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3화
제223편
“질투는 무슨 질투!”
“왜, 한결 너는 은하준을 매번 독점하고 싶어 하잖아.”
하케임의 말에 결이의 얼굴이 더욱더 달아오른다.
“도, 도, 독점?!”
“마치 친구는 너 하나밖에 없다는 듯이 굴잖아. 안타깝게도 은하준은 성격이 좋아서 친구가 많을 수밖에 없단 말이다. 이제 인정하라고.”
“뭐, 뭐어!”
“뭐야! 둘이! 이상한 걸로 다투지 마!”
말려 보지만, 결이와 하케임 둘 사이로 묘하게 스파크가 튄다. 이거 정말로 결이의 스파크는 아니겠지.
“어른스럽지 못하다, 한결.”
“그런 게 아니라고.”
“어허어!”
나는 겨우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그냥 사이에 껴 낑낑거리는 날 봐서 두 사람이 물러나 준 것 같은 모양새지만. 하기야 S급 두 사람을 내가 힘으로 어떻게 이기겠냐만.
“은하준이 한결을 너무 오냐오냐 다뤄서 그런 거다.”
“응? 내 잘못이 되는 건가?”
“뭣……! 하준이 잘못이 아니야!”
“이 총명한 하케임이 보기에는 둘 다 문제가 있어.”
“에엥?! 문제라고?! 어디가! 우리의 이 두터운 우정이?”
“난 그냥…….”
결이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다문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하케임은 씨익 웃더니 다시 스킬을 발동했다.
스스슷.
바닥에 쏟아졌던 물이 그대로 다시 솟아오른다. 젖었던 바닥이 뽀송해진다.
“이 스킬 레벨을 올리면 굳이 주변에 물이 없더라도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가지고 조종할 수 있게 될 거야.”
하케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우리를 와락 부둥켜안는다.
“윽……! 뭐야, 갑자기!”
“너희들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사이좋게 지내자!”
“으응?”
“와하하하!”
하케임은 이제 우리 둘을 번쩍 들기까지 하고 자리에서 붕붕 돌았다. 결이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지만 하케임을 뿌리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 그러니까 협력 훈련을 잘 해 두자고.”
“응!”
“……그래.”
토옥.
하케임은 나와 결이를 내려놓고 물로 만든 공을 내밀어 보인다.
“여기에 한결의 전기를 품게 해서.”
“음, 그렇군. 그런 방식으로 전투할 수도 있겠군.”
“던전에 가서 시험해 보자.”
S급인 이 둘의 훈련은 이 작은 훈련장으로는 무리일 게 분명하다. 길드 건물을 지키려면 역시 던전이 짱이지.
그런 김에 애들을 데려가 펫 훈련도 함께 하면 좋겠다.
“일단은 작은 물방울로 연습해 보고.”
“그래. 한결은 전격의 강도를 조절하는 법도 좀 익혀야 해. 항상 마나 소비가 크니까 말이야. 물론 그렇게 마나를 막 쓸 정도로 마나통이 큰 덕분이겠지.”
하케임의 말에 결이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인정하는 분위기다.
결이의 어깨에 손을 터억 올리고는 토닥토닥해 준다.
“하케임과 훈련하면서 더욱 강해지는 거야.”
“응.”
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유, 이 착한 것.
“그럼 둘 다 파이팅이야!”
“맡겨만 두라고!”
나는 두 사람을 훈련실에 내버려 두고 천천히 개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끼우.”
“응?”
발밑에서 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흑단이다.
“흑단이 너 혼자서 뭐 해?”
“부우우, 우바바바.”
뭐라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뭔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응? 조금 전에 같이 있었잖아. 또 왜~? 혹시 알이 부화하려고 한다거나?”
“우부부, 그르르……. 아바바!”
“흐으음.”
곧장 안영지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자마자 흑단이가 내게 있다고 설명하니 다급한 음성이 들려온다.
[아! 하준 님! 흑단이를 찾으셨다고요?! 안 그래도 애가 갑자기 사라져서 심장이 철렁했어요.]
“별일 없는 거죠?”
[네, 그냥 애들이랑 간단한 훈련 중이었어요. 택배가 왔다고 받는 사이에 흑단이가 훈련실에서 나갔네요.]
“택배?”
[네, 하준 님 앞으로 온 건데 이쪽에 계신 줄 알고 전달해 주셨더라고요.]
“누구한테서 온 건데요?”
[손…… 손예원 씨요. 어머, 손예원이면 해령 길드 길드장님 아니세요?]
“아아, 맞아.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는데 또 선물을 보냈나 보네요.”
[선물요?!]
안영지의 목소리에 호기심이 인다.
“조금 이따가 펫 훈련실에 다시 들를 테니까 그때까지 택배 좀 맡아 주세요. 나중에 같이 열어 봐요. 아마 과자 종류가 아닐까 싶은데, 한동안 그런 것만 보내더라고요.”
[우와아, 정말요? 그런데 하준 님 선물로 들어왔다면서요. 하준 님이 과자를 좋아하시던가요?]
“뭔가 잘못 정보가 들어간 것 같긴 한데. 맛있는 거면 뭐든 좋으니까요. 다 같이 나눠 먹죠.”
[알겠어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전화를 끊고 흑단이를 들어 품에 안았다.
“요놈. 넌 나랑 잠깐 같이 가자.”
“흥, 성가시기만 할 텐데요.”
망량이가 스스슷 불꽃을 일으키며 나타난다.
“네가 잘 데리고 있어야 해. 방해가 안 되도록.”
“뀨이잇?”
“하아! 보모 노릇이라니 지긋지긋해요.”
“언제 지긋지긋할 정도로 보모 노릇을 했다고 그래.”
“하여간에요.”
망량이가 내 주위로 빙글빙글 돈다.
“그나저나 그때 제가 석상을 조사했었잖아요.”
“아, 그랬었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어요.”
“응?”
걸음을 멈추고 망량이를 바라보자 빙글빙글 돌던 움직임을 멈추고는 푸른 불꽃이 이글이글 맹렬하게 타오른다.
“‘그 괴물’들 있잖아요.”
“검은 기운을 풍기는 인트루더들 말하는 거지?”
“네!”
보기에는 그냥 까맣고 텅 빈 그림자지만, 어쩐지 긴장감이 맴도는 망량이의 눈빛.
“그 검은 기운이 석상에서 느껴졌어요.”
“그 검은 기운이라고? 그럴 수가 있나?”
“그렇죠?! 아주 미세하게 느껴졌지만 분명했어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주 예전에 포털이 열리는 곳에서 신금천화교 교단원을 만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포털을 좌지우지한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때 그 녀석도…….’
만약 그 어머니라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면?
오싹.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속에서부터 불길함이 치밀었다.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신금천화교의 지파 건물에서 찾은 책. 서광 길드에 넘기기 전에 살짝 살펴보니 그런 내용이 있었다.
신금천화교 자체가 퍼스트 오픈이 일어났을 때쯤 생겨난 종교라는 것.
‘설마 진짜로 이 시스템이라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지.’
휴대폰을 열어 한세희에게 문자를 넣었다.
[책의 사본을 얼른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드릴 말씀이 있으니 시간을 내 주세요.]
‘꼼꼼하게 읽어 봐야겠어.’
“주인님?”
“어, 으응.”
망량이의 불꽃이 멍해져 있던 내 정신을 깨운다.
“일단은 알겠어. 그 괴물 놈들과 뭔가 연관이 있다면 그걸 감안해서 조사해야겠지. 한세희 길드장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 줘야겠군.”
끼익.
심란한 마음으로 훈련장 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다.
“후우. 이번에도 잘 통할까.”
“삐야우!”
“조용히 해, 흑단이 이 녀석아! 주인님이 집중하시는 거 안 보여?!”
“쁘우우, 구르르르.”
흑단이는 망량이가 이끄는 대로 훈련장 구석으로 가 앉는다. 얌전하게 구는 모습을 보니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다.
“망량아 문 좀 잠가 줘.”
“넵!”
망량이가 문을 잠그는 사이에 나는 훈련장 정중앙에서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영혼 차원에 접속했을 때 마나를 운용했던 것을 떠올린다. 스으으. 온몸에 마나가 돌기 시작하고 팔찌에 차고 있던 참이 잘그락거린다.
한 번 성공해 보았을 뿐인데 벌써 익숙한 느낌이 든다.
어느덧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마나가 맹렬하게 돌기 시작했다.
‘감각…… 그, 감각.’
푸쉭.
‘응?’
털썩.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마나가 새어 나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게 아닌가.
“엥?”
“주인님? 괜찮으세요?”
망량이와 흑단이가 쪼르르 달려와 얼굴을 들이민다.
“뭐, 뭐지?”
“왜요?!”
“안 돼.”
“으응?”
“영혼 차원으로 접속이 안 돼.”
“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다시 해 볼까. 하앗!”
나는 몸을 일으키고 다시 정신을 집중한다.
몸속에서부터 마나가 치솟고, 갔던 대로 그 길 그대로 마나를 몸 안에서 움직이고. 팔찌의 참이 가지고 있는 마나와 공명하면서…….
“어라.”
풀썩.
또다. 또 실패다.
“이거 왜 이래.”
물론 처음부터 이상한 존재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접속됐던 때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마나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역시 그 신 나부랭이가 도와줬던 게 컸나.’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렇게 되면 당분간은 다시 신금천화교를 따로 추적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건가.
“주인님…….”
망량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괜찮아. 이 은하준 님이 누구시냐. 방법을 찾아내야지.”
“어떻게요?”
“내 주변에는 차원에 관련해서 빠삭한 사람이 있잖냐.”
“안사홍 씨요?”
“그래, 맞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차원의 존재들과 만나는 것에 안사홍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지.
‘사두암으로 급하게 가는 바람에 차원의 존재에 관해서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안단홍에 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물어보기도 해야겠어.’
* * *
딸랑.
단홍 상사의 문이 열린다. 하지만 조금 기다려도 평소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인사가 없다.
“안 계세요?”
이상하다. 그렇다면 가게 문이 열려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천천히 가게 안쪽으로 들어서는데 옆방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안사ㅎ…….”
옆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한다. 안사홍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안사홍 씨?!”
“크흑.”
바닥에 흥건한 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별일 아닙니다.”
“별일이 아니라니요. 사, 상처가……. 힐러를 부를게요.”
터억.
안사홍이 휴대폰을 꺼내 드는 내 손을 막는다.
“정말입니다.”
“아니…….”
“제가 가진 포션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합니다. 저쪽 선반에서 하나 꺼내 주시겠어요?”
“…….”
나는 그의 부탁대로 포션을 가져와 입에 흘려 넣어 준다.
“제가 오지 않았더라면 안사홍 씨는 큰일이 났을 수도 있어요.”
“그랬겠죠. 고맙습니다, 은하준 님.”
“어쩌시려고 그런 거예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꽤 난폭한 손님들이 있어서 말이죠.”
“그 차원의 손님들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안사홍은 복부를 감싸 안으며 몸을 일으킨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이렇게 금방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표정에 기대가 어린다.
“길황산 이야기는 문자로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요.”
“그렇죠. 제 여동생이 거기에 없었다는 것은요.”
“……대신 이걸 갖고 왔습니다.”
나는 피가 묻은 손을 슥슥 닦고 가방에서 지도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