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영화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현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혜지를 알아보았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안그래도 워낙 눈에 띄는 외형이라 지금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으니까.
흰 블라우스에 검정 스커트라는 무난한 옷차림이지만 몸매가 무난하지 못했다. 걸을 때마다 자연스레 시선은 가슴으로 향하고, 뒤늦게 눈을 돌려보아도 넓직한 골반과 하체에 눈이 간다. 오는 길에 헌팅이라도 당했는지 표정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하긴. 여름만 되면 걸어다닐 때마다 헌팅 당해서 귀찮다고 전에 얘기했었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혜지가 다가왔다. 별로 좋지 못하던 얼굴은 이현을 보자마자 바로 풀렸다. 배시시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이현도 마주 인사했다.
“얼굴 괜찮아졌네. 열도 없고.”
만나자마자 이마에 손을 뻗는 모습에 살짝 당황했지만, 혜지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어, 응. 좀 자니까 좋아졌어.”
물론 자서 좋아진게 아니라 열심히 자위해서 좋아진 거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 남자들은 속으로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랑 비교하면 아쉽긴 하지만 남자도 괜찮게 생겼네…. 못 꼬시겠다.’
얼굴이 특출나게 잘나지는 않았지만 평균 이상은 하고, 키도 큰데다가 몸도 괜찮았다. 은근히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럼 영화부터 볼까? 팝콘이랑 콜라도 좀 사고….”
“저녁 안먹을거야?”
“아니? 먹고 먹으면 되잖아.”
“…그게 들어가?”
“당연하지! 원래 이런 거랑 밥 먹는 건 다른 거야.”
이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먹을 수 있다는데 먹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미리 예매해둔 영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고, 둘은 팝콘을 산 후 적당히 돌아다니며 게임기나 인형 뽑기를 했다.
그리하여 5만원쯤 써서 인형 한 개를 뽑은 후, 혜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현은 살짝 짜증나는 듯한 얼굴로 돌아와 상영관에 입장했다. 아직 광고도 나오지 않았기에 떠들 여유가 있었다.
“푸흐, 진짜 웃겨.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뽑기를 못하냐.”
“시끄러. 이건 기계 잘못이야. 원래는 나 개잘뽑거든?”
“그러시구나. 그러셨어….”
이현은 짜증을 내려다가도 혜지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너무 귀여운 미소였다.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혜지가 계속해서 놀리던 가운데,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두워진 상영관에서 이현이 물었다.
“그런데 이거 무슨 영화야?”
“응? 그걸 왜 지금 물어봐. 너가 예매 했잖아.”
“난 예매만 했지. 귀찮아서 안찾아봤는데.”
“어휴…. 이거 좀비영화래. 19세 달려있는만큼 좀 잔인하다던가?”
“좀비 좋아해?”
“어, 딱히 좋아하는건 아닌데 재밌잖아. 잘 만든거는.”
“그래?”
“응.”
“…솔직히 말해봐. 보고 싶은데 무서운거 나온다니까 쫄려서 나랑 보자고 한거지?”
“뭐래, 내가 무슨 쫄보인줄 알아?”
“진짜? 이따 무섭다고 안아달라고 해도 안 안아준다.”
“내가 그러겠냐고….”
잠시 떠들던 사이 영화가 시작되었다. 제법 잔인하다는 말에 이현은 긴장했지만, 정작 초반 30분간은 좀비는커녕 잔인한 장면조차 없었다. 그보다는 무슨 성인 영화인줄 알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편의점 알바를 하는 남자와 여자였는데, 둘은 친구 사이였고 나름대로 썸을 타는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편의점 알바를 하던 여자가 성욕을 참지 못하고 알바하던 도중 자위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남자에게 들켜서 바로 그 자리에서 관계를 가진다.
‘아니, 뭐야. 좀비 영화 아니었어? 뭔 내용이… 심지어 아까 내가 했던 짓이랑 비슷해서 기분이 이상하네….’
한국 영화의 특성상 완전히 보여주진 않았지만 찌꺽거리는 소리와 신음은 너무도 생생했다. 모든 관객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혜지는 자기도 모르게 이현의 눈치를 살폈다.
이현 역시 당황해하면서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혜지의 시선을 눈치채고 살짝 귓속말을 했다.
“이거 좀비 영화 맞아?”
“몰라. 재밌다던데 초반부 왜이래….”
그 뒤로도 영화는 두 사람의 연애행각만 보여주다가, 본격적으로 좀비가 나온 것은 삼십 분쯤 지난 후였다. 그때부터는 정말 좀비 영화라고 할만했다. 이현도, 다른 관객들도 집중하며 영화를 보았다. 오직 혜지만이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젖어가지고 집중을 못하겠어. 아니, 왜 하필 초반부에 그런 장면이 나와가지고 진짜. 그나저나 왜 이렇게 잘 젖지? 배란기인가? 생리 언제 했지….’
잠시 계산해보던 혜지는 생각했다.
‘진짜 배란기네. 으, 미치겠다. 어쩐지 요즘 성욕 엄청 올라오더라.’
물론 배란기라서가 아니고 혜지가 야한 것이 원인이지만, 아무튼 변명할 거리도 생겼으니 혜지는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몸이 아기 만들고 싶어서 안달난 탓이니 내가 야한건 아니라던가, 그런 식으로.
아무튼 그 뒤로 시간이 흘러 영화는 끝이 났고, 이현은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지 역시 따라 일어났지만 영화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속옷을 입어 애액이 흐르지 않는다는게 다행이었다.
“와, 초반엔 이게 뭔가 했는데 진짜 재밌네.”
“그, 그러니까. 초반을 왜 그렇게 만들어서….”
“근데 그거도 지금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해. 꼴리기도 했고….”
“어, 응. 나 잠깐.”
혜지는 상영관을 나오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팬티를 살짝 내려보니 끈적한 액체가 제법 묻어있는 모습. 계속 입고 있기는 찜찜하지만 입지 않을 수도 없었다. 곧바로 휴지로 대충 닦아낸 다음 다시 입었다. 찝찝하긴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클리까지 풀발했네. 미친.’
여기서 조금이라도 손을 댔다가는 바로 자위해버릴 것 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당장 칸 밖에도 영화를 본 후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 했다가는 바보같은 소리를 잔뜩 낼 것이 분명했다. 혜지는 최대한 손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옷차림을 정돈했다. 정돈한 후에는 세면대에서 화장을 고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 일 없다 이혜지….’
밖으로 나가니 이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삼스레 이현의 키가 크다는 것을 실감하며, 혜지는 그 옆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이현은 자연스레 혜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걷기 시작했다. 혜지도 옆에서 같이 걸었는데, 왜 머리를 쓰다듬어준건지 알 수 없었다.
‘뭐지? 그냥 자연스럽게…. 이제는 그냥 자연스레 쓰다듬게 된다는 건가. 기분 좋긴 한데 지금 상태에서는….’
영화관 밖으로 나온 이현은 시간을 잠시 보더니, 혜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뭐하지?”
“응?”
“저녁 먹기엔 애매한데 시간이 좀 남았어. 2시간 정도.”
“어….”
주변을 둘러보니 번화가답게 다양한 건물들이 보였다. 혜지는 스윽 훑어보고는 무심코 말했다.
“노래방?”
“코노 있네. 갈래?”
“어? 어, 그래. 가자.”
그리하여 둘은 근처 코인 노래방에 도착했다. 코노답게 방의 크기는 작았고, 둘은 적당한 곳으로 들어갔다. 크기가 워낙 작아서 딱 달라붙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 혜지가 조신하게 앉아 옷을 정리하는 가운데, 이현은 대충 노래를 고르고 부르기 시작했다.
“목소리 뭐야….”
이현의 노래를 들은 혜지는 살짝 감탄했다. 생각보다 잘 불러도 너무 잘 불렀다….
직후에는 혜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걸 듣고 이현은 이렇게 생각했다.
‘목소리는 좋은데 존나 못부르는군.’
물론 생각만 할 뿐, 말하지는 않았다. 고음은 잘 나는데 음정이나 박자는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부르는 모습이 귀여워서 싫진 않았다.
“아… 되게 좁다 여기.”
부르면서 몇 번이나 이현의 몸에 부딪친 혜지는 괜한 변명을 했다. 실제로도 이현의 몸이 근육질인 탓에 자리가 좁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현은 잠시 혜지를 바라보다가 제안했다.
“그럼 내 무릎 위에 앉던가.”
“…….”
“아, 잠깐. 너 몇키로냐? 너무 무거우면….”
“벼, 별로 안무겁거든?”
실제로는 제법 무게가 나갔다. 아무리 군살이 없어도 가슴 크고 허벅지 통통한데 몸무게가 적을 수는 없었다. 물론 그것과는 상관없이 꼴리는 몸이다. 혜지는 괜히 짜증내는 척 하며 이현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어때. 별로 안무겁지…?”
“…….”
그 순간 이현은 살짝 당황했는데,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혜지의 몸이 너무 기분 좋았던 탓이다. 무릎 위에 앉았을 뿐인데 말랑말랑한 감촉이 자극을 주고 있었다. 자연스레 발기가 될 것 같았다.
“…존나 무겁네. 내려와 이제.”
내려오지 않으면 그대로 발기해서 엉덩이를 찔러버릴 것 같았다. 크기가 작지도 않으니 혜지 역시 느낄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혜지는 내려오지 않았다. 무겁다는 말에 괜히 오기가 생긴 것이다.
혜지는 그 위에서 들썩거리며 계속 이현을 괴롭혔다. 자연스레 이현은 버티지 못했고, 혜지는 엉덩이를 찌르는 무언가의 감촉을 느껴야 했다.
‘좆됐다….’
혜지는 처음에는 알지 못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둘의 자세와, 이런 자세에서 엉덩이에 느껴지는 딱딱한 것….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