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을 마친 혜지는 기분 좋게 웃으며 거리를 걸었다. 자신의 옷은 하나도 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경험임은 틀림없었다. 정말이지 남의 옷을 골라준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지 처음 알았다. 쇼핑을 즐기면서도 여자들끼리 몰려다니는 이유를 몰랐던 혜지로서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반면 이현은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현이 입은 옷은 누가 봐도 정상적인 차림이 아니었다. 속이 다 비치는 블라우스에 테니스 스커트.
심지어 속옷도 화려한 무늬로 장식되어있어 대놓고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착각할 만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평소라면 혜지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즐기며 걸었을테지만 지금은 혜지보다도 이현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많았다.
게다가 혜지는 시선을 받는 상황을 즐긴다지만 이현은 아니었다. 여자가 되었더라도 그저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이현은 얼굴이 뜨거워진 것을 느끼며 들고 있는 쇼핑백을 보았다. 이 안에 들어있는 건 쇼핑한 다른 옷들, 그러니까 지금 입고 있는 것보다는 건전하고 평범하게 보일 옷들이다.
그런 옷들도 구매했으면서 어째서 가장 불건전한 옷을 입었나? 그럴 이유가 있었다. 이현은 잠시 아까의 상황을 회상했다.
혜지는 그 뒤로도 여러 옷들을 골라주었고 이현은 그 옷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입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혜지는 블라우스를 입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어차피 이런 몸이 된 이상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져야한다는 의견이었는데, 아무리 이현이라도 따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의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거절하려는 뜻을 내비치려하면 혜지의 얼굴이 우울해졌으니까.
생각해보니 집에서의 혜지는 계속 우울한 채였다. 지금 보여주는 멀쩡해보이는 모습도 연기일지도, 자신을 슬프지 않게 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계속 능력을 시도해보았지만 혜지의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눈 앞의 우울한 혜지의 얼굴은 분명했다.
이현은 스스로 각오를 다지고 블라우스를 입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그냥 따라주자….’
물론 지금에 와서는 후회스러울 뿐이다. 이현은 과거의 자신을 저주하며 혜지에게 딱 달라붙었다.
혜지도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평균 이상의 신장이라 지금의 이현보다는 키가 컸다. 머리 반 개 정도의 차이.
그 모습은 평소 혜지가 이현에게 달라붙는 모습과 아주 비슷했다. 둘의 위치가 바뀌긴 했지만 어쨌건.
“그렇게 부끄러워?”
이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좋아하는 거 같은데….’
혜지가 보기에는 그리 싫어하는 듯 보이지 않았다. 생각이야 어쨌건 몸은 반응하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으니까.
얼굴이 붉어지고 몸이 흠칫거리며 떨리는 모습, 거기에 더해 자각하지 못하지만 다리를 딱 붙이고 비비는 모습은 충분히 흥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평범한 사람이면 몰라도 혜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말없이 이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평소 자신에게 해주던 행동을 똑같이 돌려주었다.
잠시 후, 둘은 집에 도착했다.
이현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끄러웠던 의상을 벗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땀인지 뭔지 모를 액체가 온몸에 흥건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지만 평범한 양은 아니었다. 아마 긴장한 탓이리라.
“엄청 젖었네. 그리 덥지는 않았는데.”
혜지는 놀라하면서도 늘 그랬듯 이현의 옷을 벗겨주었다. 어차피 외출하고 돌아왔으니 씻을 필요도 있었다.
그렇게 여자 둘이서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끈적끈적한 샤워가 이루어졌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혜지는 남자가 아닌 이현의 몸으로는 흥분감을 느끼지 못했다. 야한 몸인 건 확실하지만 평소처럼 씹물을 질질 흘릴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이현으로서도 많이 어색했다. 원래는 함께 씻으러 들어오기만 해도 혜지는 안면에 홍조를 띄우고 몸을 배배 꼬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자존심 상하는 느낌.
어떻게든 혜지를 발정시키고자 다시금 손을 움직였다. 아까의 실패를 교훈삼아 더 과격하게 움직였다.
원래부터 민감한 혜지의 몸이라 애액이 흐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신음이 새고 약간 흥분감만 돌았을 뿐, 발정은 나지 않았다.
그 탓인지 혜지로서도 애매한 기분이었다. 그냥 넘기기도 뭐해서 똑같이 반격했다.
가끔 이현이 없을 때 자위하던 기억을 되살려 손을 움직였다. 아직 아무도 침입한 적 없는 처녀보지를 살짝 벌리고, 그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질구를 벌린 채 천천히 질벽을 긁어냈다. 섬세한 움직임은 곧바로 반응을 이끌어냈다.
“어, 읏, 으극….”
원래부터 민감했나? 그것도 있겠지만 이현으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라 더 심했다.
혜지야 자위도 해봤고 이현에게도 수없이 당해서 익숙해졌다지만, 이현은 질벽이 긁어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잔뜩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속에서부터 무언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랫배가 뜨겁다가, 무언가 울컥 솟아오르더니, 시야가 살짝 흔들렸다.
입에서는 자신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샜다.
“으, 으긋, 으힉…♡”
혜지의 몸을 붙잡고서야 겨우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밑을 보니 자신의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액체가 보였다.
무엇인지는 알 만했다. 이현은 당혹스러움과 수치심을 한번에 느끼며 혜지를 쳐다보았다.
혜지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리 중얼거렸다.
“겨우 이정도로 가버렸다고? 완전 좆밥 보지인데….”
이현에게 하는 말은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놀라서 내뱉은 중얼거림이었다. 혜지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허접했으니까.
자신이 이현에게 당하는 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원래부터 신체적인 차이가 큰 만큼 작은 움직임도 암컷의 몸에는 치명적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 움직임은 진심을 낸 것도 아니었다. 가볍게, 심지어는 혜지 자신조차 몸을 달구고 싶을 때 사용하는 손놀림이었다. 예를 들면 이현이 보지 데워놓으라고 명령하면 한다던지.
결코 가버리는 용도로 하는 움직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정도로 가버리다니….
한편 이현은 그 말을 듣고 엄청난 수치심에 휩싸였다. 혜지의 몸이 얼마나 쉽게 절정하는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혜지에게 허접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이, 이거는 어쩔 수 없어. 갑자기 몸이 여자로 변한 탓….’
이현은 어떻게든 자기합리화를 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뒤로도 혜지가 이곳 저곳을 건드려본 탓이다.
본격적으로 만지작거린 건 아니지만 씻겨주며 클리, 젖꼭지, 뒷목 등의 성감대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자극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혜지로서는 어디까지 반응하나 싶어 건드린 것이지만 이현에게는 그마저도 심각하게 다가왔다.
“우읏…♡”
결국 혜지를 한 번도 보내지 못하고 절정만 계속하다가 샤워가 끝났다. 문득 혜지의 얼굴을 보았더니 만족한 표정이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현에게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한편 혜지는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내가 만지는대로 남이 반응하는 걸 보니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손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현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어리게 생긴데다 키도 작아서 그런걸까? 어쨌건 욕실에서 나온 뒤에는 화장대 앞에 앉힌 후 이런 저런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생각보다 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느꼈는지 이현은 불만을 표하려고 했다.
혜지는 그보다 먼저 반응했다. 느긋한 손길로 목 뒤를 어루만져주니 순간적으로 신음이 샜다.
곧이어 붉어지는 얼굴.
손짓 하나로 이현을 제압한 혜지는 미소지었다.
‘이거 좀… 많이 재밌는데?’
*
잠시 뒤, 혜지는 삐진 이현을 달래주어야 했다.
사실 삐진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혜지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몸짓이나 표정에서부터 드러났고 가끔 생겨났다 사라지는 이현의 마음 속 생각도 그리 얘기하고 있었다.
혜지는 다정하게 이현을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래려고 노력했다.
평소 이현이 자신을 달랠 때 쓰는 방법이었다.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이현은 더 뭐라 하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저 얼굴만 붉히며 툴툴거렸다.
그 후에는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여자가 되었더라도 당장 달라지는 건 많지 않았으니까.
같이 저녁을 먹고, 집안 데이트를 즐기고, 수다도 떨고….
밤이 되어서야 슬슬 문제가 드러났다.
평소라면 함께 침대에 누워 오늘은 그냥 자자, 피곤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몸을 섞는 흐름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기 어려웠다.
같은 침대에 누워있으면서도 이현은 혜지의 눈치를 봤다.
이현이 알고 있는 혜지는 밤만 되면 몸이 달아올라 참지 못하는 암컷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얼굴이 달아오르기는 커녕 장난스레 웃으며 이쪽으로 손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손은 이불 속, 이현의 옷 속으로 들어왔다.
뒤늦게 깨닫고 저항하려 했지만 소용 없는 짓이었다.
여자가 된 몸은 혜지와 비교해도 근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혜지의 근력이 처음보다 많이 향상된 것이었다. 매일 섹스만 한다고 해도 나름의 운동이 되는 탓이다. 덕분에 이현은 혜지에게 잡혀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가까워진 사이에서는 샴푸 향기가 났다.
저도 모르게 흥분하려는 찰나, 혜지의 손이 은밀한 곳을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