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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Smith-18화 (18/202)

Master Smith (18)

노곤한 아침. 수줍게 내려앉은 햇볕이 풀들에게 생기를 부여하고 솜털 같은 바람이 그 위를 스쳐간다.

평화 그 자체인 풍경이지만 다른 의미로 지옥이다. 멀쩡하게 몸을 가누는 남자가 없었으며 사방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그런 평화 아닌 평화 속에서 말도 안 되는 선택지에 놓인 사내가 있었으니,

이사벨라는 의외의 코골이와 함께 속 쓰린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가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중얼거렸다.

“옷 단추 좀 풀어줘~”

가뜩이나 부각되는 옷차림이라서 민망한데 단추를 풀어달라고?

“안 되지 안 돼.”

“답답해! 풀어줘어~!”

“다 큰 어른이 어디서 땡깡이야? 잠꼬대 그만하고 일어나든가, 그대로 곱게 자든가. 둘 중 하나만 하란 말이야!”

나는 아침부터 다른 사람 술주정을 받아줄 만한 사람이 아니거니와 대낮부터 만취한 바니걸의 옷을 벗기는 취미는 더더욱 아니다.

“바드? 돌아왔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로브를 푹 눌러쓴 레이나였다.

“어디 갔다가 이제 돌아온 거야?”

“헤헤······. 잠이 안와서 길 좀 거느렸어. 바드는 밤새도록 주점에 있던 거야?”

“누구누구가 안 와서 한참 기다리다가 주점에서 밤을 새버렸거든.”

덕분에 그란다에게 붙잡혀서 흑맥주 7통이나 비웠다.

“나 기다렸어?”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아니면 언제 오붓한 시간을 갖겠어?”

레이나의 당황한 표정이 보일 듯 했지만 그 놈의 로브가 문제다. 매일같이 얼굴을 가리니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각설하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계획을 세워보자. 엠페러가 노리는 묠니르가 내게 있는 탓에 언제 어디서 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소한 레이나의 레벨을 100이상으로 올리고 충분한 장비를 맞춘 뒤에야 과감한 동선이 가능하리라.

“그러고 보니 네 무기!”

지난번 금지구역에 들어갔을 때 부숴먹은 사제용 지팡이는 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날 내가 구한다고 말 했었는데······.

“괜찮아. 사제라서 지팡이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

사제는 축복위주의 스킬을 사용하는 마법사 계열의 특수 직업이기 때문에 지팡이나 스태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안 들고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마법지팡이나 스태프는 기본적으로 축복의 효과를 증대시키거나 지속시간을 늘려주는 능력치가 부여되어있기 때문이다.

별수 없군. 당장은 못 떠날 테니, 한동안 코지부락에서 머무는 수밖에.

현재 자금은 디디스의 의뢰비 211만4531실링에서 그란다의 술값을 청산해서 남은 187만 3200실링이다. 이 일대에서는 상당히 많은 자금에 속한다.

“당장 무기 맞추러 가자.”

“자, 잠깐만! 지금 바로?”

“네 레벨이 너무 낮아서 불안하거든. 최소한 스스로를 지킬 정도는 돼야지.”

아아, 이게 바로 그녀가 고블린들을 걱정하던 마음이었을까? 공감된다. 공감 돼.

“어차피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이야. 나는 몬스터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당장 듣고 싶은 대답은 “알았어.”면 충분하다.

“아참, 그러고 보니 밖에 그놈들 세워두고 왔네.”

“그놈들?”

“잠깐 여관 앞에 나가있을 테니까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어제 일의 주범을 추궁해야하지 않겠는가? 인질은 중요한 정보통이다. 빼먹을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알아두는 것이 좋으리라.

녀석들은 현관 앞에서 차렷 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나이 서른. 5서클 상급 마법사(advanced wizard). 이름이 뭐라고 했지?”

남색머리칼이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론입니다!”

“그래, 론. 엠페러 길드에선 얼마나 활동했나?”

“3년입니다!”

“3년이라, 듣자하니 보면 남작쯤 되다더군?”

엠페러 길드는 대규모 모험가가 소속된 허갤 집단이다. 이 길드는 활동 기간과 실적에 따라서 계급이 주어지고 여기서 말하는 실적은 대게 질 나쁜 모든 행동들에 해당한다고 한다.

론은 긍정했다.

“후, 훌륭하신 기억력이십니다!”

“내가 똑똑하긴 하지. 그래서 우리 남작님은 어제 어디까지 실토하셨더라?”

“제가 아는 것은 거의 다 불었습니다! 그 외의 것은 여기 계신 노엘 백작께서······.”

론이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조그만 여자아이에게 바통을 넘기자 여자아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론을 노려보았다.

나는 이어서 노엘을 추궁했다.

“그래. 우리 귀여운 꼬마 아가씨. 나이는 열 살이고 이름은 노엘. 네크로맨서였지? 어린나이에 스켈레톤을 소환할 수준의 마력이라니······.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금방 백작으로 승진하셨군.”

“······으응······.”

노엘이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칭찬에 약한 모양이다.

“그럼 백작 아가씨가 알고 있는 대로 엠페러에 대해 말해주실까? 일단 첫 번째 질문. 엠페러의 최종 목적은?”

길드라면 대게 목적이 있다. 공식적인 1위 길드가 된다거나 명성이 자자한 집단이 되는, 그런 목적 말이다. 하지만 엠페러는 허갤이 모인 집단이니 그딴 거엔 관심 없을 테고.

“케르드 군주······ 말했어. 세계를 지배한데······.”

“지배?”

유치 짬뽕한 목표로군. 할 게 그리도 없나? 귀찮은 일만 골라서 하기는.

“두 번째 질문. 케르드가 묠니르를 찾는 이유는?”

“힘이······ 필요해서?”

노엘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는 모양이다. 아무튼 묠니르에 집착하는 것은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너희들의 본거지는 어디지? 또, 앞으로의 계획은?”

“그건······.”

노엘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반쯤 감겨있는 피곤한 눈. 어린애에게 너무 심하게 대했나?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불쌍한 얼굴이다.

곧, 노엘이 입을 연다.

“사탕 사줘요······. 그럼 말할게.”

***

상점이 하나같이 문을 닫았다. 어젯밤 술 파티가 원인이다. 대부분 가게를 관리하는 남자들은 지금쯤 꿈나라에서 해장국을 끓여먹고 있을 것이리라. 물론 안주인이 대신해서 상점을 개장할 수도 있겠지만 뒷정리가 끝나지 않은 탓인지 문을 연 상점이 없었다.

“무기 없어도 상관없다니까. 몬스터와 싸우고 싶지도 않고.”

“모르는 소리. 누가 몬스터랑 싸우래?”

싸울 상대는 몬스터뿐만 아니라 인간도 있다. 살다보면 어떻게든 시비가 붙고 한번쯤은 pk가 일어난다───이 소리다. 그때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본인의 힘. 레이나는 그 힘을 키워야 한다.

“사람 걱정 끼치지 말고 스스로 강해지려고 노력을 하라고.”

그나저나 이제 어떡한담? 가게는 죄다 닫혔지, 사람은 없지, 레이나의 장비를 맞추려면 어떻게든 대장간이 필요한데. 방법은 그것뿐인가?

“대장간에도 사람 없겠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 대장간 좀 빌려야겠군.”

“뭐라고?”

이 남자 지금 제정신이야? 타인의 대장간을 멋대로 이용하면 엄청난 페널티가 주어진다는 걸 알고 하는 소리인가?

“명성이 하락하고 장비의 능력치도 대폭 감소할 거야. 안 그러는 게 좋을걸?”

“아무렴 네 무기 구하는 것보다 중요할까?”

사실 그녀의 무기를 구하는 것은 굳이 대장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장비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장간을 고집하는 이유는 화롯가를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지난번에 제작한 디디스의 대거는 마법으로 열처리해서 제작한 장비이다. 때문에 예상보다 낮은 내구성을 가지게 되었다. 즉, 화롯가의 사용유무는 내구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레이나가 사용하는 만큼 내구성만큼은 최상으로 잡아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든 화롯가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조금만 빌려 쓰는건데 뭐.”

레이나가 이마를 부여 쥐며 신음했다.

“대장간은 주인에게 귀속되는 특수한 지역이야. 그 규모가 크던 작던 간에 한번 귀속된 대장간은 영원히 그 사람의 것이 되지. 대장간의 주인이 본인의 대장간에서 장비를 제작하면 추가옵션이 부여되지만 반대로 주인이 아닌 사람이 허락 없이 사용하면 옵션이 하락하게 돼. 알고는 있지?”

“글쎄?”

“게다가 대장간을 짓고 귀속시키는데 드는 실링이 장난 아니거든. 대장간이 어지간한 규모가 아니면 상승 폭도 그리 크지 않대.”

그녀는 살얼음 같은 눈초리로 쏘아보며 내 콧등을 쿡! 찔렀다.

“그럼 여기서 질문. 귀속된 대장간에서 타인이 장비를 제작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시오.”

“그야 대장간은 주인에게 귀속된다고 했으니까 대장간을 쓰면 아이템을 훔쳐 쓰는 거고······.”

“바로 그거야. 남의 대장간을 훔쳐 쓰면 당연히 좋을 것 없지. 명성 하락은 당연지사고 제작된 아이템의 성능도 좋지 못하다는 사실! 이제 이해돼?”

“그럼 대장간 재료를 빌려 쓰는 것도 같은 페널티가 적용되겠군. 그 또한 대장간 주인에게 귀속된 아이템의 일부분일 테니까.”

“헐~ 재료까지 쓰려고 했어? 염치없는 도둑일세.”

“사용료는 두고 가려고 했거든?”

어차피 대부분의 재료와 수고는 내가한다. 화롯가 온도를 조금 높이고 얼마 안 되는 땔감 때우는 정도야 실링으로 값을 치를 생각이다.

“명성은 다시 올리면 되는 거고 아이템 성능은 내가 알아서 보정할 거야. 그럼 문제없지?”

애당초 장비의 옵션이 하락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1000년의 추억을 이어온 낡은 모루에 부여된 《긍정(레벨10)- 강화, 분해, 제작, 감정 시 외부에서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 면역력 100%》효과가 존재하는 이상엔 말이다.

“어휴. 말을 안 듣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는 대장간을 써야겠으니까.”

장비의 등급을 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사용되는 재료, 두 번째는 제작 시 사용되는 도구의 등급, 마지막으로 대장장이의 실력이다. 사실상 이 모든 조건이 완벽한 바드는 이미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라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나, 그의 머릿속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경지로 가득 차 있었다.

‘전설등급의 장비를 만들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만들어보고 싶다. 《장인의 혼》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 도대체 어느 지경까지 상상을 해야 하는 것일까? 세계최고의 장비라는 것만으론 부족한 마음가짐일까? 아니면······.

‘아니면 그 대장장이는 신이란 소리냐?’

재미있는 도전이다. 까짓것 해보는 거지 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이상의 대를 이어온 역사 깊은 모루. 이제 그 역사가 내게로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대장장이로서 부끄럽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이 직업에 종사했고, 당연 최고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게 정답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마음가짐을 고쳐야할 것이다.

《세계 최고》가 아닌, 《우주만물 모든 것을 통튼 최고》로 말이다.

“레이나.”

“응?”

“당장은 힘들어도 반드시 만들어 줄게. 평생 지켜줄 무기.”

까앙──! 까앙──! 까앙──!

밤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불꽃보다 더 아름다운, 황혼 빛에 물든 구름보다 더 황홀한 불꽃이 작은 대장간으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드의 아름다운 선율이 태평한 마을 곳곳으로 울려 퍼지며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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