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16화 (16/202)

Master Smith (16)

별이 떠오른 코지부락의 밤하늘은 반짝이는 은하수가 물줄기를 그리며 공허한 칠흑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숲으로 뒤덮인 작은 마을 안에는 곤충들이 찌르르 거리며 정겹게 화음을 이루었다.

모두가 잠들어있을 이 시간에 마을이 아직도 환한 이유는 낮에 있었던 격전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마을의 여자들은 버터맥주를 따르고 음식을 준비하는데 바빴고 남자들은 고기를 붙잡고 물어뜯으며 술을 마시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 가운데 가장 빛나는 주인공은 스켈레톤과 끝까지 맞서 싸운 게르덱과 카밀라를 되찾고 전장을 지휘, 통솔한 바드였다.

“크하! 역시 멧돼지 고기엔 시원한 버터맥주지!”

“유스타드는? 그 녀석 멧돼지 고기만 보면 환장하는 놈이잖아 아주.”

“이미 술에 쩔어서 쓰러진 상태야. 녀석, 아무래도 밤새기 글렀군.”

걸걸하게 웃어넘기는 남정네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꽃의 향연을 뿜어대는 보석이 있었으니, 파격적인 차림으로 술을 나르고 있는 이사벨라였다. 그녀는 수인족의 특징인 동물귀와 꼬리를 이용한 바니걸 차림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강타했다.

“으으! 내가 왜 이런 꼴을······!”

“이사벨라 씨 정말 잘 어울린다고! 내가 아내만 없었다면 당장 업어갔을 거야.”

“이 사람이 눈앞에 아내를 놔두고 할 소리야!?”

“커헉! 미안해! 아악! 미안해 여보!”

아내의 일침에 정신과 시간의 장소로 끌려간 남자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자취를 감추었다.

“그나저나 게르덱이라고 했던가? 자네도 한잔 받게. 오늘 정말 용감해 보이더군. 마법사 양반.”

“술은 사양입니다. 아직 몸 상태가 완전한 것도 아니고요.”

“고지식한 친구로군.”

남자는 민망해진 손을 거두고 자신에게 술을 넘겼다. 갈색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성은 레벨55의 맹룡전사다. 쌍도끼를 들고 싸우는 그의 전투는 사납고 투박하지만 언제나 싸움을 즐겨하는 상남자 중에 상남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유독 그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은 단지 그란다의 특제 버터맥주 뿐만이 아닌 것 같다.

“바드라고 했던가? 내 기억이 맞다면 지난날 +9강 대거를 제작한 주인공일 걸세. 맞는가?”

사실과는 조금 달르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모습을 광장에서 봤었네. 장비를 제작하는 자네의 모습에 큰 감동을 얻었지.”

“그저 대장장이일 뿐이지. 나는 당신처럼 전장에 나가서 싸우거나 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 적성에도 안 맞고 말이야.”

“섭섭한 소리 말게! 나는 진심으로 자네를 존경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이 마을엔 그리 뛰어난 대장장이가 없거든.”

진지함이 묻어난 그의 한마디에 멀리서 “뭐야?!”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일단 못 들은 척 해두자.

“게다가 나가서 싸울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자네인 것 같더군? 대장장이가 그렇게 잘 싸우는 것은 처음 봤어! 보아하니 무기가 심상치 않던데?”

나는 정체를 밝혀야하는 곤란한 상황에 대비해서 머릿속을 잔머리로 가득 채웠다. 이쯤 되면 항상 나오는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네 정체가 뭔가?” 라던가, “오늘 아침에 사용한 무기 좀 볼 수 있을까?” 같은 질문 말이다. 다행히 눈앞의 우락부락한 털 바보는 그리 눈치 없는 남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무 경계하지 말게. 단지 같은 모험가로서 자긍심을 나누고자 하는 것 이니까. 자네도 버터맥주 한잔 하겠나?”

“고맙군.”

그란다의 시원한 맥주위에 얹어진 거품은 버터를 녹여낸 부드러운 목넘김을 선사했다. 은은하게 풍기는 아쉬운 고소함이 최고의 끝맛을 자랑한다.

“어이~ 이보게들! 여기 주인장은 나라고.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 나를 빼먹으면 안 되지 않겠어?”

“그란다! 자네는 여전하구만. 술자리에 끼어들기 전에 망할 뱃살 좀 어떻게 집어넣지 그래? 보는 내가 답답할 지경이라고!”

“이 친구는 허구한 날 보자마자 시비로구먼! 내 술집에서 블랙리스트 되고 싶어?!”

“어쭈? 그러기만 해봐! 다신 의뢰 따위 들어주는 않을 테다!”

둘은 서로를 보자마자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했다. 하기야 한참 전부터 버터맥주를 배갈로 빨아 마셔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잔잔한 그 상황을 즐기며 분위기에 취했다. 열심히 돌아다닌 이사벨라는 내 곁에 조용히 착석하고 한숨을 돌렸다.

“에휴~”

“많이 힘들지?”

“힘들다마다요. 애당초 제가 왜 이런 꼴로 그란다 아저씨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요? 너무한 거 아녜요?”

이사벨라가 이런 꼴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점심에 손님도 없고 당근농장의 일도 거둘 것이 없다보니까 광장의 게시판을 둘러보던 이사벨라가 일일 술집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공지문을 발견, 높은 시급에 눈이 혹해버려서 제대로 된 설명글을 읽지 않고 아르바이트 임무를 맡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결국 이사벨라 씨가 결정한 일 아닌가?”

“으윽! 그렇게 정곡을 찔러버리다니!”

토끼 귀 한쪽을 접으며 가슴을 움켜쥐는 이사벨라였다.

“조금만 버텨. 곧 끝날 테니까. 그리고······.”

나는 이사벨라의 복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사벨라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어찌되었든 잘 어울려 그 복장.”

“······네? 예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는 이사벨라.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순진한 아기토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사벨라의 귀여운 표정도 잠시뿐. 곧 도끼눈으로 바드를 째려보더니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흐흐~ 그런 취미셨구나? 이건 레이나에게 말해둬야겠네. 의외로 동물 귀에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

“레이나에게 동물 귀?”

잠깐 눈을 감고 레이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투명한 피부와 매끄러운 각선미. 그 위에 입고 있는 것은 로브가 달린 사제복이 아니라────.

“레이나는 그대로가 좋아. 생긴 게 예쁘니까.”

“와아~ 돌직구 쩔어. 저는요? 저는 어떤 데요?”

1000CC짜리 맥주 컵을 단번에 들이켠 그녀가 “크아~”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윽하게 쳐다보더니 부담스런 시선. 아무래도 취한 모양이다.

살짝 붉어진 홍조. 반들거리는 입술. 솔직한 감상평을 내자면 그녀는 여관 주인이나 당근농장보다 이런 쪽 직업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얼굴이다. 이걸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토끼펀치가 날아오겠지?

“왜 대답이 없어요? 저는 별로인가요?”

“크큭! 취했어? 이사벨라 씨 의외로 술에 약하네?”

“뭐, 뭐가요! 아직 멀쩡하거든요!”

말은 그렇게 해도 반쯤 풀린 눈에 신뢰성이 떨어진다. 물론 이런 모습 나름대로 이사벨라의 매력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둘러보라. 모든 남자들이 이사벨라만 쳐다보면서 감탄하고 있지 않은가?

복장도 파격적이지만 마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그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다.

“으으······. 바드 씨.”

덥썩! 내 멱살을 붙잡고 얼굴을 끌어당겼다.

“흠?”

그녀가 기묘한 각도로 얼굴을 기울이고는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잔잔한 은하수가, 신비롭고 아름다운 조각들이 별똥별처럼 지나갔다. 다가오는 입술. 도저히 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드······.”

그녀의 입술이 매우 근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비겁하지.

"우웨에에에엑!!!!"

"이런 미친! 역시 취했어.”

“으으! 글쎄 아니래도요!”

나는 이사벨라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녀는 책상에 흘린 토사물 위로 엎어져 완전히 곯아 떨어졌다. 아무래도 한계가 온 모양이다. 어쩐지 점심시간부터 피곤해 보였고, 새벽까지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책상을 치우고 담요 한 장을 구해서 그녀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사벨라의 잠꼬대.

“우헤헤~ 따드톄······.”

***

승리를 축하하는 파티는 계속 되었다. 그란다의 세 달치 술통이 드디어 밑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내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다른 술을 먹으면 되니까!

사방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 동안 나는 이사벨라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내가 102번째 술잔을 비운 것은 비취색 로브를 입은 젊은 남성이 옆자리에 착석한 뒤였다.

“안녕하십니까? 아침에 잠깐 만났었죠. 게르덱이라고 합니다.”

“아~ 스켈레톤을 마무리를 지었다는······.”

나는 입안의 고기를 삼키고 보리맥주를 들이켰다. 버터맥주보다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졌다.

“마무리를 지은 것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직까지 기절해 있었을 테니까요.”

강림으로 미카엘을 빙의시킨 게르덱은 천사에게 모든 걸 맡긴 뒤였다. 게르덱의 생명력을 다 빨아낸 미카엘은 최후의 참격을 날리려 했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황당무계한 것이 난입해서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황당무계한 것?”

“저도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말로는 갑옷과 곡괭이를 착용한 고블린이라고 하더군요. 믿기 어려우시죠?”

게르덱의 입에서 튀어나온 고블린의 인상착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고블린과 완전히 동일했다.

설마 꼬마가?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재밌어서.”

“역시 믿지 못하는군요.”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본 것이 전부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다. 스켈레톤을 일격에 타개하는 고블린이라면 내가 아는 한 하늘아래 ‘그놈들’ 뿐이다. 설마 여기까지 따라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녀석들. 너무 난리만 안 쳤으면 좋겠다만.’

코지부락의 상공위로 은색의 달빛이 조금 더 깊고 아름다운 빛을 발했다. 아직 밤은 길다는 신호를 표하는 것처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