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1화 (7/21)

#1.  

이를테면, 사소한 일상.  

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웃을 수 있는 행복.  

간소한 아침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입을 열었다.   

「김치에, 손이 닿지 않아.」  

의아한 듯 대답이 돌아온다.  

「…팔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찢어 줘.」  

「…….」  

이 쪽을 바라보는 무표정한 얼굴이 약간 의아한 빛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 눈을 

가늘게 뜨고 고양이처럼 웃었다. 저 녀석의 합리적인 사고로는 팔 뻗으면 닿는 거리의 김치를 왜 굳이 

남에게 찢으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 어리광을 부려도 눈치채주지 않는 멋대가리 없는 놈. -…지

독하게 둔하다니까.  

강준은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문다.  

중학교 때부터 그런 녀석이었다, 이은우는.  

5년 된 친우이자 2년 된 연인은, 더 이상의 반론 없이 긴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움직여 솜씨 좋게 넓은 

배춧잎을 두 조각으로 찢는다. 김치를 찢고 나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젓가락을, 또다른 젓가락이 재빨

리 붙잡아 제지했다. <손이 닿지 않는다>따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젓가락을 잡힌 은우는 연달아 <이해 못할 상황>에 부딪히게 되자, 이번엔 반듯한 입술을 열어 의문을 

피력했다.  

「…강준?」  

「-아-.」  

「…….」  

살짝 입을 벌린 채 기다리고 있는 준을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그때서야 상대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찢

어둔 김치 한 쪽을 들어 준의 입 속에 넣어준다.  

약하게나마 웃는 것도, 준과 같이 닭살스럽게 구는 것도 아니지만-  

찢어둔 김치 두 쪽 중 고춧가루가 덜 묻은 쪽을 선택해서 몇 번 닦아낸 다음 입에 넣어주는 것은 분명 

매운 것을 싫어하는 준을 위한 것.  

이러한 상냥함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김치를 오물거리며, 강준은 뚫어져라 눈앞의 연인을 쳐다본다.  

무테안경 너머로 보이는 가느다란 눈은 저혈압인 체질에 걸맞게, 아침엔 평소보다 한층 더 멍하게 보인

다. 딱 보기만 해도 엘리트틱하고 지적인 분위기가 팍팍 풍기는 깔끔한 인상과 훤칠한 팔다리. 예전엔 

준의 그늘에 가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최근엔 남자다움이 급증하여 대학에 들어가선 

여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만점인 모양이다.  

웃으면, 겁나게 멋있을 텐데.  

만난 이후로, 은우가 웃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성격 자체가 웬만한 일엔 별 동요 없이 무덤덤한 

것이 큰 이유인 듯. 남들 앞에서 웃는 것을 싫어한다기보다, 웃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은우야.」  

「어.」  

「웃어 봐라.」  

이번엔 희미하게 얼떨떨한 듯한 표정.  

눈앞에서 짓궂게 눈을 빛내고 있는 준을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내리깔고 앞 쪽에 있는 작은 콩을 집는

다.   

「…느닷없이 그런다고 해서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애.인.부탁도 못 들어 주냐?」  

콩을 집어 들던 젓가락이 살짝 어긋나면서 들고 있던 콩이 깨끗한 식탁의 유리 위로 툭, 하고 떨어진다. 

준은 폭소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은우는 연인, 혹은 애인이라는 말에 어색하게 반응한다.  

웃던 준은, 문득 입을 다물었다.  

2년 내내 고민해왔었던- 그러나 억지로 외면하려했던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든다.  

준보다 빨리 식사를 끝낸 은우는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걸어갔다. 여전히 남은 밥

을 깨작거리는 준의 두 눈에 희미하게 그늘이 진다.  

「2년……인가.」  

작게 중얼거렸다.  

동거생활 2개월 째-.  

이은우, 강준, 사귀게 된 지 2년.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음.  

새삼스러운 사실이, 준의 뒤통수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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