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47화 (47/202)

Master Smith (47)

상대의 직업을 알아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직업을 간파할 수 있는 스킬을 소유했거나, 상대의 착용장비를 분석하는 것. 내 차림새는 어딜 봐도 대장장이라는 티가 나지 않는다. 청파의 옷차림에다 착용한 장비라 해봐야 조잡한 곡괭이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녀석 같은 경우에는,

『간파스킬』

“당황했나? 하기야 간파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겠군.”

“직업은 그렇다 치고 마스터스미스란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짐작한 것뿐이야. 어떤 미친 대장장이가 재료 하나 때문에 내 길드에 잠입을 시도하겠어? 정신 나간 놈이 아니고서야······.”

스토리 라인이 대충 그려지는 군. 케르드는 지난번 코지부락의 몬스터 침공사건 때 무기를 제작할 대장장이를 잃었고 덕분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쿠샨의 소식은 완전히 두절된 상황. 실로 갑갑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는 거지. 어딜 가서 아무 대장장이나 데려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케르드는 ‘나’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갑과 을의 관계가 확실하게 정해지겠군.

“그래. 전설등급의 장비를 원하는 건가? 그걸 나보고 만들라고?”

“원래라면 우리 쪽 대장장이가 전설등급의 무기를 구해왔을 텐데 그 행방이 묘연해졌더군. 원래 계획대로 전설등급 재료부터 만드는 것이 옳아. 아무튼 이번엔 내 쪽에서 질문할 차례인 것 같군.”

그가 원탁위에 놓인 황금 잔을 들어 올려 안의 내용물을 들이켰다.

“한잔?”

“질문이나 하시지.”

“대화가 빨라서 좋군. 지금 보니까 네놈은 엠페러 길드의 목적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이거 하나만 묻도록 하지. 네놈은 우리 길드의 적이냐?”

칼날 같은 살기가 피부를 덮쳐왔다. 여기서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당장 내전이 벌어질 것만 같은······.

“살기 좀 거두시지? 당장 내가 필요한 사람은 네놈일 텐데?”

주제 파악을 해라. 지금은 내가 갑, 네가 을이야. 단언하는데 하늘아래 마스터스미스는 나 하나밖에 없을 거거든.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확인한 뒤에야 그의 질문에 답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날 죽이는 것은 기정사실 아닌가?”

“잘 아는군. 다만 그 시기가 늦어지냐 아니냐의 차이다.”

“내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 거 같나?”

파지지직. 날카로운 번갯불이 두 사람 눈에서 강렬하게 빠져나와 충돌했다. 기묘한 살기로 가득한 회담실은 서늘한 공기만이 너울이 흘러갔다. 한편, 회담실 밖에서 대기하던 엠페러의 공작과 사천왕은······.

‘크윽! 무슨 돼 먹지도 않는 기운이란 말이냐! 설마, 군주님의 살기와 나란히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줄이야!’

휴겐은 바드와의 첫 만남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온 사실을 내심 안도했다.

“역시 장인은 다르네. 내 기운을 버텨내다니.”

“별 잡것의 기운으로 밀릴 내가 아니거든.”

조금 자극적인 대답이었지만 케르드는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마냥 웃어보였다.

“크하하핫! 역시 재밌는 녀석이야. 좋아, 네게 기회를 주지. 내게 전설급 재료를 만들 수 있는 제작서가 있다. 네가 보물창고에서 가져간 재료를 사용해서 전설등급의 재료를 만들어라.”

“내 목적을 잘 알고 있군. 다음 목표가 그거였다는 걸 알고 있었나?”

“아마도? 그나저나 곤란하군. 재료가 조금 부족할 거거든. 네놈은 모르겠지만 내 부하 한명이 연락 두절이 되어서 그녀석이 갖고 있던 재료가 몽땅 실종된 상태다.”

아, 그거 범인이 바로 접니다만······.

놈들은 아직 쿠샨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 괜한 발언은 안 하는 것이 좋으리라.

“나 마스터스미스야. 대체 재료는 내가 알아서 찾아보지. 대화 끝났으니까 다른 놈들 불러들여. 나도 한 마디 할 게 있으니까.”

케르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깥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공작들과 사천왕이 회담실 안으로 돌아왔다.

“너희들 말이야.”

바드가 청파의상을 벗어던졌다. 그 안에 드러나는 근육질의 상체. 팔에는 뚜렷한 근육선이 조각같이 새겨져있다. 짙은 명암이 드리워질 정도로 뚜렷한 인체비율은 야생적인 몸 그 자체였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감탄.

“흐음! 조각 같은 몸이다.”

“와앙······.”

바바스는 2미터의 거대한 체구의 오크로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 구조를 가졌다. 그런 그가 무의식적으로 탄성을 내지를 정도였으니, 바드의 몸이 얼마나 완벽하게 단련되어있는지 알만하다.

“상층에 내 동료가 싸우고 있다. 이 이상 시간 끌면 백파며 청파며 다 몰살이야. 병력을 물리는 게 좋을 걸?”

이때 케르드의 한 마디.

“그거랑 상의 탈의랑 무슨 관계라도 있나?”

“대장장이의 완성은 상의 탈의거든.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엠페러는 전설등급의 재료를 만들기 위한 제조법과 전설의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자원을 아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만, 놈들의 목적은 터무니없지만 간접적으로 보면 나의 목적도 일부 반영 되어있지 않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럼 슬슬 꺼내 봐. 네놈들이 비축한 진짜 보물들을.”

범죄길드지만 엠페러 길드다. 이만한 집단에서 모아둔 보물이 고작 창고에 있는 재료만이 아닐 것이리라.

“그냥 무식한 대장장이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눈치 빠른 쥐새끼였군.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 쪽은 분명히 전설등급의 재료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와 그만한 재료를 충분히 갖추고 있으니까.”

“케르드님! 그 이상 놈에게 정보를 발설하면······!”

휴겐이 원형탁자를 콰앙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케르드는 그저 느긋한 미소로 답해줄 뿐이다.

“상관없어. 너희가 싫다 해도 이 남자는 할거 다 하는 힘이 되거든.”

마치 본인 이외에는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소리처럼 들리는 군. 착각도 유분수지 굉장히 웃기는 소리다. 아무튼 분위기는 내 쪽으로 기울었군.

각설하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내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겠군─────하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다. 내부교란의 최종 목적은 전설등급의 재료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도 뭣도 아니니까.

‘특히 공작 놈들의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것은 필수 중에 필수지.’

“일단 제조법부터 받겠다.”

“성질 급한 녀석이로군. 뭐, 좋다. 이걸 받아라.”

케르드는 제작서와 작은 보석을 던졌다. 보석치고는 광석에 더 가까운 탁한 색이다. 뭐에 쓰는 건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 그 역시 이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시선을 던졌다.

“전설등급의 재료의 필수 재료다. 그 녀석을 요리하는 것은 네놈의 몫이지.”

“내 입맛대로 전설등급의 장비를 제작하라는 소리로 들리는 군?”

“만드는 것은 네놈이고, 그 자유 또한 내가 제한해둘 수 없으니까.”

“시원시원해서 좋군. 맡겨만 두라고.”

나의 시건방지게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8인 공작들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래봐야 제 딴에 뭘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나는 케르드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물인 것을. 놈들은 내게 손가락 하나 건드릴 수 없다.

“기한은 한 달. 그쯤이면 충분하겠지?”

보통 심혈을 길들이는 장비는 제작기간이 10일정도가 걸린다. 그걸 감안한다면 케르드는 넉넉한 시간을 주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10일 동안은 내가 못 기다리지. 5일이면 충분해.”

“5일? 미안하지만 대충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결과가 나쁘면 당연히······.”

“입 닥쳐. 나부랭이 부랑자 녀석. 내가 장비를 제작하는데 대충대충 넘어갈 거라 생각하는 거냐?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군.”

내 나이 아직 새파란 청춘이라지만 나는 지금껏 살면서 《장인의 혼》정신을 잃은 적이 없었다. 대거 하나를 만드는데도 전력을 다하는 내가 뭐? 대충?

뜻 모를 분노가 농밀하게 피어올라 회담실 안을 가득 메웠다. 보여서는 안 되는 모종의 기운이 검붉은 색조가 떠오르자 다른 모든 이들은 살갗을 바늘로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바드의 앞에 서있던 케르드는 남들보다 더한 압력을 느껴야만 했다.

‘······!’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온몸을 꿰뚫는 고통. 신경이 타서 녹아내리는 듯한 강렬한 통증. 자칫하면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케르드는 온몸의 신경감각을 최대한 붙잡았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릴수록 그 격통은 곱절로 배가되었다.

“크으윽!”

“조용히 물러나. 결과는 내일 발표한다.”

나는 케르드가 넘긴 제작서와 재료를 들고 자리를 떴다. 이만하면 적당한 본보기가 되었으리라.

‘몰래 숨어들어온 쥐새끼가 뭐 저리 당당한 거냐. 크크크······!’

케르드의 입가에 뜻 모를 어둠이 짙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

『미호 상황은 어때?』

‘거의 다 정리했어. 어휴, 이것들 수천 명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얼마나 귀찮게 구는지 몰라. 벌레 같은 자식들.’

『지금 8인의 공작이 네 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네가 전부 상대해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빠져있어. 이제 곧 전설급 장비를 만들 거니까. 어서 돌아와. 그리고 쿠샨.』

나는 귀에 걸어둔 소형 이어폰에 손을 갖다 대고 쿠샨을 호출했다.

[말해라.]

“바깥 상황에 별 이상 없지?”

[없······ 아니, 생겼다. 방금 전에. 잠깐 통신 끊도록 하지.]

툭.

통신이 끊겼다. 외부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이제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될 참이었는데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군. 그래도 쿠샨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미호.』

‘왜?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는데 또 할 일 생겼어?’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너 말고 네 환영이 말이야. 잘 들어 이번 작전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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