠다.”

“정녕 나를 죽여야 한다면······ 이 싸움은 피하지 않겠다.”

쿠샨은 거대한 만도를 꺼내들었다. 은빛이 만개하는 거대한 도. 공작 서열4위의 쿠샨과 사천왕 서열4위 비르무스의 한판이 막 벌어질 참이었다.

머스킷 건은 최대사거리 500~700미터인 것에 비해서 실질적 위력을 발휘하는 유효거리는 상당이 짧다. 하지만 비르무스의 머스킷 건은 장전속도 증가와 명중률 증가 마법이 부여되어있어서 사격 속도와 유효거리가 상당히 증가되었을 것이다. 한 순간의 방심은 곧장 죽음으로 연결될 것이다.

“우오오!”

총을 든 상대로 거리를 내어주는 것은 바보 같은 짓. 한순간 거리를 좁혀 결판을 내리라.

“물러 터진 놈!”

탕!

비르무스의 머스킷 건이 총구에서 뜨거운 불길을 토해냈다. 피잉! 바람을 가르는 소리보다 앞서 튀어나간 구슬이 쿠샨의 어깨를 관통했다.

쿠샨의 어깨 죽지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지만 그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정면으로 돌격했다.

“무식한 녀석. 정공법으로 상대하겠다는 건가?”

“장전할 시간을 줄까보냐!”

머스킷 건은 평균 분당 3발. 그만큼 장전속도가 느린 총이다. 하지만 숙련자나 베테랑에 따라서 4~5발까지도 사격이 가능하다. 계산에 의하면 12초에 한발. 장전속도 증가마법까지 고려하면 10초에 한발 꼴로 분당 6발까지 사격이 가능할 것이다.

“스매쉬(Smash)!”

“어림없다. 스매쉬(Smash)!”

쿠샨의 만도가 금빛 호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동시에 비르무스의 머스킷 건도 황금빛으로 둘러싸였다. 도인(刀刃)과 개머리판의 충돌. 쿠샨의 얼굴은 돌부처마냥 굳어졌다.

“총으로 내 스매쉬를······.”

“총으로 스매쉬 쓰지 말란 법 있나? 그리고······.”

탕!

《출혈상태가 되었습니다.》

《HP가 83% 남았습니다.》

비르무스가 방아쇠를 당기자 장전된 구슬이 쿠샨의 복부를 관통했다. 번쩍이는 크리티컬 이펙트와 함께 쿠샨의 HP는 제로 부근을 기어 다녔고, 일시적 쇼크로 인해 경직상태에 이르렀다.

《HP가 23% 남았습니다.》

“크윽. 어, 어떻게 장전모션을 유지하지 않고······.”

“이 총은 네가 알던 허접 쓰레기 같은 총과 달라서 말이야. 사거리 증가, 정확도 증가, 장전속도 대폭 감소뿐만 아니라 공격력 증가 및 자동장전 능력까지 겸허한 에픽 무기지! 그거 아나? 이 총의 장전속도는 분당 60발. 즉, 1초에 한 발이란 소리다!”

일 났군. 어디서 저런 무지막지한 무기를 구해 와서는······.

방법은 딱 한 가지. 연사 기능이 없는 머스킷 건의 특징을 노려 놈의 빈틈을 잡아내는 것이다. 어차피 길드의 아이템이며 축복 아이템은 빼다 두른 녀석이다. 모든 스텟을 견주어도 저놈을 따라갈 수는 없으니 빈틈을 잡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끝까지 자신을 버리겠다는 거냐. 비르무스?’

넌덜머리난다. 나도 더 이상 네놈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겠다. 최후의 최후까지 네놈을 인생에서 지워주마. 목숨을 걸고서라도!

“놓아주마.”

네놈을 내 인생에서.

쿠샨은 입가에 흐르는 혈흔을 닦아내며 슬픔에 차오른 눈동자를 빛냈다.

“고통 없이 죽여주마.”

탕!

쿠샨의 머리를 겨냥한 정조준 사격. 아무리 피지컬 좋은 쿠샨이라 하더라도 즉사 판정이다.

“에피네아의 가호!”

《방어구의 내구도를 전부 소진하고 에피네아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장비는 10초간 능력을 유지한 뒤 파괴됩니다.》

에피네아의 가호: 10초간 모든 물리/마법 공격에서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본인에게 적용된 모든 상태이상이 해제됩니다.

쿠샨의 이마 정중앙을 노린 쇠구슬을 맑은 고음을 내며 튕겨 날아갔다. 비르무스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 그 기술은!”

“우리가 갈라서게 된 이유는 오로지 네놈의 썩어빠진 사상이 전부다.”

순수하게 힘만 갈망하다 도태된 세계에 발을 들이고, 부조리한 사상에 억압되어 자신을 잃어버린 네 잘못이 너무나도 컸다.

“오, 오지 마!”

탕! 탕! 탕! 탕! 탕!

“크윽,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벅샷(Buckshot)!”

타타타타타탁!

근접 무기 중에서도 최상의 살상력을 지닌 산탄 모드. 하지만 제아무리 샷건 이라한들 쿠샨의 가호를 뚫지 못했다.

“슬로우(Slow)”

“제, 젠장! 이래선 도망을 칠 수가······.”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한때나마 동료로서, 친구로서 길드에 몸을 담갔지만 이젠 아니야. 네 말마따나 나는 길드의 배신자니까.

“스매쉬.”

“크궤엛!”

콰가가가각!

뭉클한 핏덩어리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비르무스의 몸은 남아있는 시신경으로 인해 죽은 물고기 머리마냥 껄떡대고 있었다.

“네 놈을 힘에 미치도록 만든 그 녀석을 반드시 없애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풀썩.

쿠샨은 얼마 남지 않은 HP를 유지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장비는 파괴된 상태. 더 이상 갑옷이라고 볼 수 없는 강철조각들이 공기와 함께 산화되어 사라져 갔다.

“······뭐야 이 인간? 기껏 데리러 왔더니 벌거벗고 기절해 있잖아? 아무렴 이대로 데려가면 되려나?”

풍만한 가슴과 복스러운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미호의 분신이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쿠샨을 어깨에 짊어졌다.

‘그나저나 사천왕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다른 애들이 위험하니까 빨리 가서 구하라고 하더니······.’

문득 분신의 시선이 발밑으로 향했다. 반쯤 날아가 버린 목덜미와 줄줄 흘러나오는 핏물. 빨갛게 충혈 된 눈가에 눈물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암만 봐도 방금 사망한 시체가 분명하다.

“상당한 정기네. 이놈이 사천왕인지 뭔지 하는 녀석인가? 왜 죽어있데?”

그녀는 허공에 남아있는 정기를 코로 흡입하듯 빨아들이고는 기분 좋게 숨을 내쉬었다.

“아참, 이럴 때가 아니지. 다른 애들은 피신한 건가? 일단 주인님께 돌아가야겠다. 본체는 지금쯤 도착했겠네.”

분신은 허둥지둥 땅굴로 돌아갔다. 완전히 뻗어버린 쿠샨을 등에 짊어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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