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었으므로 둘은 침대에서 일어나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했다. 어제도 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제대로 된 청소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삼십 분쯤 지나 자취방이 깨끗해졌을 무렵, 혜지는 기분 좋게 웃으며 아침을 차려주겠다고 말했다.
사실 요리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애인이 생기면 아침 차려주기는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여자가 되기 이전에도 그런 생각이 존재했다. 혜지는 곧바로 냉장고를 열었다가, 다시 닫으며 이현을 보았다.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네….”
결국 혜지가 장을 본 후에 아침을 차려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예의상 만류하긴 했지만 혜지는 자신이 하겠다고 연신 주장했다. 그 이유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사후피임약을 사야 하는데, 같이 갔다가는 사기 껄끄러우니까. 게다가 안전일이라고 거짓말 했다는 사실이 들키잖아. 그랬다가는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간단하게 씻은 혜지는 화장대 앞에 앉아 외출을 위한 가벼운 화장을 시작했다. 여자가 되었으니 나름대로 익숙해진 일이다. 어딜 나가더라도 화장하기. 처음에는 귀찮았던 일도 지금 와서는 자연스레 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현은 생각했다.
‘화장 하니까 또 꼴리네. 얼싸 하고 싶다….’
정확히는 지금 같은 가벼운 화장이 아니라 풀 메이크업을 한 얼굴을 더럽히고 싶었다. 열심히 공들여 한 화장에 정액이 끼얹어진다니, 정말이지 꼴리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혜지의 성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나중에 시켜보기로 했다. 지금은 배도 고프고 화장도 가볍게 한 수준이었으므로.
‘나중에 풀메하고 오면 얼싸 받아달라고 해야지.’
이현이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가운데, 혜지는 한층 요염해진 얼굴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으로는 이현과는 다르게 뭘 요리해줄까, 하는 귀여운 생각을 하며.
‘아침이니까 대충… 하기는 그렇고 된장찌개? 너무 어렵나? 그치만 뭔가 있어보이잖아. 약간 신혼 느낌도 나고….’
고민하며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혜지는 이현이 다가오자 빙긋 웃으며 미소지었다. 그의 손이 혜지의 엉덩이로 향했지만 딱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혜지가 생각하기에 연인이면 이정도 스킨쉽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직 진짜 연인이 된 건 아니지만 어쨌건.
‘얘는 레깅스도 아니고 츄리닝인데 몸이 무슨… 진짜 개꼴리네.’
보통 츄리닝은 펑퍼짐한 경우가 많아 아무리 몸매가 좋아도 가려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혜지는 츄리닝을 입었음에도 그 몸매가 전혀 숨겨지지 않았다. 츄리닝이 살짝 작기는 했지만 혜지가 일부러 작은 사이즈를 산 것은 아니었다. 가슴 크고 골반 넓은데 허리 얇은 사람이 입으려면 자연스레 작은 사이즈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 한 발 빼줬는데 또….”
“아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몸이 너무 야하잖아.”
혜지는 그 말에 수줍게 웃었다. 지금 혜지는 이 말을 성희롱이나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성희롱이 맞다고 해도 좋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레깅스 입으면 진짜 야하겠다.”
물론 혜지도 레깅스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편한데다가 평범하게 노출벽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의상.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모습이 너무 야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몸인지 차라리 벗는게 덜 야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평소에도 잘 젖는 혜지로서는 조금만 젖어도 티가 나는 레깅스 착용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현이 보고 싶다면 못보여줄 것도 없었다. 이걸 입고 나갈 필요까진 없을테니까.
혜지는 바로 레깅스를 찾아와 그 자리에서 갈아입었다.
“오….”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혜지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너무 야하지 않아? 내가 말하기도 좀 그런데, 내 몸으로 레깅스 입으면 너무 야해서 못 입겠더라구.”
“확실히 이런 몸이면 지나가다가 만져지더라도 뭐라 못하겠네. 걸어다니는 외설물 수준이고….”
그리 말하는 이현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밖에서 저런 차림의 여자가 돌아다니면 어떤 남자라도 눈 돌아가서 만져보려 할 것이다.
“이대로 갈거야?”
“아니. 이거 입고는 일단 나부터가 부끄러워서 밖에 못다녀. 이런 꼴로 다녔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그래도 요즘엔 레깅스만 입고 다니는 여자들 많잖아.”
“그 사람들은 슬랜더 느낌이라 괜찮은거고, 나는 레깅스 입고 돌아다니면 천박하다 소리 들을걸?”
물론 이현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몸이 천박한데 그걸 숨기는 것도 나쁜 짓이다.
곧바로 능력을 사용해 대충 생각을 읽어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입고 다니고는 싶은데 너무 과해서 걱정….’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이현은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아침이라 사람도 별로 없지 않나?”
“그런가….”
결국 혜지는 레깅스를 입고 나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같이 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남의 의상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점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어차피 구경은 능력으로 보면 되니까.’
혜지가 나간 후 이현은 곧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시야가 어지러워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감각.
혜지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지 쭈뼛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기적대는 모습이 더 야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나였으면 절대 저렇게 입고 밖에 못다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침이라 길에는 사람이 없어 혜지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국에 도착한 혜지는 살짝 긴장한 듯 심호흡을 하더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약국? 왜 약국에….’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혜지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임약 있나요….”
그 말에 이현은 당황했지만 곧바로 무슨 일인지 알아버렸다. 혜지는 위험일인데도 질내사정을 받고 싶어서 안전일인 척 했던 거였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혜지가 녹음해둔 것도 있고, 위험일인데도 질내사정 받고 싶을 정도로 발정난 상태라면 오히려 좋은 상황이었다.
이현은 혜지가 돌아오자마자 다시 질내사정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혜지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무사히 사후 피임약을 받는 것에 성공했다. 주머니에 넣고 길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곳은 근처의 마트. 아침이지만 사람이 없지는 않은 곳이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물론 평일 아침 마트에 있는 것은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선이 쏠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을 받게 된 혜지는 부끄러워서 어디 숨기라도 하고 싶었다.
심지어는 아주머니들만 있는게 아니라 백수로 보이는 남자들도 몇몇 보였다. 그들은 혜지를 보자마자 끈적한 시선으로 몸을 흝어보았는데, 그 시선에 곧바로 젖을 것 같았다.
‘속옷 입었으니 젖어도 뭐 있지는 않겠지만….’
살짝 흥분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혜지는 빠르게 장보기를 마친 후 자취방으로 돌아가자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빠르게 장을 보던 와중이었다.
“혜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혜지는 기겁했다. 이 시간에 마트에 있을 사람이 누구일까? 저번에 봤던 주하윤? 아니다. 하윤이는 바빠서 아침부터 이런 마트에 올 시간이 없었다….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가 보였다. 혜지의 몸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마른, 그렇지만 딱 보기 좋을 정도의 슬랜더.
혜지가 꼴리는 몸이라면 여자는 예쁜 몸이었다. 가슴은 발달하지 않았지만 골반은 어느정도 벌어진 탓인지 나름대로 꼴림 포인트가 존재하고 있었다.
“어, 진짜 혜지네? 장 보러 왔어?”
고양이상으로 생긴 여자는 귀엽게 웃으며 혜지에게 인사했다. 혜지도 반갑게 인사하다가 자신의 옷을 떠올리고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누구지? 예쁘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현은 둘이 인사하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꼴리는 여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여자의 시선이 혜지의 몸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하긴 혜지 몸이 여자도 눈길이 갈 정도로 야하긴 하니까….’
그리고 그때, 혜지의 정체를 알았던 것처럼 갑작스레 상태창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이현의 눈앞에 떠올랐다.
정서아 : 3달 전에 TS한 미소녀.
재수생으로서 공부하고 있지만 의욕은 별로 없는 편이다. 집안이 좋고 본인도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벌어 돈 걱정은 없는 상태. 그럼에도 재수를 하는 이유는 명문대 졸업증을 따면 뭔가 있어보인다는 생각 때문.
과시욕이 심하고 싸가지 없는 성격이다. 예쁘지 않은 여자나 자신보다 급이 낮은 남자를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TS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혜지를 꼬시려는 마음으로 접근했다가 뒤늦게 자신도 여자라는 것을 깨달아 지금은 그냥 친구로 지내는 중.
성별이 바뀌어 여자들을 꼬시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만이지만 요즘에는 조금 적응하고 있다. 물론 남자와 사귀거나 연애를 한다는 생각은 아주 조금도 한 적이 없다.
여자가 된 이후 성적으로 쾌감을 느낀 적 없다. 감도 역시 보통. 호기심으로 한번 손을 대보긴 했지만 딱히 기분 좋진 않아서 그만두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특이한 페티쉬가 하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