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9)
반나절동안 심혈을 기울인 결과 튼튼한 합금 복합재가 완전한 에픽 아이템으로 탈바꿈 되었다. 사제가 사용하기엔 너무 큰 감이 없잖아 있지만 무게경감이 부여된 탓에 큰 무리 없이 휘두를 수 있으리라. 무기에 대한 설명은 차차 하도록 하고,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해보자.
“남의 대장간을 허락도 없이 쓰다니!”
“미안하게 됐군. 무기가 급했거든.”
“대장간은 우리 같은 대장장이들의 유일한 자존심이거늘······. 그러고도 네놈이 대장장이냐!”
잘 알고 있다. 대장장이에게 대장간이 얼마나 소중한 장소인지, 얼마나 귀중한 건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귀중한 거였다면 처음부터 관리를 잘 해야지. 허술하게 자물쇠만 채워놓으면 단줄 아나?
어지간한 욕설도, 모욕도 참을 수 있다. 그 참을성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어떠한 노가다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만들어 주었으니까.
“함부로 사용한 건 잘못했으니 손해배상은 하겠다. 뭣하면 이용료도······.”
“이 쓰레기 자식! 그깟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대장간 한번 썼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화덕이 낡아버리는 것도 아닌데, 대장간 주인이 이렇게 까지 성내는 이유는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탓이리라.
마법사인 레이나는 수긍할 수 없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건드렸다고 하나, 사람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행위는 합리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그녀가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언성을 높였다.
“그만 하세요! 그렇게 까지 사람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잖아요!”
“뭐라고? 니가 뭔데 그딴 말을 하는 건데!”
빠악────!
그녀의 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졌다. 재차 말하는데 “철썩!”이 아니다. “빠악!”이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겠는가?
“너 따위가 뭔데 내 일에 참견하는 거야?”
얼굴에 피가 몰린 대장간 주인은 성난 도깨비마냥 거친 콧바람을 뿜어댔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아직까지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지금 누가 누굴 때려······.”
“바, 바드. 난 괜찮아.”
그녀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내 팔을 붙잡았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는 주먹을 그녀가 꽉 붙들어 맨 것이다.
“하! 분위기 변한 것 좀 보게? 네 처지 좀 생각하지?”
내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면 당연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장장이의 자격을 스스로 모욕하는 꼴이니까. 하지만 레이나를 손찌검 한 것은 별개다. 그는 지금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른 거다.
“별 잡놈이 누구에게 손을 대는 거야.”
깊게 가라앉은 어두운 목소리가 살기로 바뀌어 주변의 공기를 감싸 돌았다. 본능적으로 위화감을 느낀 주인장은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가, 감정에 휘둘리다니 멍청한 녀석이군.”
빈틈이라도 본 것인지 대장간 주인이 내게 달려와 주먹을 날렸다. 살다 살다 이렇게 느린 펀치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눈 감고도 피할 수준이었지만.
퍽.
“자존심 구긴 건 맞아준 걸로 끝이다. 이제 네 잘못을 따져볼까?”
“따진다고?”
죄 없는 레이나를 때린 몫. 다른 건 받아들여도 그녀를 공격한 것은 예외적인일이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있다면 그놈은 내손에 작살날 뿐이다.
“웃······기지 마! 네가 뭔데 이 여자의 이거라도 되는 거냐?”
새끼손가락을 펼쳐들고 왁왁! 소리치는 주인장.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는 별 일 아닌 것으로 윽박지르는 속 좁은 모습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나뿐일 것이다.
한마디로 눈앞의 대장간 주인은 별일 아닌 일로 진노해서 애꿎은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
“저거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죄 없는 여자는 왜 때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실링으로 배상해준다는데 자꾸 저러면 여자만 딱하지.”
술렁이는 분위기. 대장간의 주인은 자신의 입장이 불리해졌음을 눈치 챘다.
“크윽! 됐으니까 빨리 꺼져버려. 실링이든 뭐든 필요 없으니까.”
“돈을 받지 않겠다면 상관없지만······. 아까도 말했을 텐데? 그녀를 때린 값은 청산해야 한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처벌할 생각은 아니다. 그는 내 주먹을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할 테니까.
“재료 다 가져와. 광물, 주조된 광석. 하나도 빠짐없이 싸그리 전부.”
지금까지 본성을 드러낼만한 계기가 없었지만 나는 본래부터 소금물, 바닷물, 짠돌이에다가 상당한 구두쇠이다. 유일하게 돈을 사용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술과 장비를 제작하는데 사용되는 비용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주인장은 협박 아닌 협박을 거절할 수 없으리라.
“그, 그런 게 어디 있어······. 광물 없이 어떻게 대장간을 경영하라고······!”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분명 대장간을 함부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 사과 했고 실링으로 배상까지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와 레이나에게 손찌검 했고, 손해배상마저 거절했지. 전부 네가 자초한 일이야.”
나의 주장에는 한 치의 거짓도, 빈틈도 없었다. 심지어 이의를 제기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장의 마음은 더욱 미어질 것이다. 근본적인 피해자는 자신인데 자꾸만 나쁜 놈으로 몰리는 상황을 느꼈을 테니까.
“그녀를 때린 죗값을 어떻게 청산할 셈이지? 감옥에라도 끌려갈 텐가? 아니면 이제 와서 손해배상을 거들먹거릴 생각인가?”
대장간 주인이 두말할 것 같지 않지만 만에 하나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면 그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다. 물론 그리된다면 대장장이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팔아넘기는 일이 된다.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이중 덫. 대장간 주인은 바드의 교활하고 철두철미한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자존심을 팔지, 아니면 자존심을 지키고 광물을 내놓을지 선택은 그에게 있다. 물론 결과가 후자일 것이라는 것을 바드는 뻔히 알고 있었다.
“처분······할게.”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여는 대장간 주인. 제 삼자가 듣기에도 안쓰럽고 애처로운 목소리다. 하지만 나는 연민의 눈길한번 주지 않고 오히려 잘 생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방은 따로 비워놨으니까 알아서 챙겨 넣어.”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은 누워서 콩먹기······. 아니, 떡이었던가? 대장간 주인은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당한 조건을 받아들여서라도 알량한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나는 잔뜩 늘어진 그의 어께를 바라보며 인생의 명언 한마디를 남겼다.
"인생은 실전이야 좆만아"
대장장이의 자존심을 이용해서 부당한 거래를 성립시킨 것은 같은 대장장이로서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일이다. 이번사건에 레이나가 관련되어있지 않았다면 그랬겠지.
“가방 여기 있다.”
“수고했어. 대장간 함부로 사용한건 재차 사과하지.”
“다신 오지 마. 도둑놈 새끼!”
얼마나 억울했으면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그래봤자 연민의 정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데 말이다. 코딱지만큼도, 똥꼬털 만큼도! 그래도······.
“자존심 하나는 세군. 이름이 어떻게 되지?”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충분히 성공할 거야. 유명세 뛰기 전에 미리 알아두려는 거지 뭐.”
그가 뜬금없는 칭찬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바딕트다. 너 같은 대장장이보단 훨씬 뛰어난 대장장이가 될 테니까 각오하라고!”
“바딕트.”
나는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시켰다. 대장장이 바딕트가 아닌, 레이나에게 손찌검한 요주의 인물로 말이다.
“기억해두겠다. 언젠가 이 수모를······. 이 치욕을 반드시 갚아주겠어.”
무슨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다하는 거야? 나는 평범한 대장장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늘.
“알아서 해. 한동안 광물 없이 생활하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레이나가 손찌검을 당한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일은 조용히 넘어가게 되었다. 그녀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마을 내에 큰 사건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놈! 마음 같아선 뼈째로 갈아 마셨을 텐데!
“잘 참았네.”
“왜 말렸어? 묵사발을 냈을 텐데.”
“너도 똑같은 사람 되려구?”
그녀가 피식 웃으며 곁눈질했다.
“결국 초보자 광물만 뺏었네. 필요 없는데.”
“그럼 갖다 주지?”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씀이다. 이걸 뭐 때문에 빼앗았는데? 괘씸해서라도 반드시 가져와야할 물건이다. 도둑놈 같지만 합당한 대가가 아닌가?
생각해보니까 합당하게 재료를 뺏어갈 수 있는 놈들이 더 있다. 재료 수집을 위해서 살인조차 마다하지 않는 그놈들이야 말로 싹을 밟아버려야 하는 놈들이다
‘엠페러 놈들. 쓸개까지 다 빨아주마. 나보다 더한 것들은 나가 죽어야 돼.’
내가 착해빠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 나보다 악독한 짓을 일삼는다면 답 나온 거다. 그놈들을 상대로 약탈이라면······.
자존심이고 뭐고 내세울 이유가 없지. 충분히 합리적, 정당하고, 합법적인 일이다. 그러고 보니 사탕을 사야한다. 노엘이 꽤나 기다리고 있을 거다. 지금쯤이면 론은 노엘에게 한참동안 시달리고 있으려나? 허튼짓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살벌한 맨트를 상냥하게 던져주고 왔으니 허튼 생각은 안 할 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풀어줄까? 아니면 좀 더 이용해 먹어야 하나?
‘천천히 꼬드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아직 화창한 오후. 우리는 이사벨라의 여관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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