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40화 (40/202)

Master Smith (40)

첫 번째로 공략할 부분은 엠페러 길드의 경비다. 다잔의 지하는 개미굴처럼 구조도 복잡하고 규모도 엄청나서 미궁 그 자체라 봐도 무관하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발을 옮기면 길 잃기 십상인 구조인데, 하필이면 경비수준도 쓸데없이 강력하다고 쿠샨이 말했다.

허나, 이것이야말로 이 개미굴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본인들이 어느 위치에서 누가 자리를 잡고 있는지 파악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서 누가 어떻게 죽어도 알지 못한다는 소리다.

다시 말해 엄격한 경비를 느슨하게 낮추는 것이 우선순위. 그래야 다음 작전도 맘 놓고 할 수 있게 된다.

다잔에서 땅굴로 진입하는 입구는 다잔 내에 있는 공동묘지(정문)와 슬럼가 어딘가에 위치한 지하계단(후문)이 있다. 경비는 정문 후문 전부 배치되어있으므로 첫 번째 작전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문 앞의 경비는 쿠샨이 처리했으니 나머지는 정면 돌파로 순식간에 쓸어버린다. 준비됐지?”

“네에~ 준비 완료랍니다!”

우리는 쿠샨이 정리한 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핏자국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으슥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얼핏 보면 짐을 쌓아둔 것 같기도 하다. 안개 때문에 문제는 안 되겠군.

“여긴가?”

쿠샨이 열어둔 입구. 지하계단이다. 계단을 내려가면 가로세로 20미터의 메인 홀이 나온다. 서른 명의 칼잡이와 고위 마법사 열 명이 상시 대기 중이라지만 땅굴 중심부의 경비대와는 동떨어진 곳이므로 꽤나 소란 스러워도 누군가 알 턱이 없다.

“보였다. 죽여 버려 미호.”

“크, 크아아악!”

칼잡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팔이 통째로 뜯겨나갔으니 대처방안이 떠오르지 않았으리라.

“치, 침입자다!”

“HP가! 힐······. 힐을 줘 어서!”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통에 HP가 출혈 데미지를 입으며 급속히 깎여 나갔다. 안 봐도 뻔한 상황.

“팔이 싱싱하네. 아직 어린가봐?”

인간의 형태로 변화한 미호의 외모는 그 어떤 남자도 빠져들 것 같은 마성의 미모였다. 그런 얼굴에 붉은 피가 튀기고 날카롭게 선 송곳니에는 막 잘려나간 사람의 팔이 매달려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장면이라면 부정하진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호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입가에 튄 피를 혀로 핥아냈다.

“아직 어리니까 안 아프게 금방 끝내줄게. 이건 어때? 죽기 전에 한번쯤 만져도 되는데?”

하얀 소복위로 봉긋 솟아오른 부분을 부각시키며 죽어가는 남자의 앞에 들이대는 미호. 그러나 칼잡이는 공포에 잠식된 눈동자를 떨면서 말했다.

“아아······ 아아아. 구, 구미호가 왜 여기에······.”

저것 봐. 완전히 공황상태잖아. 사람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은 좋지 못한 버릇이다.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두 가지 경우로 분류되거든. 아무것도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던가, 그 반대로······.

“저리······ 꺼져버려!!!!!!!!!”

한계를 넘어서 초인적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되는 경우. 하지만 초인이래 봐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인간이 아닌 구미호에게는······.

“간지러운 마력응용이네. 오빠 아직 초짜마검사? 그럼 정기도 쭉정이? 불쌍해라······.”

미호가 측은한 얼굴로 그를 내려 보았다. 나는 근처의 칼잡이를 대충 상대해주며 충고했다.

“거기까지 해. 그 이상 몰아붙이는 짓은 쓸데없는 짓이야.”

“알았다구요······. 쳇!”

저 망할 구미호. 부탁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태도가 상당히 바뀌었다? 순종적이긴 한데 말투가 짜증나는 군.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고 말이야.

그녀의 우아한 손짓이 허공을 가르자 부드러운 빛의 곡선이 칼잡이의 정수리를 반으로 갈랐다. 거친 절단면도 남기지 않은 깔끔한 가르기. 완벽한 치명타다.

“주인님~ 나 잘했어?”

“얘가 왜 이래······.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러는 거야? 짜증나니까 좀 떨어져!”

구미호가 아무리 예쁘다한들 요괴는 요괴, 여우는 여우다. 아무리 초절정 미모와 슈퍼 미라클 어메이징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한들 사람이 아니라면 관심 밖이다. 잘 쳐줘도 애완견 애교정도로밖에 봐줄 수가 없다.

그러나 미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 목덜미를 팔로 휘감고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딱히 움직이는데 불편함은 없으나 귀찮은 것은 매한가지.

“어쩔 수 없지. 이대로 움직인다.”

“꺄아~♪ 빠르다 빨라! 주인님 멋져!”

“젠장! 저것들 좀 어떻게 해봐! 어서 지원 요청을······!”

“그럴순 없지.”

가공할만한 스피드로 칼잡이들을 무차별 난도. 윈드 마스터 세트로 발현된 신속함과 정확도는 그들을 지푸라기 베듯 일도양단 쓰러뜨렸다.

“이 자식이!” 사각에서 들어오는 마검사의 ‘오브 스윙’은 시간차 공격으로 완벽했다. 하지만 윈드 마스터의 특수효과 바람의 여신 바알(Baal)의 숨결이 몸을 감싼 덕분에 바드는 무의식 회피를 발동했다.

“이, 이걸 어떻게? 피했······.”

“나도 언제 피했는지 모르겠네.”

바드의 냉담한 귓가가 그에게 닿기 전에,

뿌드득! 콰가각!

마검사의 몸이 척추 째 도륙되어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마법사들은 지원 요청할 틈도 없이 진작 죽여 버렸으니 귀찮은 일은 없을 것이다.

퍽! 퍽퍽! 콰직! 콱콱콱!!

곡괭이로 흠씬 두들겨주는 것은 서비스. 고통 없이 암살하는 것이 가장 특별코스이다. 고작 이 정도 숫자로 나와 미호를 막겠다고? 어림도 없다. 사각지대 없는 배치라 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면 본부에 알릴 틈도 없는데 말이다.

엠페러 길드의 땅굴로 진입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다. 경비병의 암살을 목격한 사람도 없다. 이거야말로 완전범죄. 완벽한 진입이다.

“이건 은밀하게 들어왔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아. 너무 난장판인걸······.”

“닥쳐봐. 우리가 들어온걸 아무도 모르니까 이건 은밀하게 들어온 거야. 알겠냐?”

미호는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널브러진 시체를 조사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흰색 완장을 두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놈들은······.

“쿠샨. 이놈들이 네가 지난번에 말한 백파 일원들이냐?”

[그렇다. 정문은 백파, 후문은 청파가 지키고 있지.]

엠페러 길드는 거대한 범죄길드로 모두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악랄한 단체이다. 마왕을 제어할 무기를 위해서 또 저들만의 영원한 안위와 권력을 위해서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는데, 사실은 길드의 내부에서도  복잡한 관계가 엮여져 있다.

우선 파벌이다. 앞서 말한 청파(靑派)와 백파(白派)는 하나의 이유로 분단된 상황인데, 바로 마왕의 무기를 제작하기 위한 전설급 재료를 두고 발생한 일이다.

청파는 전설급 재료를 제작하기 위한 재료들을 팔아서 무기를 대량화 시킨 뒤에 마왕에게 조공을 바치자는 주장이었고 백파는 하루빨리 무기를 만들어서 마족의 세력으로부터 안전해지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갈등 때문에 땅굴중앙에 위치한 보물창고에는 전설등급을 제작할 수 있는 희귀한 재료들이 엄중히 보관되어있으며 청파세력은 호시탐탐 그것들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 두 세력을 이간질 시킬 수 있다면······.

‘체크메이트다.’

“청파와 백파가 나눠져 있다면 땅굴 또한 나눠져 있겠지. 우선 청파로 진입한다.”

[청파의 본거지는 지금 네가 있는 장소에서 오른쪽 통로로 직진하면 된다. 왼쪽 통로는 백파의 본거지.]

“좋아. 필요하면 다시 부르겠어. 수신 끝.”

나는 등에 엉겨 붙은 미호를 떼어내고 좌측 통로로 직진했다. 미로처럼 복잡한 통로가 이어졌지만 쿠샨의 길안내 덕분에 쓸데없는 접전이며 노선을 피할 수 있었다.

[정면의 계단으로 내려가면 넓은 땅굴이 나올 거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지하 동굴인데, 청파의 가장 안쪽 지역이지. 보는 눈이 많을 테니 이제부턴 네 재량껏 움직여라.]

“그렇게 하지.”

나는 가방에서 파란색 단약을 꺼내들었다. 이거야말로 엄청나게 귀한 아이템이지. 구하려면 몇 날 며칠을 레비아탄만 잡아야 하니까.

“그, 그거 마력단약 아니야? 그건 또 어디서 났데?”

마력단약(魔力丹藥)은 마법이나 기술을 사용하는데 소모되는 MP포인트를 회복시키는 영약이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지친 스테미너를 증대시켜주는 효과도 있는데, 크기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인 필살의 소모품이다.

레벨500을 상회하는 해왕(海王) 몬스터. 크라켄과 레비아탄을 약탈레벨10이 붙어있는 곡괭이로 열심히 때려잡아주면 한두 개 정도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지.

미호가 놀란 눈으로 내 손에 들린 단약을 뚫어져라 지켜보는 가운데······.

“먹고 싶냐?”

“응응!”

세차게 고개를 상하로 흔들며 긍정을 표하는 미호. 애교 섞인 그녀의 눈빛을 차마 거부할 수 있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바드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성의를 보이면 한 개정도는 줄 수 있지.”

“성······의?”

미호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화되더니 고개를 수그려 저고리와 바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한동안의 정적. 미호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려지더니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주인님도 차암~ 그런 걸 바랐던 거야? 역시 인간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지. 그런데 이걸 어쩌지? 만지는 정도면 몰라도 역시 다른 건 좀 그런데······.”

“무슨 요망한 상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그만둬. 역시 안 되겠다. 너에게 투자하기 너무 아까운 아이템이야.”

“아아~ 또 왜! 왜 삐진 건데~”

니 눈엔 이게 삐진 걸로 보이냐? 심기 불편한 내 표정이 그렇게 보인단 말이렷다?

“관둬. 지금은 작전에만 치중해. 느껴지지? 전방 15미터. 4명이다.”

바드는 적들의 무장상태를 단박에 파악했다. 2명은 장검으로 무장, 나머지 두 명은 거대한 폴암이다. 레벨은 어림잡아 250정도. 카스티바 쯤 되는 수준이다. 느껴지는 마력의 세기라던가, 주위로 풍기는 패기는 그리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나는 미호의 몸을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린 다음에 천장을 지지하는 대들보위로 도약했다. 일망의 소리조차 발생하지 않은 완벽한 점프였다.

놈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들 밑을 유유히 지나갔고, 기습할 타이밍을 잡고 있었던 나는······.

“으랏차!”

높이 15미터에서 떨어지는 추력을 가세하여 주먹과 발차기로 두 명의 거구를 완전히 뭉개버렸다. 콰앙! 소리와 함께 주변의 지형이 갈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 하기야 바드의 근력능력치를 본다면 누구라도 납득할만한 상황이었다.

“도대체 근력능력치가 몇이야? 이정도 위력이면······.”

“근력능력치?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확인 안 한지 꽤 됐다.”

예부터 장비를 제작하면 이런 소리가 귓가에 자주 들렸었다.

《근력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영구적으로 상승한 것이 많다고 했는데, 당시의 나는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뭐가 상승하던 간에 당시 나의 생활은 풍요롭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부자의 금고 안에 1실링이 더 들어온다고 신경이라도 쓸까? 나야 물론 무언가 상승했다고 하니까 좋게 받아들였다만······

아무튼 능력치란 말 그대로 본인의 어빌리티(Ability)를 수치화해서 나타낸 것을 말한다. 동물, 식물, 몬스터, 인간, 그 외의 다른 종족들 모두 상관없이 다 가지고 있는 거다.

나는 마른 음성으로 상태 정보창을 열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투명한 알림창 한 개. 아니, 기존에 나오던 알림창과는 다르다. 뭔가 더 화려하고 복잡하면서, 긴 글이 즐비하게 나열되어있다.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잘 구분되었지만 너무 많잖아!

‘몇 년 만에 꽤 많이 변했군.’

뭐가 이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읽기도 귀찮을 정도로 상당한 스펙이다. 어쩌면 전설등급의 무기인 묠니르 이상일까?

나는 천천히 상태정보를 읽어 내렸다.

.

.

.

.

.

.

────뭐냐 이것들은? 이게 나라고?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