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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50화 (완결) (250/250)
  • 제250화

    제250편

    “당신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기를 바랐는데. 그런 얼굴이라니. 좀 속이기라도 하지 그래요. 내 손아귀에 있으면서, 한 치도 숨김없이 나를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면 내가 당연히 눈치채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게 당신의 매력이긴 합니다만.”

    한세희는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척 슬픈 얼굴이었다.

    “무슨……. 무슨 짓을 한 거야?”

    “힘이 필요했습니다.”

    “뭐라고요?”

    “어머니는 내게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 주었죠. 물론 그녀는 내게 비밀로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면, 신이 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걸요.”

    “뭐, 무슨……. 대체.”

    한세희는 나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읏.”

    그와 동시에 나는 그를 향해 발동하던 소울메이트를 끊어냈다.

    한세희의 미간이 약간 찌그러진다.

    “안타깝게 됐습니다. 당신은 동료로 꽤 쓸 만했거든요.”

    “놔!”

    그를 밀치자 생각보다 쉽게 나를 놓아주었다.

    “하준?”

    “결아, 하케임. 진짜 배후는……. 저자였어. 한세희. 신금천화교의 어머니와 작당한 건, 뒤에서 우리 모두를 가지고 논 건 한세희 저자였단 말이야!”

    결이의 얼굴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일그러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그런 내 말에 힘을 실어 주기라도 하는 양 한세희가 비릿하게 웃는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여기서 죽어 줘야겠군요.”

    “뭐…….”

    “언론에는 신금천화교의 교주와 싸우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아, 뭐. 지금 와서는 언론이고 뭐고 상관없나요.”

    한세희가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그래요. 이제는 아무런 것도 상관없겠죠. 이 세상은 사라질 테니 말입니다.”

    스으으으.

    그의 주변으로 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공기가 얼어 결정이 떨어진다.

    “갑니다.”

    스츠츳!!

    휘이익, 콰아악!!

    엄청나게 빠른 한세희의 검이 대지를 강타한다. 쩌적! 쩌저적!!

    땅은 순식간에 얼어붙고 얼음이 튀겼다.

    “대체 왜!! 그런 짓을!”

    “당신의 능력으로 거기까지 알아낼 수는 없었나 보군요.”

    휘이이익!! 파츳!!

    콰가가가가!!

    한세희의 검을 결이가 받아낸다.

    카가가가가……!

    “크으으윽, 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건데.”

    결이가 한세희의 검을 받아내는 찰나에 하케임의 창검이 휘둘러진다.

    스각!!

    콰차아앙!!

    그걸 한세희는 검을 들고 있지 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 막아냈다.

    “이럴 수가!”

    “……!!”

    하케임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힘을 주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창검과 함께 하케임을 집어 던져 버린다.

    쉬이이익!! 콰드드득!!

    나무 괴물의 사체로 처박혀 버리는 하케임.

    “어떻게 이럴 수가…….”

    “이 넥스트 레벨인가 뭔가. 그게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것만 달성하면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 자가 없죠.”

    “그럼……. 그때 했던 그 말은…….”

    처음 넥스트 레벨이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했을 때를 떠올린다.

    “나 같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던 겁니다. 은하준 씨. 하여튼 간에 당신의 능력을 파악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희귀한 능력을 많이 갖추고 있더군요. 다른 차원에 연결되는 능력도 갖추고 있고요. 차원의 상인보다 당신이 훨씬 더 흥미로운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도 이 세계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설마……. 안사홍의 여동생을 납치한 것도……!”

    “접니다.”

    “크윽, 까불지 마!!”

    결이가 뇌검을 밀어붙인다.

    “이럴 수가, 모두를 감쪽같이…….”

    충격으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날 이길 방법은 없을 겁니다.”

    “하!”

    결이가 날렵하게 달려 나가 뇌검을 꽂아 넣는다. 하지만 커다란 스파크가 튈 뿐, 한세희의 검을 넘어서지 못한 채 가로막히고 말았다.

    “얌전히 내 계획의 일부가 되십시오.”

    “무슨 계획!!”

    “고통이 없는 세계가 되는 겁니다. 나는 이 세계의 고통을 끝낼 겁니다.”

    “미쳤군.”

    채앵! 카가가각.

    채애앵!! 키기기기긱.

    결이와 한세희의 검이 계속해서 부딪힌다.

    하지만 한세희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사실 오히려 이렇게나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결이에게 감탄할 상황이긴 했다.

    ‘크읏……. 이렇게 가까운 곳에 적이 있을 줄이야.’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주인님.”

    망량이가 어깨에서 속삭였다.

    “영혼 삼키기예요.”

    “뭐?”

    “영혼 삼키기를 쓰세요.”

    망량이의 말에 황급히 시선을 한세희에게 돌린다.

    영혼 삼키기를 사람에게 써 본 적은 없었다.

    “소울 포인트를 모두 영혼 삼키기에 투자해요.”

    “뭐?”

    “넥스트 레벨이 되면서 소울 포인트를 스킬에도 사용할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소울 포인트가……. 아.”

    남은 소울 포인트라면 있다.

    ‘어머니’를 삼키고 얻은 영혼석.

    영혼 삼키기를 사용하면 더 많은 영혼석을 얻을 수 있었다.

    인벤토리를 본다.

    [영혼석: 9,999,999,999]

    이걸 전부 소울 포인트로 변환한다.

    넥스트 레벨이 하나 더 올라, 일일이 삼킬 필요는 없다.

    차르르르륵.

    영혼석이 소울 포인트로 변환된다.

    그리고 나는 그 소울 포인트를 전부 영혼 삼키기에 투자했다.

    [영혼 삼키기 스킬이 레벨 업 합니다.]

    [영혼 삼키기 스킬이 레벨 업 합니다.]

    [영혼 삼키기 스킬이 레벨 업 합니다.]

    [영혼 삼키기 스킬이 레벨 업 합니다.]

    [영혼 삼키기 스킬이 레벨 업 합니다.]

    [영혼 삼키기 스킬이 레벨 업 합니다.]

    [영혼 삼키기 스킬이 레벨 업 합니다.]

    “흡.”

    스으으읏!!

    콰아아아!!!!

    영혼 삼키기의 마나가 한세희를 향해 뻗어 나간다.

    “……?!”

    당황한 한세희가 몸을 빼려고 하지만, 결이에 의해 가로막힌다.

    츠츠츠츳.

    “크아아악!!”

    엄청난 격통이 내 몸을 감싼다.

    한세희의 영혼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한세희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찢어질 것 같은 격통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이건 영혼 삼키기 때문에 일어나는 통증이 아니다. 이건, 이건…….

    이건 한세희가 이전에 겪었던 고통이다.

    대체 뭐지? 여기는 어디지?

    주위를 둘러본다. 실험실.

    실험실에 있는 것 같다.

    여기는…….

    한쪽 벽에 태극기가 달려 있다.

    뭐지?

    이건……. 설마 국가에서 진행한 실험인가?

    고통. 고통. 고통. 고통. 고통.

    온갖 기계와 사람들이 몸을 헤집고 뜯었다가 돌려놓는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지만 죽을 수가 없다.

    호흡기와 여러 장치가 나를, 한세희를 붙들고 있다.

    고통, 고통, 고통, 고통.

    살려 달라고 외치다가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외치기를 반복한다.

    거울에 비친 어린 한세희의 모습이…….

    나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온전한 한세희의 기억이 모두 전해진다.

    그래, 한세희는 퍼스트 오픈 이후 각성자가 처음 나타났을 때 각성한 초기의 각성자다.

    그는 정부에 끌려갔다. 군부대에서 진행되는 각성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 이용됐다.

    그는 거기서 망가지고 재조립당했다.

    많은 사람을 죽였고 그 자신도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넘겼다. 아니, 죽었다.

    한세희는 거기서 죽었다.

    지금 살아남은 건, 그건 한세희의 원념.

    이럴 수가.

    거기에서, 실험실에서 한세희는 완전히 비틀려 버렸다.

    그리고 기회가 올 때까지 웅크리고 있었다.

    이 세계의 비밀을 모두 파헤칠 때까지.

    이 세계의 모든 생명을 불태울 수 있을 때까지.

    힘을 얻을 때까지.

    신이 될 때까지.

    크과과가가가가!!

    한세희의 영혼과 기억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기관지로, 내장으로, 몸속으로 퍼진다.

    “으그극…….”

    “크아아악!!”

    이 세계의 비밀.

    시스템의 비밀.

    가장 강한 자가 되면 소원을 빌 수 있다.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그것이 이 세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이 세계와 시스템의 비밀이다.

    쓰으으으읍!!

    “쿨럭!”

    “은……하준.”

    한세희가 나를 본다.

    “너는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

    이해할 수 있다.

    이 남자가 겪은 고통은 한 인간이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그의 기억을 엿본 나는 알 수 있다.

    이건, 이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습니다.”

    “하…….”

    한세희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렇군.”

    스으으으읏.

    후욱.

    한세희의 영혼이 마지막 한 줌까지 빨려 들었다.

    휘청.

    한세희는 그대로 쓰러진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무, 무슨……?!”

    결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준아……. 울어?”

    “주인님.”

    “……너무 아파서.”

    풀썩.

    나도 무릎을 꿇고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남의 영혼을 먹는다는 일이 쉬운 건 아니지.”

    망량이의 목소리다.

    돌아보니, 망량이의 몸이 길쭉해지면서 이매망량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귀신들의 신.

    “당신이…….”

    “이제야 알아보다니, 네가 지어 준 이름이지 않나. 이매망량.”

    “난…….”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인간인 존재의 영혼을 먹었기에 그런 거다. 그런 짓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넌 해냈고, 이제 너를 이길 자는 없다. 축하한다. 은하준. 네가 이긴 자다.”

    “뭐…….”

    “이제 곧 시스템 마스터들이 올 거다. 넌 이 세계에서 부화하는 신이 되는 거겠지.”

    이매망량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스템과 세계는 인큐베이터. 신으로 삼을 영혼을 키워내는 곳이다. 원래 한 차원에서 하나의 신이 나오는 것도 큰 성과지.”

    이매망량은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인큐베이터?

    신을 키워낸다고?

    시스템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건가?

    “그렇긴 해도 너는 원래 후보자에도 없던 인물이지만, 뭐 어떤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한결, 너는 이제 나와의 약속을 지킬 때다.”

    “뭐?”

    옆에 서서 경계하던 결이가 묻자, 이매망량은 귀찮은 듯 표정을 찡그렸다.

    “네 소원을 이루느라 일이 여기까지 꼬인 거다.”

    “무슨…….”

    “흐음. 그래, 시스템 마스터들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친히 설명해 주마.”

    이매망량이 안쓰럽다는 듯 아직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나를 본다.

    “너를 회귀하게 한 건 한결이다.”

    “뭐?”

    “원래는 이 세계의 신이 된 건 한결이었다는 거다.”

    “그럼. 결이가 소원으로 날…….”

    “원래는 소원 같은 건 없어. 신이 되면 신이 될 뿐이지. 하지만 한결은 내게 제안해 왔다. 자신의 영혼을 넘겨줄 테니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널 살려 달라고 말이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그저 이곳 세계에 관심이 많은 한 존재였을 뿐이지. 하지만 한결처럼 강력한 혼을 얻게 된다면 더욱 큰 신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내 신력을 소모해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지. 시스템 마스터들이 오기 전에 말이야.”

    이매망량은 얼굴을 찡그렸다.

    “나와 한결이 모두 기억을 잃을 줄은 몰랐지만. 그것 때문에 이 웃기는 일이 벌어진 거다. 수천 번이나 시간을 거꾸로 돌릴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들어주지 않을 것을 그랬다.”

    “그게 무슨 소리지? 수천 번 시간을 돌리다니. 난 한 번밖에 회귀를…….”

    “기억을 잃은 한결은 네가 살아 있던 때로 회귀했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탓에 미래가 바뀌지 않았어. 계속 반복됐다. 웃기게도, 한결은 항상 같은 선택을 했지.”

    “시간을…… 되돌리는 선택을?”

    “그래, 가족은 너뿐이라고 하더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신이 태어나고 나면 신을 품었던 세계는 찌꺼기가 된다. 다른 세계를 위해 던전이 되지. 물론 대부분의 생명은 죽거나, 자아를 잃고 몬스터가 되거나 그렇다. 너와 세상,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던 건지 뭔지. 애초에 신이 될 그릇이 못 되는 놈이었달까.”

    이매망량이 한숨을 푹 내쉰다.

    “이제 그런 건 상관없다. 드디어 한결이 아니라 네가 살아 부화하는 결말에 도달해서야 나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단 말이다. 미래가 바뀌니 기억이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매망량이 결이를 툭 건드리자, 녀석의 표정이 바뀐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됐구나. 드디어 성공했어.”

    “네 녀석의 기억도 돌려주었다.”

    “고맙다, 신이여.”

    “고맙긴, 너 때문에 너무 많은 고생을 했어. 그만 네 영혼을 넘겨라.”

    “그래.”

    결이가 나를 돌아본다.

    “이거면 됐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결이가 돌아서서 이매망량을 따라간다.

    “멈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거면 됐다니……! 누구 마음대로!!”

    “넌 감사해라. 한결 덕분에 세계선이 꼬이는 바람에 누구보다 강력한 신이 될 테니까.”

    내가 신이 됐다고?

    장난해?

    무슨 그런 농담 같은 소리를…….

    그렇다고 지금 결이를 끌고 가면?

    끝이라는 건가?

    뭐가?

    결이는 이매망량의 소유가 되고 나는 신이 된다고? 그러고 나면 이 세계는 찌꺼기가 되어서 던전으로 변할 뿐이고.

    그렇다면 우주에서는 이 이상한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거고?

    그게 뭐가 됐다는 거지?

    결아, 이거면 됐다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세계를 인큐베이터에서 제외하겠어.”

    “뭐?”

    이매망량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느껴져. 내가 가지게 됐다는 그 신력. 그러니까, 나는 그 신력을 가지고 이 세계의 법칙을 부수겠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런 건 할 수 없어.”

    녀석이 다급하게 내 쪽으로 걸어온다.

    “너도 시간을 되돌리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할 수 없지?”

    “무, 무슨……!”

    “나는 이 세계에서의 부화를 없던 일로 하겠다. 나는 내 신력을 거기에 모두 쓸 거다.”

    이매망량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는 영원히 불완전한 세계가 되어 버린다. 시스템 마스터의 눈에도 들지 못하는, 외계가 되어 버린단 말이다! 그런 선택을 한 녀석은 지금까지 아무도……!!”

    “역시 가능하구나.”

    “헉.”

    그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상관없어.”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사라지지 않는 방법이라면.

    영원히 불완전하더라도 모두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겠다.

    스으으읏. 온몸을 감싸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게 신력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회귀할 때까지만 해도…….

    물론 그때도 인류 멸망을 막으려고 애써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니 생각해 보니까 어찌 됐건, 인류 멸망이 예견되었던 거 아냐?

    그러고 보니 그렇다.

    신이 부화하면 이 세계는 어차피 인류 멸망이다. 애초에 내가 바랐던 인류 멸망을 막으려면 이 수밖에 없다.

    “으극……. 그래도……! 한결의 영혼은 내 거다!”

    이매망량이 결이를 끌어당겼다.

    “신력 때문이라고 했지? 그럴 필요 없다. 망량.”

    “뭐?”

    “내게는 신력이 차고 넘쳐. 너에게 넘겨주겠다.”

    “무슨…….”

    스스스슷…….

    내 신력이 이매망량에게 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갖고 꺼져.”

    “뭐, 뭐?! 그렇게 간단히……!!”

    스스슷. 스스슷.

    내 신력이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게 느껴진다.

    “은하준……. 정말로 이런 짓을…….”

    이매망량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신력과 함께 나의 모든 힘이 흩어지는 게 느껴진다.

    * * *

    “하준아!”

    “어, 결아!”

    “오늘 던전 공략 가냐?”

    “당연하지.”

    시스템 마스터는 결국 우리 세계를 찾아오지 않았다.

    “흥, 이런 좌표도 없어진 곳에서 던전 공략을 하면 뭣하나요.”

    어깨 위에서 망량이가 투덜댄다.

    “던전이 있으니까 공략하는 거지. 완전히 비틀린 불안정한 세계가 됐다고 해서 시스템이나 던전이 사라진 게 아니잖아? 던전 브레이크가 생기기 전에 공략해야지. 그나저나 너는 왜 좌표도 없는 이 세계에 남아 있냐? 이매망량.”

    “흥, 뭐, 하는 꼴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그런 거지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녜요!”

    “그래라.”

    이 세계는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상태로 표류하게 됐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이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던 그 세계 그대로다. 불완전했고, 완전해지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 불완전한 세계에서 당신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중요하니까.

    함께라는 게 중요하니까.

    “같이 던전이나 공략하러 가자.”

    “흥. 그러죠. 뭐.”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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