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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27화 (227/250)
  • 제227화

    제227편

    “보호자는 필요 없어. 은하준, 당신이 내 보호자가 될 거니까.”

    아니, 얘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으엉?”

    소년이 고개를 갸웃한다.

    지금 갸웃거릴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란 말이다.

    “어……. 저기, 무슨 말인지 모르겠거든.”

    “내 이름은 마이클 필립스야.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가자.”

    마이클 필립스……. 마이클 필립스.

    이름이 익숙하다.

    아, 뭐야. 나는 이 녀석을 알고 있다. 얘는 미국의 S급 헌터잖아? 5살이라는 나이에 S급으로 각성해서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것도 그거지만, 필립스 가문은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재벌이다. 그 가문에서 S급 각성자가 나온 게 엄청난 이슈였지.

    신의 축복을 받은 가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야. 가문의 힘 덕분에 어린 나이에 각성이라는 위험 부담을 안고도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마이클 필립스.

    내 기억으로 10년 뒤쯤에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헌터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 그런데 이 녀석이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무슨 말이야. 하준이가 미국으로 왜 가.”

    “으어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결이의 것이다. 언제 나타났는지 결이가 내 곁으로 섰다.

    “넌 뭐야, 꼬맹이.”

    “꼬맹이? 꼬맹이 아니야. 나는 마이클 필립스다.”

    “마이클 필립스고 뭐고……. 마이클 필립스? 그 미국 재벌 각성자?”

    “잘 알고 있네. 그러니까 이제 은하준은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가는 거다.”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결이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하준이는 한국을 떠나지 않아.”

    “하지만 내가 미국으로 초대할 건데.”

    “네가 미국으로 초대한다고 해도 가지 않아.”

    “어째서?”

    “너야말로 어째서 하준이가 널 따라갈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난 모든 걸 줄 수 있으니까.”

    “하?”

    마이클 필립스는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뭐야, 이게…….’

    나는 아직 당황한 채로 마이클 필립스와 결이가 옥신각신하는 걸 지켜보고 있다.

    당연히 마이클 필립스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건 좀 오랜만인데……. 손예원이나 신재민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너튜브에서 봤어. 은하준을. 그가 몬스터를 사육하는 모습을 봤지. 나는 감동했어.”

    “하아?”

    “은하준은 더 좋은 환경에서 몬스터를 사육할 수 있어. 필립스의 힘이 있다면 말이야. 나는 그걸 제공해 줄 수 있어.”

    마이클 필립스가 또랑또랑하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그러고는 손을 펼친다. 작은 손바닥을 얼른 쥐라는 듯.

    “그런 제안쯤은 중국의 화룽에서도 해 왔던 말이야.”

    결이가 받아치자 마이클 필립스가 표정을 찡그린다.

    “필립스가 제공할 수 있는 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할걸. 화룽이 제공한다는 건 발밑에도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은하준을 필립스의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야. 우리 가문의 길드인 필립스 길드의 주주로 받아 줄 생각이고.”

    “어째서?”

    “당신에게서 미래를 봤으니까. 당연히 지원하고 싶지. 이건 흔치 않은 기회야, 은하준. 이 세계를 위한 일이고.”

    세계를 위한 일. 그래, 그렇겠지.

    확실히 필립스와의 친밀한 관계는 미국의 수많은 각성자를 넥스트 레벨로 만들 좋은 기회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는 아니다.

    “저기, 정말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미국으로 갈 생각이 없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필립스의 일원이 될 생각이 없어.”

    “어째서지?”

    마이클 필립스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반면 옆에 서 있던 결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이 된다.

    “내게는 이미 가족이 있거든.”

    “그럴 리가. 은하준은…….”

    “그래, 이미 조사를 끝내 놨겠지. 하지만 이제 신선 길드 사람들이 내 가족이야.”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이 마구 흔들렸다.

    “물론 필립스와 친구가 되는 편은 나도 좋…….”

    “나, 나는……. 이해가…….”

    한 번도 거절당해 본 적 없다는 순진무구한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도련님!”

    저 뒤에서 새카만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달려왔다.

    “도련님, 혼자 돌아다니시면 위험합니다. 아무리 도련님께서 S급 각성자이시지만 미성년자에 여기는 외국…….”

    파앗!

    마이클 필립스가 경호원을 밀치고는 혼자 복도 끝으로 달려가 버린다.

    “도, 도련님!”

    경호원은 마이클 필립스와 같이 있던 우리에게 경계를 하기도 전에 다시 소년을 따라 달렸다.

    “뭐야, 저 어린애는.”

    결이가 황당하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어라라……. 이렇게 가 버리는 건가? 어린애는 진짜 어린애인데.”

    황당한 대면이었지만, 어쩐지 꼬마 녀석이 신경 쓰인다.

    * * *

    마이클 필립스의 머릿속은 비상벨이 울리는 소리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답을 들은 충격 때문이었다.

    부끄럽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뒤에서 쫓아오는 경호원의 소리 같은 건 들리지도 않았다.

    ‘날 거절하다니.’

    자신을 거절한 사람은 이때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람. 그게 마이클 필립스였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에서 그의 영상을 처음 봤다. 그리고 마이클 필립스는 은하준에게 완전히 꽂혔다.

    영상을 본 순간 내면의 강렬한 불꽃 같은 걸 느꼈다. 이건 운명이라고. 그는 자신과 같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를 도와야 한다는 필연적인 계시 같은 게 느껴졌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마이클 필립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단번에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온 것 아닌가. 온종일 비행기를 타는 일은 마이클 필립스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은하준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신의 제안을 거절해 버릴 수가!

    ‘내가 가족이 되어 준다고 했는데!’

    마이클 필립스는 은하준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고심했다.

    그리고 판단을 내렸다. 은하준에게는 없고 자신에게는 있는 것. 소중한 것을 모두 주자. 그렇다면 은하준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다.

    그게 상대방에게 얼마나 어이없는 사고방식인지는 상관없었다. 마이클 필립스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는 어린아이일 때부터 모두의 존경을 받았고 그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늘 그렇게 말했다. 타고난 심성이 이렇게 바르고 고와서 얼마나 다행이냐면서. 선하고 옳다고. 과연 미국을 이끌 중요한 존재라고.

    ‘어째서 내 제안을 거절한 거지?’

    하나부터 열까지 은하준이 그의 제안을 받아 줄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마이클 필립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은 은하준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착한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그를 위해서 한국어도 공부했는데, 그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도련님!!”

    빠아앙!!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이클 필립스는 날아오는 트럭 앞에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어어…….”

    어지러운 머릿속과 복잡한 마음 때문인지 마이클 필립스는 완전히 멍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부딪힌다.’

    S급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트럭 정도와 부딪히는 것은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그를 좀 더 굼뜨게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차르르륵!

    반투명한 사슬이 그와 트럭 앞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파앗!

    누군가가 강하게 끌어안아 마이클 필립스를 낚아챘다.

    “윽!”

    마이클이 올려다보자, 익숙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은하준…….”

    “이 앞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모양인데…….”

    중얼거리던 갈색 눈동자가 마이클을 내려다본다.

    “괜찮아? 꼬맹이.”

    마이클은 생각했다.

    그래, 은하준은 생각보다 착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 그는 특별한 존재가 맞다.

    * * *

    “또 온다. 결아!”

    “응, 맡겨 둬.”

    결이가 튀어 올라 날아오는 자동차들을 베어 낸다.

    스각, 쿠우우웅!!

    잘린 차체가 양옆으로 갈라져 처박힌다.

    “어이, 마이클. 정신 차려. 괜찮아?”

    “어, 어어…….”

    마이클 필립스는 멍하니 내게 안겨 있을 뿐이다.

    “이봐, S급이잖아. 정신 차리라고.”

    “으, 으응…….”

    “도련님은 한 번도 몬스터와 대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뒤에서 경호원이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한 번도?”

    “그야, 미국에는 어린이 보호법이 있으니까.”

    “으음……. 그렇군.”

    그래, 생각해 보니 마이클 필립스는 어린 시절 각성한 것에 비해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업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 거였군.

    “경호원분은 각성자죠?”

    “네, A급…….”

    “그럼 도련님 좀 맡아 주시죠.”

    “앗, 은하준!”

    마이클 필립스가 경호원의 손에 넘겨지기 전에 나를 불러 세웠다.

    “고, 고마워. 구해 줘서.”

    “뭘 이런 것쯤이야.”

    “…….”

    마이클은 뭐라고 더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계속 거기에 멈춰 서 있을 수 없었다.

    타앗!

    헤르메스의 신발을 이용해 단숨에 높이 뛰어오른다. 저기 멀리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포털 쪽으로 접근하는 결이가 보인다.

    우선은 더 큰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던전 브레이크를 잠재워야 한다.

    “결아!”

    “응!”

    츠츠츳!

    소울메이트가 연결되고 결이의 수치가 보정되는 게 느껴진다.

    “저 자식, 마구잡이로 뭔가를 던지고 있잖아?!”

    “검은 괴물.”

    저 멀리 보이는 건 기다란 촉수로 차나 전봇대를 뽑아 던지고 있는 괴물의 모습이다.

    검은 기운을 풍기고 있는 바로 그 괴물.

    “정말 요즘은 저 녀석들이 자주 나와.”

    이상하다.

    이 역시 내가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렸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시곗바늘을 전진시키는 일이 더 일어난다면 무엇이 얼마나 더 어긋나게 되는 걸까.

    주머니에 들어 있는 방울을 의식하며 나는 결이의 뒤를 쫓았다.

    파츠츠츳!

    결이가 벽조목 손잡이를 꺼내자 영롱한 전격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단 저 녀석의 움직임을 막는 게 우선이야! 그 틈에 나는 사람들을 대피시킬게.”

    “응, ……베어 주지.”

    휘이익!!

    결이의 번개 같은 검이 밤하늘을 닮은 색의 촉수에 쇄도한다. 콰츠츠츳!! 파지지지직!!

    “크어어어어!!”

    온통 촉수 덩어리인 괴물 녀석이 신음을 흘린다.

    “하준이 너는 너무 근처에 접근하지…….”

    휘리릭!!

    촉수 중 하나가 결이를 덮친다. 그 속도가 무척 빠르다.

    쿠와앙!!

    촉수는 곧장 결이를 바닥으로 메다꽂는다.

    “결아!”

    파지지지직!!

    결이를 꽉 쥔 채 바닥에 처박힌 촉수에서 전기가 튀어 오른다.

    “크에에엑!!”

    괴물의 촉수가 깜짝 놀라며 힘을 푸는 순간, 스가각!!

    결이의 검이 촉수를 베어 낸다.

    쿠웅! 쿵!

    촉수가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떨어진다.

    “큭, 괜찮아! 이쪽으로 오지 마! 쿨럭.”

    심하게 일어난 먼지 구덩이에서 결이가 튀어 올랐다.

    “응, 네 생각이 옳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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