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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40화 (240/250)
  • 제240화

    제240편

    “넥스트 레벨. 한번 각성해 봅시다.”

    한세희가 앞으로 내민 내 손을 내려다본다.

    “물론, 이게 사실 제가 넥스트 레벨로 만들고 싶다고 다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

    “펫 때도 그랬다시피, 각자 각성하는 시기가 다른데 그건 저도 언제가 될지 몰라요. 어떤 사람은 한 달이 안 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몇 개월이나 걸리기도 하거든요.”

    “그렇군요.”

    “어차피 길드장님은 펫 때문에 자주 오셔야 하니까 그 틈에 조금씩 하면 됩니……. 사실은 이미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는 했어요.”

    “……그랬군요.”

    한세희는 여전히 복잡한 얼굴이다.

    “에이, 길드장님이 얼른 각성해서 한국을 수호해 주시면 되죠. 뭘 그렇게 걱정이 많으세요.”

    “물론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은하준 씨, 당신은 조금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세희가 너무 조심스럽게 말하니까 조금 머쓱해졌다.

    “일단은 넥스트 레벨에 관해서도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 같은 길드원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길드나 기관에는 아직 알리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인화 선배랑 같은 반응이군.

    뭐 예상은 했다.

    “알았어요. 저도 일단 한세희 길드장님이 각성해야 확실히 안전해질 것 같으니까요.”

    “후우.”

    한세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별일도 안 일어났거든요.”

    “네, 맞습니다. ……물론 은하준 씨의 그 맑고 용감한 부분에 관해서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칭찬이죠?”

    “글쎄요.”

    그제야 한세희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하여튼 어려운 남자라니까.

    나도 인류 멸망이 걸려 있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쉽게 넥스트 레벨에 관해서 말하지 않지.

    결이만 넥스트 레벨로 만들어서 지구상에서 제일 강한 남자로 만들어 줄 수가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인류 멸망이 걸려 있잖아! 어쩔 수가 없다고!

    라고 쏘아붙이지도 못하고 한세희를 향해 그저 인내의 미소를 지을 뿐이다.

    ‘게다가 시계가 어쩌구 하면서 회귀 전보다 모든 게 빨라져서 마음이 급하다고.’

    이러다가 내일 당장 1분기 마지막 퀘스트랍시고 인류 멸망이 다가오면 어쩌냔 말이다.

    물론 한세희가 한 말 역시 틀리지 않았다.

    언제나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마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모를 괴팍한 각성자들도 많으니까.

    머리에 언뜻 전에 날 습격했던 용병 테러 단체가 떠오른다.

    아아, 그것 말고도 지금 당장도 신금천화교와 맞붙고 있지.

    “미안합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더니, 한세희가 눈썹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아녜요. 한세희 길드장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니까요.”

    “…….”

    한세희는 커피잔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가시게요?”

    “덕분에 생각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요.”

    “아앗…….”

    “은하준 씨를 나무라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 그리고 신금천화교 말입니다.”

    “아, 네네.”

    “지파 건물들을 속속들이 찾아내는 중입니다.”

    “정말인가요?!”

    “네. 그때 말씀하신 것처럼, 정교한 마법 스킬로 숨겨져 있어서 찾는 게 늦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파장 하나를 체포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다 은하준 씨 덕분입니다. 은하준 씨가 아니었다면 맛디아의 지파장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겠습니까.”

    “뭘요.”

    보기 드물게 너그러운 표정을 지은 한세희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뜬다.

    “아닙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힘을 빌려 주실 수 있다면 언제든지 빌리고자 합니다.”

    “물론이에요. 가능하다면 말이죠.”

    “그럼 이만.”

    “안녕히 들어가세요.”

    한세희를 내보낸 뒤, 주머니 안을 만지작거렸다. 거기에는 안사홍이 줬던 작은 방울이 들어 있다.

    “후……. 그래도 잘 찾고 있다고 하니까 다행이네.”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갔으면 했으니까.

    만지작거리고 있던 방울을 살짝 놓고는 펫 훈련실로 향했다.

    “크르릉! 뿌아뿌우!!”

    문을 열자마자 흑단이가 가장 먼저 반긴다.

    “아이구, 우리 착하고 대단한 흑단이.”

    “뿌으으르르릉~!”

    이제 너무 커져서 몸으로 밀치는 것만으로도 몸이 휘청거린다.

    각성자가 아니라면 흑단이 무게를 버티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전투 대단했어.”

    “뿌르르……. 크아웅!!”

    흑단이는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몸을 들이밀며 마구 비비적거린다.

    나 역시 마구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갸르릉, 갸르르릉.”

    “그래, 그래. 착하지. 옳지.”

    “오늘 흑단이, 영약 때문에 난리 났었다면서요?”

    안영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묻는다.

    “영약이 생각보다 너무 강력해서 애를 먹었는데, 잘 이겨냈어요.”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큰일 날 뻔했네요.”

    “그러게요.”

    나는 흑단이의 목을 긁어 주면서 맑고 붉은 눈을 본다. 홍옥처럼 반들거리는 흑단이의 총명한 눈빛을 보며 안심한다.

    그래, 뭔 일이라도 났으면 얼마나 큰일인가.

    이렇게 예쁜 흑단이한테 나쁜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지.

    “영지 씨는 슬슬 실습 나갈 때죠?”

    “앗,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센터 소식에 좀 빠삭하죠.”

    은봉 할머니를 모시고 다녀서 그런 것도 있고, 회귀로 헌터 자격증 수업 수료를 두 번이나 해서 그런 것도 있고. 빠삭할 수밖에 없지.

    “어때요. 힘들지 않아요?”

    “다행히요. 하준 님이랑 미리 훈련하고 간 덕이에요.”

    “다행이네요, 정말.”

    “센터에서 사귄 친구들이 하준 님에 관해서 엄청 물어봐요.”

    “나에 대해서요?”

    안영지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너튜브 잘 보고 있다고요.”

    “아아. 하하, 부끄럽네요.”

    “업로드가 너무 느리다고 자주 좀 올려 달라고도 하고요.”

    업로드가 느리던가.

    “이 주일에 한 번씩은 올라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사실 매일매일 새롭고 재밌는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이 주일에 한 번도 많이 올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에이. 요즘 일주일에 한 번은 기본이고 일주일 동안 몇 편이나 올리는 너튜버들도 엄청 많다고요.”

    “으잉? 정말요?”

    일주일에 몇 편이나?

    그렇게 매일 재밌는 일이 일어난다고? 너튜버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싶다.

    “하하, 전 직업이 너튜버도 아니니까요.”

    “아, 그건 그래요. 맞아요. 헌터 일이 얼마나 바쁜데. 심지어 하준 님은 펫 돌보랴 영약 만들랴. 하는 일이 너무 많으시잖아요.”

    “하하하, 그렇게 들으니까 제가 벌여 놓은 일이 너무 많네요.”

    “정말 대단하시다니까요.”

    “흠, 주변에서 다들 도와주니까 가능한 거예요.”

    “에이.”

    “진짜라니까요? 혼자서 잘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준 님은 혼자서도 잘하시는 것 같은데.”

    “절 너무 대단하게 봐주시네요.”

    “주인님이 대단하시기는 하죠.”

    포옹.

    어깨 위로 망량이가 떠올랐다.

    “에헤이, 망량이 너까지 왜 그래~ 부끄럽게.”

    “펫이랑 대화가 가능하신 것도 대단하고요. 부러워요.”

    안영지가 눈을 빛낸다.

    “망량이가 대단한 거죠.”

    “엣헤엠~”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반가운 얼굴이 펫 훈련실 안으로 들어왔다.

    “인화 누나.”

    “잘 지내고 있어? 오늘도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었다며.”

    “네, 그건 잘 해결했어요. 누나는 아침부터 신입들 데리고 던전 공략하고 오셨죠? 고생하셨어요.”

    “응. D급 던전이라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

    인화 선배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펫 훈련실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식구들이 이렇게 늘었네?”

    “하하, 그렇죠? 벌써 복작복작하죠? 흑단이 덩치가 커져서 더 그래 보여요.”

    “그러게. 흑단이 정말 많이 컸네?”

    인화 선배가 흑단이를 쓰다듬어 주니, 흑단이가 좋아서 고릉고릉 소리를 냈다.

    그걸 보고 다른 녀석들도 몰려들어 인화 선배에게 쓰다듬어 달라고 성화다.

    ‘이 정도 친화력이면 아주 성공적인데.’

    특히 놀라운 건 윙키의 반응이었다.

    “쉬이이잇…….”

    “오구, 오구. 그래. 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

    “놀랍네요. 윙키는 낯선 사람한테는 잘 안 가거든요.”

    “정말?”

    인화 선배는 어느새 자기 목에 올라와 쉬고 있는 윙키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람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원래 그런 애가 아니라니까요?”

    “나랑 잘 맞나 보다.”

    “호오…….”

    순간 좋은 생각이 났다.

    “누나, 그럼 누나가 윙키를 맡아서 훈련시켜 보시겠어요?”

    “으응? 나는 브리딩 스킬이 없는걸?”

    “윙키는 이미 브리딩 스킬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훈련된 아이예요. 다만, 사람을 가려서 제 말만 듣거든요. 그게 문제라 그냥 제가 데리고 다닐까 했는데. 선배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선배에게 맡겨도 될 것 같아요.”

    “어머, 정말?”

    인화 선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나야 너무 좋지.”

    “어차피 윙키는 길드 소속 펫이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고요.”

    “부담은! 좋아 죽겠는데? 우리 애들도 좋아할 테고.”

    “바다랑 하늘이 잘 지내고 있죠?”

    “물론이지, 키가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너도 봐야 하는데. 요즘 바빴지?”

    인화 선배는 바다와 하늘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은 윙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선배도 윙키가 무척 마음에 든 것 같아.’

    게다가 선배가 신입들과 함께 도는 던전의 강도라면 윙키에게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딱 훈련에 적당한 레벨일 터.

    윙키에게 손짓하자, 인화 선배 목에 매달려 있던 윙키가 내게로 날아왔다.

    “아직 넥스트 레벨에 도달하지는 못했어요. 그동안은 던전 공략에 나서실 때만 동행하고 펫 훈련실에 맡겨 주세요.”

    “응, 알겠어.”

    “영약도 먹여서 무럭무럭 키워야겠네요.”

    “오오. 영약 개발은 잘 되고 있니? 길드장님한테 들었어.”

    “순항 중입니다.”

    “잘됐다.”

    방긋 웃던 선배가 무엇인가 기억났다는 듯이 손바닥을 탁 쳤다.

    “아, 맞아. 이걸 건네주려고 왔었는데. 그만 깜빡했지 뭐야.”

    “음? 뭔데요?”

    “몬스터 알이야.”

    “오?”

    인화 선배의 손에는 파란색 몬스터 알이 들려 있었다.

    “웬 몬스터 알이에요?”

    “길드장님이 구해 오셨어. 네가 길드 소속 펫을 사육할 생각이니 알을 구해 오라고 했다며?”

    “아아, 맞아요. 그런데 인화 누나가 들고 오셨어요?”

    “응, 길드장실에서 같이 대화 중이었는데, 전화를 받으시더니 급하게 가 볼 데가 있다고 하시더라고.”

    “그렇군요. 별다른 말은 없으셨구요?”

    “응, 뭐라더라. 요즘은 비비안이라는 여자가 귀찮게 굴지 않아서 좋다고 하던데. 너한테 그 말도 전해 주라고 하셨어.”

    “비비안이라고…….”

    파란색 알을 받아 들면서 알의 색을 닮은 눈동자를 떠올린다.

    “마이클 녀석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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