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서히 여름으로 접어드는 듯, 시끄럽게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훈훈한 바람을 맞으면서, 두 청년이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었다.
하늘은 푸르다. 고층 빌딩 사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구름을, 은우는 물끄러미 올려다보
고 있었다.
「동거한다는 친구한테도 폐 끼쳐서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싶은데.」
「아파서 누워있어.」
「-흐음, 그러냐?」
은우와 같은 대학의 친구, 박준민은 마중 나온 은우와 함께 인천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
민은 전날 퍼마신 것에 비해 숙취도 없어 보이는 멀쩡한 얼굴로 은우를 보며 싱긋 웃는다.
「갑자기 아픈가 보네.」
「-뭐. 그런가보지.」
얇은 티 하나만 걸친 은우가, 여전히 포커페이스로 대답했다.
준민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맞은편의 도로를 오고가는 차들을 쳐다본
다.
「욕실에, 아침식사에, 옷까지 빌려서 미안한 걸.」
「그 상태로 인천까지 갈 순 없잖아.」
「흐음, 그렇지. 사실 어제 화장실도 꽤 여러 번 썼었고.」
은우의 손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흠칫, 한다.
준민은 여전히 사람 좋게 웃는 얼굴로 의아하다는 듯 은우를 보았다.
「어, 화장실 쓰는 소리 못 들었나보지? 꽤 깊게 잠들었나 봐? 너도 친구도.」
「-…….」
- 이 녀석.
은우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준민을 쳐다보자, 준민은 싱긋 웃어 보인다.
「나 어제 부탁받았지롱.」
「-뭘?」
무관심하게 물어오는 은우를 향해, 장난스럽게 히죽 웃어 보인다.
「의과대학 설립 이래 최고의 섹시가이, 이은우의 사생활을 파헤쳐라!」
「…….」
뚜렷하게 기가 막힌 표정으로 친구를 마주보자, 준민은 팔짱은 낀 채 희극적으로 읊어댄다.
「너 노리는 여자들이 많은 건 알고 있지? 모른다고 하기만 해 봐라, 확 잡아 패 줄테니까. 필요한 것 이
외엔 말하지도 않고, 특별히 사귀는 여자는 없는 것 같은데 들어오는 퀸카들의 고백은 줄줄이 거절하
고, 대학 근처에 자취방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지하철로 한 시간 가량이나 떨어진 곳에서 누
군가와 동거하며 함께 살고 있는 수수께끼의 왕자님! 부탁이니까 준민아, 너 거기 쳐들어갔다가 와라~!
-라는 부탁.」
이상하게 모임을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 - 즉, 준과 함께 사는 곳에서 한다고 생각했더니, 저런 이유
가 있었던 건가.
은우가 뭐라고 입을 열려 할 때, 타이밍 좋게도 버스가 도착했다.
준민이 냉큼 버스에 올라타며 쾌활하게 뒤를 돌아본다.
「신세 많이 졌어.」
「…-어.」
「뭐, 동거하는 사람이 남자친구라니. 특별히 사생활 어쩌고 할 것도 없겠던 걸.」
남자친구라는 어감 자체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 무슨 의도야, 이 녀석.
렌즈 너머로 은우의 두 눈이 의심스러운 빛을 띠자, 준민이 씨익 웃는다.
「아, 그런데 네 친구, 잠버릇이 나쁜 모양이네.」
「……?」
은우의 눈 속에 의아한 빛이 떠오르자, 버스에 오른 준민은 악의가 만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일 학교 올 때 그 이빨 자국 지우고 와라.」
「……!!」
버스 문이 탕, 닫혔다.
망연히 서 있는 은우의 앞에서 버스가 출발했고, 그 뒤를 보고 있으려니 버스의 창문이 열리면서 준민
의 것이 분명한 팔 하나가 나와서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였다.
「-… 저 자식.」
은우가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 특별히, 소문나도 상관없는데.」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렇지만, 준민이라는 녀석이 온 대학에 은우의 프라이버시를 떠들어대고 다닐 것 같진 않다.
터벅터벅, 몸을 돌려 침대에 뻗어있는 준이 기다리고 있을 아파트로 걸음을 옮긴다.
- 그 녀석, 귤을 좋아했었지.
성능이 좋은 은우의 뇌에서, 준민과 했었던 대화는 이내 깨끗이 지워진다.
본인은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지만, 같은 대학의 여자들이 보았다면 비명을 지르며 환호할 정도로 부드
러운 표정을 지은 채 은우의 발걸음이 아파트 상가 쪽을 향했다.
더운 여름이 다가온다.
바뀌는 계절과 함께-
소년은 남자가 되었다.
Light-Blu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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