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aster Smith-6화 (6/202)

Master Smith (6)

나는 코지부락으로 향하고 있다. 스스로를 대장장이라 칭하고, 상식을 벗어난 레벨을 가진 봉두난발의 남자와 나란히 서서 말이다.

설마 내가? 이사벨라 이외에 다른 사람과 동행을? 심지어 이 사람은 남자잖아?

“바드라고 했지? 어, 어쩌다 그 레벨이 된 거야?”

“글쎄다. 살다보니 우연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지.”

‘무슨 우연이길래 사람이 괴물이 되었데?’

바드는 레벨888에 도달한 괴물. 심지어 대장장이 모험가다. 그런 그에게 반말을 내뱉는 것은 나로서 매우 떨리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바드는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그나저나 고블린 부락에서 떠난 거 아니었어?”

“마을로 가던 도중에 보부상들이 하는 말을 들었지. 초보자들이 고블린 부락으로 향했다는 소리를 말이야.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설마 꼬마가 두 명이나 죽일 줄은 생각도 못했어. 어쩔 수 없는 사고였지.”

우발적인 사고였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을까? 고블린이 그들을 죽인 것은 레이나를 지키려다 발생한 결과다. 하지만 살인은 살인. 과연 그 행동을 사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너는 몬스터가 마땅히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그녀가 측은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녀는 죽음과 몬스터에 대한 공포가 크다. 설령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몬스터든 간에 죽고 죽이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았어. “몬스터? 그런 놈들이 살아봤자 뭐해?”, “그런 놈들의 씨는 아예 말려버려야지.” 그런 말이 대다수였어. 당신은 어떻게 말할 거야?

“싸울 땐 싸워야지. 도망치면 지키고 싶은 것도 못 지켜. 단순한 살육은 잘못되었지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손에 피를 묻힌다는 것을 나쁘게 바라볼 수만은 없잖아? 몬스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야.”

꼬마가 죽은 것은 유감이지만. 만약 내가 고블린이었다면 같은 판단을 했을 거니까.

‘레벨888에 육박하는 나를 고블린에 비유하다니. 뭔가 우습군.’

레이나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질문했다.

“너는 왜 대장장이가 된 거야? 검사나, 전투 직업을 선택했다면 전 세계가 알아주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을 텐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만한 레벨을 감히 누가 대적하려 하겠어? 감히 누가 박대할 수 있겠어? 하지만 그가 선택한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모든 것을 망쳤다. 생산직은 결코 좋은 평판을 얻기 힘드니까. 아니, 이제 보니까 질문이 잘못되었다. 다시 정정해서,

“어떻게 대장장이 직업으로 어떻게 그 레벨까지 올린거야?”

바드는 그녀의 질문에 먼 추억이 되어버린 과거를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모루, 기술, 추억. 모든 것들은 ‘그 섬’에 남아있는 작은 대장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곳과의 인연을 끊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스스로 대장장이가 되기를 택했다. 내가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대장장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리라.

레이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 바드를 보며 중얼거렸다.

“굉장히 복잡한가 보네.”

“그렇지.”

둘의 담소가 오가는 동안 그들은 탁 트인 장소로 빠져나왔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저곳이 코지부락이다. 크고 작은 민가가 불규칙적으로 배치되고 마을 중앙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세워져있다.

이 마을은 ‘자유용병의 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데 초심자부터 전문용병까지 금액별로, 직업별로 구별되어있기 때문이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지?”

“전혀 모르겠는데.”

레이나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코지부락을 모르다니! 물론 규모가 작고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다고는 하지만 심하잖아! 어쩔 수 없네. 일단 마을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소개해 줄게. 따라와.”

레이나는 바드보다 한발 앞서서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마을 안으로 발을 딛는 동시에 눈앞에서 알림창 하나가 튀어나왔다.

《코지부락》

나는 마을에 입촌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망설이는 발걸음으로 레이나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이런 장소는 너무 생소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덜컹이는 수레를 끌기도 하고 곳곳에서 물건을 거래하기도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사람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인한 평화로운 하모니 같다. 아이들이 뛰놀고, 장사꾼이 목청껏 소리치고, 이따금씩 망치질 소리까지!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동과 환희에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곳이 광장. 사냥터로 나가거나 파티원을 모집할 때, 혹은 용병을 고용할 때 모이는 약속의 장소로 봐도 무관하지. 여기 있는 게시판은 각종의뢰나 용병단을 확인할 수 있어.”

게시판에는 그녀의 말대로 이것저것 잡다한 공고문이 붙어있었다. 물건 찾는다던가. 용병을 고용한다던가, 판매할 물건을 홍보한다던가. 이래저래 볼게 많았다. 그중에서 내 눈에 띈 것은 오른쪽 하단에 붙어있는 한 장의 종이였다.

『대거+12강 제작의뢰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쉽게 지나치기 힘든 의뢰다.

“이 의뢰 수락하고 싶은데.”

“의뢰? 의뢰지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의뢰자의 성명과 약속날짜, 보상, 장소가 나와. 하지만 이 의뢰는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대거12강화라니. 이런 외곽 지역에서 그만한 실력을 갖춘 대장장이가 있을 리 없잖아. 헛소리하는 것 같으니까 넘어가자구~”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거+12강이 어째서 불가능 하다는 것인가? 철광석을 녹여서 망치질 몇 번 두드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 간단한 작업을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갖지 않고 의뢰지를 누른 뒤, 수락버튼을 눌렀다.

《의뢰를 수락하셨습니다. 의뢰를 수행하지 못하면 명성이 줄어듭니다.》

“으앗! 그런 임무를 멋대로 받아버리면······!”

“왜? 보상도 짭짤하잖아? 500만 실링이면 대거+12강화치고는 과분한 가격인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12강화를 어떻게 할 거냐고! 어떻게!”

그녀가 아우성 쳤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가무렸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내가 대장장이 숙련도를 만렙까지 찍었다는 정보를 미리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12강화는 누워서 떡먹기. 아니, 누워서 숨쉬기다. 애당초 12강화가 어렵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 수학적 확률로 따지면 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지겠지만······.

‘우선은 기합이다.’

레이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말했다.

“명성이 떨어지면 모험가들이나 주민들이 바라보는 인식이 안 좋아져. 물건을 살 때 바가지를 쓰거나, 혹은 물건을 아예 팔지 않을 때도 있지. 한마디로 의뢰수행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소리야.”

“명성지수가 0인 사람도 있을 거 아니야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그들은 약탈과 수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그들을 허갤(Hergel)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살인은 물론 뭐든 저지르는 놈들이지. 모험가들이 피하고 싶은 존재 중에 1위일걸?”

빙빙 돌려 말하긴 했는데 그녀의 주장은 쓸데없이 수행 불가능한 의뢰를 받아서 괜한 명성을 낮추지 말란 소리였다.

“보통 사람들의 명성수치는 어느 정도 되는데?”

“대게 2천에서~3천사이. 왕국의 수호기사가 되기 위해선 2만에서 3만사이의 명성수치가 필요하다고 들었어. 엄청나지?”

수호기사란 직책이 그렇게 엄청난 건가? 듣기로는 그리 좋은 무기를 착용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말이다.

“일단 이번 의뢰는 일찌감치 포기해자. 기간을 못 맞춰서 실패하는 것 보다 그쪽이 명성수치가 덜 깎이니까.”

레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내 행동을 막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눈치다.

“남아일언중천금. 한번 저지른 일을 두 번 번복해서야 되겠어? 게다가 이건 대장장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그녀는 말도 안 된다며 혀를 베에~ 내밀며 반박했다.

“그래서? 대거+12강을 제작하겠다고? 레벨이 높아도 대장장이 숙련도를 올리는 것은 지옥에서 살아나오는 것보다 힘들데. +12강은 상급강화니까 대장장이 숙련도 중급 5단계 이상이며, 최소 대장장이 경력 20년 이상인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도달 할 수 없다던데? 그것과 별개로 확률도 너무 희박······”

레이나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내가 그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방 안에서 몇 가지 물품을 꺼내 들어서 작업준비를 마쳤다.

“뭐하는 거야?”

“12강 대거 만들어야지?”

건성으로 답하고 망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 모습 지켜본 몇 명의 모험가와 주민들이 가벼운 조소를 날렸다. 대장간 없이 장비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바드의 모습이 우스운 것이다. 그들은 확신했다. 바드의 제작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저거 병신 아니야? 딱 보니까 아직 풋내기 대장장이 같은데? 하하하!”

“왕국에서 최고의 대장장이를 뽑는다고 하니, 개나 소나 대장장이 노릇이군. 암만 그래도 전투직이 존재하는 이상 생산직은 살아남기 어렵지.”

“그런데 폼은 예사롭지 않은데?”

나는 사람들의 매도 속에서도 냉정함과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속에 보이지 않는 영롱한 불꽃을 피워냈다. 그 불꽃은 정열로. 정열에서 열정으로 바뀌었다. 나만의 히든 패시브. ‘장인의 혼’발동의 시초다.

‘내 무기는───, 최강이다───!!’

까앙──────!!!

맑고 영롱한 쇳소리. 동시에 붉은 불똥이 폭죽처럼 피어올랐다. 나를 중심으로 무지갯빛 아우라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주변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동시에 사람들의 표정이 삽시간만에 바뀌었다. 그들의 눈가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리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해져와······ 그의······ 의지가······.”

바드를 욕했던 모험가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와아아아! 엄청났어! 엄청났다고!”

“미안하다! 내가 너무 무시했어!”

단 한 번의 망치질로 광장에 있었던 모두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들의 태세전화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집중력만 흐트러질 뿐이다.

‘제작에나 집중하자.’

힘껏 움켜쥔 망치가 거칠게 연달아 포효했다. 바드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본인에게 엄청난 이변이 다가오고 있음을.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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