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소울메이트-242화 (242/250)
  • 제242화

    제242편

    흑단이는 날이 갈수록 말이 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물론 대화가 길어지면 흑단이가 너무 피곤해해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말이다.

    ‘결국 금룡과 원래 흑룡의 영혼이 융합되어서 완전히 새로운 녀석이 됐다는 거지. 제대로 융합된 것이기 때문에 금룡의 기억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나는 흑단이의 턱을 긁어 주었다.

    “고르릉……. 가르르릉…….”

    “우리 흑단이도 씩씩해.”

    “물논.”

    금룡일 때는 결이 모습이어서 몰랐는데, 흑단이가 된 모습을 보니 금룡 녀석 사실은 애교가 많달까.

    뭔가 복잡한 마음이 드는군.

    “마음이 복잡할 땐 역시 명상이지.”

    길드 내부에 있는 개인 훈련실로 향했다.

    영혼 차원으로 진입하기 위한 훈련도 지금껏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스으읍.

    곧장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심호흡한다.

    츠츠츳.

    마나가 몸 안을 휘몰아치면서 몸이 부웅 뜬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짤랑, 짤랑.

    팔찌의 참이 흔들리며 내 마나와 공명한다.

    공명에 공명. 증폭에 증폭.

    내면과 영혼과 마나가 한데 뒤섞이면서 길을 찾는다.

    감은 눈꺼풀 밑으로 아스라한 마나의 잔상이 인다.

    ‘좀 더, 좀 더…….’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됐다. 하지만 이후로 완전한 영혼 차원으로 접속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 실패를 거듭했다.

    하루라도 빨리 신금천화교의 뿌리를 뽑고 안사홍의 여동생 안단홍을 찾기 위해서는 영혼 차원의 힘이 필요하다.

    의식이 주머니 안에 있는 방울에 가 닿는다. 방울의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 올라온다.

    마치 자신을 사용하라는 듯이.

    방울 소리를 내, 이계의 수많은 신의 시선을 불러 모으라는 듯이.

    하지만 안사홍이 준 마지막 보루는 사용해선 안 된다. 세계의 순리를 거스르고 옛 신들의 이목을 끄는 힘.

    그건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시곗바늘이 움직이고 멸망이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서 내 힘으로 스스로 도달해야 한다.

    ‘잡념아, 날아가라.’

    집중해야 한다. 집중, 더 집중.

    영혼의 차원으로, 어서.

    딸랑.

    순간 낯선 방울 소리가 들렸다.

    ‘헉.’

    방울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이 훅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 뭐지. 성공인가?’

    눈이 번쩍 뜨였다.

    파아아.

    눈앞에 보랏빛 꽃밭이 펼쳐졌다.

    ‘성공이다.’

    온몸에서 피로가 느껴진다. 이 공간에 나란 존재는 마치 불순물인 것 같은 느낌.

    ‘어서 안단홍의 구슬을…….’

    딸랑, 딸랑.

    ‘방울 소리? 나는 안사홍이 준 바늘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방울 소리에 이끌린다.

    터벅, 터벅.

    발에 채는 보랏빛 꽃잎이 주위로 흩날리고 뿌연 영혼들의 기억 구슬이 한들한들 흔들린다.

    그리고 나는 저 멀리 서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한다.

    “사람?”

    이 공간에서 나처럼 완전한 사람의 형상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인의 긴 머리가 흩날리고 있다.

    한복 같다고 할까. 여인은 치렁치렁한 옛 옷을 입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그녀의 옷이 너울거린다.

    스스슥.

    여인이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아이야.”

    “……?!”

    “너로구나.”

    여인의 목소리는 깊고 축축했다.

    “네가 나를 찾고 있어. 나를 대적하기 위해, 이 우주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지만 그건 운명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운명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지.”

    “네?”

    “내가 바로 네가 찾는 어머니다.”

    “……!!”

    어머니라고?

    아주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깨달아지다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황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물론 신금천화교의 그 존재를 찾기 위해 영혼 차원으로 들어온 게 맞다. 하지만 이렇게 맞닥뜨리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곳은 신들의 차원. 원래는 그대가 올 수 없는 곳이지. 그대는 아직 초월하지 않은 자. 하지만 이상하구나……. 그대는…….”

    사르륵.

    그녀의 손이 움직이더니 나를 향한다.

    뺨에 닿는가 싶더니, 터억.

    다른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무슨…….”

    손이 튀어나온 곳을 보니 거기에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길고 검은 머리가 마치 불길처럼 구불거리고 피부는 새하얀. 망량이의 불꽃과도 같은 푸른 눈을 가진 사내였다.

    그가 붙잡은 ‘어머니’의 팔이 파랗게 불타올랐다.

    “감히 나를 방해하다니.”

    무미건조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에서 쩌저적,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 같은 검은 팔들이 솟아올랐다.

    검은 괴물들의 촉수 같은 그것.

    쉬이이익!!

    그 팔은 곧장 나를 향해 뻗어져 나왔다.

    “흥, 초월자도 아닌 찌꺼기 주제에 이 녀석을 건드리려고 하다니. 아니 될 말이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밀쳤다.

    후욱!

    그 힘을 거역하지 못하고 그대로 보랏빛 꽃밭으로 넘어진다.

    푸우욱.

    넘어짐과 동시에 꽃들이 휘날렸고, 바닥이 느껴지지 않으며 밑으로, 밑으로 추락했다.

    추락하며 주위로 어떤 영상 같은 것이 영사기의 화면처럼 비친다.

    수많은 사람.

    꽃이 흩날리는 풍경.

    흰 건물.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누군가를 칭송하고 있다.

    한 여인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자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지.

    여기는.

    여기는 신금천화교의 본교회당이다.

    나를 깨우는 감각이 놀랄 만큼 선명하다.

    수많은 영상이 계속해서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지?

    여기는 어디지? 알아내야 한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과 표지판을 분간해내려고 노력한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골목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유심히 살핀다.

    너무나 많은 영상 가운데 대부분은 유의미하지 않은 정보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너무나 심취해서 찬양하고 있었다.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오싹.

    소름이 끼친다.

    이게 자신들의 교리를 위해 테러 행동을 서슴지 않는 신금천화교의 모습이다.

    어지럽고 심장이 빨리 뛴다.

    시야가 거멓게 어두워지는 것 같다.

    안 돼. 정신을 차려야 해.

    이곳이 어딘지 알아내야 해!

    “허억.”

    이내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훈련실이다.

    “이게……. 뭐지?”

    “주인님! 괜찮으세요?”

    “마, 망량아…….”

    영혼 차원 안에서 본 남자의 눈동자 색과 똑같은 푸른 불꽃이 코앞에서 타오르고 있다.

    “엄청나게 끙끙거리셨어요. 땀도 많이 났고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2시간 정도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단 말인가.”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은 도대체 뭘까.

    하지만 분명한 건.

    “신금천화교의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어.”

    “네?”

    영혼 차원에서 남자가 나를 건드리며 차원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기억 구슬을 헤집어 본 것처럼.

    오히려 그것보다 훨씬 더 선명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뭔가……. 널 닮은 사람을 봤어.”

    “절 닮았다고요? 사람이요? 제가 도깨비불인 걸 까먹으신 건 아니죠?”

    “물론이지.”

    손가락으로 망량이를 톡 건드리자 망량이의 불꽃이 파드득 놀라 삐죽 솟았다가 다시 얌전해졌다.

    “응? 어라?”

    “왜?”

    “아, 아녜요. 정전기 같은 게…….”

    망량이는 커다란 까만 눈을 깜빡거리더니 불꽃의 크기를 조금 줄였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한세희 길드장에게 연락해야겠어.”

    모든 것의 본체인 ‘어머니’를 찾아낸다면 신금천화교를 뿌리째 뽑아낼 수 있을 거다.

    연락처에서 한세희 길드장의 이름을 찾는다.

    그때.

    쿠우웅!!

    건물 바깥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린다.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린다.

    “무슨…….”

    일반 지진은 아니다. 그런 감이 왔다.

    펫 훈련실을 확인한 뒤, 안영지에게 펫들을 챙기라고 이르고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건물 밖으로 튀어 나가자마자 낯선 목소리가 반겨 준다.

    “네가 그 대적자군.”

    머리에 푸른색 브릿지를 넣은 한 남성이 대검을 들고 서 있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브릿지가 꽤 위화감이 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 길드 건물에 타격을 준 건 저 사람이 분명한 듯하다. 건물에 걸려 있는 보호 마법 스킬 때문에 금방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를 보자마자 한다는 말이 ‘대적자’라니. 어디서 왔는지 알 만하다.

    “신금천화교의 사람인가?”

    “그렇다.”

    “벌건 대낮에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간덩이가 부었군.”

    “벌건 대낮이라고 찾아오지 못할 건 없지.”

    “정부에게 쫓기는 입장일 텐데.”

    정부뿐이 아니다. 서광 길드의 한세희 길드장에게 쫓기고 있을 텐데 이렇게 여유롭게 우리 길드를 공격하러 서울 한복판까지 오다니.

    남자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핍박과 시련이 따르기 마련이지.”

    “낯이 두껍군.”

    남자의 말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그릇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두려울 정도로 확고하다. 그것이 잘못된 확고함인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스릉.

    긴말하지 않겠다는 듯 남자는 대검을 휘둘러 자세를 잡는다.

    “신금천화교의 제2 지파장, 유민국의 이름으로 널 처단해 주마.”

    “뜬금없이 자기소개는.”

    작정하고 나쁜 역할이라고 자랑하는 것 같지 않은가.

    스르릉.

    나 역시 순식간에 새벽의 검을 꺼내 들었다.

    대검이 곧게 파고든다.

    마치 하케임의 창검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큰 검이다.

    ‘저렇게 무지막지한 검을 막아낼 수 있을까.’

    스릉! 콰가가가가!!

    역시 완전히 힘으로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검을 흘려보낸 뒤, 재빠르게 자세를 다잡고 거리를 벌린다.

    촤츠츠츠츳.

    길게 밀려나는 사이, 벌써 유민국이 내 움직임을 따라잡고 있다.

    ‘확실히 강하다. 지파장이라더니.’

    그런 지파장이 갑자기 이런 곳까지 찾아왔다는 건, 역시 그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증거겠지.

    영혼 차원과 연결에 성공한 것, 그리고 거기서 신금천화교의 ‘어머니’와 조우한 것. 그리고 때마침 지파장이 신선 길드를 습격한 것.

    그 모든 것이 의도된 것일까?

    ‘쳇,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휘이익!!

    대검이 다시 한번 내게로 휘둘러진다. 이번에는 새벽의 검으로 받아내지 않고 완전히 몸을 띄워 피해냈다.

    콰과광!!

    길드 앞 도로가 완전히 반파된다.

    “이런, 이게 무슨……!”

    “침입자다!”

    신선 길드의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준아!”

    거기에는 결이와 하케임도 있다.

    “후후, 여기로 나를 찾아오다니. 한참 잘못 찾아온 거라고.”

    결이와 하케임까지 합류했다면 지파장을 사로잡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

    단번에 제압해서 서광 길드에 넘긴 뒤…….

    “과연 그럴까?”

    유민국의 턱짓과 함께.

    스스슷.

    맞은편 건물 위로 수십 명의 인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