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3)
짐승이 걸어 들어올 수 없는 어둠의 공간에서 아늑하게 누워있는 어린 네크로맨서가 몸을 웅크린 채 수정구 안을 들여 본다.
“방해꾼······.”
스켈레톤을 조종하는 어린 소녀의 입술에서 가느다란 선혈 한줄기가 흘러나왔다.
“방해꾼 죽여.”
***
살인 예고장에는 누굴 죽이겠다는 지목이 없었다. 즉, 예고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미끼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사건의 배후는 무슨 이득을 취할까? 살인 예고장과 몬스터 출현은 미끼?
“그래서 카밀라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건데?!”
짚이는 장소라면 금지구역 어딘가. 하지만 금지구역도 어지간히 넓어야지 사람한명 찾겠다고 이 넓은 장소를 구석구석 뒤지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다고 안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애당초 카밀라를 이곳에 데려다 놓을 수 있는 사람은 ‘대장장이 마스터’숙련도를 소유한 사람이다. 그 말은 카밀라를 납치한 범인은 대장장이라는 소리이며, 더불어 카밀라의 분신을 만들 수 있는 마법사도 한 명 더 있을 거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육시랄 놈들! 발가벗겨서 길거리에 내쫓을 변태자식들! 이런 개고생을 시켜? 가만, 이렇게 개고생할 필요 없잖아? 내가 왜 카밀라를 찾아야해? 카밀라의 분신을과 같은 마력을 쫒으면 될 텐데?'
나는 눈을 감고 감각을 넓혔다. 나를 중심으로 반구 형태의 투명한 막이 퍼져나갔다. 물체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마력 감지는 손쉬운 일이다.
“저쪽인가?”
얼터를 소환한 마법사와는 또 다른 마력. 카밀라의 분신을 만든 마력이다.
금지구역의 봉인은 사라졌다. 그 말은 다른 인간도 멀쩡한 정신으로 이곳을 배회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 하더라도 놈들이 그 사실을 알리가 없다. 분명 대장장이를 포함해서 마법사가 두명이나 더 있는 거다. 네크로맨서와, 분신을 만든 녀석 한 명. 철저하게 계산된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놈들은 어떤 일을 위해 이 난장판을 벌인 거다!
나는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각력을 쥐어짜냈다.
***
어둠의 소용돌이가 하늘을 뒤덮었다. 사람들 얼굴에 의미 없는 절망이 흘러가고 있다. 온몸에 전류가 감도는 듯한 위압감을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했으리라.
레벨202 중간보스 스켈레톤. 높이 20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의 몬스터가 코지부락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출현했다. 모두가 무기를 떨어뜨렸고 멍하니 상공을 주시했다. 벽안의 청염을 가진 스켈레톤의 눈은 지옥도를 연상시켰다.
그 와중에도 싸울 의지를 태우고 있는 한사람. 프릴이 달린 에이프런을 두르고 있는 앳된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천천히 기어 나오는 거대하고 농밀한 마력이 용오름 치듯이 기세를 키웠다.
“전투담당은 벌써 포기야? 하나같이 무른 아저씨들이네.”
이사벨라는 이를 갈면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레이나와 함께하는 아침잠을 방해받아 심히 언짢은 상태다.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 스켈레톤이 아닌 최악의 레이드 보스라 한들, 앞뒤 가리지 않고 전력을 다해 싸웠으리라. 이사벨라가 뿜어내는 마력의 밀도는 계속해서 커져나갔다. 건물의 지붕이 짓눌리고 구겨졌고 바닥에 금이 갔으며, 공기는 오열하듯 울부짖었다.
‘일격으로 스켈레톤을 없앨 수 있다면 잠잠하게 사건이 마무리 될 텐데.’
나는 양손을 앞으로 뻗어 엄지와 집개손가락으로 △모양을 만들고 마법을 준비했다. 이변을 눈치 챈 스켈레톤의 시선이 내쪽으로 향했다.
‘들켰나?’
상관없다. 마법술식은 이미 완성되었고 끌어올릴 수 있는 마력은 한계까지 끌어올렸으니까.
중간보스인 스켈레톤을 일격에 끝내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첫 번째로 물리적 공격은 통하지 않으므로 성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것. 두 번째는 파괴력을 동반한 고밀도 마력을 광범위로 공격할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성립시키기 위해선 상당한 마력 숙련도와 레벨,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법의 매개체가 필요하다.
마법은 일종의 연금술이다. 소모한 X값이 클수록 마법의 위력도 비례해서 커진다. 그 매개체가 뭐냐에 따라서 위력이 달라지고 소모 값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마법의 위력을 대폭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특정 매개체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 수명이리라.
“죽어버려!”
손에서 뻗어나가는 거대한 빛줄기는 스켈레톤의 커다란 머리통을 통째로 집어삼키고도 남는 두께였다. 이사벨라의 주위로 굉음과 압축된 공기가 대폭발을 일으켰고, 그 일대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서 송두리째 붕괴되었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화이트아웃현상은 마을주민들과 모험가들과, 용병의 시야를 빼앗았다. 모두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변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단지 어디선가 두꺼운 빛의 입자포가 날아가서 스켈레톤의 머리를 가격했고, 엄청난 폭발과 굉음이 발생했다는 것만 대강 알아차렸다.
대지를 울리는 파괴적인 진동이 잠잠해지기까지는 30초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세계를 덮은 광휘의 빛이 잦아들었고 눈을 감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저······게 뭐야?”
뜨겁게 타오르는 빛의 입자가 잦아들었다. 머리를 송두리째 잃은 스켈레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목 부근의 뼈는 녹아 흘러내렸고 메스꺼운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한순간이었다. 스켈레톤이 등장하고, 난데없이 날아온 빛의 입자포에 소멸하기까지는 말이다. 마을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보다는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도 그 정적을 깨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
“해치웠어?”
“그런 것 같은데? 갑자기 왜?!”
“그게 중요하냐? 어쨌든 우리가 이긴 거라고!”
사람들이 하나둘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양팔을 하늘높이 들어 올려 크게 웃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 바보들아.”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이사벨라뿐이었다.
'스켈레톤은 죽지 않았어. 죽기는커녕 방금 전 일격으로 괜히 성질만 돋군 것 같군. 방금 전 일격에 마력을 전부 쏟아 부었는데······. 그걸로 부족했나?’
이사벨라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 듯 식은땀을 흘리며 거칠게 호흡했다.
“빌어먹을! 상대를 얕봤어.”
나는 스켈레톤의 몸체를 똑바로 직시했다. 레벨202에 육박하는 보라색 이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녀석이 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즉,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소리다. 놈을 쓰러트릴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지금뿐!머리를 수복하기 전에 지속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공격담당을 맡은 모험가들의 레벨은 기껏해야 40~50대이다. DPS가 한참 부족하며, 재공격을 시도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전에 녀석이 부활이라도 하면······. 모두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할 무렵. 한 남자가 소리쳤다. 비취색의 로브와 둥그런 단안경을 착용한 마법사였다. 이사벨라의 기억상 메리데이에 몇 번 방문했던 손님이다.
'이변을 알아차린 것 같다만. 늦은 것 같은데?’
이사벨라는 한숨 섞인 혼잣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놈의 공격에 맞서야 할 차례다. 이쪽에서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할 것이다. 각오를 다진 이사벨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조심하십쇼. 놈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저거 안 보여? 머리통이 완전히 날아갔다고?”
“머리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녀석의 마력이 아직 남아있다고요.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놈을 공격할 수 있을 때 데미지를 누적시켜야 합니다!”
그가 필사적인 전투를 주장했지만 누구하나 무기를 뽑으려 하지 않았다. 몇 시간에 걸쳐서 겨우 얻은 평안인데 다시 목숨을 내걸어야하는 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마법사는 이빨을 까드득 갈아 마시며 흉악하게 소리쳤다.
“당신들이 하지 않겠다면 나 혼자서라도 싸우겠어!”
“어이! 진심이야? 설마 저 덩치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신들이 믿든 안 믿든, 저놈은 곧 살아나. 다된 밥에 재 뿌릴 셈이야?”
그의 몸을 뒤덮은 것은 상당한 양의 마력이었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바람에 이끌리듯 그의 몸을 맴돌았다.
“성스러운 빛의 심판자. 그대에게 명령할지니······.”
그의 입가에서 이색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공이 급격하게 축소하고, 날카로운 백색 안광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성속성 마법이 스켈레톤같은 언데드 몬스터에겐 치명적이라는 것은 마법사로서 당연히 알고 있는 기본상식. 방금 전 빛의 입자포처럼 고밀도 성속성 마법만이 정답이다. 딱 하나. 그것보다 위력을 가중시켜야 된다는 것.
마법사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술식은 계속되었다.
“나 게르덱의 피를 받들어 눈앞의 적을 광휘의 빛으로 휩쓸어라. 이를 고한다.”
찬란한 오색 빛이 상공을 밝혔다. 모든 인파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이사벨라 또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게르덱이 사용한 마법은 소환마법과 방향성이 다른······.
‘강림?!’
마법사의 최고경지는 3가지로 분류된다. 그 중 하나가 소환의식의 최고경지인 강림. 즉, 신의 빙의다. 소환마스터가 아닌 이상에야 그 분야는 꿈도 꾸지 못할 경지임을 이사벨라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외진 변두리 마을에서 강림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저녀석 정체가 뭐야?’
얼마 전 여관을 찾아왔을 때 레벨은 88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인적사항은 거짓말로 속여서 적을 수 있지만 아무튼 신의 강림은커녕 변변찮은 소환수를 부릴 레벨이다.
궁금증을 풀어 해칠만한 열쇠가 없다. 이에 대한 진실은 잠시 묻어두기로 하고 이사벨라는 잠자코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빛의 무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은빛 갑주와 투구를 착용하고 거대한 바스타드소드를 장착한 빛의 기사였다. 순백의 날개가 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1미터정도 두둥실 떠오른 상태다. 곧 그의 어께와 날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
빛의 기사는 하늘이 무너져라 거대한 함성을 토해내며 하늘높이 비상했다. 바닥이 방사형으로 함몰되고 성속성의 마력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성기사 미카엘.”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린 것은 이사벨라였다. 소환이 아닌 자신의 몸에 빙의시킨 상태. 그건 신이 아니라······.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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