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제222편
띠링.
시스템 알람이 울렸다.
[하케임 님의 두 번째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하, 하케임……!”
“……!”
시스템 알람이 하케임에게도 떴을 거다.
우리를 살피던 베드로의 눈이 가늘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밀착 감시를 했던 놈들이라도 시스템 알람까지는 훔쳐볼 수 없을 터.
‘두 번째 각성과 함께 스킬이 생겼다면……!’
그렇다면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하케임에게 유리한 공격기가 하나 더 생길 터였다.
‘제발……!’
내 마음속 외침을 듣기라도 한 양 하케임이 나를 향해 외쳤다.
“건물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겠지?!”
“응! 내가 모두 살펴봤어!”
“좋아.”
부웅.
하케임은 거대한 창검을 한 번 휘두르고는 베드로에게서 훌쩍 멀어진다. 그러고는 신금천화교의 지파 건물을 향해 창검을 휘두른다.
휘익! 콰아아아!!
쿠과과과광!!
한 번의 손놀림에 건물이 거의 반으로 갈라졌다.
“……?! 무슨?!”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나 역시 하케임의 그런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드로와 나는 이내 하케임이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물의 길.”
쿠촤아아악!! 무너진 건물 사이로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수(水) 계열 스킬이 생긴 거구나!”
물을 운용할 수 있는 스킬이 생겼지만, 이 깊은 산속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법은 적었다. 그런데 마침 신금천화교의 큰 건물이 있는 거다.
상하수도 시설이 설계되어 있으니 건물을 무너뜨려 거기서 물을 끌어온 것.
“뭐……. 스킬이……. 생겼다고?”
베드로는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던 하케임이 난데없이 스킬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놀랄 만도 하지.
콰르르르!!
거대한 물줄기가 마치 뱀처럼, 아니 용처럼 꿈틀댄다.
촤아아악!!
베드로를 향해 쇄도하는 물의 길.
“크읏!”
베드로는 크게 당황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촤아아악!!
물줄기는 베드로를 공격하는 데 실패했지만, 그의 뒤로 펼쳐진 화마를 충분히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산등성이에 부딪힌 물줄기가 튀어 올라 마치 비처럼 주위를 적신다.
“좋았어!”
“부, 불이 꺼지고 있다!”
“다행이다!”
“사, 살았다.”
대피하던 교인들조차 하케임의 물줄기에 환호했다.
“칫. 하필이면…….”
베드로의 표정은 갈수록 더욱 구겨졌다. 모든 것에는 상성이 있는 법. 그러니까 불의 힘을 다루는 각성자인 베드로에게 물의 힘을 다루는 스킬을 가진 하케임은 상성이 맞지 않는 것이다.
비등비등한 힘을 내세우고 있던 두 사람이지만, 물의 길이라는 스킬로 인해 힘의 균형이 하케임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받아라.”
콰르르륵~!!
물줄기는 계속해서 베드로를 향해 쏘아졌다.
“크으윽!”
화르르륵! 불길을 쏘아 반격해 보는 베드로였지만, 하케임의 물의 길이 불길을 갈라 버렸다.
콰르르륵! 촤아악!! 그대로 베드로를 덮치는 물길.
“으윽!!”
강력한 수압에 의해 내동댕이쳐진 베드로가 바닥을 굴렀다.
“흠.”
하케임이 손을 휘두르자 굵은 물대포 형식이었던 물의 두께가 얇게 여러 겹으로 나뉜다.
마치 물길로 만든 화살과 같이.
“핫!”
그리고 하케임의 기합과 함께 맹렬하게 쏘아져 나간다.
베드로는 그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퍼억!! 예리한 물길이 베드로의 몸 곳곳을 꿰뚫는다.
촤악! 그의 몸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투욱. 데구르르…….
베드로의 뒤로 작은 씨앗이 피와 함께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물의 화살 중 하나는 베드로의 위장을 꿰뚫었던 것.
훌쩍.
하케임은 단번에 베드로의 곁으로 다가가 씨앗을 주웠다.
“아, 안 돼!”
씨앗을 다시 쥐기 위해 물과 피범벅의 바닥을 허우적거리던 베드로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크흐윽!! 젠장! 이럴 수가, 분명 우리가 사전 조사했을 때는……. 콜록! 콜록!”
베드로는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씨앗까지 빼앗긴 그에게는 더는 하케임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 내게는 분명 문제가 있었지.”
“허억! 저, 저리 가!! 제길, 이 내가 이렇게 시시하게 질 리가…….”
“시시하다니. 전혀 시시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강할 뿐이지.”
하케임이 슬쩍 내 쪽을 돌아본다.
그래, 맞다.
넥스트 레벨의 힘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진 거다.
“은하준……. 역시 네가 뭔가…….”
“그래. 우리 은하준을 얕본 대가다.”
“크윽!”
투두두두두.
저 멀리 헬기 소리가 들린다.
“서광 길드인가!”
마침 휴대폰이 울린다. 한세희다.
“역시.”
“타이밍이 좋네.”
하케임이 엄지를 척 들어 보인다.
주위로는 황망한 표정의 신금천화교 교인들이 짐을 옮기지도 못하고 그저 서 있을 뿐이다.
하케임이 다시 손을 튕겼고 불이 번진 길황산 위로, 그가 만든 비가 흩뿌려졌다.
* * *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요?”
“뭐, 그 이후는 서광 길드에서 현장을 정리했어.”
호기심에 가득 차 묻는 안영지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동안 흑단이와 썬더, 윙키가 귀를 기울인다.
녀석들은 말을 다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귀엽다.
“그럼 그 지파장이라는 사람도 살아서 잡힌 거고요?”
“응. 그러니 이제 캐낼 수 있는 정보도 훨씬 많을 거야.”
“정말 대단하네요. 어쨌거나 다행이에요. 이미 하준 님이 도착한다는 걸 알고 정보를 다 빼내고 있었다니……. 완전 충격!”
옆에 앉아 있던 안영원이 말을 보탠다. 이야기를 듣더니 잔뜩 흥분해서는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지……. 무섭네요. 사이비라는 건. 옆에 있는 친한 사람이라도 믿을 수 없어지고 말이에요.”
그는 일부러 몸을 부르르 떨며 과장되게 이를 드러낸다.
“이제 군과 서광 길드에서 또 조사하겠죠? 이번에는 소득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번에 잡아들인 사람도 결국은 잡혀 있는 상태에서 자살했다면서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서광이 아니라 군에서 더 삼엄하게 관리할 거라고 하긴 하던데…….”
“에휴. 정말이지.”
안영원이 한숨을 푹 내쉰다.
“어쨌든 두 사람이 그동안 애들을 잘 돌봐줘서 마음껏 다녀올 수 있었어요.”
“에이, 당연히 할 일이죠! 물론……. 뭐, 영지가 알아서 다 했지만 말이에요.”
“그럼 잠시만 더 믿고 맡길게요.”
“물론이죠! 맡겨만 주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펫 훈련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하케임이 기다리고 있는 훈련실로 간다.
그곳에는 하케임과 결이가 함께 있다.
“어, 하준아.”
“은하준! 왔나!”
“둘이서 훈련하고 있었어?”
“으응. 간단하게?”
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애들은?”
“괜찮아, 영지 씨가 보고 있어.”
“흠, 그래.”
“하케임은 어때?”
“좋지!”
내 물음에 하케임이 밝은 얼굴로 화답한다. 그의 얼굴 옆에는 물로 만든 공이 둥실 떠 있다.
“놀랐어. 사실 어제도 스킬이 생기자마자 응용을 엄청나게 잘하더라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껏 내가 사용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용할 수만 있다면 문제 따윈 없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스킬을 사용했으니까.”
하케임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턱을 들었다.
“그래. 맞아. 그 누구보다 더 잘 사용할 자신이 있다!”
촤아악!
공 모양이던 물 덩어리가 펼쳐지며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 낸다. 커다란 나무, 넓게 뻗은 가지, 찬란하게 빛나는 나뭇잎과 그리고 깊은 뿌리까지. 그건 예술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대단해. 이게 뭐야, 하케임?”
“이건……. 이건…….”
하케임은 본인이 만들어 낸 물의 모양을 보고는 한참 생각에 잠긴다.
“이건 생명의 근원,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나무다.”
“뭐?”
“전설 속에 나오는 뭐 그런 거?”
결이의 물음에 하케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맞아.”
“넌 이걸 직접 본 적이 있는 거야?”
“난 이걸…….”
하케임의 미간이 찡그러진다. 잃어버린 기억을 훑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난 이걸 직접 본 적이 있다. 내가 온 세계에서.”
“대단해. 또 이전의 기억을 되찾았구나.”
“그래. 하지만…….”
잃었던 기억을 찾았을 땐 늘 기뻐하던 얼굴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하케임은 어쩐지 무척 쓸쓸한 표정이 되어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세계수는 죽었다. 내 세계는……. 모든 것이 붕괴했어.”
“그런…….”
결이와 나 모두 심각한 표정이 되어 하케임을 마주 보았다.
‘하케임이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나는 순간 철렁했다.
이전에 던전 안에서 세계와 차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세계가 붕괴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된다면 하케임에게도 시스템 알람이 경고할 거다.’
조마조마한 채로 하케임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만, 이번에는 경고창 같은 건 뜨지 않는다.
“으윽…….”
그때 하케임이 두통을 호소하며 비틀거렸다. 그러자 물로 만들어졌던 세계수의 모습이 일그러지면서 일순간 바닥으로 쏟아져 버린다.
“하케임. 너무 무리해서 기억을 되찾을 필요 없어. 스킬도 하나 생겼고.”
나는 하케임을 부축하며 의자에 앉혔다.
“으응. 어쩐지 기억을 되찾을수록 어두운 감정이 떠오르는 것 같아.”
“……그럴 수밖에 없겠지.”
어떤 자세한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세계의 붕괴와 함께 다른 차원으로 넘어오게 됐으니까. 아무리 좋게 넘어가려고 해도 이미 그 정도의 재앙을 겪은 거다.
훈련실에 정적이 맴돌았다.
“아이참, 이 좋은 타이밍에 다들 기운 내자고!”
“……그래, 은하준 말이 맞아. 이제야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겠군.”
“무슨 소리야, 하케임. 넌 항상 엄청나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우리의 든든한 전력이잖아. 게다가 물을 다룰 줄 아는 스킬이라니. 결이랑 상성도 잘 맞아!”
내 말에 하케임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물은 전도체니까. 결이의 전기는 사실 전도체가 따로 없더라도 의지를 통해 제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물이 합세하면 좀 더 섬세하게 공격할 수 있을 거야.”
“그렇구나. 역시 은하준은 똑똑하다!”
“뭘 이런 걸로 똑똑까지야…….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페어로 훈련을 해 두는 편이 좋을 거야.”
“흥.”
결이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린다.
“나 혼자만으로도 괜찮잖아.”
“으응? 설마 질투하는 거냐?”
하케임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결이에게 얼굴을 들이댄다.
“한결은 아직 어린애구나!”
“질투는 무슨 질투야!”
결이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