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Smith (11)
[코지부락 중앙광장]
아침부터 게시판 앞이 떠들썩하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적잖은 소음을 만들었다. 여관 지붕에 잠들어있던 바드는 그 소란에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아침부터 무슨 소란이야 이 인간들아. 잠도 없냐?’
나는 인파가 몰려있는 틈으로 섞여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게시판에 대문짝만하게 공지되어있는 한 장의 종이였다. 종이는 핏물로 적은 글이 쓰여 있었고, 글의 내용은 심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죽여버리겠어-
누가 누구를? 아무래도 세상은 내가 생각보다 상당히 각박한 모양이다. 이렇게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대놓고 공고하고 다니는 걸 보면 말이다. 살인예고라······. 어떤 놈 소행인지 간도 큰 놈이군.
죽일 대상이나 예고날짜는 불명. 아니면 누군가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장난치곤 너무 자극적인 이미지지만 말이야. 만약 진짜 장난이라면 이 짓을 벌인 그놈은 분명 싸이코가 틀림없으리라.
“이거 마그르스에 연락해 봐야하는 거 아니야?”
“그곳까지 아무리 빨리 달려도 3주일은 걸린다고. 왕국의 병사들이 올 때쯤이면 이미 상황 터질걸?”
“그럼 이거 상황이 심각한 거잖아? 살인이라니!”
“어떤 놈인지 정말······.”
몇몇 모험가와 용병의 한탄과 한숨이 땅을 때렸다. 불안감에 빠진 주민들은 저마다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이때 민중의 앞에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그 남자는 코지부락 내에서 보기 힘든 상급 용병이었다. 장비한 아이템만 놓고 보자면 마을 내에선 나를 제외하고 레벨이 가장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중들이여! 너무 두려워하지 말게. 나 겔런티가 그대들을 보호할 터이니 수상한 놈이 있으면 그대들을 위해 기꺼이 검을 들겠다!”
“오오! 저분은 레벨99의 겔런티 용병!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다지?”
“저 남자라면 믿을만하지.”
“이봐, 겔런티.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만 부탁하겠네. 오늘 일이 터지지 않으면 그냥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겔런티는 벌꿀 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는 장발의 소유자다. 마성의 미모는 달콤하니 빠져드는 블랙홀 같았다. 입에 장미꽃 한 송이라도 물고 있다면 백마 탄 왕자나 다름없는 비주얼. 쉽게 말하면 느끼한 녀석이다.
모두가 그를 신뢰했다. 그의 인기가 파격적인 속도로 올라갔다. 지금쯤 명성 좀 두둑이 받고 있겠지?
‘레벨99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주변에 레벨높은 몬스터나 모험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나 비극의 사고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한 여성의 목소리가 광장 안에 울렸고, 모두의 시선이 여성에게로 몰렸다. 그녀는 주황색 개털머리를 휘날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뭐야. 카밀라잖아? 목장에 늑대라도 나타났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그녀는 잔뜩 겁먹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의미심장한 위화감이 그들 사이를 감도는 가운데, 앞장나선 것은 금발의 검사 겔런티였다. 버터가 녹아내리는 듯한 속 뒤집히는 말투는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소녀여.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본 진실을 천천히 설명해주지 않겠나? 그래야 내가 그대의 걱정거리를 약간이나마 대신 짊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그게 저쪽에서······, 저쪽에서 사람이 죽었어요!!”
모두가 일제히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낡고 허름한 오두막이었다. 바람에라도 날아가 쓰러질 것 같았던 그 건물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겔런티가 자신 있게 오두막으로 다가서려고 할 때, 그를 막아선 것은 비취색의 로브를 착용한 마법사였다. 동그란 단안경을 착용하고 거대한 오브가 달린 지팡이를 보아하니 그의 실력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겔런티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용무지?”
“저 앞으로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산한 기운이 건물 안에서 풍기고 있어요. 들어가면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하! 천하의 겔런티가 그딴 걸 두려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마법사의 의견을 일절 무시하고 나아가는 겔런티. 허리춤에서 번쩍이던 롱소드가 그의 손에 쥐여졌다.
“이딴 오두막!”
“그만둬.”
오두막 문을 발로 차버릴 기세였지만 보다 못한 내가 그의 발을 붙잡고 바닥에 엎어뜨렸다.
“이번엔 또 어떤 시골뜨내기란 말인가!”
“시골뜨내기 덕분에 목숨 붙어있는 줄 알아. 더 나댔으면 죽었을 테니까. 카밀라라고 했나? 정체가 뭐지? 이 오두막은 당신 같은 여자가 들어갈 만한 수준의 공간이 아니야. 만약 들어가 봤다면 갈가리 찢어졌을걸.”
“그, 그게 무슨!”
옆에서 듣고 있던 겔런티가 말도 안 된다며 내게 항의했지만 나는 그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다. 지금은 카밀라라는 소녀를 추궁해야할 때니까. 그러나 카밀라 또한 순순히 정체를 밝힐 마음이 없었는지,
“저, 저는 그저. 안쪽에서 사람이 죽은 모습을 본 것 밖에는······.”
“끝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으시겠다? 그렇다면 이건 어때?”
나는 장비착용 커맨드를 영창해서 윈드 마스터를 착용했다. 파지천금으로 만든 순백의 갑주는 화려한 무늬와 오러를 내뿜었다. 그 순간 주민들의 시선이 놀라움으로 변해 내게 향해왔다. 이런 작은 변두리 마을에서 이만한 장비를 구경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기 때문이다.
"히야~ 대단한 장비다. 기백이 날뛰는 군!"
《명성이 300올랐습니다.》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멈추지 않았다.나는 아랑곳 않고 오두막 문을 박살냈다.
끼아아아아아아악───!!!!!!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그림자가 엄청난 기세로 튀어나와서 나를 덮쳤다. 비명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치고 불쾌하다. 그것들은 어느새 오두막 상공을 빙빙 돌면서 부유하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공포에 떨면서 비명을 지르거나, 정신 나간 얼굴로 상공을 바라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여유로운 사람은 바드 한 명 뿐인 듯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겔런티를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갑옷을 입었기에 망정이지. 당신들이었으면 이 저주를 버티지 못하고 몸이 산산조각 났을 거야.”
모두가 상공을 지켜보는 가운데, 겔런티는 카밀라가 있어야할 자리에 시선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비어있는 자리.
“카, 카밀라가 사라졌어!”
“어? 저, 정말이다! 정체가 들통 난걸 알고 도망을 친 건가?! 이제 보니 게시판의 저 글도 카밀라가 쓴 거구만!”
“그건 아닐 거야. 방금 카밀라는 가짜였어. 그녀의 몸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분신이었으니까.”
설명을 듣고 있던 비취색로브를 두른 마법사가 앞으로 나서며 의심스런 말투로 나를 추궁했다.
“지금까지 전부 당신의 말대로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 카밀라가 분신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죠? 그건 마법사인 저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만.”
마법사가 바드를 의심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마력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마력과 친화된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고, 만약 마력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마법사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바드의 행색은 마법사와 거리가 멀어보였으니 의심받을 만도 했다.
“난 단지 대장장이일 뿐이야. 마력이 눈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태어날 때부터 그래왔는걸 나보고 어쩌라고?”
“태어날 때부터 그래왔는데 직업을 대장장이로 선택했다고요?!”
바드의 고백에 놀란 것은 마법사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마을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라는 꿈의 직업군을 놔두고 하필 생산계 직업 중에서도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대장장이를 고른 것이 이해할 수 없던 것이다.
내가 그런 것을 어찌 알겠는가? 태어날 때부터 세계와 동떨어진 외람된 자리에서 자라온 것을······. 나를 키워준 할아버지마저 대장장이였으니 나의 재능과는 무관하게 길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튼 그래. 당신이 믿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한 치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어. 지금 중요한 것은 카밀라의 진짜 몸이 어디있느냐야. 빨리 구하지 않으면 위험할걸?”
“그, 그렇지! 카밀라를 구해야지! 그런데 어떻게?”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멍청한 사람들아. 당연한 거 아니야? 마을 주변부터 수색해 봐야지. 분신체를 만들기 위해선 본체가 그 주변에 없어서는 안 된다고, 기껏해야 코지부락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빨리 찾아봐. 그리고 전투계열 직업은 30명 정도 남아 있어.”
“어째서?”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털보 용병과 모험가들 순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연달아 한심하다. 이 인간들 생각이 있기는 한 걸까?
“저 위에 안보여? 저주를 거는 고스트타입의 몬스터 몇 천 마리가 마을 상공을 떠돌아다니고 있잖아. 마을평판도 안 좋아질 테고, 마을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저것들을 그냥 놔둘 셈은 아니겠지?”
“저, 저것들과 싸우자고!?”
“레벨은 높지 않아. 30에서 40사이니까. 싸울 능력이 되는 사람만 남아주는 것이 도움 될 것 같은데.”
나처럼 몬스터의 레벨을 보기위해선 세 가지의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ⅰ)몬스터보다 월등히 레벨이 높을 것.
ⅱ)그 몬스터를 많이 잡아봤을 것.
ⅲ)레벨을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을 보유할 것.
나는 이중에서 ⅰ,ⅲ으로 2개의 경우가 성립된다. 이는 몬스터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성립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튼 몬스터들을 혼자서 때려잡을 수준이지만 그렇게 되면 눈에 너무 띌 것 같으니 나서지 말아야겠다.
얼추 30명의 단체파티가 결성되었다. 목표는 마을을 떠도는 몬스터 소탕. 대략적인 개체 수는 4000정도이리라.
《코지부락 수호 퀘스트 발생! 임무를 완수하면 보상이 주어집니다.》
중규모의 파티결성과 동시에 그들의 눈앞에 떠오른 것은 퀘스트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창이었다. 아직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바드는 엉거주춤 창을 닫았지만 주변의 모험가들은 익숙한 손동작으로 알림창을 거두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좋아! 마을은 우리가 지킨다!”
“오오오!”
다들 거칠게 기합을 내지르며 전방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들의 폭풍과도 같은 돌진은 얼마못가 멈추고 말았다.
“잠깐.”
“······왜 그래?”
한 남자의 정지신호.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노란색 팔자수염의 검사가 불안한 눈으로 추궁했다.
“우린······ 놈들을 죽일 수 없어.”
“한창 의욕 넘치게 돌격하더니 갑자기 왜?”
남자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기죽은 듯 말했다.
“녀석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잖아······. 검이 닿질 않는다고······.”
“으닛! 그, 그랬구만!”
“뭐가 그랬구만이야 이 멍청한 아저씨들아!”
바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렇다면 이번 퀘스트는 포기하는 것이······.”
진지한 표정으로 알림창을 열어서 포기버튼을 누르려는 아저씨 무리들.
“농담하지 말라고!”
나는 그들에게 항의했다. 공격이 닿질 않으면 닿게끔 만들면 되는 법! 궁수나, 마법사들이 놈들을 아래로 유도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 되는 것이다. 이에 아저씨들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걸쭉하게 웃었다.
“허허허! 들킨 건가? 젊은이 치고는 눈치가 빠르군.”
“아저씨. 지금 농담 따먹기 할 상황이 아니야.”
“알다마다! 지금부터 진지하게 돌격해보자고.”
사슬갑옷을 철컹이며 거대한 양손검을 고쳐 쥔다. 그들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그곳엔 바드가 봐왔던 어설프고 멍청한 아저씨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는 용사의 모습이, 마을을 지키기 위한 용사의 모습이 싸움의 의지를 싹틔웠다.
‘각오 하나는 봐줄만 하군.’
나도 여기서 질세라 무기를 꺼내들었다. 정확히 말해서 ‘곡괭이’를 말이다. 영롱하게 빛나는 곡괭이는 아직 수리중인 곡괭이다.
“모두 돌격!”
신호에 맞춰서 30명가량의 전사들이 발을 놀리며 달려 나갔다. 대륙의 변두리에서 시작된 바드의 첫 도약. 세상을 발칵 뒤집을 거대한 도약이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