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두 사람 다 기분 좋은 침묵 속에 잠겨 있을 때, 준의 입이 열렸다.
「-여자한테, 전화왔던데.」
「-…?」
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은우가 고개를 든다.
묻는 듯한 시선을 보며, 준은 쓰게 웃었다.
「<오늘 한 이야기라면 신경 쓰지 마>라고 하던걸.」
「아아.」
별 감흥 없이 대답한 후, 은우가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상관없어.」
「…뭐?」
「거절했으니까.」
여느 때와 같이 담담하고 서늘한 목소리.
준은 눈을 감았다.
- 넌 멀어져 가는 것만 같다.
언제나 옆에 있던 네가, 나와는 다른 길을 가면서 멀어져 간다.
뒤에서 따라오던 네가-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렸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고, 내가 모르는 여자에게서 고백을 받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
과 함께 만나서, 내가 모르는 사람을 집에 데려온다.
- 만약 네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면 이제 곁에 있을 수 없겠지.
단짝친구로서 평생 옆에 있을 자격조차 포기하고 짧은 행복을 위해 연인의 자리를 선택했다.
위험한 도박…….
내가 없는 곳에서, 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떤 대화들을 나누고 있을까.
언젠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상냥하고 귀여운 여자를 만나-
떠나가는 건 아닐까.
「-준아.」
눈을 뜬다. 은우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왜 울어.」
천천히, 모양 좋은 입술이 내려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핥는다.
준은 은우의 목에 팔을 둘렀다.
「- 무서워.」
「…뭐가?」
「네가 떠날까 봐.」
「…….」
고개를 살짝 들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은우의 눈을 들여다본다.
너무 어두워서- 은우가 짓고 있는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다.
「스타일 좋고 몸매 좋고 머리 좋은 의대생 누님에게 낚여갈까 봐. 두려워.」
「…….」
대답이 없다.
대신, 준의 몸이 가늘게 떨린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당황과 경악이 적당히 섞인 목소리가, 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
「미안.」
담담하게 사과하며, 은우가 몸을 일으킨다.
준이 얼굴을 붉힌 채 속삭이듯 소리쳤다.
「왜 또… 커지는 거야!」
「-해도 돼?」
「…이 새끼가 남은 진지하게 고백하는데…….」
「-….」
은우의 입술이 목덜미에 키스한다.
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너 정말……!」
화난 표정으로 은우를 마주보다가,
숨이 막히는 듯 입을 다문다.
어둠 속에서 은우가 웃고 있었다.
쾅쾅쾅, 고장 난 것처럼 심장이 울린다.
날카롭던 눈매, 반듯한 입술이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다.
상냥함과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한 웃음.
평생 저 얼굴에는 떠오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아름다운 미소.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면서도 섹시해서 위험해 보이는 얼굴.
치사해, 저 얼굴은.
말도 못하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준은 자신의 속에서 잔뜩 커진 은우의 존재를 느낀다. 은우가
속삭인다.
「-질투했어?」
「너-…」
「…준, 귀여워…….」
「사람 말 좀 들…,」
「기뻐.」
「이 자식-…」
「-심박수 증가, 체온 상승 중.」
살짝 호흡이 거칠어진 준의 위에서 은우가 속삭인다. 준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장난 그만…,」
「위험하군. 진료 시작하겠습니다, 손님.」
여전히 서늘한 목소리로 은우가 중얼거린다.
준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넌 누구야악!>이라고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은… 아-,」
은우의 손이 앞으로 돌아와 유두를 간지럽힌다.
「청진기가 없으니 손가락으로 대신하죠.」
「야… 아-,」
준은 속으로 절규한다.
- 이 자식, 위험하잖아!!
「처방전은 이걸로.」
은우의 입술이 다가온다.
부드럽게 준의 입술을 감싸는가 싶더니, 확실한 의도를 가진 혀가 순식간에 입술을 열고, 치열을 갈라
안으로 들어온다.
「읍-…,」
짐승에게 물어뜯기는 듯한 키스.
입 안에서 격렬하게 혀가 얽히고, 잇몸을 쓴다.
입 안 구석구석 민감한 부분을 찾아, 연한 부분을 건드리고 빨아올렸다.
지나치게 느껴서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헐떡이며 가냘프게 중얼거렸다.
「그만-…」
「사랑해.」
「…….」
숨이 멎는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진지하게, 망설임도 없이 은우의 서늘한 두 눈이 준을 내려다본다.
듣는 사람이 더 당황할 정도로 성실하고, 진지하고, 망설임 없는 고백.
준은 눈을 감는다.
- 이러다가 죽어 버릴 거야.
「-움직여도 돼?」
은우가 부탁하는 것처럼 명령했다.
대답 대신 목을 끌어안자, 이번엔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였다.
또다시 내벽을 자극받아,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최초의 고통은 사라지고, 머리의 심이 녹을 것처럼 황홀한 쾌감만이 자리한다.
감전된 것처럼 두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고,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없어 눌러참는 안타까움에 몸부림쳤
다.
은우의 반듯한 등에 마음껏 손톱자국을 낸다.
두 번째로 도달한 후, 준을 품에 안은 은우가 속삭인다.
「처방 끝. 증상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있던 준이 가까스로 잔뜩 잠긴 목소리를 냈다.
「…-더 악화됐어, 이 변태 돌팔이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