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5)
눈앞으로 떠오른 것은 퀘스트가 클리어 되었다는 내용의 알림창이었다. 전투를 담당한 파티가 침공한 몬스터를 소탕하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카밀라를 납치한 대장장이나, 카밀라의 분신체를 만든 마법사를 찾기 전까지 사건의 허물은 벗겨지지 않을 테니까.
감지한 마력이 근접해있다. 몬스터가 소탕되었으니 진범의 계획은 실패. 범인은 도망칠 타이밍을 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놔둘까 보냐?’
나는 건물과 건물사이의 좁은 골목에 쓰러진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붉은색의 짧은 쇼트헤어와 콧등과 양쪽 뺨까지 이어진 조그만 주근깨. 천방지축 말괄량이 소녀의 전형적인 외모다. 그 옆에 앉아있는 의문의 인물이 문제의 마법사인 모양이다.
“의식만 잃은 건가.”
나는 마법사의 등 뒤로 착지했다.
“제법이군.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말이야.”
“게시판 일은 네놈이냐? 취향한번 특이하군.”
마법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뒤집어쓴 로브를 벗었다. 남색의 샤키컷. 눈동자에는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네놈이군. 봉인된 장소를 해방한 녀석이.”
“이 장소에 무슨 목적이 있었나보지? 거기있는 여자를 넘겨라.”
“으음······. 허억?”
정신을 차린 카밀라가 경황이 없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선 남자 두 사람. 단단히 결박된 몸. 인적 드문 골목길.
‘아, 안 돼! 무시무시한 상황인건가?!’
“누, 누구세요?”
카밀라가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마을. 이곳이 금지구역이라는 것을 눈치 챈 소녀의 얼굴이 다시금 절망으로 물들었다.
“금지구역?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분명 미쳐버린다고······ 설마 아, 아저씨들 저를 어떻게 하려는 생각은······?!”
““안 해! 누가 너 같은 꼬마한테!””
바드와 마법사는 완전 부정형인 말투로 단칼에 대답했다. 그것 나름대로 상처를 받았는지 카밀라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상태는 멀쩡해 보이네.”
바드의 혼잣말에 마법사가 답했다.
“흥! 나는 신사라고. 정신 잃은 꼬마한테 몹쓸 짓은 하지 않아.”
“뭐라고요? 저 숙녀거든요! 누구보고 꼬마래?”
카밀라가 왁왁! 아우성을 질렀지만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선 쓸데없는 몸부림이나 다름없었다. 마법사는 냉혹한 비웃음과 함께 손아귀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시끄럽군. 당장은 죽이지 않으마. 잠깐 잠들어 있어!”
퓨웃.
푸르스름한 마력의 구체가 빠른 속도로 카밀라에게 날아갔다. 타인에게 이질의 마력을 주입해서 잠들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입 좀 다물어 꼬마. 상대방 성질 돋우는 게 네놈 능력이냐?”
카밀라의 눈앞까지 날아간 마력의 구체는 바드의 손에 가로막혀 허공으로 사라졌다.
“어느 틈에?!”
방금까지 내 앞에 있던 놈이 기척도 없이 등 뒤에서?
“죄송해요 아저씨······.”
그녀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바드는 마지막 호칭이 거슬렸는지 카밀라의 머리를 꽁! 쥐어박았다.
“누구보고 아저씨냐? 오빠라고 불러.”
“으윽! 어린애를 때리다니 성질 괴팍한 아저씨 같으니라고!”
“방금 전엔 누구 입으로 숙녀라던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비수가 푸른색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길이 15센티미터도 안 되는 가느다란 암기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빠르게 회피했다.
카캉!
암기가 바닥에 박히지 않고 튕겨져 날아간다. 날아오는 방향과 속도를 보아하니 투척무기에 익숙한 솜씨는 아닌 모양이다.
“뭐, 뭐죠? 갑자기!”
“뭐긴 뭐야. 남은 한 놈이지.”
설마 했는데 도망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사건의 진범들이 말이다.
“허허허. 그걸 피했는가? 노인의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던진 최후의 보루였건만······.”
“영감님 농담이 심하네. 그 몸으로 어딜 봐서?”
모습을 드러낸 노인의 외견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쭉 째진 눈과 사방팔방 자라난 흰색수염. 머리털은 몇 가닥 없는 인상이지만 몸은 엄청난 근육질로 이루어졌다. 다부진 몸과 울긋불긋 선명한 핏발. 암만 봐도 몸 자체가 흉기다 흉기.
‘저런 노인이랑 맞붙으라고?’
징그럽다. 살같만 닿아도 역겨울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그렇지 늙은이와 싸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라서 말이야······ 이제라도 괜찮으니까 순순히 물러나지?”
“껄껄껄! 웃기는 사내로군. 범인의 얼굴을 본 목격자를 놔주는 범인이 어디 있는가?”
“그 말은 우리 입을 완전히 닫아버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정답일세.”
생산계 숙련도 마스터가 굉장해봐야 얼마나 굉장하겠어? 라는 착각은 굉장한 오산이다. 나 같은 경우를 봐도 그렇다. 장비제작을 위한 높은 체력과 스테미너, 그리고 근력치는 패시브를 개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대장장이가 다른 직업에 비해서 패시브가 많은 이유라면 바로 그 때문이다. 노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오랜 세월 대장장이를 해왔다면 방심해선 안 될 거다. 하지만 긴장할 필욘 없다. 노인과 나 사이에는 매울 수 없는 거대한 차이가 하나 더 있으니까.
“레벨.”
“내 레벨? 알려주는 거야 어렵지 않네. 자그마치······”
“나보다 훨씬 낮겠지. 천명을 다하고 싶지 않다면 덤벼도 좋아.”
숙련도는 둘째 치고. 레벨은 어쩔 건데? 나처럼 한평생 레베아탄과 크라켄을 잡아보셨나? 그보다 영감님을 끼워주는 원정대가 있긴 있어?
“클클클. 괜한 객기를 부리는 군.”
“객기는 무슨. 영감님이 간과하고 있을 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그래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보다 레벨이 높을 리 없어! 내 레벨은 271이란 말이다!”
‘에계?’
더럽게 낮은 숫자가 튀어나왔다. 물론 레벨은 숫자놀이에 불과하지만 800대와 200대를 비교하면 섭하지. 노인은 씩씩거리며 부풀어 오른 근육으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코뿔소마냥 콧바람을 내뿜는 모습이 주책이다 아주.
“들어와.”
“오냐! 애송아!”
분노에 잠겨든 노인이 순수한 근력 파라미터로 치고 들어왔다. 탱크 같은 거대한 몸집이 눈앞까지 다가오니 과연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를 지켜보던 마법사는 승기를 직감했는지 피어오르는 조소를 감추지 못했다.
“도, 도망쳐요! 저 할배 위험해 보여!”
카밀라가 울상을 지으며 몸을 떨었다. 바드의 패배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징그러운 근육이 출렁이며 달려오는 공포의 장면은 그녀에겐 악마 그 자체였으리라.
“걱정은 하덜덜 마러. 지금은······.”
내가 옆에 있잖냐.
나는 한발 뒤로 뺀 뒤 오른손에 체중을 실었다. 순수 근력과 근력의 싸움. 노인은 자신의 힘이 우위라고 믿고 있다. 좌정관천.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이 아닌가?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세월을 논한단 말이야. 주책없게.’
콰아아아아아아앙──────────────────!!!!!!
두 남자의 주먹이 맞부딪쳤다. 힘과 힘의 대결. 공대공미사일의 충돌을 연상케 하는 불꽃 튀는 폭발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흐이이이익!”
겁에 질린 카밀라가 몸을 움츠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크하하핫! 이정도 쯤이야!”
노인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만개했다.
두 사람의 주먹은 한동안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허공을 불태웠다. 한쪽 힘이 밀리는 순간 엄청난 여파와 근력수치가 보정된 정권이 덮쳐질 것이다.
“······정말 이정도 쯤인가?”
실망이다.
“이, 이런! 젊은이가 힘이 장사로구먼!”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할배가 퇴직할 때가 된 거지.”
카밀라뿐만 아니라 마법사도 완전히 놀란 표정이었다. 설마 바드가 눈앞의 근육괴물을 밀어붙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저······씨?”
“어이 꼬마. 반드시 마을까지 데려가 줄 테니까 잠깐만 눈 감아라.”
“······어, 응.”
얼떨떨한 반응을 보이는 카밀라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수그렸다. 다음으로 내 손에서 화염의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영롱한 홍염은 눈앞의 근육괴물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크아아아악! 마, 말도······ 말도 안 돼!”
노인의 오른손이 잿더미로 변해갔다. 덕분에 힘의 균형이 깨지고 바드의 불꽃 주먹은 노인의 팔을 갈가리 관통하며 머리통을 깨부쉈다. 산산이 부서진 신체조각은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먼지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마음 같아선 평생 감옥살이 시킬 생각이었지만 힘 조절에 실패했군. 다행으로 알아라.”
바드의 냉담한 목소리는 이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먼지조각과 함께 허공을 부유했다.
“히이익!”
마법사는 질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는 대로 다 불어. 너희는 누구고,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고, 스켈레톤을 소환한 녀석이 어디 있는지 낱낱이 말이야.”
“으으으······ 제, 제발 목숨만은!”
“살고 싶으면 다 불라니까?”
사면초가에 몰린 마법사를 추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녀석은 아는 대로 모든 사실을 술술 털어냈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오늘 일을 벌인 놈들은 엠페러 길드에 소속된 놈들이라는 것. 이놈이며, 노인이며, 스켈레톤을 소환한 네크로맨서까지 전부 허갤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금지구역에 눈독을 들인 이유는······.
‘예상대로 이 묠니르 때문이라는 것.’
바드는 허리춤에서 빛나고 있는 묠니르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역시 평범한 망치는 아니라는 건가.’
“정리하자면 어제 너희들은 묠니르를 구하기 위해서 금지구역을 탐방했지만 이곳은 이미 대장장이의 진노가 사라진 뒤였고 묠니르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묠니르의 행방은 어떻게 찾을 셈이었지?”
“다, 당연히 스켈레톤을 압도적으로 무찌른 놈이 범인일 줄 알았죠. 그런데 마을 안에 괴물 같은 놈들이 몇 명이나 더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꼬마를 미끼삼아 이곳으로 들어왔죠. 아무도 금지구역으로 오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묠니르를 뽑아낸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에요.”
바드의 머릿속에는 거의 모든 퍼즐이 척척 맞아 떨어져 갔다.
“그렇군. 그럼 마지막으로 묠니르는 왜 구하려고 하는 거야?”
“그건 저희 길드장님한테 물어보셔야죠.”
“길드장이 누군데?”
마법사는 사색에 질린 얼굴로 벌벌 떨면서 말했다.
“케르드 군주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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