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잠깐….”
이현의 미약한 반항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혜지는 과감하게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는, 아까 좋은 반응을 보였던 민감한 부위부터 건드려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현은 크게 반응했다. 간혈적으로 새는 신음을 막지 못했고, 몸도 연신 움찔거리며 혜지의 손에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실제로도 쾌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혜지의 손은 이현의 기분 좋은 곳을 모두 알았는데, 그녀가 엄청난 테크닉을 가진 게 아니라 이현의 몸이 만지는 곳마다 약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편없는 테크닉을 가졌더래도 지금의 이현을 만나면 누구든지 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혜지는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달으며 계속 움직였다.
동시에 무언가 흥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쾌감으로 인한 흥분이 아니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흥분, 그 증거로 숨은 거칠어졌지만 달아오르지는 않았다.
반면 이현은 달아올라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하반신이 그것을 증명했다.
‘뭔가 이상한 기분….’
혜지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약간 흥분하기는 했는데, 평소처럼 눈이 돌아간 건 아닌 듯한 느낌. 결국 이현을 두어번 보내준 후에는 손을 빼냈다.
끈적한 애액이 달라붙은 손은 야하게만 보였다.
“좋았어?”
빙긋 웃으며 물었지만 이현은 말이 없었다. 대신 뭔가를 각오한 듯한 표정으로, 혜지의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방금 한 일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이리라.
하지만 복수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미 절정으로 인해 힘이 풀린 이현의 애무는 혜지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혜지에게 역공을 당할 명분만 만들어주었다.
그날 밤 이현은 연달아 세 번 절정한 후에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고서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이현은 온 몸이 찌뿌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가 된 탓에? 그것도 있지만 몇 번이고 절정하며 잠들어버린 탓이다. 움직일 때마다 근육통이 느껴지는 듯했다.
거기에 더해 축축하게 젖어있는 옷이며 이불, 민감한 상태가 가시지 않은 클리토리스….
거실로 나와보니 혜지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어났어? 몸은 좀 어때?”
“근육통이 살짝….”
“음, 계속 가버려서 그런가? 하긴 여자 몸으로 처음 절정하면 긴장도 많이 되고 해서 힘들긴 해….”
혜지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계속 말해주었다.
그 후에는 아침을 먹고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평소라면 이현이 헬스장에 가거나 둘이서 시시덕거리며 보낼 시간.
이 몸으로 헬스장에 나갈 수도 없으니 이현은 혜지에게 스트레칭을 배우기로 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이런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랑말랑한 몸은 스트레칭조차 벅찰 것 같았다.
가벼운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앉았다. 이후로는 혜지의 지도 하에 이런 저런 스트레칭이 이루어졌다. 살짝 아프긴 했지만 나름 유연한 몸이었는지 제법 잘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잘 따라할 수 있었을 뿐, 체력은 아니었다. 고작 스트레칭을 몇 번 했을 뿐인데 체력이 바닥났다는 게 느껴졌다.
땀이 흐르고 호흡이 거칠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탈력감이다. 심지어는 하루종일 혜지를 따먹었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괜찮아? 힘들면 좀 쉬고….”
문득 혜지를 보았더니 그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신기함이었다. 신기함? 어째서?
사실 혜지가 보기에도 스트레칭 몇 번 했다고 헥헥대는 건 놀라운 광경이었다. 아무리 여자라고 한들 격렬하지 않은 스트레칭 동작 몇 번 했다고 지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지금 여자가 된 이현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이현과 정반대의 존재 같았다. 크고, 단단하고, 자연스레 올려다보게 되던 이현과는 달리 작고, 연약하고, 내려다보게 되는 모습.
솔직히 말해서 전혀 이현같지 않았다. 물론 그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애인 사이인데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현은 그 묘한 표정만 보고서도 혜지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연신 능력을 써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음에도 계속 사용한 이유다. 그리고 그때마다 혜지는 이현의 생각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알던 이현이랑은 좀 다르네. 당연한 일이긴 해도.’
그 이후로도 이런 생각은 강해져만 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자신이 알던 이현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남자 최이현과 여자 최이현은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여자 최이현을 이현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무언가 찜찜하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난 후, 혜지는 여자가 된 이현의 신분을 정리해주다 무심코 내뱉었다.
“음, 이현 말고 다른 이름 쓸래?”
“어? 굳이…?”
서류를 정리하던 와중 무심코 본심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사실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여자 이름이 최이현이면 너무 남자다워서 이상하게 느껴지니까.
혜지는 어렵지 않게 이현을 설득해 새로운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그럼 최혜윤으로….”
그렇게 최이현은 최혜윤이 되었다.
이현은, 혜윤은 뭔가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금세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 지금 상황을 보건대 당장 남자로 돌아갈 일은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도움을 받아 익숙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반면 혜지는 이현의 이름을 바꿈으로서 최이현과 최혜윤을 완벽하게 구분해냈다. 여전히 이현은 자신의 남자친구이자 주인님이지만, 혜윤은 아니었다.
혜지에게 혜윤이란 애인이지만 주인님은 아닌 여자였다.
어쩌면 자신이 주인님 쪽에 가까울지도 모르고.
어쨌건 집으로 돌아와 새로 받은 신분증을 보았다.
예쁘게 생긴 증명사진이 붙어있는 민증.
최혜윤이라는 새 이름으로 적혀있었다.
* * *
이현이 혜윤으로 변하고 며칠이 더 지났다. 그동안 이현은 무언가 찜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작 이름 하나 바꿨다고 그리 느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혜지의 행동이 이상해진 것 같았다.
아니, 엄청나게 이상해진 건 아니지만 너무 거리감이 부족했다. 물론 지금껏 거리감 없이 생활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지금 혜지가 이현을 대하는 태도는, 과거 남자였던 시절 이현이 혜지를 대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것도 연애 초창기 느낌의.
그러니까, 거의 장난감 취급을 하거나 심심하면 찔러보는 식으로 보냈다는 뜻이다.
그때의 혜지는 이현에게 빠져있어 무엇을 하든 다 받아주었지만, 지금의 이현은 받아주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이현은 혜지가 조금이라도 선을 넘으려고 하면 바로 저항했다. 딜도를 넣는다던가, 목줄을 채우려 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면 혜지는 물러서면서도 몇 번이고 절정시키는 걸 멈추지 않았다. 사실 손으로 절정시키는 정도야 충분히 봐줄 수 있었다. 원래도 야한 일을 많이 했으니까….
하지만 목줄을 차게 된다거나, 딜도를 몸에 받는다는 건 완전히 달랐다. 아직까지 이현의 마음은 혜지의 주인님인 최이현이었다. 혜지에게 절대 이기지 못하는 최혜윤이 아니라.
하지만 그것마저도 요즘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조금씩 다가오는 듯 느껴진 탓이다.
자신이 하던 것처럼 조금씩 조교를 하는 듯한 기분.
어쩐지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이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능력은 여전히 사용되지 않았고 오히려 혜지가 자신의 마음을 읽는 듯 행동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최근 둘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건 사실이었다.
전에는 늘 이현에게 아양부리던 혜지는 언젠가부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이현에게 애교를 가르쳤다.
당연히 이현은 따르지 않았지만, 연달아 아홉 번쯤 절정하고 나면 뇌가 말랑말랑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 상태로 애교를 교육받으면 깊은 곳에서부터 배우고 마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이현은 아양을 부리려면 충분히 잘 할 수 있었다. 자존심이 있어 절대 안하는 것일 뿐.
“혜윤아, 이리 와봐.”
혜지가 강아지를 다루듯 손뼉을 치며 무릎을 가리켰다. 이현은 한숨을 쉬면서도 얌전히 그 위에 가서 앉았다.
따르지 않으면 또 몇 번이고 절정시킬테니까. 그 감각이 아직까지는 무서운 이현이었다.
‘이런 쾌감을 맛보니 자연스레 암컷이 되버리는 거겠지. 이걸 어떻게 참아….’
혜지는 이현이 잘 따르자 칭찬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혜윤이, 착하네. 잘했어요, 잘했어.”
이현은 마음 속으로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거부해야 하는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계속 받아들이면 이상해질 것 같았지만 기분은 좋았으니까.
그렇게 갈등하던 와중이었다. 돌연 혜지가 말도 안되는 제안을 꺼냈다.
“음, 혜윤아. 이렇게 보니까 우리 자매 같지 않아? 내가 언니고 네가 여동생.”
“갑자기?”
“응. 그래서 말인데, 혜지 언니, 라고 불러주면 안될까? 완전 귀여울 것 같지 않아? 나 여동생 가지는 게 꿈이었거든. 외형도 비슷하게 생겨서 나름 잘 어울리고….”
실제로 혜지와 혜윤은 닮은 구석이 많았다. 야하게 생긴 몸은 물론이고 외모까지도 얼핏 보면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란히 밖을 다니면 자매냐고 묻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면 대부분 키가 큰 혜지가 언니, 작은 혜윤 쪽이 동생이냐는 말도 많이 들었고.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음, 그래? 그럼 뭐….”
자연스레 혜지의 손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