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데이트 코스라면 둘의 동선도 여느 커플들과 다르지 않았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 가고.
이현이 생각한 데이트도 이러한 동선을 예상했으리라. 하지만 혜지는 전혀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혜지를 따라 걷던 이현은 고개를 들어보았다. 성인용품점. 이 곳에 데이트를 하러 왔나? 아예 안되는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둘은 데이트 하러 이런 장소에도 몇 번 왔었던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여자 둘이서 성인용품점에 오는 건 조금….
“갑자기 여기는 왜?”
“왜냐니, 그야 데이트 하러 온거지.”
이현은 과거 성인용품점에서의 데이트를 떠올려보았다. 그때마다 남자였던 자신이 온갖 도구로 혜지를 괴롭히거나, 야하게 생긴 코스튬을 입히는 둥 야한 일들만 가득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혜지를 괴롭힐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이 괴롭힘을 받으면 모를까.
실제로도 혜지는 아무렇지 않아보였지만 이현은 잔뜩 긴장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대로 성인용품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는 눈에 뻔했다.
저항하고자 걸음을 멈췄을 무렵이었다. 혜지가 이현을 보더니,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같이 가야지?”
그 목소리, 다정하고도 안심되는 목소리에 이현은 흠칫했다. 흠칫했을뿐만 아니라 무언가 속에서 올라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혜지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고 있기 때문일까?
알 수 없었으나 당장이라도 움찔거리는 몸은 절정을 맞이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혜지의 몸을 꼬옥 붙잡았다. 정말 여동생이라도 된 듯 안기는 모양새.
혜지는 흐뭇하게 웃으며 이현을 데리고 성인용품점에 들어갔다. 그 내부의 모습은 특별하지 않았다.
성인용품점이라도 요즘에는 퇴폐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문구점처럼 되어있는 모습, 그래서 더 위험했다.
이건 마치 언니와 데이트를 나온 여동생같은 모습이 아닌가.
아니, 데이트를 한다고 하긴 했지만….
이쯤되자 뭐가 뭔지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인테리어는 평범한 문구점인데 있는 것들은 야한 물건들 뿐이니까.
어쩔 수 없이 혜지가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어서오세요.”
카운터에 앉아있는 건 젊게 생긴 여자였다. 여자는 이현과 혜지를 스윽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한데 신분증 좀….”
“아, 네.”
혜지가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들더니 여자에게 보여주었다. 이현의, 그러니까 혜윤의 신분증도 함께였다.
여자는 혜지의 신분증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그 얼굴을 힐끗거렸다.
“와, 저보다 언니였네. 되게 예쁘시다 진짜.”
“그래봤자 몇 살 차이 안나는데요 뭐.”
“그래도 당연히 저보다는 어릴 줄…. 이 분도 저보다 언니셨네.”
“거기에는 그렇게 적혀있긴 한데 동생이예요. 그치, 혜윤아?”
“어, 어?”
“점원 언니분께 인사 해야지?”
“…….”
이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혜지의 손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 손은 어깨에서 시작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 은밀한 부위 바로 근처에서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한편 여자도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상황인지 대충 알아차렸다. 애초에 둘이서 이곳에 왔다는 건 그러한 관계라는 뜻이고, 무슨 플레이를 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성인용품점에서 일을 하면 흔히 보는 광경이다.
그러니까 맞춰주기로 했다. 이현이 새빨개진 얼굴로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언니….”
“응. 안녕. 너희 언니랑 재밌게 보내.”
이현으로서는 처음 보는 연하의 여자에게 언니라고 존대하는 상황, 심지어는 그 여자가 자연스레 혜지와 자신의 관계를 인정해버리는 상황에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흥분했다.
그동안 혜지가 해왔던 온갖 암시와 조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는 완전히 혜지에게 주도권을 넘겨버렸다. 혜지는 과거 이현이 그랬듯 긴장하는 이현을 데리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와중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플레이용 목줄과 수갑, 아주 클래식하고도 유용한 도구들.
혜지는 자연스레 이현에게 그 도구들을 착용시켰다.
거절따위는 할 수 없었다. 당장 절정을 참는 것만으로도 한계였으니까.
“와, 되게 잘 어울리네. 색깔도 꽤 어울리고.”
혜지는 옷을 입히고 품평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근데 뭔가 좀 어색한데. 음, 벗을까?”
“여기서…?”
사실 이현도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성인용품점은 장소가 장소인만큼 온갖 플레이를 하는 커플들도 많은 편이다. 밤에 오면 노출 플레이를 즐기는 커플도 있고, 도구를 시착하는 만큼 온갖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이런 장소다.
그렇기에 혜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알몸이 된 후, 수갑과 목줄까지 착용당한 모습은 누가 봐도 플레이중인 마조녀였다. 다리 사이로 흐르는 애액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분위기를 연출해주었다.
결국 그 상태로 성인용품점 내부를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며 목줄에 매다는 방울이라던가, 소프트 피어싱이라던가 스티커 타투 따위의 온갖 물건들을 구매했다.
심지어는 애널과 연결되는 듯한 후크까지도 구매했다.
이현은 그런 것들을 왜 사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이 꼴로 계산을 해야 했으니까.
이현은 나체로, 팔다리가 묶인데다가 목줄까지 차고 있는 모습으로 카운터 앞에 섰다. 여자는 이 일을 몇 개월간 했던 만큼 손님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시선이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커다란 가슴은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의 시선마저 빼앗기에 충분했으므로.
어쨌건 힐끔거리면서도 계산이 끝났다. 계산이 끝났으니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고,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이현은 지금이라도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옅게 웃었다. 하지만 혜지는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이현은 그대로 문 밖까지 나와버렸다. 성인용품점의 바깥, 3층 건물의 복도.
3층은 이 가게만 있었던 터라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낮인지라 사람이 올 걱정도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복도에서, 나체로 목줄에 수갑까지 차고 있는데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 잠깐. 밖에서 이건….”
“괜찮아. 어차피 사람 없을테고, 온다고 해도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플레이 하러 온 커플이겠거니 하겠지.”
그리 말하면서도 가게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어디로 향하나? 혜지와 이현이 도착한 곳은 건물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공용 화장실.
공용답지 않게 깨끗한 건 성인용품점과 가까이에 있기 때문일까? 하기야 3층에 가게라곤 이곳 하나뿐이니 관리를 한다 해도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그리 생각하던 와중, 혜지가 구매한 것들을 살펴보았다.
우선은 목줄에 매다는 방울. 이로써 이현은 걸을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 다음은 스티커 타투, 스티커라고는 하지만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야한 그림이었다. 이른바 자궁 문신이라고 하는 것들. 만화에서야 자주 나오지만 현실에서 이런 문신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물론 스티커인만큼 지우려면 언제든 지울 수 있겠지만, 혜지가 허락해줄까?
그리 고민하는 사이 스티커가 붙었다. 그리고는 잡다한 것들을 떼어내자 누가 봐도 자궁 문신이 새겨진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되었다.
“완전 잘 어울려.”
혜지가 눈을 빛내며 말했지만 이현은 그게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문신이 어울린다는 건 야하다는 의미의 칭찬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에서의 나쁜 뜻인지.
그 다음으로는 피어싱….
“피어싱?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이현이 조심스레 물었지만 혜지는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석으로 되어있어 실제로 몸을 다치게 하지는 않으면서도 피어싱처럼 보이게 하는….
어쨌건 혜지가 가짜 피어싱을 꺼내 유두 사이에 가져다 대었다. 자석으로 이루어져 그 사이에 딱 달라붙자 누가 봐도 유두 피어싱을 한 치녀같은 모습이 되었다.
“읏, 으흣…♡”
물론 실제 피어싱보다도 민감했다. 자석으로 비벼지는 탓에 자극이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양쪽 유두에 고리를 매달게 된 이현은 거울을 보았다. 누가 봐도 훌륭한 암컷의 모습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 탓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누가 봐도 절정 직전의 모습, 혜지는 바로 몸을 움직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여동생이라는 것을 계속 암시시킨 뒤, 지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이유는 여동생으로서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네가 지금 기분이 좋은 것이라며 계속 속삭였다.
곧이어 이현은 절정했다. 퓻, 하고 쏘아진 조수는 유리창을 흠뻑 적시고도 남았다.
그러면서도 귓가에는 계속 이어지는 혜지의 목소리….
절정한 상태로 듣고 있으니 어딘가 몽롱했다.
정말로 그런가? 싶은 기분이 계속 들었다.
그날, 이현은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도 계속 그 생각을 떠올렸다. 무언가 최면에라도 당한 기분이었지만 정답을 알 수는 없었다….
‘음, 요즘 혜윤이 생각도 전보다 잘 읽히는 것도 같네.’
한편, 혜지는 최근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예전에는 드문드문 보이던 이현의 생각이 요즘에는 마음만 먹으면 보이고 있었다.
계속 능력을 사용하려던 탓에 보이는 것일까?
아니다. 혜지의 능력이 강화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