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1)

#4.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준과 함께, 집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준이 <잠깐, 화장실>이라며 자리를 비  

웠을 때, 함께 게임 할 생각으로 폴더를 뒤지다가, 형이 받아놓은 걸로 보이는 포르노 동영상  

을 발견했다.  

준에게는 묻지도 않고, 동영상을 틀었다. 10분, 20분 짜리의 짤막짤막한 동영상들이 몇 개  

나 있었다. 친구가 와 있다는 사실도 잊고 발기한 후에는, 곤란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특별히  

당황스럽다거나 하는 생각도 없었다.   

꽤 오래 있다가 돌아온 준은, 방에 들어와서 은우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가 크게 당황  

한 표정을 지었다. 늘 완벽하고 깨끗한 표정만 짓고 다니는 녀석의 얼굴이 그렇게 평정을 잃  

은 모습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앉아서, 은우가 틀어둔 동영상을 보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둘이서 나란히 자위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게이라도, 포르노를 보고 발기하는 게 가능한 걸까.  

아니면, 포르노가 아니라......  

그렇다면 혹시 그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준은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은우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문 채 걷기만 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둘 다 지하철을 타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하철 안 타면, 집까지 가는데 엄청 오래 걸릴텐데."  

"......그렇겠지."  

은우가 대답했다.  

날씨는 눈에 띄게 추워졌다. 은우의 집이 더 멀기 때문에, 도중에 지하철을 타야만 한다.  

준의 아파트 근처 지하철역에서, 준은 멈춰 섰지만 은우는 계속 걷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야?"  

"...집까지, 데려다 줄게."  

"......"  

준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 같았다.  

"왜?"  

"뭐가."  

"왜 니가 날 집까지 데려다 주는데?"  

말문이 막힌다.  

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답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기분 탓인지, 몸을 떠는 것처럼 보  

인다. 한참 후에, 은우가 답했다.  

"-좀 더, 걷고 싶어서."  

"웃기지 마!!"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돌아본다.  

준이 소리쳤다.  

"동정하지 마, 빌어먹을 새끼!!"   

"그런 거- 아냐."  

목이 깔깔하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태도로, 준은 몸을 돌려 집의 방향으로  

뛰어갔다. 은우는 당황해서 그 뒤를 따랐고, 은우가 따라오는 것을 눈치 챈 준은 속도를 높이  

기 시작했다.  

"-어이!"  

"따라오지 마!"  

"왜!"  

달밤에, 때 아닌 달리기. 한창 때의 나이다 보니, 달리는 속도도 만만치 않다.  

휙휙, 주위의 풍경들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준은 아파트로 뛰어들었다. 은우 역시 망설이  

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탁탁탁탁, 준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비상구 계단을 뛰어올  

랐다. 준이 밟았던 계단을, 은우도 밟았다.  

허억, 허억, 허억..  

빈 통로 안을 메아리치는 발자국 소리와, 거칠어진 숨소리.  

집 앞에 멈춰선 준이 열쇠를 꺼내어 서둘러 문을 여는 순간, 좀 떨어진 곳에서 달려오던  

은우는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있던 거리를 좁혔다. 재빨리 손을 뻗어, 열린 현관문을 닫기 직전  

에 잡는다. 발견한 틈에 억지로 몸을 밀어 넣어 문을 닫을 수 없게 만들었다. 둘 다 어깨로 숨  

을 몰아쉬면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하아, 하아, -가!"  

"싫.. 어."  

호흡을 고르며 대답했다. 준이 뭐라고 소리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소리치려고 하던 그대  

로 표정이 굳어버렸다.  

"- 온 거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두 소년이 놀란 눈으로 돌아본 곳에는, 30대의 남자가 잠이 덜 깬 얼굴로 걸어 나오고 있었  

다. 구겨진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입고 있는 걸로 봐서, 퇴근 후 샐러리맨의 전형적인 모습이  

다.  

은우에게도 낯익은 남자.  

그를 발견한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잡고 있던 현관문을 거칠게 열자, 힘을 빼고 있던 준이  

휘청, 하고 문을 놓쳤다. 은우을 발견한 남자의 인상이 눈에 띄게 험악해졌다.  

"이 새끼......"  

성큼성큼 걸어왔다. 말 그대로 화가 머리끝까지 난 표정이었다. 준이 그를 향해 뭐라고 날  

카롭게 소리치려는 순간, 난폭하게 준을 밀친 남자는 은우의 교복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있는 듯 으르렁거리는 발음으로 또박또박 고했다.  

"-야, 애송이. 말해두는데, 두 번 다시 여기에 찾아오지 마."  

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  

그러고 있는 동안, 남자는 은우를 현관에 남겨둔 채 준의 멱살을 잡은 후 질질 끌고 집 안으  

로 들어간다. 신발도 벗지 못한 준을 데리고, 침실처럼 보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콰당, 하  

고 문이 닫힌 후 찰칵하고 방문 잠기는 소리. 은우는 굳은 채 현관 쪽에 서서, 그 모습을 쳐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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