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12/21)

#6.  

어쩌면, 때릴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있어서, 타인의 손에 의해 강제로 절정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굴욕적인지, 준은 잘 알고 있

다.  

은우는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 기댄 채, 물끄러미 준을 쳐다보는 렌즈 너머의 눈이 이상

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견디지 못하고, 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토요일 밤 정도……. 함께 있을 때,」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안경 벗어도, 좋잖아.」  

은우가 벌떡 일어났다.  

준에 의해 걸치고 있던 수건이 벗겨진 후, 알몸인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서서 방문 쪽으로 걸어간다.  

그대로 쾅하고 방문이 닫혔고, 주위는 또다시 무거운 어둠과 침묵에 휩싸였다.  

준은 그 상태 그대로 은우가 앉아있던, 침대의 머리맡 쪽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돌아볼 용기 따위 나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 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 혼자 남겨두고, 은우는 방을 나갔다.  

차라리 때려주지.  

이렇게나 잔인하게 외면해 버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울컥, 하고 목이 메어 고개를 떨어뜨렸을 때….  

조용하게 이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준의 몸이 경직된다.  

조용하지만 시원시원하게, 침대 바로 옆으로 다가온 인영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섰고, 준은 눈앞의 어둠

을 쳐다보며 은우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시각을 제외한 온 신경이, 옆에 서 있는 은우의 움직임을 쫓고 있다.   

딸깍-.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림자는 조용히 벗은 안경을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 단순한 동작에 몸이 달아오른다.  

귀까지 화끈거리고, 심장의 고동소리가 높이 울린다.  

다음 순간, 등 뒤에서 긴 팔이 옆구리 사이로 들어온 후 몸 앞으로 돌아와 준의 몸을 끌어안았다.  

잔뜩 달아오른 몸이, 빨려 들어가듯 뒤에서 안아오는 사람의 품 안으로 파묻힌다.  

몸 앞으로 돌아온 긴 팔이 완전무결하게 배와 가슴에 둘러져, 커다란 두 손이- 섬세하고 긴 손가락이, 

배에서 가슴으로 천천히 기어오른다.  

준의 호흡이 빨라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귓바퀴에,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준아.」  

「……!」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에 척추를 타고 전류가 달렸다.  

- 안 돼.  

소리낼 것 같…….  

「-히익,」  

생각하기가 무섭게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평소엔 차갑게만 보이던 입술이 타는 듯한 열기를 머금고 준의 귀와 귀밑을 어루만진다.  

은근히 피부에 닿을 듯 말 듯, 스치는 듯한 입술의 애무.  

입술 사이에서 간간히 새어나와, 귓가와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숨결.  

망설임 없는 접촉이 말하고 있다.  

<네가 느끼는 곳이 어딘지 잘 알고 있어>라고.    

안타까워서 몸 앞에 돌아와 있는 은우의 팔에 손톱을 세운다.  

입술이 목덜미를 타고, 아래로 내려감과 동시에 몸 앞으로 돌아와 있던 두 손 역시 아래를 향해 내려간

다. 커다란 손이 능숙하게 버클을 연 후 바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열로 상기된 맨살에 닿는 서늘

한 손의 감촉에 다시 손톱을 세우며 몸을 경직시켰다.  

자신도 모르게, 열에 들떠 애원하는 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제발……,」  

준의 분신을 쥔 은우의 손이 부드럽게, 묘한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  

이미 한계에 달해 있던 준은, 다시 은우의 팔을 꽉 쥔 채 도달했다.  

언제나라면, 여기서 끝이 난다.  

그 때, 은우의 왼손이 예고도 없이 입고 있던 난방 아래로 들어왔다.  

「-!」  

준의 몸이 다시 경직되고, 반응을 보일 새도 없이 은우의 오른손이 난방 위로 올라와 단추를 풀기 시작

했다.  

「은-…!」  

「손님이 있어.」  

- 그러니까 조용히 해.  

생략된 뒷말.  

은밀하고- 섹시한 협박.  

낮고 빠르게, 다시 귓전에서 속삭인다.  

준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보이기 싫어.  

가슴, 만지지 마.  

보지 마-.  

준이 발버둥친다.  

억지로 은우의 품을 벗어나 침대 아래로 내려서려 하자, 그 서슬에 난방의 단추 몇 개가 투둑, 하고 떨

어졌다. 방바닥으로 내려서기 직전 왼팔이 잡혀 거칠게 끌려간다. 발버둥치려다 오히려 발이 꼬이는 바

람에 침대 위로 넘어지자, 은우가 재빨리 침대 위로 쓰러진 준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 알몸인 은우의 적

나라한 감촉에, 그 와중에도 준은 얼굴을 붉힌다.  

「안 돼-….」  

「니가 진짜로 저항하면 힘들어.」  

준의 손목을 꽉 쥔 채 침대 시트에 눌러 붙인 후, 준을 내려다보며 은우가 속삭인다.  

살짝 내려뜬 검은 눈동자가, 안경 렌즈의 여과 없이 그대로 준의 위에 내리꽂혔다.  

- 가슴이 뛰어서 죽을 것 같다.  

준의 팔에 힘이 빠지자, 은우가 한쪽 손을 들어 이미 반쯤 벗겨진 난방의 단추를 벗겨가기 시작한다. 준

은 질끈 눈을 감았다.  

가슴이 허전해진다.  

준은 심판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은우에게선 한동안 반응이 없다.  

혹시, <그럴> 기분이 사라져버려서 당황하고 있는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최악이다.  

무섭다.  

무서워.  

두렵다….           

흥분과 긴장으로 다시 호흡이 빨라지고,  

적당히 근육이 붙은 가슴은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한다.  

뭐라고 말해.  

말해 줘-.  

두려운 상황에 조우하게 될 것 같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니가」  

너무나 사랑하는, 건조한 색의 목소리가-  

평소의 여유를 잃고 약간 다급하게 중얼댄다.  

「이런 거 싫어하는 거, 알아.」  

잔뜩 긴장해 있는 뇌는 한 박자 늦게 은우의 말을 받아들인다.  

<이런 거>라니?  

「-남자는 처음이고, 많이 서툴러. 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은우의 팔이, 눈을 가리고 있던 준의 팔을 천천히, 얼굴 아래로 끌어내린다.  

어둠 속에서도 확실히 보이는- 열에 들뜬 준의 눈매가 촉촉하게 젖어 있다.  

긴장으로 몸을 경직시키고 있는 탓에 인형의 유리알 눈동자처럼 보이는 두 눈이,  

가늘게 떨면서 은우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날 봐.」  

여전히 서늘한 표정으로 용서 없이 명령해 온다.  

은우의 손이 준의 머리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서, 뒤통수를 받쳐 올린다.  

은우가 의도하는대로, 떨리고 있는 준의 시선이 움직인다.  

은우의 두 눈에서, 곧은 콧날로- 날카로운 턱선으로.  

뚜렷한 쇄골에서 탄탄한 가슴을 지나 군살 없는 아랫배를 따라간다.  

아랫배를 따라 종착지에 도달한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은…,」  

「정말이야.」  

방금 전 준의 입에서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붉게 상기되어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는 은우의 것.  

보고 있는 준이 겁을 먹어버릴 정도로 위험해 보이는 은우의 분신.  

잔뜩 흥분하고 있는 그 곳과는 완전히 상반된, 언제나의 냉정한 표정으로 은우가 살짝 허리를 굽힌다.  

「-정말로 여유가 없어…….」  

스스로도 볼썽사납다고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간다.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긴장과 경직은 달아나고, 몇 배나 더 큰 안도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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