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 Rain
#1.
비가 오고 있었다.
온통 회색빛인 세상에, 후드득 후드득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날씨는 제법 쌀쌀하게 식어 있다. 이 비가 지나가면, 겨울이려나.
우산으로 전해지는 빗방울의 진동을 느끼며, 이은우는 옆에서 걷고 있는 친구를 불렀다.
"......야, 강준."
"...어?"
약간 말꼬리를 늘어뜨리면서, 대답한다. 습기에 지친 나른한 목소리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언제나 눈에 익은 친구의 옆모습이 있었다.
반듯한 턱선과 조각상처럼 흠잡을 곳 없는 콧날.
눈을 덮는 앞머리 사이로, 가늘게 뜬 날카로운 눈이,
지친 듯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약간 걷는 속도를 늦추며, 은우는 중얼거리듯이 그를 한 번 더 불렀다.
" 강준......"
" - 뭐야."
이번엔, 대답과 함께 눈동자가 이 쪽을 향했다.
175센티미터의 평균 신장이지만 긴 다리 때문에 훨씬 더 훤칠해 보인다.
패션 잡지에 나오는 모델 못지않은, 날렵하면서도 균형 잡힌 체격.
어딘가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감도는 수려한 외모.
완벽하다. 정말 완벽한 녀석이다. 방금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 같은 이상적인 외모에, 스포츠
만능, 성적 발군. 소위 엘리트 집단에서 날라리 집단 전체에 걸쳐 인정받은 리더쉽에, 냉정하
긴 하지만 박정하지 않은 쿨한 성격까지.
......지나치게 완벽한 녀석이다...
"강준......"
"......뭐야?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라고 생각했었다.
비가 내렸던 그 날까지는.
- 춥다. 은우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여전히 귀에는, 빗방울이 리드미컬하게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리는 비로 인해, 오히려 건조해진 공기는 차갑게 피부를 어루만지고.
다시 비는 내리고.
우산에 닿아, 물방울이 되어 툭툭, 젖은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눅눅해진 앞머리가 이마를 쓰다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혼란스럽다.
"-너, 호모라며."
준은 들고 있던 우산을 툭, 하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나 좋아한다며."
말을 끝낸 은우는, <선천적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제자리에 멈
춰선 채, 준이 다시 우산을 주워드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준은 잘생
긴 얼굴을 굳힌 채 은우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춥다.
준이 우산을 주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우는 우산을 내밀었다. 준의 입술이 약간 희
게 질린 채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는 교복이 비 때문에 축축하게 젖어 가는 것
엔 안중도 없이 은우를 보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와. 비 맞는다."
은우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사실인가보다, 하고 추측했다.
정곡을 찔리지 않았다면, 자기관리 잘 하기로 유명한 강준이, 이렇게 넋을 잃고 페이스를
무너뜨릴 리가 없다.
준이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은우는 우산을 들고 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 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준은 격한 동작으로 땅에 떨어진 우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인사 한 마디도
없이 빗속을 달려가 버렸다.
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은우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 비, 언제까지나 계속 되는 걸까.
준 쪽으로 지나치게 우산을 내민 탓에, 우산 끄트머리에서 흐른 빗방울이 은우가 쓰고 있
는 무테 안경의 렌즈 위로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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