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아. 집 구했어?”
“아니. 아직 못 구했지. 알바가 바빠서 앱으로 확인하고 있기는 한데, 괜찮은 가격이 없어서.”
“그러면 우리집 올래? 넓어서 방도 많이 남거든.”
“…너 동거 한다면서. 남친한텐 얘기 했고?”
“당연히 했지. 사실 남친이 먼저 얘기한거야.”
“그래? 그래도 동거하는 커플 집에 사는 건….”
“우리가 쓰는 방이 왼쪽 끝이고, 빈 방은 오른쪽 끝이라 어지간하면 크게 문제는 없을 걸. 화장실도 두 개라 밥먹을 때 말고는 얼굴도 못 볼 수도 있고.”
“어, 음. 그래?”
“응. 그리고 어차피 너도 매일 알바가느라 집 자주 비우잖아. 와서 밥먹고 씻고 잠만 잘건데 별로 상관은 없지 않을까?”
“그럼 월세는 얼마정도….”
“에이, 그냥 짐 챙겨서 와.”
“…….”
“부담되서 그래? 알았어, 그러면 월 5만원. 적당하지?”
*
주하윤이 집으로 찾아온 건 평일 오후였다. 혜지가 어떻게 잘 설득을 했는지 동거하는 커플 사이에 낀다는 선택지를 고른 주하윤. 생각을 읽어보니 딱히 내키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비싼 집을 구하느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이현은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며 간단하게 인사했다. 하윤 역시 인사를 받아주며 서로 얼굴을 익혔고, 아직은 어색하지만 굳이 낯설게 대하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이러나 저러나 앞으로 한동안은 이곳에서 살아야 할테니까.
그리고 방을 확인한 하윤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겨우 방 한 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던 것이다. 게다가 정말 커플의 방과는 정반대로 떨어져있고 방 안에 화장실과 욕실까지 있어서 이곳에서만 생활해도 별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 감사합니다. 제가 커플 사이에 낀게 아닌가 싶어서 죄송하기도 하고….”
이현은 손사래를 치며 대충 대답했다. 그러고는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원래 이사한 후에는 짜장면을 먹는 것이 예의라면서.
그리하여 첫날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되어 하윤은 알바를 하러 나갔다. 돌아와서는 이현, 혜지와 함께 저녁을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한 다음 잠에 들었다.
‘뭐지? 엄청 편하네?’
과연 이 집에 얹혀살기로 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하윤은 이런 단순한 경험으로도 행복감을 느꼈다.
“어땠어요?”
다음 날 아침, 이현의 질문에 하윤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되게 좋던데요.”
아침을 먹고는 알바를 하러 나갔고, 혜지와 이현은 집에서 꽁냥거리거나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현은 서아에게 과외를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다시금 하윤이 돌아온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잘 먹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번째 날의 밤, 하윤은 침대에 누워 몸을 뒹굴거렸다. 침대는 원래부터 이 집에 있던지라 크기가 제법 큰 편이었다. 물론 싱글 사이즈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바닥에서만 자던 하윤에게는 괜찮은 물건이었다.
그렇게 뒹굴거리다보니 문득 무슨 소리가 들렸다. 층간소음? 그렇다기에는 은근히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
하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문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소리가 약간 더 커졌다.
“뭐야….”
무슨 귀신이라도 있는 것일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 하윤이 멈춘 곳은 어느 방 앞이었다. 문이 살짝 열린 방. 혜지와 이현이 쓰는 방이었다.
그제서야 하윤은 이 소리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아, 하고 있구나.’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동거하는 커플이라는 것부터 야릇한 상상을 하게 만들기 충분한데다가, 이미 하윤은 혜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전적이 두 번이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약간 당혹스러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하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부럽긴 하다. 나도 연애 하고 싶네.’
방음이 좋지는 않은지 헐떡이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고 있었다. 약간 흥분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하윤은 별 생각이 없었다. 여자가 된 이후로는 야한 일을 한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탓이다.
아직은 몸도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고.
그리고 이현은 그 사실을 알아채고 속으로 생각했다.
‘혜지나 서아처럼 바로 자위하지는 않네. 하긴 몇 년간 힘들게 살았으니 야한 건 잘 모르겠지. 적어도 몇 주는 지켜봐야….’
*
다음 날 아침, 하윤은 부엌으로 나와 아침을 준비하는 이현의 모습을 보고 인사했다. 의외인 점은 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윤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질문했다.
“혜지는 아직 안일어났어요?”
“아, 네. 가끔 아침에 늦게 일어날 때 있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윤은 바로 알아챘다.
‘지쳐서 쓰러졌네. 밤새 하더니만.’
하긴 이현의 몸을 보면 충분히 그럴 듯했다. 저정도 몸이라면 밤새 하고도 체력이 남아돌 것 아닌가. 하윤은 속으로 약간 감탄하면서 표정을 관리했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자니 눈치가 보여 잡다한 일을 돕기 시작했다.
“아, 그거 아닌데.”
과연 이현은 요리에 있어서는 영 재능이 없었다. 그동안은 혜지와 함께 정오에 일어나는 것도 가능했지만 하윤과 함께 살게 된 지금은 일찍 일어나서 서로가 익숙해져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데려온 이유가 없었다.
“이거는 이렇게 하셔야….”
하윤은 혼자 살며 나름 요리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늘 비슷한 재료만 먹다보니 자연스레 요리 실력이 발전한 것이다. 하윤은 이현의 요리를 훈수하며 이런 저런 지시를 해주었고, 그 결과 지금껏 했던 요리중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냈다.
“오, 되게 잘 가르치신다. 혜지보다 잘 알려주시네.”
그리하여 둘이서 하는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하윤은 은근히 만족할 수 있었는데, 늘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우다가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먹는다는 사실이 무언가 충족되는 느낌이었다.
비록 그 사람이 자신의 친구의 남자친구라는 점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잘 먹었습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
주하윤이 알바하는 장소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오늘 그녀가 하는 알바는 카페 아르바이트, 예로부터 외모가 받쳐주어야 할 수 있는 알바 중 하나다.
하윤은 그래도 준수한 외모로 카페 알바에서는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 외모탓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쉴 시간이 없고 가끔 고백받는 일도 생기긴 하지만 어쨌건.
“하윤아. 좋은 일 있어? 오늘 표정이 좀 밝네.”
“네? 어, 집 문제가 잘 해결되가지구요. 괜찮은 곳 구해서.”
더군다나 오늘은 좋은 일이라도 있는건지 표정이 평소보다 밝았다. 엄청 밝은 것은 아니지만 오래 보다보면 그정도 차이는 구분할 수 있는 법이다. 안그래도 힘들게 살던 친구라 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었는데 오늘만큼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 결과 두 명의 남자가 하윤에게 고백했고, 시원하게 차였다.
“왜 자꾸 카페 알바한테 번호를 받으려고 하는 걸까요. 이해할 수가 없네.”
“으이구, 계집아. 너정도 외모면 나였어도 바로 고백 박았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른 것과는 별개로 하윤이 하는 알바는 하루종일 꽉 채워져 있었으니까. 다시 개강을 하게 되면 알바의 수를 줄이겠지만, 방학을 하는 지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알바를 뛰어야 그나마 생활이 유지된다.
월세라던가 식비라던가 생활비 등등.
‘근데 생각해보니 월세, 식비, 전기세 뭐 이런 것들은 다 해결된 거 아닌가?’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생활비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 역시 도움을 받은 덕분이리라.
때문에 하윤은 직접 저녁을 만들었고, 오전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난 혜지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과연 친구의 남친보다는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이 더 좋은 법이다. 아침보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근데 네 남친은? 어디갔어?”
“아, 현이는 지금 과외해주는 학생 있어서.”
그리 말하는 혜지의 표정은 묘하게 어두웠다….
“아, 너도 이거 써볼래? 마스크 팩인데 괜찮더라.”
저녁을 다 먹은 다음에는 혜지가 건네준 마스크 팩을 받았다.
“…이거 어떻게 써?”
“써본 적 없어?”
“이런거 쓸 시간이 없었으니까.”
“아, 아…. 잠깐만. 그러면 관리 하나도 안했는데 이 피부라고? 와, 미쳤다. 나는 매일 관리해도 이정도 안되는데.”
하윤은 멋쩍게 웃으며 혜지의 도움을 받아 마스크 팩을 했다. 그리하여 이현이 돌아왔을 때, 그가 본 광경은 여자 둘이서 마스크 팩을 한 채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혜지랑 친해서 더 도움이 되는 것도 같네. 둘이 원래 알던 사이라 그런지 나름 적응도 빨리 되는 것 같고.’
그렇다면 나쁠 것 없었다. 빨리 적응하게 되면 더 마음이 편안해질테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다른 취미를 만들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 취미는 관음 자위가 될 터였다. 매일 밤 혜지의 교성이 울릴 것이므로.
‘이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
이현이 생각하기에도 훌륭한 계획이었다. 계속 안달나게 만들어버린 다음, 둘만 남았을 때 먼저 하윤이 덮치게 하는 계획. 나름 가능성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