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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16화 (216/250)

제216화

제216편

엘리사베의 몸이 허공으로 살짝 들렸다.

그녀의 등을 통해서 복부를 관통한 건 사람의 손이었다.

피범벅이 된 손에는 작은 씨앗이 들려 있었다.

“아, 아아…….”

“어…….”

그녀와 나 모두 바보처럼 멍한 소리를 내었다.

푸욱.

그녀를 관통했던 팔이 다시 꿰뚫은 몸통을 빠져나가며 끈적한 소리를 냈다.

털썩.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던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패대기쳐졌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을 거다. 다만 그녀의 다리에 더는 자력으로 서 있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거다.

“아니…….”

“잘 상대해 주고 있었습니다, 은하준 씨.”

엘리사베의 몸통을 관통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얼굴도 보인다.

내게 익숙한 사람이다.

한세희.

그가 한 점의 얼룩도 없는 새하얀 얼굴로 피가 묻은 손을 털어 내며 내게 말했다.

“한세희 씨…….”

“때맞춰 왔는지 모르겠군요.”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고 말해도 될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한세희의 시선은 금방 바닥에 쓰러진 엘리사베를 향했다.

“쯧, 죽었군요.”

“네?”

“씨앗을 빼내다가 급소를 스친 모양입니다.”

“이런…….”

정말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게다가 결과도 좋지 않다. 그녀에게 뭔가 더 알아낼 좋은 기회였는데.

“그녀를 생포할 수 있었다면 뭔가 좀 더 알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아쉽다고 말하는 한세희의 목소리에서는 안타까움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서해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많은 사람이 죽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던 사람.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기분이 상하셨군요.”

내 표정을 살피던 한세희가 말했다.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죄송합니다.”

“아뇨.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요. 뭔가 알아낼 수 있었을 수도 있긴 했는데.”

“뭐라고 하던가요?”

“교리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나를 왜 노리는 것인지…….”

“또?”

“그 외에는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보다시피 이런 모양이 됐죠.”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제게 할 사과는 아닌 것 같고요.”

나는 쓰러진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쪽에서의 조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니요.”

“네?”

“우리 쪽에서 잡아 두었던 신금천화교의 교인. 어제저녁에 자살했습니다.”

“뭐라고요?!”

“바로 전달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내부에도 대미지를 입힌 사건이어서 정리에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럴 수가. 씨앗을 회수했는데도 그런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결이가 거들었다. 한세희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서광에서도 꽤 피해가 있었습니다. 꽤 큰 충격이었죠. 씨앗을 제거했다는 것에서 방심하고 있었는지도요. 그 역시 각성자인데 말입니다. 독을 다루는 스킬을 가지고 있더군요.”

“자신의 스킬로…….”

한세희는 다시 엘리사베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일단은 던전 브레이크를 정리하도록 하죠.”

츠츠츠츳.

던전의 포털 너머로 몬스터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고 있었다.

“크르르…….”

“결아.”

“응.”

“나는 엘리사베에게서 뭔가 더 얻을 수 있는 게 있는지 살펴볼 테니까.”

“알겠어.”

타앗.

결이는 한세희를 힐긋 보더니 포털이 있는 쪽으로 점멸하며 사라졌다.

“한세희 길드장님도 상황 정리에 집중해 주시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휘익.

한세희까지 포털로 향한 뒤, 나는 엘리사베의 품을 뒤졌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녀는 천천히 싸늘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쳇, 이렇게 놓쳐 버리다니.’

서광에서 잡아 놓은 사람마저 잃었다면 더는 비밀을 캐낼 수 없게 됐다는 거다.

‘곤란하게 됐네.’

그렇다는 건 다시 신금천화교가 나를 찾을 때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혀를 차며 엘리사베의 시신을 조사한다.

그녀의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카드가 나온다. 그녀의 얼굴이 박혀 있는 인식 카드다.

‘이게 필요할까?’

일단은 챙겨 둔다.

그녀의 주머니에서는 사탕 2개와 립글로스 1개가 더 나왔다. 하지만 이런 건 필요 없겠지.

그 외에 휴대폰 정도가 다다. 그나마 휴대폰 포렌식을 통해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캐낼 수 있을 거다.

휘우욱! 콰과광!!

번쩍!

멀지 않은 곳에서 몬스터들과 결이가 전투를 벌이는 것이 보인다.

곁에는 한세희도 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다른 헌터들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 * *

“분명 아공간 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게 분명해요. 다른 차원에 말이에요. 거기서 넘나드는 거죠. 이곳과 저곳을! 그러니 찾지 못하는 거예요.”

안영지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찾는 사람들이 많고 수사하는 사람이 많은데 본거지를 알아낼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지금 같은 시대에 말이에요.”

“안사홍 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하더라고요.”

“어머! 역시! 제 말이 맞는 거예요. 그렇죠?”

흥분하며 주먹을 꽉 쥔 안영지의 무릎에서 놀란 썬더가 데굴 구른다.

“그런데……. 그러면 정말 찾기가 너무 어려워진단 말이에요.”

“끄응, 그렇긴 하죠.”

나는 몬스터 훈련실을 천천히 빙글빙글 돌면서 생각에 잠겼다.

‘휴대폰을 조사해 얻은 정보로 추적한 곳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결국 그녀를 통해 얻은 정보는 그녀 입으로 들은 정보뿐.

“에휴, 어렵구나. 어려워. 이럴 때 탐정 캐릭터가 있으면 좋을 텐데.”

“탐정 캐릭터요?”

“만화나 영화에 보면 모든 사건을 술술 풀어 주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잖아요.”

“그러게요. 짜쟌 하고 해결해 주면 좋겠는데.”

“역시 경찰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한숨을 푹 내쉬니 안영지의 표정이 우울하게 변한다.

“저도 뭔가 힘이 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요.”

“무슨 소리예요. 영지 씨는 언제나 힘이 되고 있죠.”

“하지만……. 신금천화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잖아요.”

“영지 씨는 영지 씨가 활약하는 면이 따로 있는 거예요. 뭐든지 다 잘하면 그게 소설 주인공이지 뭐겠어요?”

“그렇긴 하지만…….”

“에이, 괜찮다니까요. 정말. 우리는 일단 이 알들 부화에나 집중하죠.”

“그것도 속상해요. 이 검은 알은 도저히 어떻게 해도 깨어나질 않잖아요.”

“흐음……. 그건 영지 씨 탓이라기보다 내 탓인 것 같은데요.”

“에엥?! 아니에요!”

안영지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덕분에 썬더가 완전히 안영지의 무릎에서 굴러 떨어진다.

“삐약!”

콩. 데구르르…….

“어머! 썬더야 미안!”

“삐약! 삐!”

다행히 썬더는 충분히 폭신폭신한 깃털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도 다친 곳은 없다.

“부아우, 밥바아.”

“쉬이이, 샤아아아…….”

한쪽 편에서 윙키와 함께 놀고 있던 흑단이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삐, 삐이이. 뿌아아. 그르르…….”

그러고는 내게 뭐라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흑단이는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더니 안고 있던 알에 앞발을 처억 올린다.

“뭐야, 동생들은 맡겨 달라는 거야?”

“삐이이, 구르르.”

“흑단이 네가 뭘 어쩌게?”

검은 알을 받아 든 흑단이가 몸을 말아 감쌌다.

“네가 품어 보겠다고?”

“어머.”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여워서 흑단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까맣고 보송한 털이 산발이 된다.

“뿌우우바아!!”

“확실히 흑단이는 따뜻하니까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망량이가 어깨 위에서 키득거리며 속삭인다.

“그런 정도로 부화 조건을 맞출 수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그래도 모르죠. 흑단이는 드래곤이잖아요. 똑똑한 종족이니까,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게다가…….”

망량이는 안영지의 눈치를 보며 내 귀에 바짝 다가왔다.

“저 안에는 금룡 녀석이 들어 있잖아요.”

“…….”

흑단이가 너무 귀여워서일까, 한동안 잊고 있었다.

“금룡이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뭔가 도움이 됐을지도 몰라.”

“워낙에 아는 게 많던 녀석이니까요.”

일단 나는 흑단이의 머리털을 바르게 골라 주며 그 빨간 눈을 들여다보았다.

흑단이는 나를 바라보다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골골댄다.

고양이가 따로 없다.

그러더니 까만 알을 꼬옥 안아 품기 시작했다.

“샤아아…… 쉬이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윙키가 저도 점박이 무늬 알에 살며시 다가갔다.

“응? 윙키 너도 품어 줄 거야?”

불개의 알을 냉혈 동물인 뱀이 품어 주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상성이 맞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어느새 윙키는 기다란 몸을 뱅뱅 감아 불개의 알을 품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착한 녀석들이라니까.”

“하준 씨를 배려하는 건지도 몰라요.”

안영지가 굴러가는 썬더를 잡아 다시 무릎에 앉히며 말한다.

“신금천화교 조사로 바쁘시니까, 애들도 뭔가 하준 님을 돕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요?”

“……완전 감동인데요.”

“그러니까요. 하준 님은 정말 자식 농사를 잘 지으셨네요.”

“뭐예요? 아하하, 그렇게 할머니처럼 말하지 말아요.”

“읏, 할머니라뇨!”

안영지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가 눈을 도르륵 굴린다.

“은봉 할머니랑 붙어 있다 보니 닮아 가는 걸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겠죠.”

불편하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다.

그래, 조급해하고 걱정해 봐야 해결되는 일도 없으니까.

나는 사랑스러운 펫들과 알들을 내려다보며 숨을 가다듬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다.

“잠깐 훈련 좀 하고 올게요.”

“훈련이요?”

“네. 오늘은 영지 씨가 애들을 좀 봐 주세요.”

“알겠어요, 맡겨만 두세요!”

“뀨우, 삐이이!”

“삐약!”

“샤아아아…….”

애들과 안영지의 배웅을 받으며 펫 훈련실에서 나온다. 그리고 향하는 건 개인 연습실.

“엄청 오랜만에 와 보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훈련을 했던 때가 언제더라.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는 제대로 확인까지 마친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후우, 할 수 있을까. 물론 단번에 해결이 되지는 않겠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훈련실 정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고요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꿈속으로 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의식을 집중하면서 명상을 시도한다. 방법은 모르지만, ‘그 차원’으로 넘어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볼 생각이다.

팔찌에 걸려 있는 참을 만지작거렸다.

작은 쇠붙이에서 느껴지는 경미한 마력. 그 마력에 집중했다.

스으으으.

참의 마력과 내가 가진 마력.

두 가지가 같은 흐름을 탈 수 있도록 정신을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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