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20)
“으으~ 아파라.”
“그러게 왜 남 일에 끼어들어서 얻어맞고 그래.”
이거야말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그녀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일은 어떻게든 풀렸을 텐데 말이다.
“남 일이라니? 네가 내 무기를 구하려다가 일어난 일이잖아. 원흉은 나지 뭐.”
그녀가 토마토처럼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문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호빵같이 부풀어있는 것이 볼 덩이를 잡아 늘려주고 싶다.
잘잘못을 따지면 대장간을 함부로 사용한 내 탓인데······.
나는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혹여나 상처가 덧날까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확인하는 가운데,
“뭐, 뭐하는 거야?!”
그녀의 머리 위로 바보털 하나가 쫑긋 일어섰다. 호도깝스럽게 뒤로 물러선 그녀의 얼굴이 새끼맹수 마냥 으르렁거린다.
“가만 있어봐.”
나는 그녀의 양 뺨을 붙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으브브! 이거 놓······.”
뭐야, 이 뜬금없는 연애시뮬레이션 전개는?
달아오른다. 그의 눈동자처럼 새빨갛게 얼굴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나 지금 열나는 거 맞지?
“뭐야. 열도 있는데?”
“아, 아픈 거 아니니까 신경 끄셔!”
새침하게 대꾸하고는 급히 화재를 바꾼다.
“그보다 앞으로 어쩔 계획이야? 코지부락은 대강 둘러봤고. 다음 마을로 떠나는 건가?”
“너는 어쩌고 싶은데?”
레이나는 나를 따라서 고블린 부락을 떠났다. 하지만 이곳엔 그녀와 함께해줄 사람이 있다. 그녀가 남고 싶다면 붙잡지 않겠지만······.
“내 목표는 세계 곳곳을 떠돌면서 좀 더 뛰어난 대장장이가 되는 거야. 자칫하면 목숨이 오락가락 할 수도 있는 여행길이 되겠지. 네가 가기 싫다면 나도 강요하지 않을 거야.”
그게 네가 선택한 결정이라면 말이야.
레이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배려하는 거야?”
“나름의 배려지.”
“쓸데없어.”
바보 같은 사람. 여기까지 끌고 와놓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따라가겠다고 말 했잖아. 당신이 어딜 싸돌아다니든 붙어 다닐 거야.”
게다가 내가 없으면 그 무지막지한 힘을 누가 말려?
레이나의 대답에 바드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시원시원하니 좋네.”
“나 지켜주겠다던 사람 어디 갔어? 이제 와서 버리고 가려구?”
그녀가 나와 함께 가길 원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할 일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본격! 레이나 육성하기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갖출 건 거의 갖춰졌다. 안락한 숙박업고, 육성자금, 필요한 장비와 사냥터까지! 북쪽도시로 향하기 전에 그녀의 레벨을 충분히 올려두는 것이 최우선 적인 목표다.
재차 강조하지만 지금의 나는 엠페러 길드에게 타깃이 된 상태다. 스켈레톤을 대뜸 소환하는 수준의 놈들이 언제 어디서든 시비를 걸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위험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선 레이나 본인의 정신력과 힘이 강해져야만 한다.
“당분간 코지부락에서 머무를 거야. 마을 밖에서 몬스터도 사냥할거고. 잘 따라올 수 있겠어?”
“몬······스터?”
그녀의 안색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뭣 때문에 이러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 또한 그녀가 극복해야할 것 중에 하나다.
“몬스터는 조금······.”
싫어. 그들을 만나거나 죽이는 거 자체가 싫어. 두렵고, 떨리고, 안 좋은 기억만 떠올라.
“트라우마지?”
“이사벨라가 말해줬어?”
지난날 이사벨라에게 레이나의 과거를 들었다. 몬스터가 침공한 그녀의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그녀의 부모 또한 몬스터에게 살해당했다고. 어떻게 살아남은 그녀는 우연히 코지부락에 도착해서 이제까지 이사벨라의 도움으로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고블린과는 잘 지냈잖아?”
“고블린들은 순진하고 사람 말도 잘 들으니까······. 게다가 처음에는 진짜 무서워했거든?!”
순전히 우연으로 친해진 것뿐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도, 앞으로도 몬스터하고는 엮이고 싶지 않아.
등을 돌린 그녀의 뒷모습은 작고 초라했다. 그곳에는 어른의 레이나가 아니라, 가진 것 없는 연약한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나는 뒤늦게 깨우쳤다.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은 대장장이 바드가 아닌, 곁에 있어줄 어른의 손길이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겐 당장 잡을손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가씨. 이쪽 좀 보고 대화하지?”
“어?”
솜털 같은 손길이 이마를 지그시 누른다. 묘하게 익숙한 느낌. 한 겨울의 난로처럼 따스한 온기가 유유히 전해졌다.
뭐야 이거······.
‘진짜 그리웠는데.’
눈물이 왈칵 터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이 손길에 맘껏 응석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이미······.
암담한 내 마음을 파고드는 그의 목소리가 힘찬 빛줄기 마냥 귓가에 다가왔다.
“평생 도망만 필 수는 없잖아 레이나. 내가 도와줄 테니까 한 걸음씩만 나아가자. 더도 말고 한 걸음씩.”
힘들면 쉬어. 내킬 때 걸어가. 언제고 기다릴 테니까 주저앉고만 있지 말자.
***
우리는 코지부락 인근의 사냥터로 나왔다. 이곳은 레벨10 미만의 육식 동물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일부 사람들에겐 주의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몬스터 잡는다며?”
“시작부터 몬스터는 힘들 것 같더라고.”
지금 레이나에게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죄책감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구태여 허들을 높일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이곳의 굶주린 육식동물들은 죄 없는 마을 사람들을 공격한다고 한다. 때문에 마을 내에서도 소탕 의뢰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만한 이유라면 그녀의 죄책감도 조금이나마 덜어지지 않을까?
“괜찮냐? 떨고 있는 거 아니지?”
“나, 나는 괜찮은데 너는? 그렇게 많은 의뢰를 다 완료할 수 있겠어? 실패하면 본전도 못 건질 텐데.”
딱 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애써 침착한 척 해도 얼굴로 드러나 버리니, 모른 척 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레벨이 몇인데 그걸 걱정 하냐?”
내가 누구란 말인가? 나 바드다. 자그마치 레벨888에 육박하는 걸어 다니는 인간병기란 말이다. 평균레벨20에도 못 미치는 의뢰를 실패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애당초 말이야~ 의뢰 실패라니?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지.
.
.
.
.
.
.
《의뢰실패》
“어허······. 이거, 늑대를 생포해 오랬건만 죽여가지고 오면 어떡하나? 보상금은 못 주겠네.”
《명성이 10하락했습니다》
“······크흠!”
“전부 수행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레이나의 기습발언에 나의 자존심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나름 변명할 건덕지는 있다.
“니가 늑대한테 공격당해서 그런 거 아니냐. 내가 붙잡겠다니까 누가 어설프게 나서서 다칠 뻔하래? 내가 죽였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물어뜯길 뻔했잖아.”
변명할 여지가 없는 그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그건 그때고! ······아무튼 미안. 잘못했습니다······.”
추욱 늘어진 레이나의 눈썹이 잔잔히 내려앉았다. 제 잘못을 알긴 아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는 그녀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뭘 그렇게 의기소침해 하냐?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 거지. 이번엔 파티사냥을 해볼까? 네 레벨도 올릴 겸.”
“가능해?”
파티사냥이라고 해도 습득 경험치는 라스트 어택을 날린 사람이 90%를 가져간다. 마땅한 통상기가 없는 내가 한정된 사냥감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경험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드는 자신의 가슴팍을 치며 문제없다고 단언했다. 설마 그 방법이 이렇게 극단적일 줄은 몰랐지······.
***
“때려.”
“이걸······?”
바드의 팔에 붙들린 늑대는 완전 무방비 상태이다. 늑대도 자신의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구슬프게 신음하며 발버둥 쳤다. 아무리 나라도 바드가 제작한 무기로 뚝딱! 내려치면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는 자세였다.
“레벨업 해야 할 거 아니야.”
“끄으응~ 끼잉, 끼이잉~”
불쌍하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레벨을 올려야 하는 건가? 암만 그래도 상황이 너무 일방적이잖아. 이렇게 겁먹었는데, 이렇게 슬퍼하는데 어떻게 때리라고?!
“못 죽이겠어.”
“그래?”
못 죽일 줄 알았다. 처음부터 예상했거든. 누구든 쉽게 못할 일이니까. 몸부림 칠 수 없는 상대방을 죽을 때까지 흠씬 두들겨 패는 일을 몇 명이나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하지만 할 땐 해야 한다. 손과 온몸에 피를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죽여야 할 상대는 죽여야 한다. 특히 몬스터란 존재는 더더욱.
바드는 늑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헤드록을 풀어주었다. 여기서 질문. 목숨을 부지한 늑대의 다음 행동으로 올바른 것을 고르면? 1번 도망친다. 2번 내 앞에서 굴복한다.
정답은 ‘없다.’이다.
“크르릉······. 캬앙!”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나움 맹수에겐 당장의 본능이 정신을 지배한다.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늑대가 취할 행동은 딱 하가지다. 눈앞의 먹이를 전력으로 굴복시킬 것.
“꺄아악!”
늑대는 풀려나자마자 레이나에게 달려들었다.
핏자국으로 얼룩진 날카로운 이빨과 살육으로 물든 짐승의 눈은 공포 그 자체. 삐죽삐죽하게 날이 선 은색 갈기는 수많은 칼날이 되어서 내 쪽으로 달려왔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때───
“얍!”
내 곁으로 바짝 달라붙은 바드가 수도를 휘둘러 늑대의 미간을 내리쳤다. 분명 가벼운 손동작이 분명했지만 그 충격파는 바닥을 방사형으로 붕괴시킬 정도였다.
늑대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두개골이 산산조각 났을 뿐 아니라, 바닥으로 꼴아 박혀서 간헐적으로 다리를 꿈틀거렸다.
레이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꼼짝없이 물려죽을 뻔한 상황. 끔찍한 일이 벌어질 뻔했다.
“고, 고마워.”
“봤지? 짐승의 본성은 거기서 거기야 몬스터도 마찬가지고. 생명? 당연히 소중하지. 단, 그건 그거대로만 알고 있으면 돼. 괜히 어리숙한 생각을 하다간 험한 꼴 당할 테니까. 너도 잘 알 것 아니야?”
“미안해······.”
“네게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너는 강해져야해. 더더욱. 그러니까 마음 독하게 먹어.”
오늘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은 내가 바라지 않아.
“응.”
바드는 피 묻은 손을 털어내며 실링과 아이템을 챙겼다.
“많이 놀랐을 텐데 쉬고 있어. 사냥은 나 혼자 할게. 의뢰도 나 혼자 하면 되니까.”
바드의 의뢰는 13개. 그중에서 늑대120마리 사냥과 늑대가죽 50장을 구해오라는 의뢰가 있다. 바드에겐 레벨5짜리 짐승을 때려잡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을까?”
레이나의 눈에는 자신이 도울만한 일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표정으로 늑대를 때려잡고 있는 바드의 얼굴에는 아이템을 향한 열망과 의뢰보상을 향한 욕망뿐······.
물론 무차별적인 학살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서였고, 몬스터에게 먼저 다가가기 보다는 다가오는 몬스터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럼 버프를 걸어볼래? 상향이든 하양이든 상관없으니까 있는 대로 걸어.”
“디버프도 상관없는 거야?!”
“사제의 버프는 숙련도가 높아야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니까. 어떤 버프든 숙련도를 올려두는 게 좋아.”
그녀가 늑대를 죽이지 못할 거란 사실은 일치감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투에 아예 도움이 안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사제의 버프는 큰 효과를 보일 테니까.
“그럼 마나가 되는대로 버프 걸어줄게.”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버프를 걸기 시작했다. 사제의 기초 버프인 블레싱(Blessing)은 기본 스킬인 만큼 능력치 상승폭이 그닥 높지 않다. 그러나 모든 능력치에 긍정적인 보정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크나큰 강점이 있다. 마스터레벨에 달하면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리라.
“블레싱!”
“계속 걸어!”
바드는 거친 기합을 내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가차 없이 폭발하는 고밀도의 공기압이 땅을 방사형으로 쪼개고 식인늑대를 갈가리 찢어 죽였다. 레이나는 간신히 중심을 잃지 않고 그 폭발을 버텨내었다. 주변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쓰러질 것 같은 중압감. 과연 이것이 대장장이의 힘이란 말인가? 그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레이나였다.
“의뢰 끝. 다음 사냥터로 이동하자.”
“으에에엥?! 버, 벌써?”
이 근처에서 출몰하는 늑대는 총 150마리. 의뢰는 늑대 120마리 소탕과 늑대가죽 50장을 모으는 것이다. 사냥이 시작 된지 이제 6분이 흘러간 지금. 계산을 해보면······.
“1분에 스무 마리?”
뿐만 아니라 그 틈에 1실링도 남김없이 모든 아이템도 챙겨버린 뒤다.
‘무슨 속도야 이게!!!’
경악성을 터뜨리기도 전에 바드는 다음 사냥터로 이동을 재촉했다.
“서두르자. 의뢰는 아직 잔뜩 남았어.”
레벨888의 대장장이가 콧노래를 흘렸다. 그것은 엔트의 서식지에 불어올 피바람을 알리는 신호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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