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은 자신이 돌아왔다는 티를 내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행동했다. 발걸음 소리를 크게 하고, 현관에서부터 목을 가다듬으며 서아가 알아채기를 바랐다.
하지만 서아는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능력으로 상태를 본 이현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흘렸다. 하도 자위에 열중한 나머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문을 열어도 들키지 않는 위치인 침대 건너편에서 자위한다는 점일까.
곧바로 서아가 있는 방으로 향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몰랐던 척 앞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자 서아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와, 왔어?”
“거기서 뭐해?”
침대가 워낙 높은 탓에 반대편에 엎드려있는 서아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보이겠지만 이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 서아가 곁눈질로 벗어놓은 바지를 찾았다. 하필이면 저 멀리 있었다. 이현이 나가지 않으면 입기도 쉽지 않아보였다….
“청소, 청소 하는데.”
“그래? 도와줄까?”
“아냐. 거의 다 끝났으니까 그냥 거실에 있어….”
그러자 이현은 피식 웃으며 거실로 향했다. 서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들킬 뻔했네.’
아쉽긴 했지만 충분히 자위했으므로 금방 정리할 수 있었다. 몸을 닦고 옷을 입은 서아는 거실로 나왔다. 이현이 소파에 누워 늘어져 있었다.
“근데 나 여기서 이렇게 늘어진 채로 있기만 하면 돼?”
“아마?”
“개꿀이네….”
가끔 술상대만 해주면 된다는 서아의 말이 뒤따랐다. 그리고 늘어져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서아가 문득 말했다.
“맞다. 여친 보여준다며.”
“아, 아….”
이현이 휴대폰을 꺼내 갤러리에 있는 사진을 확인했다. 예전에 찍은 혜지의 야한 사진과, 몰래 찍은 서아의 야한 사진. 백업을 해두었으니 지워도 문제 없었다. 그 자리에서 위험한 사진을 모두 삭제한 이현은 서아에게 폰을 넘겨주었다.
곧바로 서아는 그 여친이 누구인지 확인했고, 깜짝 놀랐다.
“혜지?”
“알아?”
“알지. 내 친군데….”
서아는 세상 참 좁다고 느끼며 이현을 바라보았다. 여친이 있다고는 했지만 그게 혜지였을 줄이야? 그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혜지 남친이 최이현? 그때 안 헤어졌나보네. 내가 엄청 뭐라고 했었는데….’
그때는 혜지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그런 행동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였다. 이현이 혜지의 남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무언가 짜증이 치솟았다. 질투감.
물론 이현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 몸이 목적이지만, 그래도 혜지보다 이현이 우선순위가 되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사진을 넘겨보던 서아는 문득 손을 멈췄다.
“어….”
혜지의 사진이 있었다. 다만 나체로, 엄청 야한 표정을 지으면서. 평소라면 상상도 못했을 얼굴. 그리고 얼핏 보이는 남성기….
슬쩍 봤지만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이현의 것이다. 서아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 부럽다고 생각했다.
“어, 뭐야.”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이현은 당황해서 폰을 빼앗았다.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게 있던 모양이다. 다행히 서아의 반응은 괜찮았다. 딱히 뭐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잘 넘어가려는 듯 싶었다.
혹시나 싶어 능력을 사용해봐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근데 이건 무슨 감정이야.’
약간의 질투심? 하지만 애매했으므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분위기가 살짝 어색해질 것 같자 서아가 입을 열었다.
“아니, 뭐. 연인 사이에 할 수도 있지….”
그러면서 서아가 속으로 생각했다.
‘꼬셔볼까? 그래, 이거는 하고 싶어서는 아니고 내가 혜지를 못꼬시니까 괘씸해서 하는거야. 진짜로….’
그렇게 결심을 다지고는 이현을 보았다. 마침 자신의 현재 복장은 레깅스, 몸매가 잘 드러나는 복장이다. 가슴은 없지만 하반신은 충분히 자신있었다. 서아는 은근히 야한 자세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생각하며 슬쩍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어떻게 꼬시지? 너무 노골적이면 그건 또 그런데. 하지만 얘는 술 먹고도 안 덮치는 사람이잖아.’
서아가 고민하는 가운데 이현이 몸을 일으켰다. 야한 사진을 들켰을 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미루는 것도 좋지 않았다. 슬슬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잠시 서아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이현은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휴대폰으로 적당한 물건 몇 개를 주문했다. 서아는 나름대로의 색기있는 포즈가 통하지 않자 당황하고 있었다.
그날 밤, 서아는 혼자 거울을 보며 자세를 연습했다. 절대로 이현에게 잘 보이기 위함은 아니고 혜지를 빼앗은 게 괘씸해서 커플 사이를 망치려는 속셈이었다.
적어도 서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
다음 날 아침, 상쾌하게 잠에서 깨어난 서아는 이현의 방 앞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심호흡을 하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이현은 아직 자고 있었다. 어제 씻고 잔 탓인지 체취가 얕은 게 아쉬웠지만 아예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자?”
이현은 깨어났지만 자는 척했다. 지금 서아의 상태가 그냥 깨울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과연 서아는 침을 꼴깍 삼키고 가까이 다가왔다. 원래 계획은 그냥 깨워주는 거였지만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보니 그냥 깨우기는 너무 아까웠다. 게다가 이현이 속옷차림으로 자고 있어서 빳빳하게 발기한 모습이 너무 적나라했다.
조금만 내리면 바로 자지를 볼 수 있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손이 먼저 움직였다. 조심스레 속옷을 내렸고, 빳빳하게 발기한 자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만으로도 서아는 갈 것 같았지만 참았다.
‘가버리면 수습 어떻게 해. 조금만 보다가 정리하고 깨우던가 해야지….’
물론 조금만 본다는 것 치고는 한참동안이나 자지에 빠져있는 서아였다. 숨결이 그렇게 닿는데 일어나지 못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현은 자는 척 했지만 오래 이러고 있기는 힘들었다. 그러던가 말던가 서아는 오히려 얼굴을 가까이 했다.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보고….’
조금만 보겠다던 서아는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결국 입까지 맞춰버렸다.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춘 후에야 정신이 들었는지 황급히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깨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이현은 즉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왔다.
“이, 일어났어?”
“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
“뭐라고 말도 안했는데.”
서아는 대답하는 대신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자취 경력이 있다고 아주 못하는 건 아니었다.
‘저 실력을 가지고 나한테 시켰다 이거지….’
그나저나 오늘은 의상이 참 과감했다.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레깅스에 몸에 딱 달라붙는 쫄티. 꼬시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서 오히려 귀여웠다.
밤새 열심히 연습했는지 작은 몸짓 하나에도 색기가 감돌고 있었다. 물론 발정났을 때의 서아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랐지만.
문득 궁금해진 이현은 서아의 마음을 읽어보기로 했다. 갑자기 왜 꼬시려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읽어도 ‘혜지와 연애하는 게 괘씸하니까’같은 표면적인 이유 밖에 읽을 수 없었다. 스스로를 속이면 그 본심까지 읽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서아가 자신을 꼬시려 한다는 것은 확실했고, 이현은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이제 스스로 몸을 바치러 온다는 것 아닌가.
“오….”
차려진 아침을 보고 이현은 감탄했다. 확실히 자신보다는 나았다.
“의외로 잘하네.”
“뭐가 의외야. 나 요리 잘해. 어렸을 적부터 배우기도 했고.”
그렇게 아침을 먹으면서도 서아의 어설픈 유혹은 계속되었다. 솔직히 야하긴 했지만 이미 혜지로 단련된 이현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발정났을 당시의 서아가 훨씬 야해서 더 그렇기도 했다.
지금 서아는 욕구를 어느정도 풀어둔 상태이기 때문에 별로 야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이현은 문득 깨달았다.
‘그러면 성욕이 쌓이지 않았는데도 날 꼬시려 한다고? 이거는 뭐 그냥….’
그렇게 아침 식사가 끝났고, 적당히 늘어져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이상하리만큼 관심도 주지 않는 이현에게 초조함을 느끼던 서아가 문득 초인종 소리를 들었다. 순간 스토커의 생각이 나서 이현을 불렀다.
“혹시 모르니까 여기 있어.”
“그, 그래도.”
서아는 무서운 척 연기하며 이현에게 딱 달라붙었다. 과감한 바디 터치. 체취가 느껴져서 젖을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이현이 현관문을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온 건 평범한 택배기사였다. 이현이 물품을 받고, 서아는 얼떨떨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슨 택배야? 난 시킨 거 없는데.”
“내가 시켰어. 필요할 것 같아서.”
“뭔데?”
“초소형 카메라. 스토커 잡아야지.”
물론 초소형 카메라 말고도 시킨 게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곧바로 이현은 현관 앞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고, 욕실로 와서 따로 주문한 물건을 놓아두었다.
“이제 적당히 시간 보내다가 스토커 오면 잡아서 조져버리자.”
그리고 다음 날, 스토커는 나타나지 않았다. 서아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현을 깨우러 들어갔다가 자지에 키스한 후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스토커는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서아 역시 꾸준하게 이현을 깨우러 들어왔다가 자지에 매혹당해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현이 문득 생각했다.
‘이정도면 안깨는 게 이상하지 않나?’
곧바로 깨어나기로 했다. 작게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였다. 서아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술도 안 먹었는데 삼일 내내 이러면 당연히 깨지.’
이건 서아 잘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