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2)
당근 잠옷 차림에 수수한 머리카락을 찰랑이는 애 같은 소녀. 소란을 느낀 그녀가 머리위로 토끼 귀를 일으켜 세웠다.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는지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는 그녀는 다름 아닌 이사벨라다. 잠이 많은 그녀가 웬일로 아침 일찍 일어났냐고 묻는다면 쓸데없이 밝은 귀 때문이라고 말해두겠다.
‘으우웅! 도대체 무슨 소리냐구 아침부터······.’
곁에서 곤히 자고 있는 레이나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창가로 이동. 그리고 닫혀있던 커튼을 슬쩍 들여다본다. 이사벨라의 표정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뭐야 이건?”
시꺼먼 먹구름이 가득하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주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몇몇의 모험가들은 무기를 빼들어 지붕위로 올라가있다. 그들의 모습은 무언가하고 격렬하게 싸우는 분위기였다.
“끼야아아아아아악───!”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창문 앞을 빠르게 지나간 것은 고스트타입의 몬스터다. 두개골이 비명을 지르며 눈앞을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이사벨라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뭐야. 얼터(Arter)였어? 무슨 큰일이라도 난줄······.”
“끼야아아아아아악───! 꺄야아아아아아악───!”
"빌어먹을 잡귀 놈들. 안 그래도 귀가 밝아서 짜증나 죽겠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지랄 부르스야!"
토끼 귀를 달고 있는 그녀에겐 적잖은 고통이다. 그들의 비명소리는 귀가 밝은 이사벨라에게 매우 성가셨기 때문이다. 그런 녀석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떼거지로 몰려있으니 그녀라 해도 참고 넘어갈 수준이 은하계 저편을 넘어섰다.
“내 단잠을 깨운 대가는 크다. 잡것들아!”
잠옷차림으로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이사벨라는 뜨거운 투기를 불태웠다. 마성의 분노를 느끼기라도 했는지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레이나. 막 일어난 그녀였지만 그 미모 어딜 가지 않는다.
“이사벨라 무슨 일이야?”
“응? 별 일 아니야. 우리 아가는 좀 더 주무세요~♪”
“우씨! 아침부터 어린애 취급이야?”
“왜에~ 레이나는 예뻐서 자는 모습도 귀여운데?”
“어째서 이야기가 그쪽으로 빠지는 거야!”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레이나의 미모는 너무나도 아까울 정도다. 매번 수수한 차림에,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잖아? 본인이 좋아서 그러는 거지만 한번쯤은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을 가지면 좋을 텐데.
“아무튼 진짜 별 일 없으니까 더 자. 난 손님 받아야 되잖아?”
“그런가아~ 그럼 바쁠 때 불러. 도와줄게.”
“필요 없거든요~”
레이나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듯 쓰다듬고 밖으로 나서는 이사벨라. 방긋방긋 웃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기까지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자신의 방에 마법을 걸어두었다. 외부의 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장벽이다.
생긴 거와는 다르게 상당한 마력을 풍기는 이사벨라. 그녀의 정체성이 조금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마을은 순식간에 혼비백산으로 물들었다. 넋 놓을 곳을 잃은 얼터들은 미쳐 날뛰고 있다. 건물사이를 통과하고 마을의 가축들을 놀래킨다. 공황상태에 빠진 가축들은 울부짖고 마구간을 풍비박산 내며 탈출한다. 그것이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였으니 재산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스트타입의 몬스터에겐 일반적인 참격은 통하지 않아! 모두 엘리멘탈 스킬을 부여해!”
고스트 타입의 몬스터에게는 속성 데미지가 직빵이다. 물리 공격은 거의 효과가 없으니 이번 싸움에는 마법사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놈들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 얼터의 저주공격은 성가시다고!”
“뒤를 엄호해! 놈들이 난리 피우게 해서는 안 돼!”
모험가들의 거친 돌격. 얼터들의 짓궂은 장난 속에서도 그들은 하나하나 확실하게 개체수를 줄여나갔다.
“파이어 불릿!”
“카아악─────!”
엘리멘탈 공격은 매우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일반 참격의 데미지가 10%를 차지한다면 속성공격은 90%를 차지. 10번 휘두를 것을 한 번에 끝내는 오지고 지리는 효율성 아닌가?
그러나 얼터의 저주 또한 만만치 않은 방해거리다. 일순가 시야를 뺏는다던가, 파티원들의 정신을 흔들어서 어지럼증을 유발시킨다던가. 아무튼 코지부락의 아침은 광란의 도가니탕으로 빠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지붕 위를 뛰어넘으며 전두지휘를 해나갔다. 모험가들은 내 지휘에 알맞게 따라오고 있었고, 얼터들 또한 확실하게 죽어나갔다. 사방에는 얼터들의 남은 부속물. 그러니까 기묘한 마력의 잔류가 잔뜩 널브러져 있다.
“끼야아아아아───!!!!!”
《강인한 정신력 패시브 효과로 얼터의 저주에 저항합니다.》
이미 300마리 이상의 얼터들을 상대하고 있다. 얼터의 레벨이 아무리 낮다한들, 300이나 되는 물량이 단체로 저주를 걸면 상당한 후유증이 남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저주에 저항했다는 알림창 뿐이다. 고된 노가다와 훈련으로 단련된 마스터 패시브가 자그마치 수십 개. 얼터의 저주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했다.
“파천도!”
일명 하늘을 깨부수는 도. 상당한 어빌리티를 자랑하는 오리지널 한손직검이다.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파천도는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공기가 떨리는 정도였으니 말 그대로 폭풍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크아아악! 엄청난 돌풍이다! 어디서 불어오는 거야?”
“저 남자 혼자서 다 잡아 족치고 있잖아!”
물리적인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 얼터들마저도 바드의 무력 앞엔 파리채 앞의 파리. 돌풍에 휘말린 얼터들의 HP가 꾸준히 감소했다.
“캬아아아! 캬악!”
“시끄럽다고 너희들.”
검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일대의 공기가 그 주변으로 잔뜩 빨려 들어갔다.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얼터들은 기괴한 모양으로 일그러지면서 소멸. 밀어붙이고 있지만 장기전은 불리하다. 몬스터와 다르게 인간은 전투를 이끌어 가는데 필요한 스테미너가 더욱 소요되니까. 적당한 타이밍에 얼터들을 휩쓸어야겠는데, 아무래도 각이 안 나왔다.
“카밀라는? 아직도 못 찾은 거야?”
“틀렸어.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아.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수색대쪽은 아무래도 진전이 없는 모양. 바드는 문득 한 장소를 떠올렸다.
“금지구역. 금지구역을 찾아봐! 그곳이라면 정신을 잃은 카밀라를 숨겨두기엔 최적의 장소야!”
“그, 금지구역?! 그곳에 진입한 사람은 이성을 잃고 완전히 미쳐버린다고 하던데······.”
“뒷일을 부탁하지. 내가 가겠어.”
금지구역의 대장장이의 진노는 사라졌다. 사실 누가가든 상관없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가야 한다. 이만한 사건의 주동자가 그곳에 있다면 상당한 강자가 분명할 테니까.
‘이대로 가다간 놈들의 숫자에 밀리고 말 거야. 어떻게든 전력을 보충하지 않으면······.’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다. 앞으로 남은 몬스터를 어떻게든 그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내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오오! 맡겨만 달라고 대장장이! 오늘 살아서 만나면 그란다의 술집에서 보세!”
“그쪽 술은 나도 좋아하지.”
남자만의 의리를 담은 웃음이 교차되고 나는 전장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이변이란 항상 일어나는 법. 등 뒤로 알 수 없는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거대한 이변의 마력은 얼터를 소환한 진범의 마력이 틀림없었다.
내가 없는 동안 얼터의 소환사가 또 다른 짓을 벌이면 어떡하지? 이 정도 장난을 부릴 녀석이라면 더한 짓을 하고도 남는다. 내가 없는 동안 파티원들이 버텨야 할 텐데······.
‘지금은 파티를 믿는 수밖에 없겠군.’
***
기분 나쁜 마력이 느껴진다. 그거야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고 지금은 좀 더 기분이 더럽다. 내 단잠을 방해하고 레이나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방해한 망할 얼터들 때문이다. 자고 있을 땐 천사라고 하던가? 그 말은 아마도 나를 두고 하는 말임이 틀림없으리라.
“이사벨라 씨 위험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어!”
얼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남자가 소리쳤다. 남자의 레벨은 55. 얼터 한 마리는 거뜬히 상대할 레벨이지만 10마리가 넘는 숫자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벅차 보인다. 그는 몇 번이고 시달린 저주 때문에 눈가에 짙은 다크써클이 그려졌고 눈두덩이도 패여 있었다.
“캬아아아!!”
“흥.”
이사벨라의 뒤를 노린 얼터가 입을 쩌억 벌리고 그녀의 뒷덜미를 깨물려 했으나 그녀는 쓰레기 보는 시선으로 마력을 뿜어냈다.
파칭!
얼터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마냥 스파크를 튀기며 퉁겨져 날아갔다. 엘리멘탈 속성을 부여한 일렉트릭 베리어(Electric barrier). 레벨40의 몬스터를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고 소멸시키는 모습을 지켜본 검사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어라? 벨로스 씨군요. 왜 그러세요? 뭔가 엄청난 거라도 본 얼굴이시네?”
“어······. 그게 그러니까. 이사벨라 씨가 언제부터 마법을······?”
“여자의 비밀을 캐묻는 것은 실례랍니다. 젊은 오빠~♪ 그나저나 그 얼터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위험할걸? 저주에 걸린 것 같은데 말이지.”
“······!!?”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터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저주로 인해서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 검사는 중첩된 디버프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미안해요 벨로스 씨~ 내 정체를 알아버린 이상 나도 도와줄 마음이 없거든? 어차피 곧 죽을 거 같으니까 내손에 죽는 것 보다는 그게 나을지도?”
“이사······벨라······. 당신은······!”
“평범한 마법사랍니다.”
후훗~ 눈웃음 지으며 검지로 쉿. 이사벨라의 얼굴에 조소가 피어올랐다. 힘을 다한 검사는 얼터에게 영혼을 빨려 천천히 절명했다. 이사벨라는 싸늘한 시선을 거두고 상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뭘 하는지 지켜볼까?”
마법사만이 볼 수 있는 마력의 소용돌이가 코지부락 상공에 출몰했다. 한창 모험가들과 난전을 벌이던 얼터들은 그 마력에 이끌리기라도 하듯이 그 소용돌이 안으로 모여가기 시작한다. 보라색 자줏빛 불꽃.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험가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아차린 것은 오직 이사벨라 한 명뿐.
“융합의식? 일을 제법 크게 벌이네. 누군지 몰라도 마법 좀 아는 네크로맨서인가?”
융합의식은 몬스터나, 사람, 동물 등의 산 재물을 바쳐서 한 등급 높은 상위체를 소환하는 마법이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상당한 양의 얼터를 산 제물로 바치면······.
“······와우~”
이 정도면 전멸 하겠는데?
토끼 귀가 살짝 떨릴 정도의 강력한 마력. 상공으로 빨려 들어간 얼터가 융합의식의 재물로 바쳐졌고 자줏빛 불꽃의 소용돌이 안에서 거대한 뼈다귀가 튀어나왔다.
몬스터 도감에는 스켈레톤(Skeleton)이라고 알려지지만 원래는 스컬(Skull)이라는 이름이 있다. 스켈레톤의 레벨은 202였으며, 레벨200대 안의 모험가들 사이에선 퍼플네임드인 중간보스정도 수준으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평균레벨220의 모험가가 50명이상 모이는 중급 레이드 파티를 짜야 사냥할 수 있는 그런 몬스터가······.
‘고작 얼터 몇 마리 모았다고 저게 소환 되다니. 숙련도가 어지간히도 높나보네.’
아무렴 어때?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야. 레이나와 나를 제외하면 누가 죽든 내 상관 아니거든. 단지······
“레이나와 나의 달콤한 잠자리를 방해한 네놈은 집 가기 글렀어.”
살기가 물씬 묻어나온 이사벨라의 혼잣말이 허울 없는 허공 속으로 녹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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