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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31화 (231/250)
  • 제231화

    제231편

    투투투투.

    헬기가 다시 서울 시내에 진입하고 있다.

    마이클은 내내 꽁해진 표정으로 투덜거리다가 겨우 한마디를 건넸다.

    “내가 비비안의 집적거림도 전부 처리해 줬는데.”

    “으응?”

    비비안이라면 영국의 각성자. 대호 형이 전화로 귀찮게 한다던 그 사람 아닌가.

    마이클이 뭘 어떻게 했다고? 처리?

    “처리해 줬다니, 아직 우리 길드장님은 그런 말 없던걸?”

    “흥, 두고 보라고.”

    “무슨 짓을 했길래.”

    “당연히 돈으로 좋게 해결했지! 필립스 가문이 갱단인 줄 알아?”

    마이클은 뾰로통한 채로 고개를 홱 돌린다. 결이와의 결투에서 진 것이 무척이나 속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어른이었어도 1:1 결투에서 지면 자존심이 엄청나게 상할 터였다. 아직 청소년인 마이클이, 그것도 미국에서는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다는 녀석이 인정하고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그래도 마이클은 처음 눈물을 보인 것치고는 헬기에서는 얌전하게 잘 있는 편이었다.

    투투투투. 투투투…….

    헬기에서 내린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1층으로 내려왔다.

    “이제 헤어지는 건가?”

    결이가 묻자 마이클은 볼을 부풀린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거야?”

    내 질문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여기 이 건물에서 지낼 거야. 한동안은.”

    “아, 여기 필립스의 건물인 건가?”

    “응.”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동안 지내는 이유는 뭐야. 또 하준이를 넘보려고?”

    “흥.”

    마이클이 입술을 삐죽거린다.

    “납치 같은 건 안 돼.”

    “다시 말하지만 필립스 가문은 갱단이 아니야. 그런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고.”

    나는 슬쩍 경호원의 눈치를 봤다. 그는 선글라스를 낀 채면서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린다.

    하기야 그렇게 돈이 많은 집안이 불법적인 일에서 정말 한 치의 오점 없이 깨끗하겠냐마는…….

    하지만 마이클은 아직 그런 일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좋은 승부였다.”

    마이클이 결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물론……. 뭔가 인정하기 어려운 술수를 쓴 것 같기는 한데.”

    “아직도 그 소리냐.”

    결이는 마이클의 손을 잡아 흔들어 주면서 씩 웃는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붙어 줄 테니까. 계속 도전해 보라고. 하지만 나도 성장기 못지않게 빠르게 강해지고 있으니까. 날 이기려면 애를 많이 써야 할 거야.”

    “윽.”

    마이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쳇, 두고 보라고.”

    마이클이 휙 돌아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경호원이 다급하게 그 뒤를 따라 들어간다.

    “후우.”

    “하하하, 너도 꽤 긴장했던 것 같은데?”

    “당연하지. ……아니? 아닌데? 긴장 안 했는데? 너도 날 믿고 있었잖아.”

    “흐흥.”

    “뭐야, 그 웃음은?”

    “아무것도 아니야.”

    “음?”

    결이가 내 앞으로 가로막는 시늉을 한다.

    “에헤이. 아저씨 비키세요. 집에 가야죠.”

    “믿고 있었던 것 맞지?”

    “맞지, 맞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

    “뭐, 어쨌든 하준이가 사 준 이 팔찌가 인정해 줬으니까.”

    “뭐야, 그걸로 된 거야?”

    “응.”

    우리는 킬킬거리면서 택시를 잡아탔다.

    * * *

    “우우, 떨리네요.”

    안영지가 이것저것 배낭에 물건을 챙기면서 부르르 떨었다.

    챙기는 것이라고 해 봤자 필기구나 공책 따위였다.

    “괜찮아요. 다른 각성자들도 다 있고. 친하게 지내요.”

    “이거 완전 초등학교 처음 가는 8살짜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인데요.”

    “에이, 초등학생은 무슨.”

    내가 손을 저어 보이자 안영지가 씩 웃어 보인다.

    오늘은 그녀가 처음으로 각성자 센터에 가는 날이다.

    그동안 각성자 관리부 시스템이 발전해서 모든 등록을 인터넷으로 처리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정말로 오늘 처음 각성자 센터에 가는 거다.

    “분명 S급의 등장으로 센터 앞이 바글바글할 테니까, 오늘은 데려다줄게요.”

    “아, 아뇨! 아뇨, 아뇨! 괜찮아요!”

    “에이, 우리가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죠.”

    “진짜로 초등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네요.”

    안영지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영지 씨는 브리딩 스킬만 조심하면 되고 다른 건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네.”

    “사실 이제 꽤 강해져서, 브리딩 스킬을 숨기지 않아도 될 정도긴 한데.”

    “아앗, 그건 아녜요!”

    “아니긴요.”

    확실히 그녀는 그간의 비밀 훈련으로 엄청나게 강해졌다.

    역시 S급이라는 말이 어울린달까?

    ‘같은 기수에서 안영지보다 강한 사람은 없을 거야.’

    트라우마를 이겨낸 그녀는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했다.

    “자, 갑시다.”

    “네!”

    뒷좌석에는 결이와 하케임이 탔다.

    “우리 강쉐이 헌터 등록 하러 가는 거 이 할매도 보러 가야 하는디.”

    은봉 할머니가 길드 건물 앞까지 배웅을 나오시며 손을 흔든다. 할머니는 오늘 외국 거래처와 미팅이 있으시다.

    “잘 댕겨 오그래이~”

    “다녀올게요, 할머니!”

    부우웅.

    차를 몰아 순식간에 각성자 관리 센터에 도착한다.

    “최대한 화려하게 데뷔해 보자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끌고 온 것 자체가 안영지를 위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끌어야 그녀는 더욱 안전해지니까. 나중에 브리딩 스킬을 밝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도 있다.

    “어! 저기! 저기!”

    “은하준이다!”

    “신선 길드의 S급들이잖아!”

    “S급들이 죄다 모였군.”

    “역시 S급 콜렉터.”

    센터 앞을 채우고 있던 기자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영지 씨, 당당하게요.”

    “앗, 네넵!”

    나와 결이, 하케임이 안영지를 사이에 두고 센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안녕하세요! 신선 길드의 새로운 S급 각성자라고 들었습니다!”

    “안영지 씨?! 어떻게 신선 길드에 들어가기로 하신 겁니까?! 거기는 S급이 너무 많지 않나요?”

    “은하준 씨, 이번에 안영지 씨를 영입한 게 은하준 씨라는 소문이 돌던데요. 어떻게 주위에 이렇게 많은 S급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S급 여러분! 은하준 씨에게 어떤 매력이 있길래 함께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앞으로 나가자 기자들이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앞다투어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 공세를 펼쳤다.

    “안영지 씨, S급으로 각성한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아, 저……. 사실 좀 오래됐습니다.”

    “오래되셨다고요?! 그런데 왜 등록을 이제야 하시는 겁니까? 은하준 씨의 계획인가요?”

    “네? 아뇨, 아뇨. 그저 제가 몸이 안 좋았고 준비가 안 됐을 뿐입니다. 하준 님은……. 그런 저를 도와주셨어요. 오늘 이렇게 센터에 등록할 수 있도록요!”

    “은하준 씨가 안영지 씨에게 어떤 도움을 줬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안영지가 눈을 빛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전에 비밀에 부치기로 했던 사항들은 철저하게 숨기면서 말하고 있다.

    이미 말을 맞춰 뒀기에 나나 다른 사람이 함께 말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최대한 뒤로 빠져 있고 안영지가 되도록 인터뷰하게끔 했다.

    “자자, 여러분 감사하지만 이제 강의가 시작될 때네요. 그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간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안영지가 강의실까지 무사히 도착하도록 이끌었다.

    “오늘 잘 하고 와요.”

    “네, 하준 님. 저 자신 있어요!”

    안영지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화이팅.”

    결이와 하케임도 손을 흔들어 주고는 센터를 빠져나왔다.

    우리가 센터를 빠져나올 때까지도 기자들은 사라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은하준 씨!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한결 씨! 하태림 씨!”

    “도망가자.”

    “좋아.”

    후다닥.

    우리는 황급하게 움직여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자들이 따라잡기 전에 도로에서 따돌린 뒤 길드 건물로 돌아왔다.

    물론 길드 건물 앞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노력이 가상해서 몇 마디 인터뷰를 해 준 뒤 안으로 들어온다.

    “꺄웅.”

    흑단이가 썬더와 다른 아이들까지 데리고 호다닥 안긴다.

    “방에 잘 있으라고 했지! 흑단이는 이제 혼자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큰일이야.”

    “캬웅! 캬웅!”

    발치에서 불개가 마구 돌아다니면서 비비적거린다. 작은 녀석이 힘이 좋다.

    “흠흠.”

    “음?”

    헛기침을 하면서 나타난 건 류환희였다.

    “오랜만이다, 환희야.”

    “며칠 전에도 봤으면서 오랜만은 무슨.”

    안색이 퀭한 환희가 툴툴거리면서 말한다.

    “맡긴 거, 조사하느라 힘들어 죽겠어.”

    “아.”

    검은 괴물을 처치하고 얻은 조각 이야기다.

    “어때?”

    “어떻긴, 알아낼 수 없는 것들뿐이야.”

    환희는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다.

    “상태가 정말 안 좋아 보이는데.”

    “그간 밤을 새운 모양이야.”

    결이와 하케임이 서로 속닥거렸다. 그들 말대로 환희는 안색만 안 좋아 보이는 게 아니었다. 머리는 푸석하고 떡이 져 있었다. 그리고 주위로 풍기는 커피 냄새.

    ‘각성자한테 커피가 듣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환희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연구실 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갖가지 무기의 프로토타입들이 굴러다니고, 뭐라고 쓰인 것인지 모를 서류도 나부끼고 있었다.

    책상과 바닥에는 커피로 추정되는 것들이 쏟아져 있기도 하고 본래 그걸 담고 있었던 것 같은 컵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거의 전쟁이 났던 것 같은데.”

    “그야말로 전쟁이 있었지. 이놈과 나의 전쟁. 알겠어? 그만큼 엄청난 걸 가져온 거야. 정말 며칠 동안 미칠 뻔했다니까.”

    “미치진 마시구요.”

    결이의 말에 환희가 매섭게 흘겨본다.

    “으흠, 흠. 그래도 안 미쳐서 다행이야.”

    환희는 조각을 거치해 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막 휘갈겨 쓴 종이 몇 장을 꺼내 보여 준다.

    “뭐라고 되어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 아 그건 내가 보려고 써 놓은 거야. 다시 줘.”

    “음?”

    “하여튼 쉽게 말하면, 이건 지구에는 없는 물질로 만들어져 있어. 전부 다는 아니지만.”

    “뭐?”

    “하준 오빠가 물어본 것처럼 다른 차원의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면 쉬우려나. 뭐 그런 셈이지.”

    환희가 너무 쉽게 말하는 바람에 그 말의 무게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망량이가 말했던가. 그게 맞아. 그 씨앗인지 뭔지랑 거의 같은 성분으로 되어 있어.”

    “역시 그렇죠?!”

    불현듯 망량이가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검은 괴물과 신금천화교가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아마 그렇겠지.”

    나를 비롯해 결이와 하케임, 환희의 얼굴도 어두워진다.

    “대체…….”

    “그 어머니라는 존재, 더 깊이 알아볼 가치가 있겠어.”

    환희가 중얼거렸다. 눈빛에 왠지 모를 광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예민한 빛이 어려 있다.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의 눈빛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다들 애쓰곤 있어.”

    “그리고 이 샘플을 더 모아 오도록 해. 다른 검은 괴물에게서도 말이야.”

    환희는 진지한 얼굴로 책상 위에 올려진 컵을 집어 들어 입에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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