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21/21)

#6.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준은, 들어오자마자 문을 걸어 잠궜다. 그리고 잠시, 닫힌 현관문에 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숙인다. 철로 된 현관문에 이마를 대자, 기분 좋은 서늘함이 전달되며 머리가 침착해졌다.  

기분이 좋다.  

자신이 누군가의 소유, 라고 타인 앞에서 인정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 일이구나, 

하고 멍하니 생각했다. - 그리고, 재엽을 보낸 후에도 머리에 남는 생각은 오직 하나.  

- 은우가 오해했을까.  

6년 동안 자신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재엽에게 <그런 주제에 여자랑 뒹굴고 있었냐>라고 쏘아붙이긴 

했지만, 은우를 짝사랑했던 긴 시간 동안 외로움을 느끼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 역시 똑같은 짓을 해 왔다. 

물론 저변엔 원래 스트레이트인 은우와 잘 될 리 없다, 라는 생각이 깔린 자포자기적인 행동이긴 했지만-  

그것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  

사귄 사람은 많았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물론 합의 하에, 서로 마음을 주지 않고 육체만을 탐했지만 

개중 준에게 진심인 듯 보이는 사람도 꽤 있었다. - 하지만 모른 척 했다. 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엄청 재수 없는 놈이었잖아, 나.  

…… 은우는 이런 나를-….  

「안 들어 오냐.」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겁을 하고 돌아보자, 팔짱을 낀 채 현관 근처에 기대어 서 있는 은우가 시야로 들어온다. 

줄곧 거기 서 있었던 모양이지만 워낙 은우 자체가 인기척이 없는데다 준이 현관으로 들어서서 한 번도 

집 안쪽은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잠시 멍하니 은우를 쳐다보던 준은, 

잔뜩 동요한 목소리로 중얼대듯 말했다.  

「어, 언제부터…….」  

「집으로 들어온 뒤 줄곧.」  

멍한 표정을 짓던 준은 그때서야 은우가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준이 재엽과 이야기할 동안, 계속-….  

- … 계속?  

「 - 아….」  

준의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너, 다, 다 들었……!!」  

몇 걸음 만에, 신발도 신지 않고 준의 앞으로 다가온 은우가 손을 뻗는다. 현관에 붙어 서 있던 준을 끌어다가, 

품에 안았다. 방금 깨달은 사실에 잔뜩 달아오른 얼굴은 수습하지도 못하고, 준은 은우가 이끄는 대로 그 품에 

안긴다. 은우의 귓가에서, 살짝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에서, 단단하고 따뜻한 넓은 품 안에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향수를 쓰지 않는 은우에게서 나는 냄새는, 말 그대로 은우만의 냄새다. 

준이 우물거리듯 은우의 등에 팔을 두르면서 중얼거렸다.  

「 - 워낙에, 질긴 녀석이었으니까, 좀 거칠게 말해야 될 필요가 있었…….」  

낯부끄러운 고백을 남 앞에서 잔뜩 해 버린 변명을 시작하려 하자 은우는 준의 말을 자른다.   

「알아.」  

「……윽.」  

- 듣지 않는군, 이 자식.  

약간은 억울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힌 채 준은 어깨에 힘을 뺀다.  

- 멋대로 생각해, 이 자식아.  

지금 니 앞에 있는 놈이 옛 애인 앞에서 네 놈만의 암컷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얼굴도 

붉히지 않고 뻔뻔스럽게 지껄일 수 있을 정도로 너한테 철저하게 반해있다고.   

준의 손이, 은우의 옷자락을 꽉 잡는다.  

두근두근, 맞닿은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따뜻한 고동소리.  

마주 닿은 몸의 체온.  

은우의 손이 준의 결 좋은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와 머리를 어루만진다. 은우의 어깨 위로 

머리를 댄 채 가만히 있는 준의 귓가에, 은우의 낮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네가 모두의 수컷이고, 지금 나만의 암컷이라면-」  

- 이은우.  

이은우…….  

「 - 네가 앞으로 영원히 나 하나로 만족해 준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하는 단어.  

은우의 손이 볼을 감싸고, 살짝 들어올린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듯, 길 잃은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준의 눈을 마주보면서, 

신성하고, 경건한 의식을 행하듯이 은우가 말을 잇는다.   

「난 영원히 너만의 수컷이 될 테니까.」  

네가 좋아.  

널 좋아해.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눈동자가 번져간다.  

촉촉하게 젖어서 일렁이는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든 준을 울릴 수 있는 유일한 인간.  

준의 볼을 감싸 쥔 채 끌어당겨, 부드럽게 입 맞춘다. 

툭, 하고 준의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이슬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은우가 속삭인다.  

「영원히 옆에 있어 줘.」  

「 - …….」  

「듣고 있어?」  

볼을 감싼 은우의 손을 잡고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준을 보며, 은우의 날카로운 눈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와 함께 조용히 말을 이었다.  

「프로포즈하는데 대답이 없으면 곤란해.」  

「…….」   

- 아아.  

이 망할 자식.  

별 생각 없이, 준은 은우를 향해 물었다.  

「-… 나한테 안길 수 있어?」  

「응.」  

망설임 없이 대답이 튀어나온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한 태도.  

은우의 대답에, 말을 꺼낸 준이 더 놀라서 은우를 쳐다보자 은우는 오히려, 준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뭔가를 잘 못 대답했나, 

하고 고민하는 듯 생각에 잠긴다.  

울컥, 하고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눈물자국이 채 가시지도 않은 얼굴로, 준은 풋, 하고 웃었다.  

「- 바보 같은 놈.」  

「……어째서?」  

「몰라, 임마.」  

준의 손이 은우의 얼굴을 덥썩, 잡고 끌어당겨 찐하게 키스한다. 

얼떨떨하게 준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 키스를 받는 은우를 향해 준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안 돼. 역시 내가 안겨야겠어.」  

「……?」  

「니가 길들여놨잖아. 너한테 뒤를 당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도록.」  

「…….」  

준이 활짝 웃는다.  

「확실히 책임지도록.」  

「응.」  

얌전하게 대답하며, 은우의 손이 다시 준의 머리를 안아 누른다.  

현관에서 신발도 신지 않은 은우와, 집에 들어와서 신발도 벗지 않은 준은 한동안 서로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고 싶다.  

예전처럼 흥미 위주의 관계가 아니라, 저 녀석이 진심으로 갖고 싶어졌다.  

재엽은 아파트 밖으로 나와 케이스를 꺼내,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밤의 어둠과 

어스름한 가로등의 불빛 아래에서, 담배 끝의 붉은 불은 강렬하게 빛나며 자신을 살게 하는 것을 태워간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후 아파트 쪽을 돌아보았다.  

재엽의 입술이 피식, 하는 웃음을 그린다.  

- 높은 곳에 있는 꽃일수록 향기로운 법이고, 따기 힘들었던 열매일수록 맛있는 법.  

정말로 반해버렸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진심인 적이 없었던 자신이.  

진동으로 해 둔 폰이 떨리는 느낌에, 안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자 문자가 와 있었다. 폰을 열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의 이름과, <8시,이틀전만났던호텔에서>라는 내용의 텍스트가 떴다. 

재엽의 손이 망설임 없이 답문을 누르고, <안가>라는 텍스트가 전송되자마자 

저장신호는 확인하지도 않고 저장된 번호를 지워버린다. 그리고 막 폰을 닫으려는 순간 다시 폰이 울렸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폰을 끄려던 재엽은 이내 멈칫한 후 발신번호를 응시했다. 하숙집의 번호. - 제길, <가족>인가….  

「여보세요.」  

<- 형… 전데요…….>  

조용하고 침착하며, 소심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어떻게 들으면 조숙해 보이는 소년의 목소리.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재엽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어, 무슨 일이야, 수민아.」  

<저… 늦으시길래…… 저녁 어떻게 하실지……>  

「오늘 밥당번이야?」  

<아, 네…….>  

「그럼 일찍 가야겠네. 수민이가 만든 밥은 맛있으니까.」  

잠깐 침묵이 흐르다가, 다시 머뭇머뭇,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 저기,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뭐든 괜찮아.」  

<예, 그러면 형 꺼까지 만들테니까….>  

「그래.」  

볼일이 끝난 모양인데 폰 너머에서 끊지 않고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진다. - 정말이지, 이 녀석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재엽이 말했다.  

「- 할말이라도?」  

<예, 아, 아뇨….>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까 할말이 있으면 바로바로 하는 게 좋아.」  

<아, 예. 죄송해요.>  

「사과하라고 하는 말 아니고.」  

<예…….>  

「자, 그럼.」  

끊으려는 순간,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 - 빨리 오세요.>  

「응.」  

탁, 하고 끊었다.  

방음도 안 되는 방에 여자를 데리고 와서 화려하게 놀아대어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 <착한 친척>이다. 

꼬마의 비위를 맞추기란 쉬운 일로, 혹시라도 거슬리는 소리를 했다가 지금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방을 빌리고 있는 동안에는, 고분고분하게 굴어야 한다.  

폰의 전원을 꺼버린 후 주머니 안으로 던져 넣은 재엽은, 지하철역을 향해 걸으면서 강준이라는 철벽을 

공략할 방법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실패란 없다.  

지금껏 실패한 적은 없었고, 이번에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봄날치고는 날카로운 바람이, 재엽이 지나간 자리를 한바퀴 휘감았다가 사라졌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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