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렇게 된 거, 은우를 덮쳐버릴까, 라고도 몇 번이나 생각했다.
은우의 성격상 준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준을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친우>라는 것만으로 허락할 것이다.
<그걸로 네가 괜찮아진다면.>이라면서.
이은우는 그런 녀석이다.
그러나…
만약, 은우와 섹스하게 된다면 바텀이 되는 것은 자기 쪽이라고 예전에 정해 두었다.
사실 남자와의 관계에서 웬만해선 탑의 위치는 잘 넘기지 않는 편이다. 성격상 남자로서의 프라이드가
높은 편이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뒤를 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단 한 번 예외로, 은우 전에 사
귀었던 남자는 처음 사귄 까마득한 연상의 남자였고, 그래서 바텀으로 참았다. 그것도 콘돔이 없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고, 가끔씩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가 헤테로인 은우를 상대로 정상적인 남자는 원치 않을 입장을 넘기고 싶진 않다. 무엇보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허세도 버리고 은우의 밑에 깔리는 한이 있더라도 은우가
충분히 만족해 주길 바랐다. 그런데 정작 저 쪽에선 손대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먼저 덮치진 못하고, 겁을 먹어 유혹 할 수 없는데, 저 쪽에선 손을 뻗어오지 않는 상황. 어정쩡한 그 상
태에서 바로 고3 수험에 돌입.
은우의 집이 지방으로 이사 가게 되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서 함께 자취하기 위해 수
험생활에 열중했다. 은우는 의외로, 의대를 지망하고 있었으므로 대충하는 수험 공부는 용납되지 않았
고 둘 사이에 어떤 합의는 없었지만 둘 다 암묵적인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바로 작년, 은우는 서울 소재의 의과 대학에 합격했고, 준은 적당히 성적에 맞는 대학을 골라 입
학. 원래부터 수학을 전공하여 교직 이수 과정을 거쳐 교사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학에 남을 생각
이었기 때문에 대학의 간판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 그래서, 현재.
동거생활 2개월 째.
따스한 봄기운 속 사이좋게 자취하며 대학 새내기 생활 영위 중.
같은 대학도 아니다보니 저녁때가 아니면 만날 시간도 별로 없고, 새로운 인간관계에 휩쓸리는 것에 바
빠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보니 입학한지 2개월이나 흘렀다.
- 미칠 지경이다.
장난 같은 키스, 농후한 키스. 큰맘 먹고 침대까지 가도, 마지막은 <서로 대신 해 주는 마스터베이션>
수준으로 끝이 난다. 은우는 그 이상 요구하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 몸을 보이는 것을 꺼려하는 준
역시 옷도 벗지 않는다.
밥그릇을 비운 후, 젓가락을 식탁 위에 놓고 준은 이마를 짚었다.
저 녀석, 정말 날 좋아하는 걸까.
…아니, 좋아하겠지. 당연히. 호감 없는 상대와 같이 살 녀석이 아니니까.
- 그게 아니라…….
이런 생각 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사귄지 2년이 지났는데 <사랑해>라는 소리 한 마디
듣지 못한다면 역시 불안해진다. 은우는 말로 표현하는 것조차 부족하다.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 이런 거, 쪽팔려서 상담도 못해.
「강준, 나 나간다.」
「…….」
「강준?」
「…어… 아, 어?」
생각에 잠겨 있다가 화들짝 고개를 든 준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우가 다시 말한다.
「나, 나간다고.」
「아-. 어디 가는데?」
「선배랑 약속.」
「-늦어?」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 오늘은 토요일이잖아.
……모처럼-….
「- 잘 다녀와.」
현관까지 나와서, 싱긋 웃으며 배웅한다.
은우는 신발을 신으며 배웅 나온 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웃는 표정 따위,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지만 은우의 앞에선 힘들다.
분명 웃고 있는데, 저 날카로운 눈에 응시당하면 억지로 웃고 있다는 것을 다 들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녀올게.」
「어.」
구두를 신은 후, 현관문을 열며 은우가 밖으로 나간다.
- 저 바보 둔탱이 새끼.
이런 마음 눈치 채지 말았으면, 하는 기분과 동시에 눈치 좀 채라 이 자식아! 라는 기분이 공존하는 모
순.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혔다.
「-젠장.」
준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순간.
갑자기 현관문이 다시 열려서, 크게 놀랐다.
은우가 다시 들어온다.
찔린 것이 있는 만큼 당황하는 준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와,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이냐고, 빠뜨린 거라도 있냐고 물으려 하는 순간.
준의 턱을 잡은 채 끌어당겨, 부드럽게 쪽, 하고 입술 위로 베이비 키스를 한다.
함께 쓰는 치약의 향이 코끝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섹스에 있어서도, 키스에 있어서도 담백한 은우 쪽에서 키스를 해 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놀라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준을 향해, 이마를 맞댄 채 눈을 내리깔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찍 올게.」
「-아…….」
다시 뒤돌아서서 나간다.
현관문이 닫히고, 뚜벅뚜벅하는 발걸음소리가 멀어져갔다.
「-바보 자식.」
주저앉은 채 손등을 이마에 댄다.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에 피식 웃어버렸다.
죽었다 깨어나도, 저 녀석에게 이길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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