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1화 (16/21)

Light-Blue Wind  

              ~ 하늘빛 바람 ~  

#1.  

두 남자가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함께 살을 맞대고 있는 이불 속은 따뜻하다. 바로 옆에 누운 사람의 체온까지 여과 없이 전해져 왔다. 

깊게 잠들어 있던 둘 중 한 명이 희

미하게 잠이 덜 깬 얼굴로, 상체를 일으켜 엎드린다. 가늘고 날카로운 눈이 잠에 취해 깜빡거리다가,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로 손을 뻗어 그 곳에 놓여 있던 무테안경을 집어 들었다.  

안경을 쓰고 부스스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몸을 일으킨 그는, 일단 시간을 확인한 후, 

옆에서 아직까지 잠이 들어 있는 또 다른 남자의 자는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얼굴로서, 모든 미의 기준을 충족하는 완벽한 얼굴이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어린아이처럼 잠들어 있다. 

가늘고 짙은 눈썹과 서양인의 그것보다도 완벽하게 곧은 콧날, 늘 윤기가 흐르는 반듯한 입술. 

보기만 해도 키스하고 싶어지는 섹시한 목선과, 뚜렷한 쇄골 위로 찍혀 있는 꽃잎 모양의 붉은 흔적은 

분명 누군가의 키스마크.  

천천히 뻗어나간 긴 손가락이 그 흔적을 어루만지자, 채 붉은 기가 가시지 않은 입술 사이에서 

<으음-…>하는 작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그 것을 내려다보는 안경 너머의 시선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지금 잠들어 있는 연인은 분명 그의 최상품이다.  

이은우는 충동에 따라 기껏 쓴 안경을 다시 벗고, 허리를 숙여 잠든 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실제로 누구나 이름을 대면 고개를 끄덕일 법한 거물 프로덕션의 관계자에게 이른 바 길거리 캐스팅 

당한 적도 있고, 여자들이 즐겨보는 패션잡지에 실린 적도 있는 얼굴이다. 은우가 아는 경우만 해도, 

강준에겐 연예계로 들어가라는 권유와, 연예계로 들어와 달라는 요청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지만 준은 모조리 거절해왔다. 말할 것도 없이, 섣불리 연예인과 같은 공인이 되었다가 사생활이 

낱낱이 까발려져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매장되는 것은 사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나 완벽한 외모의 남자는, 안타깝게도 같은 남자에게서만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게이. 

-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이 된다면 최고의 스캔들감이다.  

그러나, 지금은-  

「- 준아.」  

서늘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무심결에 잔뜩 졸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으응….」  

- 애인. 연인. 반려.  

사랑하는 사람.    

어제는, 준이 군대에 다녀온 뒤로 처음 맞는 둘만의 밤이었다. 중간 중간의 휴가 때를 제외하면 

2년만의 만남. 은우 쪽에서 자제를 못하고 하룻밤 내내 울려 버리는 바람에, 기절한 상태로 잠이 

든 준은 오전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반죽음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죄의식도 없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은우는 질리지도 않고 잠이 든 준의 얼굴을 한참이나 내려다본다. 백 번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시선으로.   

「은우…….」  

「응.」  

갑작스런 부름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차분하게 대답하는 은우를 향해 준은 눈도 뜨지 않고 속삭인다.  

「- 팔.」  

천천히 긴 팔을 내밀자, 허락도 없이 냉큼 그 위에 머리를 올려온다. 준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순간적으로 은우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팔에 닿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과, 피부로 느껴지는 따뜻한 숨결에 마음이 흔들려서- 반사적으로 

뻗어가는 손을, 간신히 자제했다.  

연인은 몇 번 부비적부비적, 편한 곳을 찾다가 어깨와 팔이 이어지는 부분에 머리를 올린 채 몸을 붙여왔고, 

그런 그의 등을 은우의 긴 팔이 감싸 안았다. 군에 다녀오더니, 원래 잘 짜여져 있었던 체형이 한층 더 

단단하고 매끄러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 마치 미완성 상태였던 조각상이 잘 다듬어진 듯한.     

같은 남자의 몸인데도-  

그 어떤 여자의 몸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무표정한 얼굴로, 은우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준이 깨어나면 물어봐야지.  

- 화를 낼까?    

준은 대학교 1학년 겨울에 군대를 들어가 2년 후 제대했다.  

은우는 여느 의대생들이 그러하듯 의대에서 6년의 교육과정을 거치면, KMA(국가의사고시)에 응시한 

이후 의사자격증을 따고 인턴과 레지던트의 과정을 모두 밟은 후 군의관으로서 군에 갈 예정이었다. 

의대생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다.  

보통의 교육과정과는 달리, 확실하고 완벽한 능력이 요구되는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는 군대라는 긴 

공백이 학과 공부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의대생의 경우 KMA에 응시하여 자격증을 따고,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까지 마친 후 그 능력을 살릴 수 있

는 군의관으로 군에 가거나, 혹은 의과 6년만 마친 후 공무원으로 근처 보건소에서 일정 기간동안 

근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어차피 은우와 함께 갈 수 없는 거라면 일찍, 이라는 생각으로 준은 대학 1학년의 

10월, 좀 빠르게 입대하게 되었다. 

입대 전 머리를 깎은 준과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준이 <바람피우면 죽여 버릴 거야>라고 중얼대자 

은우는 표정도 바꾸지 않고 <내가 할 말이야>라고 대답했다. 너무 진지한 그 어조가, 준이 원래 

게이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의 미묘함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어서, 

결국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리고 이것저것 마무리를 마친 후 사흘 후.  

홀가분하게, 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대했다.   

은우는 단 한 번도 준에게 면회 가지 않았다. 물론, 편지도 보내지 않았다. 만나는 것은 어쩌다가 

준이 군에서 휴가를 받아 나왔을 때 뿐. 

불평 한 마디 쯤 할 법도 한데, 준 역시 은우에게 면회를 와 달라거나 편지를 보내달라거나 하는 

소리를 절대로 꺼내지 않았다. 서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어설픈 연락은, 오히려 애달프고 감질날 뿐.  

그런 면이 쿨하다는 점에 있어서, 둘은 무척 닮았다.     

준이 군에 들어간 동안, 은우는 의학 공부에 몰입했다.   

의대라는 곳의 교육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직업의 종사자들을 

길러내는 그 곳은, 엄격하고 용서 없는 평가를 기반으로 해서 요구되는 실력에 조금이라도 미달되는 

학생들에겐 가차 없이 유급 판정을 내린다. 의대에서 하는 공부에 비하면 고 3 때의 수험공부 따위 새 발의 피. 

엄선된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서 완벽한 의사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고교 시절 전교 1

등에 천재라고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도, 꼴지를 하거나 유급하게 되거나 최하의 학점을 받는 것은 예사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은우는 예외가 되었다.  

늘 침착하고 깔끔한데다 어떤 일에도 잘 동요하지 않는 성격, 타인의 기분을 민감하고 섬세하게 파악하는 

능력, 늘 보이지 않게 배려하는 버릇. 은근하게 완벽주의적인 성향과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겨진 승부욕. 

거기다 자기관리까지 철저하다. 거기다 본인은 전혀 자각 없는 선천적으로 성능 좋은 뇌까지, 

의대라는 곳은 그야말로 은우의 적성에 딱 맞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은우에겐 <머리>가 좋다고 해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건방진 면도 없다. 본인이 머리가 좋다는 자각이 없기 때문에 은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노력을 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늘 수석에 장학금을 받는다. 덕분에 은우의 집에서는 그 비싸다는 

의과대학의 등록금을 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입학한 이후, 학기 초부터 어딘가 금욕적이면서도 섹시한 외모와 건조하면서 쿨한 분위기 때문에 소

문의 중심에 있었던 은우는, 재학 내내 수석 장학금을 석권하면서 거의 전설이 되었다. 당연히, 여자들에게서 

고백을 받는 것은 일주일에 두 세 번꼴로, 준민을 비롯한 친한 친구 몇몇에게선 마성의 남자 어쩌고 하면서 

반 장난처럼 불리고 있는 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소문의 이은우가 한 <남자>한테 메인 몸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은우는 이불 속에서 준의 등을 감싸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려, 매끈한 허리를 끌어당긴다. 

다소 딱딱하고,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면서 자고 있던 준은 또 한번 가늘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다. 다물렸던 반듯한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한숨이 새어나오고,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는가 싶더니 긴 속눈썹이 살짝 들렸다.  

은우를 보는 준의 수려한 눈매가 살짝 휘어지면서, 나른하게 웃어 보인다.           

겨울에 제대한 후 가족들의 성화에 의해 한동안 집에 있던 준은, 어제서야 은우와의 자취집으로 돌아왔다. 

군에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복학생 특유의 아저씨틱한 분위기는커녕 더욱 앳되어진 듯 보이는 준은, 

은우가 <예뻐졌다>고 담담하게 말했을 때 크게 얼굴을 붉히며 은우를 때리려 들었고 준의 손을 가볍게 피한 

은우가 표정도 바꾸지 않고 <-그래도, 진심인데.>라고 했을 때는, <당연하지, 병신아.>라고 대답했다.  

- 그렇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결국 얼굴을 붉히는 모습에 이성이 

날아가 버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몸을 품에 꼭 끌어안아 버렸다.  

그 상태로, 침대에 직행.  

강준, 이은우 23세.  

때는 은우가 의대 4년차에 본과 2년으로 진급, 준이 수학과의 2학년으로 복학하는 어느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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