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편지를 모두 읽은 서아는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사람 하나 없는 복도는 고요하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편지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스토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경험하는 건 처음이었다. 편지 봉투에는 편지와 함께 헬스장에서 찍힌 듯한 사진이 잔뜩 들어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자연스레 무서워졌다. 도대체 누가? 지금도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서아는 집안의 커튼을 모두 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어떤 새끼야 진짜….”
강한 척 중얼거렸지만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편지는 컴퓨터로 쓴 듯한 글씨체로 서아를 향한 고백이 계속되었다. 무서운 건 그게 컴퓨터로 쓴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미묘했지만 보다보니 알 수 있었다.
살짝 무서워진 서아는 곧바로 인터넷에 대처법을 검색했고, 나와있는대로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들에게 편지와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어, 이정도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결국 경찰들이 주변을 순찰도는 것으로 대처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서아는 집에서만 생활하다가 잠에 들었다. 살짝 성욕이 올라왔지만 할 기분이 아니었다. 찝찝하기도 했다. 스토커가 이미 자신의 집을 알고 있다면, 어쩌면 보고 있을 수도 있지 않나?
한편 정말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현은 괜히 찔렸다.
‘그래도 나는 스토킹은 안했잖아.’
여느때처럼 서아의 상태를 보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던 이현은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서아의 시선을 보는 게 아니라 3인칭의 시점에서 볼 수 있는 덕분에 스토커가 오면 얼굴을 확인하기도 가능했다. 다만 이현이 능력을 사용한 시점은 스토커가 편지를 놓고 간 이후였다. 아쉽게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만약 스토커가 다시 나타나면 얼굴을 확인하고, 경찰에 넘길 수 있었다. 감히 자기 여자를 스토킹한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
‘안그래도 요즘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아냐,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걸 계기로 완성될 수도 있어.’
이현은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계속 상황을 보았다. 그러기를 하루가 지났고, 아무 일도 없이 서아가 잠들었다.
‘안나오네. 경찰들 순찰 돈다고 사리는건가.’
그리고 다시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난 이현은 능력을 사용했다.
서아는 아직 자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습을 보니 곧 일어날 듯 싶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람이 울리고, 서아가 눈을 비비며 기상했다.
“으음….”
평소와 다르지 않게 잠에서 깨어난 서아는 아침을 먹고 자위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몸이 좀 달아올랐지만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괜히 주변을 의식하던 서아는 간단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켰다. 가끔 손이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스토커에게 보여지는 느낌이라 마음 편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자연스레 참기 힘들 지경까지 되었다. 서아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자위하고 싶은 기분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서아는 이미 자위에 푹 빠진 상태. 결국 참지 못해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나마 운동을 시작했다.
헬스장을 가는 건 좋지 않았다. 찍힌 사진도 모두 헬스장에서 찍힌 사진이고, 아마 거기에서부터 스토킹을 당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집에서 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도 않고 엉망이었다.
결국 서아는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이제 막 자위를 배운 사람처럼 꼼지락대며 클리를 만졌다.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일이었다. 기분 좋게 느끼지도 못하고, 자신의 흥분만 높인 꼴이 되었으므로.
그리하여 삼일 쯤 지나고 보니 서아는 제법 심각한 상태였다. 그동안 제대로 자위도 못해서 한창 발정났을 때의 혜지와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스토커가 다시 나타나진 않았다는 점이다. 불안하긴 하지만 이대로 안나타나면 걱정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슬슬 한계에 도달한 서아는 그렇게 생각했고, 오랜만에 자위를 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인종이 울렸다. 흠칫 놀라며 밖으로 나가보니 다시 편지가 와 있었다.
“…….”
뭔지 모를 꽃다발도 함께이고, 컴퓨터같은 글씨체로 고백하는 편지도 그대로였다. 서아는 얼굴을 굳히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와중에도 성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서아는 안타까움이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엎어졌다. 이현은 그런 서아를 보며 아까 보았던 스토커의 모습을 떠올렸다.
‘얼굴 봤다.’
스토커는 멀쩡하게 생긴 남자였다. 키가 크긴 했지만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으니 유인해서 잡기만 하면 된다. 유인은 어떻게?
곧바로 이현은 서아에게 연락을 보냈다.
― 술 마실래?
*
그동안 둘의 술약속은 서아가 요구하면 이현이 나오는 식이었다. 이현이 술 마시자고 먼저 물은 건 처음이었다. 서아는 잠시 생각하다 답장을 보냈다.
― ㅇㅋ
거절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다. 서아는 지난번의 경험으로 이현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했고, 또 스토커가 있는 상황에서 이현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았다. 자연스레 남자에게 의존하게 되었지만 서아는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이현은 소주 몇 병과 적당한 안주를 사서 서아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서아의 집에서 소주나 까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고, 서아는 스토커 생각에 움찔하다가도 이현의 얼굴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집으로 들어온 이현이 식탁에 검은 봉투를 내려놓았다.
“와, 여기 오랜만이네. 거의 매일 오다가 몇 주 안오니 엄청 새로운데.”
이현은 쓸데없는 말을 하며 서아를 관찰했다. 지금 서아는 집에서 흔히 입을법한 편안한 복장이었다. 혜지처럼 자극적인 몸매도 아니라 원래라면 별로 야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성욕이 쌓인 서아는 고의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야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성욕이 깃들어 있었다. 걸을 때마다 씰룩거리는 엉덩이가 보이고, 별 것 아닌 움직임에도 색기가 엿보였다.
이현은 속으로 만족하며 몰랐던 척 말을 꺼냈다.
“근데 너 얼굴이 왜 그러냐. 무슨 일 있어? 엄청 안좋은데.”
서아는 그 물음에 속으로 미소지었다. 자연스레 스토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현이라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고민이 있을 때 그걸 얘기하는 건 기분 전환에 좋다. 소주의 뚜껑을 열며 서아가 말을 시작했다.
“사실… 요즘 스토커가 생긴 것 같아.”
“스토커? 착각 아니고?”
이현이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서아는 편지를 꺼내들었다.
곧바로 이현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표정이 어두워졌다. 연기였지만 제법 자연스러웠다. 만약 이현이 배우를 했다면 나름 성공했을 것이다….
“어, 진짜네. 너 괜찮아? 경찰에 신고는 했어?”
“신고야 했지. 근데 이런거로는 경찰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네. 그냥 주변 순찰 늘린다고 했는데, 늘리고 나서도 또 편지가 왔어.”
“다른 건 당한 거 없지?”
“응. 아직은….”
소주잔에 술을 따른 서아는 이현에게 잔을 넘겨주었다. 안주로 사온 과자와 음식들도 포장을 뜯어놓았다. 서아가 그 중 하나를 집어먹었지만 이현은 전혀 먹지 않았다. 그보다는 서아의 스토커 얘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서아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속으로 이현의 평가를 높인 서아는 술을 홀짝였다. 그러면서 다리를 배배 꼬았는데, 눈 앞에 이현이 있으니 무언가 발정나는 기분이었다.
잠시 이현의 눈치를 살피던 서아는 식탁 밑으로 한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바지 위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현은 여전히 심각하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다 보이는데.’
물론 잔뜩 발정난 얼굴로 손을 내렸을 때부터 이현은 그 사실을 눈치챘다. 심각해보이는 얼굴 뒤로는 서아에게 집중하는 이현이 있었다. 들켰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고 서아는 계속 문질거렸다.
“괜찮아. 그래도 집에 있으면 이상한 짓 못하겠지. 그냥 저러다가 잡힐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움찔거리는 걸 보니 얼마나 쌓였는지를 알 만했다.
‘발정이 좀 심하게 났네. 하긴 3일 내내 참았고 내 체취까지 맡고 있으니 당연하기도 해.’
그 후로도 얘기가 계속되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도움 필요하면 부르고.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현을 보며 서아는 속으로 엄청난 안정감을 느꼈다. 딱 보기에도 든든해보이는 남자가 도와주겠다고 하니 자연스레 안심이 되었다.
남자였던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감각. 어느새 서아는 이현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작고 연약한 자신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이현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그러면, 오늘 자고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