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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17화 (217/250)

제217화

제217편

그래, 단홍 상사를 떠올린다.

그 안에 있던 작은 문.

그 문 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검은 공간이 펼쳐졌다. 다른 차원의 손님들을 맞이했던 그 공간.

그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거다.

스으으으.

참과 내 마력이 혼합되어 몸을 도는 게 느껴진다.

어떻게든 내게 길을 보여 줘.

검은 문을 연다.

검은 공간에 들어간다.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반쯤 잠든 것 같은.

시간이 흐른다. 흐르고 흘러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도 모를 만큼.

아득한 기분이 든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미아가 된 것 같다.

사무치는 외로움. 그리고 공포. 그날. 비가 내리던 도로. 불타는 자동차.

‘이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을 때도 됐잖아!’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한탄하듯 속으로 외친다.

그러지 않으면 아득한 무엇인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내가 땀을 흘리는 것인지,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훈련실에서 명상하고 있을 뿐인 단계는 넘어선 게 분명하다. 이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분명…….

스으으으.

즈즈즈즈.

하지만 고요한 검은 공간에는 마력이 움직이는 기척만이 느껴질 뿐.

‘실패한 걸까?’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내겐 이제 이 방법 외는 없단 말이다!

[너로군.]

온통 검은 공간에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서 들리는지 분간할 수 없다. 사방에서 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문득 두려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건 금방 사그라졌다.

마치 누군가의 기세가 쏟아질 듯하다가 거두어진 것 같은 느낌.

“누구?”

[내 이름을 들은 자들은 모두 미쳐 버렸지.]

“뭐?”

[아마 너라고 다를 바 없을 거다. 아직 인간은 거대하고 위대한 옛 신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하지만 나는 지금 당신과 멀쩡히 대화하고 있잖아?

[내가 대화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격을 낮추지 않았다면 나와 접촉하는 순간 네 존재는 사라졌을 거다. 신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존재는 지워져 버리니까.]

“내 생각도 읽을 수 있는 건가. 여하튼 친절하시군.”

[그렇다. 나는 잊힌 옛 신들 가운데에서도 인간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하지.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인간들이 그러더군. 속내를 알 수 없는 신, 호기심의 신, 자비의 신, 유혹하는 신, 그 외에도 나를 부르는 이명은 많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테지. 어쨌든 나는 너희들과 대화하는 일이 즐겁거든.]

목소리는 웃음기를 띠고 말했다. 확실히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이 신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검은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실패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어쨌든 이상한 신 나부랭이를 만나긴 했으니까.

[불온한 생각이 가득한 인간이구나.]

“마음대로 생각을 읽지 말아 줬으면 좋겠지만…….”

[인간의 얕은 마음 정도는 읽고 싶지 않아도 다 들리게 되어 있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겠지. 내가 이토록 큰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무지몽매한 존재들이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생각까지 제어하는 건 인간에게는 어려운 일이라서요. 어쩔 수 없네요.”

[안다. 한편으로는 너희가 멍청하지 않다면 감히 이 나와 대화를 나누려 했겠느냐. 그런 점 또한 나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지. 너를 들여다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면 네 존재를 더는 허락하지 않았을 테니 마음대로 해 보아라.]

내가 좀 건방진 건가. 그래도 신이라고 주장하는 존재를 만난 것인데,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역시 위압감이라든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까 위기감이 생기지 않는달까.

“당신이 신이라면 나에 관한 건 뭐든 알고 있는 거예요?”

[무엇이 궁금하지? 내가 너에 관한 걸 뭐든 알고 있다면 더는 네가 궁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요. 신도 모르는 게 있구나.”

[대체로 다른 신이 관여된 일에 관한 건 알아차리기 힘들지.]

그렇다는 건 내게 관여된 다른 신이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생각만 했는데도 옛 신이라는 이 존재가 대답을 해 버린다. 대화가 수월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식의 대화는 처음이라 어색하다.

[네게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지. 그러니 참 특이하다. 여러 신들이 네게 관심을 보이고 있지.]

“여러…… 신들?”

갑자기 스케일이 커지는 것 같은데, 내게 관심을 가져서 뭐가 좋다고.

그나저나 정말로 신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란 말인가.

[정확히는 너희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지. 너희는 감히 그들의 존재를 따라가지 못할뿐더러. 그들의 장기짝이고 그들의 오락거리고 그들의 한낱 웃음이고 스치는 별빛이니까. 물론 그보다 더 큰 옛 신들에게 너희는 아무 존재도 아니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고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존재지.]

“…….”

듣는 무의미한 존재로서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내게 왜 관심을 가지는 건데요?”

[후후, 후후후. 네게는 시간의 선이 겹쳐 있다.]

그건……. 내가 회귀를 했기 때문일까.

[그래, 아마 그렇겠지.]

“끄응……. 별로 알려 주고 싶지 않았는데요.”

[별수 없지. 작은 인간아. 내게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꽤 귀찮으신 분이네요.”

[아하하하!]

주변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큰 웃음소리다. 가까이에 유리로 된 물건이 있었다면 와장창 깨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하지만 웃음소리는 전혀 작아지지 않았다. 마치 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듯하다.

“으윽.”

[미안하구나, 작은 인간아. 인간과 대화한 것이 무척이나 오랜만이라. 아니, 대화 자체가 오랜만이지.]

“그래서, 시간의 선이 겹쳐서 뭐가 어떻다는 말인가요?”

[그래서 너에게는 알 수 없는 작고 검은 베일이 생겼다. 모두 그걸 들춰 보고 싶어서 네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 가장 먼저 네게 접근한 게 바로 나고.]

“작고 검은 베일……. 그게 있으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요?”

[다른 신이 관여할 수 없는 작은 틈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신도?”

[물론이다.]

“그런 걸 알려 줘도 되는 겁니까?”

[왜 알려 주면 안 되는 거지?]

“뭐어……. 그러니까 이걸 이용해서 내가 신들을 대적하는 무엇인가를 한다든가…….”

[아하하하!!]

다시 한번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내 온몸을 강타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존재들이기에 내가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것이겠지만.]

“……다른 신들도 그래서 내게 관심을 갖는 거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작은 인간아. 그렇다고 네가 뭔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정확히 다른 신들은 어떤 존재가 네게 그 작고 검은 베일을 만들어 줄 수 있었는지, 그게 궁금한 거겠지.]

“흐으응.”

[게다가 다른 신들은 나처럼 친절하거나 호기심이 많지는 않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지. 그러니 오늘 나를 만난 것을 영광으로 알거라. 작은 인간아.]

목소리는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일단은 다행이긴 한데……. 과연 이 신은 내게 어디까지 알려 줄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다 알려 줄 수는 없다. 작은 인간이여. 그것은 내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의 세계에 관여하고 있는 신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제가 뭘 물어볼 줄 알고요?”

[네가 겪었다시피 나는 네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 너희 세계와 별, 그것을 둘러싼 힘, 법칙, 그리고 여러 가지 차원을 관통하는 구멍. 그보다 작은 단위로는 괴물들의 이야기와 인간의 무리를 궁금해하는구나.]

“그렇지만 다 대답해 줄 수는 없다?”

[그렇다. 대신 오늘 나와 만난 것을 기쁨으로 여기도록 네가 원하던 바를 이루게 도와주겠다.]

내가 바라던 바?

그거라면 인류의 종말을 막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주위의 어둠이 떨린다. 피부를 타고 오르는 전율. 뭔가 일어나고 있다.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나요?”

나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다음 순간에 이곳에서 튕겨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자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내가 허락하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파앗!

순간 눈앞이 밝아지더니 시야가 보랏빛으로 물든다. 그리고 여기는……. 꽃밭이다.

“시, 신……?”

조금 전까지 함께였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완전히 혼자 남겨진 감각.

“결국 뭔가 알아낸 것도 없잖아?”

하지만 애초에 이 공간에, 이 차원에 오려고 시도했던 일이기는 했다. 옛 신이 변덕을 부려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뿐.

‘머릿속이 더 엉망이 되어 버렸잖아.’

순간 내가 뭘 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생각이 나지 않아 멍해졌다.

푸스스스…….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무수히 빛나고 있다.

주변으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보랏빛 꽃들이 가득하고 영혼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기억 구슬이 둥실 떠올라 있다.

“그래, 나는 신금천화교를 추적하기 위해…….”

멍해졌던 정신이 곧바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신과 대화를 하다니.

게다가 여러 신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기왕에 나를 보고 있다면 나를 좀 도와주면 좋을 텐데.’

나에게 관여한 신 때문에 내게 특이점이 생겼다는 말도 믿기지 않지만, 진짜라고 하니 믿어야겠지? 믿는 수밖에는 없겠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조금 더 그 신이라는 녀석과 대화를 나눠 봐야겠다. 하지만 우선은 이 차원으로 넘어오는 데 성공했으니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영혼들을 둘러보았다.

안사홍의 여동생을 찾기 위해 한참 동안 주변을 훑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구슬을 만져 보았다.

“확실해.”

그녀의 모습은 이전에 꿈에서 봤을 때와 같다. 눈을 꼭 감고 꽃에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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