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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46화 (46/202)

Master Smith (46)

미호의 결계가 해제되었다. 바깥은 청파와 백파의 잔당들로 가득하다. 이간질은 개뿔, 오히려 단합해서 우리를 찾고 있는 모양새다.

‘들켰나 보군.’

당황할 필요 없다. 청파의 옷을 완벽하게 모방했으니 정체를 들킬 이유가 없으니까.

“여기다! 머리에 노란 두건을 착용하지 않았어!”

“노란 두건?”

그러고 보니 하나같이 두건을······ 엠페러 녀석들 보기보다 생각은 하고 사나보군. 침입자가 발생했으니 적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는 새로운 표식이나 암호가 필요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모든 게 헛수고였다는 소리.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면 카스티바와 게르덱을 여기까지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은 신의 한수였다. 온갖 전투가 난무할 싸움터에서 그들은 방해만 될 뿐이니까.

“적이다! 놈들을 붙잡아라!”

“염병,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귀찮은 짓 안하고 다 때려 부쉈을 텐데.”

이렇게 된 이상 전면전뿐이다. 보물창고는 진작 털었겠다. 까놓고 말해서 숨어 다닐 필요 없지 않은가?

“여긴 내게 맡겨 주인님.”

미호가 앞길을 막았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한쪽으로 치우친 감정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였다.

“혼자서 괜찮겠어?”

“어제랑 다르니까 걱정 마. 여기서 지체하면 제작서 못 찾을지도 모르잖아?”

미호 말대로다. 놈들은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여기 있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괜히 밍기적거리는 것은 좋지 못하다.

“맡기마.”

나는 땅굴 중심부로 향했다. 지하 엘리베이터야말로 최하층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이리라.

[들리나 바드? 최하층은 군주의 알현실이다. 지금쯤 모든 공작들과 사천왕이 모여 회의를 나눌 시간이지.]

“그런 건 알 필요 없어. 중요한건 제작서가 어디 있느냐야.”

[지하 5층 가장 깊숙한 방에 있다. 다른 길은 없으니까 통로만 따라서 가면 될 거다.]

지하 5층 가장 깊숙한 방말이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작동 하냐?”

나무판자와 두꺼운 밧줄을 꼬아 만든 엘리베이터. 비좁은 돼지우리에 서있긴 하지만 밧줄이 내려갈 생각을 않는다. 그러다 문득 엘리베이터 입구 앞에 매달린 작은 종이 눈에 띈다.

[종을 흔들어라.]

황금 종을 흔들자, 소리에 맞춰 엘리베이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분정도 내려갔을까? 칠흑 같은 어둠이 주황색 불빛에 물들어가더니 시야가 밝아졌다.

“충성! 수고하십니다!”

“아, 그래 수고.”

졸개들 눈속임은 기본. 자연스럽게 행동만 하면 의심받을 여지가 없다. 물론 어디까지나 졸개를 대상으로 가능한 상황이다.

“청파 아닌가? 지금 침입자를 찾느라 위에서 개고생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상황 보고하러 왔습니다.”

나는 반달돌칼을 들고 있는 남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설마 침입자가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 줄 누가 예상하겠는가? 그보다 반달돌칼? 저것도 무기라고 들고 있는 건가?

“보고? 설마 파벌 문제냐? 그건 네놈들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했을 텐데?”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더니 쥐고 있던 반달돌칼을 들어올린다. 어이, 아무리 그래도 길드원이잖아. 높으신 나리들이 아랫것들을 잘 감시해야하는 거 아니야? 알아서 하라니? 그 무책임은 뭐야?

일단 놈의 환심을 사는 것이 우선이겠군. 여차하면 꽤 쓸모 있겠어. 다행히 놈의 이목을 끌만한 미끼는 충분하다. 엠페러 길드가 어떤 놈들인가? 레어한 아이템이라면 끔뻑 넘어가는 것들 아닌가? 그렇다면 적당히 좋은 아이템을 골라 조공을 바치면 다루기 아주 쉬울 것이다.

“제가 좋은 아이템을 구했는데 말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좋은 아이템?”

‘입질 왔다. 멍청한 새끼.’

“최근에 손에 넣은 대검인데. 이거 완전 물건입죠! 화염속성 부여에 엄청난 공격력이 내장된 양손무기! 요구 스텟이 조금 높긴 하지만 충분히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강화등급이 상당하군. 이렇게 아름다운 빛은 처음이다.”

“그 반달돌칼보다 백배는 좋을 겁니다. 그보다 보고 말인데······.”

“아, 말해봐라. 무슨 말이지?”

의심의 싹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제작서의 위치를 바꾸고 경비를 강화하라는······.”

“위에서? 처음 듣는 소린데. 게다가 그렇게 중요한 명령을 청파의 백작 따위가 받았다고?”

다시 한 번 의심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확실하게 알아보고 움직이겠다. 지금 막 회의에 참석하려고 했으니까.”

“회의라면······ 케르드 군주님도 함께하는 자리인 겁니까?”

“잘 알고 있군. 알아볼 테니 기다려라.”

모든 공작과 사천왕. 그리고 엠페러 길드의 정점에 위치한 인물까지 모이는 정상회의. 어쩌면 제작서의 위치를 찾는 것보다 더 빠른 길이 눈앞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만 저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킁! 터무니없는 소릴 하는군. 네놈은 목숨이 두 개인가 보지? 일개 졸개 따위가 함부로 참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더군다나 기가 약한 놈이면 회의 자리에서 졸도할지도 모른단 말이지. 썩 꺼져라.”

‘쩨쩨하게 구는군.’

정 그렇게 나오겠다면 어쩔 수 없지. 뇌물을 좀 더 높이는 수밖에.

“케르드 군주님도 관심을 보이는 물건이 있습니다. 꼭 참석하고 싶습니다.”

“물건?”

“전설급 무기가 제 손에 있습니다.”

***

기가 막히는 군. 이런 곳에 회담실을 지은 건가? 땅굴 최하층이라더니 따지고 보면 최하층도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한가운데 자리 잡은 위험천만한 회담실이라니.

“늦었다 휴겐. 네가 마지막이다.”

“미안. 오다가 반가운 소식 좀 들었거든.”

휴겐. 반달돌칼을 들고 있던 녀석의 이름이 휴겐이었군.

회담실 안에는 지름 10터가 넘는 커대한 원형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 안에 여덟 명의 공작. 네 명의 사천왕. 마지막으로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남자 한명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딱 봐도 저놈이 케르드군.’

느낌이 다르다. 다른 졸개들과는 비교도할 수 없을 정도로. 정체모를 위화감? 이질적인 힘? 당최 감이 잡히지 않는 녀석이다.

“휴겐. 그쪽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청파의 조무래기?”

자줏빛 로브를 두른 사람이 가느다랗고 여성적인 목소리로 질문했다. 휴겐은 대머리를 빛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 부하라고 해두지. 이번에 꽤 큰 공을 가져왔더군. 양해 바란다 코르크.”

“흥! 양해는 군주님께 먼저 구해야지 안 그래? 아무튼 본론부터 빠르게 이야기 하도록 하지. 이걸로 일단 다 모인 것 같으니까 말이야.”

코르크는 로브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연분홍색의 빙그르 말려있는 풍성한 머릿결. 은은하게 저물어가는 노을빛 눈동자. 클래스는 암살자로 추정된다.

코르크가 말하길,

“다들 알고 있지? 어떤 겁 대가리 없는 녀석이 길드 내부에 침입해서 보물창고를 털어낸 거. 듣자하니 백파와 청파를 이간질 시키려 했던 모양인데, 다행히 리디에가 알아차려서 두 파벌을 일시적으로 통합시켜 침입자를 색출하는 중이야.”

코르크가 원탁 건너편의 사람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별 말씀을~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걸?”

한껏 유쾌하고 하늘하늘한 그녀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리디에라······. 그녀에게는 꽤 수준 높은 마력이 느껴진다. 마법사인가? 게르덱이랑 느낌이 다르군.

상대방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강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스킬 패시브 ‘기민함’ 때문이다. 말 그대로 어림짐작하는 것뿐이라 구체적인 힘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애당초 나는 대장장이지 마법사가 아니기 때문에 리디에가 얼마나 수준 높은 마법사인지 짐작도 못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있잖아~ 나 재밌는 거 하나 알아냈거든? 군주님도 궁금하지?”

“리디에. 공적인 공간이다. 예를 갖춰라.”

그녀의 행동이 썩 좋게 보이지 않았던지, 녹색 피부의 거대한 덩치 오크가 우직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휴겐의 질책에 그녀에 토라지듯 콧방귀를 뀌었다.

“네네~ 알겠다고요. 서열3위 바바스님.”

“계속 말해라 리디에.”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삐죽삐죽한 잿빛머리의 남자가 답을 재촉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는 마치 은빛늑대를 연상케 했고, 그 안에 담겨진 차가움은 한 집단의 우두머리로서 충분한 포스가 담겨 있었다.

리디에는 살랑거리는 억양으로 군주에게 말했다.

“내가 마신의 눈으로 침입자들 얼굴 다 확인했거든~ 그런데 조오오기, 휴겐이 데려온 청파 조무래기랑 얼굴이 똑같네?”

“······.”

갑작스레 난입한 침묵. 그들뿐만 아니라 나도 말문이 막혔다. 처음부터 들킨 거였나? 지금 상황에 정체가 탄로 나면 상당히 곤란한데.

‘망했군.’

당장이라도 일이 터져버릴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 케르드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화재를 전환했다.

“공석이 두 자리나 있군. 릴리엠 설명해라.”

일단 무시? 어차피 독안에 든 쥐라는 건가? 나야 고맙지만 그거 근거 없는 자신감 아닌가?

케르드가 지목한 소녀는 낮고 잔잔한 어조로 말했다.

“서열4위 쿠샨은 코지부락의 천금협곡을 지나던 도중 의문의 습격으로 연락 두절상태. 한 번의 생존신호가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멸인 것으로 추정되거나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현재 쿠샨의 부대를 수색하기 위해 그 밑의 300명에 달하는 자작과 남작을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서열10위 앙코르 마르코는 청파구역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공작급 장군의 사망소식이 발언됨과 동시에 원탁에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분노와 놀라움, 그리고 살기. 이런 주목도 나름 받아볼만 하다.

“휴겐! 너 도대체 무슨 잡것을 들여온 거야!”

리디에가 휴겐을 질책하자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나도 아까 처음 만난 녀석이다. 설마 마르코를 죽일 정도의 실력자일 줄은 몰랐지.”

“처음만난 놈을 이 자리에 데려와?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그건 알 필요 없다.”

“뭐 있구나? 아오, 진짜! 저 녀석은 하는 일마다 똥만 싸질러 놓는 다니까!”

두 사람의 대화가 길어지자 보다 못한 바바스가 나섰다.

“그만해라. 군주님 앞에서 무례하다. 어차피 마르코가 사망한 것은 돌이킬 수 없다. 침입자 녀석이 저지른 짓은 군주님이 결정하시겠지.”

8인의 공작과 사천왕은 일제히 케르드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잠잠하던 잿빛머리의 남성이 묵직한 입술을 떼어 말했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 군. 네놈 이름이 뭐냐?”

“······.”

“문답무용인가? 재밌는 녀석일세. 너희들 전부 나가있어. 이 녀석과 오붓한 시간을 나누고 싶군.”

그가 깍지를 낀 채로 고상하게 말했다.

“하지만 케르드님. 위험한 녀석일 수도······.”

“내가 알아서 해. 잔말 말고 어서 나가.”

이렇게 회담실 안에는 나와 케르드. 단 두 사람만이 남겨졌다.

뭔가 믿는 거라도 있나? 부하들을 물리다니, 싸움으로 날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거냐?

“이제 듣는 귀는 없다. 편하게 얘기하지.”

“정체도 모르는 상대와 정중하게 대화 하자는 건가? 나는 네 부하를 수도 없이 죽였다. 조금은 긴장하지?”

케르드는 푼더분한 표정으로 답했다.

“좋아. 괜히 돌려 말하지 말고 하나씩 질문을 주고받는 건 어때? 공평하지?”

“대답의 신뢰성은 어디서 찾지?”

“그거야 알아서 판단해야지.”

그의 똑 부러지는 대답에서 알게 모르게 친숙함이 묻어난다.

“좋아. 내가 먼저 질문하지. 마왕은 어떻게 부활시킬 작정이냐?”

놈들이 마왕을 다루기 위해서 전설급 무기를 제작하려고 하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마왕은 어떻게 부활시키려는 것인가? 지금 하벨스 대륙에는 마왕의 잔당인 마족이 일부 번식중일뿐 마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오래전 어떤 이름 없는 ‘영웅’에 의해 소멸했다고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최근 들어 마족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다. 그건 마왕이 완전 소멸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존재조차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마왕을 부활시킬 수 있다. 바로 이 놈으로.”

케르드가 손바닥위로 분홍색 결정모양의 크리스털을 보였다. 분홍색 결정모양의 크리스털은 꽃잎에 내려앉은 서리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녀석에서 느껴졌던 이질적인 힘의 정체는 이거였군.’

“작지만 막대한 에너지를 내포한 크리스털. 그야말로 엄청난 효율성을 자랑하지. 이걸 사용하면 완전하지 못한 마왕을 부활시킬 수 있다.”

그가 차가운 냉소와 함께 크리스털을 바라보며 잇따라 말했다.

“조금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약화된 마왕의 힘이다. 제 아무리 마왕이라도 막 부활한 상태로 싸우는 것은 무리거든. 별 저항도 못해보고 소탕당하겠지. 하지만 이 크리스털로 부활과 동시에 70%정도의 힘이 보충 될 거야 나머지는······.”

그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나를 주시했다.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살벌한 눈길에 바드도 덩달아 살기를 끌어올렸다.

“나머지는 네가 좀 해결해줬으면 하는군. 마스터스미스(Master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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