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27)
쿠샨은 오른손에 쥔 만도를 떨어뜨렸다. 챙그랑! 굴복하는 그의 자존심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나는 그의 멱살에서 손을 떼고 그의 만도를 들어올렸다. 만도치고는 꽤 가벼운 무게. 숙련된 대장장이의 눈으로 보건데 시중의 무기치고는 상당한 등급이다.
근처 상점에다 팔아도 200만 실링은 받겠군. 일단 넣어두고.
“그, 그 무기는······.”
“불만 있어? 지가 떨어트려놓고선.”
“아, 아무것도 아니다.”
바드의 눈빛을 읽어낸 쿠샨은 무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눈뜨고 코 베어가는 날강도나 다름없다.
“갑옷도 벗어봐. 좋아 보이네.”
“그, 그만둬라! 이게 없으면 완전 알몸이다!”
“농담이다 이 자식아.”
나도 남자 알몸 보는 취향 없거든.
“좋게 말할 때 가만히 앉아있어. 니들이 약탈한 수레 좀 확인해 봐야하니까. 행여나 도망칠 생각은 않겠지? 죽기 싫다면 말이야.”
녀석을 완전히 구속하지 않은 이유는 언제든지 다시 붙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시 붙잡는 날에는 가차 없이 죽여 버릴 테지만 말이다.
“이, 이자식! 당장 수레에서 떨어져!”
잔당이 남아있다. 대부분의 졸개는 몰살이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놈들은 겨우겨우 살아남은 듯하다.
“아이스 브레스(Ice breath)!"
마법사의 입가에서 하얀 눈보라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을 꽁꽁 얼려버리는 극저온의 바람이 나를 뒤덮었다.
5서클 마법사가 발휘하는 아이스 브레스는 3서클, 4서클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가지고 있다. 돌덩이 몇 개 얼리는 수준이 아니라 여차하면 거대한 건물 하나까지도 꽁꽁 얼려버릴 위력이다. 그러나 바드에게 닿은 눈보라는 일체 통하지 않았다.
‘어, 얼지 않고 오히려 녹고 있어?!’
바드의 속성별 저항력을 보면 누구든 납득할 수밖에 없다. 능력치가 하늘과 땅 차이인데 어찌 상대가 되겠는가?
“크악!”
“커헉!”
‘귀찮은 놈들. 쓸데없이 목숨만 질겨요. 그보다 드디어 찾았군.’
거대한 바위가 수레를 작살내고 깊은 구덩이 안으로 빠져있지만 내 앞길은 막을 수 없다. 내가 누구란 말인가? 대장장이 이전에 광부다! 지난 몇 년 동안 장비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나 혼자서 채광하고 재련해왔다. 이정도 바위는 진흙탕을 파헤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곡괭이를 들어 올려서 바위를 찍어 내리기 시작했다.
《채광의 달인 패시브 발동》
이전에 확인한 바로는 채광의 달인이라는 패시브는 채광속도를 올려주는 기술이다. 말 그대로다. 전투에는 전혀 쓸모없는 스킬이다.
더 열심히 막노동 하라는 의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땅을 파고 있는 것은 사람인가 고철기계인가? 저 손에 들린 도구가 곡괭이인가, 터널을 파는 크레인인가? 수십 개의 잔상을 그리며 바위를 분쇄시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드다.
‘여기 있었구나. 내 보물!’
나는 수레를 감싼 가죽포대를 걷어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휘황찬란한 아이템과 광물과 보석! 그리고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까지! 보이는가? 내 주변으로 작은 하트가 퐁퐁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이잖아 이거?”
바드는 도끼눈으로 매혹적인 살인미소를 지으며 아이템을 감정하기 시작했다.
“감정.”
이름: 생명의 보주(재료등급: 에픽)
설명: 호족이 100년 동안 모은 인간의 혼백을 형상화한 아이템입니다. 구미호가 십미호로 진화하기 위해선 10개의 생명의 보주가 필요합니다. 생명의 보주를 사용한 아이템에는 인격체가 부여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하기 위해선 직접 물건을 제작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이름: 자이언트 엔트의 나뭇가지(재료등급: 에픽)
설명: 엔트는 몬스터지만 가끔씩 돌연변이가 있습니다. 자이언트 엔트는 평범한 엔트가 500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평범한 나무처럼 비와 햇살을 받아서 자라난 돌연변이 몬스터입니다. 이래보여도 강철보다 단단한 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 생명수(재료등급: 에픽)
설명: 파괴된 무기를 일정확률로 복구하는 능력이 있다고 전해지는 생명의물입니다. 물론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름: 스켈레톤의 골반 뼈(재료등급: 레어)
설명: 스켈레톤의 골반 뼈입니다. 강도가 우수하고 가공하기가 쉬운 재료지만 쓸데없이 무겁고 크기가 큽니다. 각반이나 팔 보호대 따위를 만드는데 적합할 것 같습니다. 기분 나쁜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해당 재료를 사용하기 위해선 정화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만큼 아이템감정을 해도 처음 보는 재료들이 널리고 널렸다. 심지어 거의 모든 재료가 레어 이상의 등급! 엠페러 길드가 눈독을 들이는 전설등급 재료는 없지만 훌륭한 수확이다.
그렇다면 다잔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템이 자리 잡고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대장장이의 보물창고나 다름없을 것이다. 해외토픽 빅뉴스 아니냐?!
바드의 심장이 두근거린다. 대형화물차의 왕복 엔진만금 빠르게 진동하고 있다. 압축행정 실린더처럼 혈액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물론, 고압으로 압축된 피가 폭발하듯 요동쳤다. 동맥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액체는 초고속으로 온몸을 순환하고 심장으로 돌아와서 수많은 사이클 운동을 수백 수천 번을 반복. 간단히 말해서 극도로 흥분했다는 것이다.
“쿠샨! 네놈을 내 부하로 삼아주겠다! 식사와 잠자리는 무상제공 해주지.”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나는 엠페러 길드의 영원한······.”
“입 다물어. 꼬우면 뒤지시던가. 내가 그딴 소리하지 말랬지? 닭살 돋는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곡괭이에 찍히고 싶어? 두개골을 통째로 분쇄시켜줄까?”
그가 긴장한 얼굴로 곡괭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방금까지 돌을 가루로 만드는 내 파워를 빤히 보았을 것이다.
쿠샨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좋게 말하면 아르바이트. 나쁘게 말하자면 평생노예로 부려먹겠다는 소리군.’
엠페러 길드의 전투담당을 맡은 내가 이런 식으로 궤멸한걸 알면 케르드 군주가 날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말이야 좋지 불평등조약이나 다름없지만 목숨을 보장하고 의식주까지 해결해준다고 하니······.
쿠샨은 울며 겨자 먹기로 눈물을 삼킨 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다. 그 조약. 받아들이도록 하지.”
“잘 생각했어.”
이로서 바드의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인 천금협곡 조약이 맺어졌다. 쿠샨은 이 날의 조약을 아마 평생 동안 후회할 것이다.
‘뼛속까지 우려먹어야지.’
바드의 눈에는 짙은 안개속의 어둠이 고스라니 담겨졌다.
***
수레 안에 있던 아이템은 전부 꺼내놓았다. 아이템 종류만 해도 100가지이상. 그 수량을 다 합치면 약 700개정도가 되었다. 마법가방(대형)한 자루에는 1000칸의 공간이 있으며, 한 칸에는 100개입의 아이템 한 세트를 보관할 수 있으니까 100칸만 사용하면 종류별로 재료를 구별해서 보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무게경감 특성으로 그 무게는 한없이 0에 가깝기 때문에 들고 이동하는데도 큰 불편함도 없다.
물론 그 짐을 짊어지고 이동하는 몫은 쿠샨의 몫이다.
“내가 왜 이런 일을······.”
“찡찡 거리지 마라. 정신 사나우니까. 그리고 이 근처에 있을 텐데······.”
“뭘 찾는 거냐?”
쿠샨의 질문에 바드가 답했다.
“노엘을 찾고 있다. 바닐라 색깔의 단정한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노엘 백작을?”
쿠샨의 눈썹이 의외라는 듯 꿈틀거렸다.
“그 녀석은 왜 찾는 거지?”
“일단 그 애도 쓸모 있을 거 같아서 말이야. 엠페러 길드의 백작이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마법실력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다루기 쉽잖아?
“설마 동료로 영입하겠단 소리냐?”
쿠샨이 입 꼬리를 삐죽거리며 익살스럽게 표정을 일그러뜨리자 바드의 눈매가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으로 바뀌었다. 적안의 눈동자는 피에 젖은 가시가 되었다.
“왜? 하급자와 같이 다니는 게 꺼림칙 하나보지?”
“크윽! 알아서 해라!”
체념한 쿠샨. 나는 열심히 협곡을 뒤져 정신을 잃은 노엘을 찾아낼 수 있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잠깐 정신만 잃은 모양이다.
“일은 대충 마무리 되었으니 업고 돌아가야 겠군.”
나는 쿠샨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보고 업으라는 소리냐?”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쿠샨의 자존심이 이만저만 깎여나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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