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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25화 (225/250)
  • 제225화

    제225편

    “뭐? 망량아, 방금 뭐라고 그랬어?”

    나는 어깨에 있던 망량이를 냉큼 손 위에 올렸다.

    “응? 네? 제가 뭐요?”

    “방금 시곗바늘이니 뭐니 그렇게 말했잖아.”

    그건 내가 시스템 경고를 봐서 아는 말이다. 던전 안의 세계가 붕괴하기 전에 분명 그렇게 떴었다.

    그리고 나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지. 또다시 세계가 무너질까 봐.

    그런데 망량이가 그 말을 어떻게 아는 걸까.

    “제가 그랬어요?”

    망량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응! 방금 그랬잖아!”

    “아……. 으음, 흠? 그랬던가?”

    “뭔가 기억이 났다던가?”

    “별로 그렇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지?

    잃어버린 기억이 무의식중에 얼결에 나온 걸까?

    “잘 생각해 봐. 시곗바늘이 전진하면 왜 안 좋은 건지. 그건……. 그건 세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본다.

    이번에도 시스템 알람이 나를 막을까.

    “세계가……?”

    “세계가 무너지잖아.”

    조용하다.

    시스템 알람도 경고도 없다.

    뭐야?

    까만 망량이의 눈이 깜빡거린다.

    “아?”

    전혀 모르는 눈치다. 이럴 수가.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이 말을 해서 시스템 알람이 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지금까지 세계가 무너질까 봐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설마하니……. 이 말을 뱉은 만큼은 시곗바늘이 이미 움직였기 때문에 허용 가능이라던가…….’

    억지처럼 느껴지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는 건.

    “각각의 던전이 각각의 세계라는 것도……. 몰라?”

    깜빡거리던 망량이의 눈이 커진다.

    “각각의 세계라고요?”

    “각각의 차원……인 세계. 그때 같이 들었었잖아. 던전이 붕괴됐을 때.”

    “그런…….”

    망량이는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하지만 주인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알겠어요!”

    “그래. 네가 방금 이 방울 아이템을 쓰는 건 시곗바늘을 앞당기게 될 것 같다고 했어.”

    “우으……. 그렇군요.”

    푸른 불꽃이 꼬물꼬물거리며 팔을 만들어낸다. 그러고는 제 머리를 꽉 붙잡는다.

    “의식하고 말한 건 아니었어요. 제 기억이 새어 나온 걸까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어쨌든…….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이걸 사용하는 게 좀 꺼려지긴 하네.”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도 있어요. 아니, 그러니까, 정확히는 정확한 기억이 아닌 게 맞긴 한데…….”

    “으음……. 뭐랄까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되네.”

    “네?”

    적어도 이 정도로 세계에 관해 말하는 것이 더는 세계의 파괴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걸로 결이한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더 생겼다.

    하케임의 세계와 기억에 관해서도 뭔가 더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여어, 하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대호 형이 있었다.

    “길드…… 형.”

    “그래. 잠깐 이리 와 볼래?”

    형을 따라 길드장실에 들어갔더니 대뜸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왜요? 알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것도 그건데. 외국에서 계속 연락이 온다.”

    “무슨 연락이요? 펫 부화랑 훈련 때문에요?”

    “그래.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파.”

    대호 형은 장난스럽게 혀를 내두르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게요. 저한테 사적으로 들어오는 컨택도 계속 있고.”

    펫 훈련실에 도착했다는 손예원의 택배가 떠올랐다. 얼른 까서 모두와 나누어 먹어야 하는데.

    “다들 아주 끈질겨. 특히…….”

    “특히?”

    “영국의 비비안 밀러가 공격적으로 대시하고 있어.”

    “공격적으로요?”

    “그래. 너와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난리더군.”

    “저랑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을 텐데요.”

    “그렇게 설명해도 소용없었어. 언제 그녀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조심하도록 해.”

    “조심……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 그 공격적이라는 게 정말 공격한다는 건 아니고.”

    “그렇겠죠. 뭐 저를 영입하기 위해서 강수를 둔다는 건데…….”

    “그래. 아예 우리 신선 길드를 매입하겠다고 하더라니까.”

    “네?”

    굉장한 박력이다. 물론 서광 길드에서도 그런 기색을 비치긴 했지만, 심지어 외국 길드에서 그런 시도를 할 줄이야.

    그만큼 내 몸값이 어마어마해졌다는 뜻이겠지.

    “과연 공격적이네요.”

    “그렇다니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연락이 오는지. ……진짜로는 공격을 안 하겠거니 했지만, 사실 공격해 올지도 몰라.”

    “……에이.”

    에이가 아니다. 사실 공격은 이미 당한 적 있으니까.

    비비안 밀러라…….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영국의 유명한 S급이지. 내 소문이 거기까지 퍼졌구나.

    ‘하기야 전 세계에 두 명밖에 없는 몬스터 브리더니까.’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나머지 하나는 안영지지만.

    “하여튼 알아두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봤자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게 별것 있겠냐마는.”

    대호 형이 어깨를 으쓱한다.

    ‘대비라…….’

    나는 길드장 사무실에서 나와 곧장 펫 훈련장으로 갔다.

    “영지 씨!”

    “아, 하준 님. 돌아오셨네요!”

    “삐우!”

    “삐약!”

    “스으으……. 샤아…….”

    안영지와 함께 애들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택배는 어디 있어요?”

    “여기요.”

    안영지가 내민 택배는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으응? 과자가 맞나?”

    “꽤 무겁던데요.”

    “흐응.”

    찌익. 찌이익.

    종이 상자를 뜯고 내용물을 확인한다.

    “……과자네요.”

    “그렇다니까요.”

    “앗, 어머! 그런데 이거 굉장히 유명한 과자예요!”

    “으응? 정말요? 뭐 어디서 어렵게 공수해 오는 거라고 하더니 거짓말은 아닌가 보네.”

    “아닌 게 아니라……. 이건 옛날 프랑스 왕실에서 먹었던 수제 초콜릿이라고 해요. 여기. 설명서도 있잖아요.”

    작은 종이에 어쩌구저쩌구 설명이 길다.

    “절대 깨물어 먹지 마시오.”

    “으응. 초콜릿이 워낙 고급스럽다 보니 혀로 녹여 먹는 게 제일 맛있대요.”

    “오오, 신기하네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앗……. 제과제빵에 좀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런 초콜릿을 이렇게나 많이 보내다니. 손예원도 참 대단하다. 손이 크다고 해야 하나. 이거 신선 길드원 전원이 나눠 먹어도 되겠다.

    “호오……. 그럼 하나 먹어 볼까. 자, 영지 씨도.”

    “감사합니다!”

    쏘옥.

    손가락만 한 초콜릿이 입안으로 쏙 들어온다. 따뜻한 혀에 닿자마자 초콜릿이 사르륵 녹는다. 그러자마자 퍼지는 그 깊은 향기란.

    절대로 미식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내가 먹어도 이건 진짜다!

    그렇게 무릎을 치게 되는 맛이었다.

    뭐랄까 쌉싸름한 카카오의 풍미가 과일 향을 실어 나르는 느낌이랄까? 분명 과일은 들어가지 않았는데 너무나 향기로워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가 있지? 그러니까 내 어휘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헉, 빨리 결이를 불러야 해.”

    “우움! 진짜요!”

    휴대폰을 열고 재빨리 결이를 부른다.

    연락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땀을 흘리며 결이와 하케임이 등장한다. 둘이 신나게 훈련 중이었던 것 같다.

    “초콜릿?”

    “과자다!”

    “또 그 여자가 보낸 건가?”

    결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초콜릿을 내려다보지만, 내심 기대하는 얼굴이다.

    “자. 진짜 맛있어.”

    입으로 쏘옥 넣어 주자 의심이 가득하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진다.

    “씹지 말래. 녹여 먹는 거래.”

    “앗, 나도 나도! 은하준! 나도!”

    “네가 집어 먹어도 되잖아.”

    “아이참, 훈련 중에 온 거라 손이 더럽단 말이야. 아아~”

    결이가 웅얼거리자 하케임이 참새처럼 입을 벌리고는 허리를 숙인다. 이렇게 커다란 아기 새라니.

    “음~”

    “하케임도 씹지 말고 녹여서. 어때?”

    “으으음~ 이거 진짜 맛있다. 이런 맛은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아. 이전 차원…….”

    하케임이 말을 하다 말고 안영지의 눈치를 본다.

    “……?”

    “이전……이 아니라, 이건 차원이 다른 맛이야!”

    “아하하, 정말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싱긋 웃는다.

    하케임도 눈치가 많이 늘었다.

    “길드원들이랑 다 같이 나눠 먹어야겠다. 어때, 하케임 네가 좀 나눠 주고 올래?”

    “이렇게 많다니. 그 여자 통 한번 크군. 알겠다. 내게 맡겨라.”

    “이런 걸 준다고 해서 넘어가면 안 돼. 하준아.”

    결이가 입을 오물거리면서 강경한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한결이 저가 넘어간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하지만 맛있는 걸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인걸.”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난 아직도 그 여자가 저지른 무례함을 잊지 못해.”

    “사실 따지고 보면 신재민이 더 얄밉다고 생각해, 난.”

    “부정할 순 없군.”

    그래도 손예원 덕분에 잠깐이지만 이런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요 며칠 동안 전혀 달콤할 만한 일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달콤함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앗, 카드가 있었는데 이제야 봤어요.”

    안영지가 카드를 건넨다.

    손예원이 직접 쓴 엽서 카드였다.

    ‘내 정성을 꼭 기억해 줘.’

    끝에는 하트까지. 정성이긴, 정성이다.

    “삐우우.”

    “응? 흑단이도 먹고 싶어?”

    “몬스터가 초콜릿을 먹어도 되나?”

    “글쎄. 강아지나 고양이는 초콜릿을 먹으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르르르…….”

    흑단이가 초콜릿을 들고 있던 내 손 냄새를 계속 맡으면서 혀를 할짝댄다.

    “끼우우웅……. 그르르…….”

    살짝 걱정이 되어서 손을 빼니 아쉽다는 눈으로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드래곤은……. 다르려나?”

    “아무래도 그렇긴 할 테지만.”

    안영지 역시 아는 바가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잘못 먹었다가 큰일 나면 어떡해.”

    “끼우우, 삐우우웅…….”

    수달의 것 같은 짧고 퉁퉁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흑단이가 이번에는 배를 까뒤집는다.

    “으으, 귀엽잖아. 귀여움으로 공격하지 말라고!”

    “귀엽다고 넘어가면 안 된다. 하준아. 그러다가 큰일 나는 수가 있어.”

    “하지만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알아채지 않나요? 물론 이 녀석은 몬스터긴 하지만…….”

    “아니야, 영지 씨. 개들은 뭐든 먹는다고. 예전에 일하던 곳 사장님이 개를 키웠는데 초코바를 한 상자나 뜯어 먹어서 난리가 났었어.”

    “어머! 어떡해요?! 그럼 그 개는…….”

    “과산화수소수인가? 그걸 마시게 해서 죄다 토해 내게 했지. 그 뒤론 강아지랑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버려서는 사장님이 주는 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해.”

    안영지의 표정이 안도감인지 안쓰러움인지 모를 감정으로 찌푸려졌다.

    “삐우우우……. 가르르르…….”

    발밑에서는 흑단이가 계속 조르고 있다.

    난관이다.

    저 귀여운 얼굴을 보자니 냉큼 주고 싶지만, 그러다가 큰일이 나면? 나도 과산화수소수를 먹여야 하나? 드래곤이 그런 걸로 토할 수는 있나?

    하긴 우리 흑단이는 엄청나게 똑똑한데, 게다가 금룡의 영이 섞여 있지 않은가. 무의식중에라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별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역시 만일을 대비해서 주지 않는 게 맞는 거겠지.

    터업.

    터업?

    잠깐 방심한 사이에 흑단이가 초콜릿 박스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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