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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18화 (218/250)
  • 제218화

    제218편

    “확실히 꿈이 아니었구나.”

    그녀의 영혼 구슬을 보며 깨닫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녀의 모습.

    그때 꾼 건 정말로 꿈이 아니라 이 차원에 닿았던 거였다. 원리는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지금 이것도 내 스스로 왔다기보다는……. 그 신 어쩌구가 나를 이끌어 준 덕이겠지?’

    주위를 둘러보아도 영혼 구슬들과 나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망량아?”

    망량이를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다.

    “뭔가 정석적인 방법으로 여기에 오면 나밖에 있을 수 없는 건가.”

    분명 내 육체는 훈련실에 그대로 남아 있고 정신적으로만 이동된 게 틀림없었다.

    ‘정신적이거나……. 영혼적이거나.’

    영혼 구슬에 슬쩍 손을 갖다 댔다. 구슬을 만져 본 것은 처음인 데다 어떻게 될지도 가늠할 수 없었지만, 뭐라도 해야만 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한 행동이었다.

    파아앙.

    손이 닿자 영혼 구슬이 공명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스파크 같은 것이 일어났다. 마치 나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읏.”

    순간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단편적인 영상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어딘지 누군지 모를 풍경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희고 커다란 건물. 친절하게 웃는 사람들.

    모두 흰 옷을 입고 있다.

    건물 안에 모여 의식 같은 걸 치르고, 그리고 음식을 나눠 먹고.

    뭐지 이건? 기억을 엿볼 수 있는 걸까?

    하지만 누구의 기억?

    안사홍의 여동생의 기억이라고 하기에는 뭔가가 이상하다. 그녀는 분명 납치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납치가 아니라, 제 발로 이 무리에 끼게 된 것 같은 느낌인걸.’

    대화가 자세히 들리는 것은 아니었고 장면도 단편적으로 끊겨서 보이는 터라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본 기억들로는 강제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이건 안사홍에게 더 물어봐야겠는걸.’

    파앗.

    의식과 기억이 분리된다.

    ‘이게 끝? 이걸로 끝낼 순 없어.’

    주위를 훑어본다. 안단홍의 주변으로는 내가 모르는 얼굴의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분명 안단홍과 이어진 인물들이겠지.

    손을 뻗어 구슬을 하나씩 만져 본다.

    파아앙!

    안단홍의 것을 만졌을 때보다 더욱 거친 스파크가 튄다.

    이번에는 손이 튀겨지는 듯하다.

    “크읏.”

    이건……. 나와 관계가 없을수록 더 거친 거부감이 느껴지는 걸까. 하지만 물러설 수 없다. 내겐 이제 이 방법뿐이니까.

    파아아아!!

    영혼 구슬과 공명함과 동시에 거부를 이겨낸다. 그러면서 눈앞에 그려지는 기억들을 읽어 나간다.

    산과 바위, 굽은 길. 주위를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벚나무가 많이 보인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희고 커다란 건물과 흰옷을 입은 사람들. 그들은 꽃가지를 한아름 들고 줄을 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꽃가지를 입구에 바치고 기도하기 위해 강당에 모인다.

    확실히 그들은 같은 무리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저건……!’

    명패가 보인다. 정확하게 신금천화교라고 쓰인 글자가 보인다.

    ‘역시 맞았다. 신금천화교가 맞아.’

    그렇다면 이곳의 위치는 어디일까.

    알아내기 위해 스치는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조금씩 훑어 내려간다. 반발이 심해서 안단홍의 기억을 읽을 때보다 훨씬 단편적으로 보여 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위치를 알 수 있을 만한 다른 글자들이 지나가지만 확실하게 읽을 수 없다.

    ‘암……. 사두암?’

    건물을 배경으로 보이는 바위에 쓰인 글자를 하나 읽어냈다.

    이거라면 위치를 추적해낼 수 있을까?

    파앗!

    “이크.”

    스파크와 함께 손이 튕겨 나온다.

    “까맣게 타 버렸잖아.”

    별빛이 내리는 꽃밭에서도 손이 시커멓게 변한 것이 보인다. 고통도 느껴진다.

    “진짜 육체가 아니니 상관없으려나.”

    약간 걱정되긴 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치직, 치지직.

    “음?”

    치지직…….

    잡음과 함께 시스템 창이 깨져 있다. 그러니까 그래픽이니 글자니 하는 것들이 깨져 보인다는 거다.

    마치 게임 속에서 오류가 난 것처럼 말이다.

    “무슨…….”

    치직!

    시스템 창이 터지듯 하얗게 점멸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기울어지는 상체를 확 일으켰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깜짝 놀란 망량이가 내 앞으로 쑥 나타났다.

    “어, 어어……. 망량아. 내가…….”

    주위를 둘러보니 훈련실이다.

    영혼 차원에서 벗어난 거다.

    “내가 얼마나 이렇게 있었지?”

    “한 시간 정도요. 명상에 빠지신 것 같은 느낌이긴 했는데. 잘됐나요?”

    “응, 확실하게 그 차원에 접속했거든.”

    “우와! 대단해요, 주인님!”

    망량이가 불꽃을 활활 태운다.

    “왜 이번에는 제가 같이 못 갔던 거죠?”

    “글쎄. 그건 확실하게 잘 모르겠어. 아직 나도 그 차원에 관해서 아는 게 잘 없어서.”

    “저라도 뭔갈 많이 알면 좋을 텐데요.”

    “괜찮아. 그래도 이번에 하나 건진 게 있으니까.”

    나는 이글거리는 망량이의 불꽃을 쓰다듬어 주었다.

    망량이는 기분 좋은 듯이 내 손길에 기대어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뜬다.

    “건진 거요? 뭔가 찾으신 건가요? 뭔데요? 뭔데요?!”

    “사두암이라는 곳이야. 거길 찾아야겠어.”

    “사두암?”

    망량이에게 영혼 차원에서 본 것을 설명해 주니 푸른 불꽃이 더 맹렬하게 타오른다.

    사두암이 있는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두암이 존재하는 길황산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충청남도라.”

    “언제 출발하나요?!”

    “일단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지.”

    한세희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안사홍의 얼굴도.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두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자, 곧장 연락이 온 건 한세희 쪽이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 볼 만한 가치는 있어요. 믿을 만한 정보원에게 얻은 거니까요.”

    솔직히 내가 영혼 차원에 접속해서 영혼의 기억을 더듬은 거라고 말하면 믿기 어렵겠지.

    영혼 차원 자체도 신뢰하기 어려운 일일 테니까. 안사홍의 경우에는 내가 영혼 차원에 접속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안사홍이 차원을 넘나들어 거래할 수 있다는 비밀도 까발려야 하니까.

    그건 미래에도 지켜져야 할 비밀이다. 그러니까 그냥 정보원에게 얻은 정보라고 둘러대는 게 설명하기 편할 거다.

    [그렇습니까. 우리 서광 길드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일단 조사는…….]

    “지원은 나중에요. 지금은 혼자 조용히 움직여 볼 생각인데요.”

    [……너무 위험합니다. 그들이 어떤 놈들인지 잊은 건 아니겠죠.]

    한세희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괜찮아요. 혼자라고 해도 정말 저 혼자 움직일 생각은 없으니까요. S급을 달고 움직이면 그렇게 위험해질 일은 없겠죠.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커다랗더라고요. 쉽게 도망칠 수 없을 테니 뭣하면 빠르게 뒤로 빠지면 돼요. 지원은 그때 받아도 늦지 않을 겁니다.”

    내가 항상 믿는 카드가 있지 않은가. 우리 한결이. 잠깐. 가만 생각해 보니 결이는 두고 가는 편이 좋으려나.

    요즘 들어 계속 같이 붙어 다녔으니까, 나를 감시하고 있다면 결이가 움직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하케임을 데려갈까.

    정말로 정찰만 하고 돌아오려면 솔직히 S급은 없어도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서광 길드의 많은 인원이 움직인다면 놈들이 눈치챌 수도 있어요. 보아하니 심어 놓은 눈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언제든지 우리 상황을 손에 꿰고 있던걸요.”

    전화기 너머로 정적이 흐른다.

    “흐음, 이렇게 걱정하실 줄 알았다면 미리 개인적으로 확인한 뒤에 연락할 걸 그랬네요.”

    [아뇨. 절대로 안 되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상의 후에 결정해 주세요.]

    대충 웃음기 섞인 말로 넘어가려고 했더니 단호한 목소리가 꾸짖는 것처럼 전화기를 울린다.

    [일단 은하준 씨의 말대로 조용히 접근해서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확인되면 바로 장소에서 벗어나 저와 상의해 주세요. 그곳이 정말로 신금천화교도들의 집회 장소라면, 그들을 진압하는 건 둘로는 부족할 겁니다.]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연락은 사전 작업 진행에 따라 계속해서 부탁드립니다. 작전이 실행되고 15분 동안 은하준 씨께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면 서광 길드가 곧장 움직일 겁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부디 조심하세요.]

    통화가 끊어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온다.

    이번에는 안사홍이다.

    [영혼 차원에 접속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네, 성공했어요. 덕분에 단서를 얻었습니다. 신금천화교와 여동생분에 대해서…….”

    [하준 님, 정말 대단하시군요. 제 도움 없이도 벌써 신금천화교의 정보를 얻다니.]

    “아니에요. 사홍 님의 도움이 없기는요. 참을 얻은 덕분이 커요.”

    [그게 정말로 도움이 됐군요.]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나요?”

    [차원의 손님들을 100% 믿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지요. 하지만 효과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차원의 손님들은 우리를 골탕 먹이는 걸 좋아하니까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떨린다.

    [저도 함께 갑시다.]

    “그건 안 돼요.”

    사실 안사홍이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는 내가 어디로 이동할 것인지 알려 주지 않았다.

    [어째서입니까?]

    “아직 확실한 건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분명 영혼 차원에서 단홍이 그 애를 봤다고…….]

    “맞아요. 하지만 정말로 그곳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안사홍 씨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영혼 차원에서 안사홍의 여동생을 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의 상황이 정말로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 차원 안에서 볼 수 있는 영혼 구슬만 보고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신금천화교에서 살아 있었어도 지금까지 계속 무사하다고 증명할 수 없다.

    살아 있다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일까. 왜 그녀는 가장 중요한 기억이 잠든 자기 모습인 걸까?

    그 모든 것은 내가 가서 먼저 확인해 봐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안사홍이 나섰다가 감정적으로 일을 그르칠 수도 있었다.

    거대한 뱀의 꼬리를 드디어 잡았다. 지금 실수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안사홍의 마음이 어떨지 예상할 수 있기에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숨을 고르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 내가 은하준 님이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휴대폰 너머로 참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홍 님…….”

    [이해합니다. 이제야 겨우 실마리를 풀어 나갈 때인데요. 어느 때보다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다 알면서도 제가 떼를 쓴 겁니다.]

    “떼를 쓰다뇨. 당연히 사홍 님은 그렇게 말할 수 있으시죠.”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조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알게 되시면 연락을……!]

    “알겠습니다. 가장 먼저 사홍 님께 연락을 드리도록 할게요. 약속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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