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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소울메이트-213화 (213/250)
  • 제213화

    제213편

    “예쁜 알이네요.”

    “어떤 녀석의 알인지 알겠어요?”

    “전혀 모르겠어요.”

    “불개의 알이에요.”

    “불개!”

    안영지의 얼굴이 확 펴진다.

    “대단한데요. 군에서 그런 엄청난 몬스터의 알을 구해 왔단 말이죠?!”

    “그걸 우리가 부화시키고 훈련하게 되는 거예요.”

    “정말 멋져요.”

    그녀는 내게서 알을 받아 들고는 활짝 웃었다.

    “참 신기하단 말이에요. 포유류처럼 보이는 몬스터들도 전부 알에서 깨어나다니.”

    “그러게요. 어떻게 돼먹은 세계인 건지.”

    “시스템만이 알고 있겠죠.”

    “흐음……. 맞아요.”

    그러고 보니 한참을 잊고 있었다.

    시스템에 관한 비밀.

    시곗바늘을 움직였던 비밀.

    ‘비밀에 접근하는 게 정말로 우리 세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까.’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던전 하나의 붕괴를 가지고 왔었다. 잘못 건드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물론 그땐 내가 무모하게 굴었지만 말이다.

    알과 썬더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두 생명체를, 그리고 안영지를.

    “왜요? 하준 님?”

    “아니, 아무것도 아녜요. 이 알도 잘 키워 보자고요.”

    “네, 좋죠!”

    소울메이트로 연결되어 느껴지는 알의 감각을 되짚어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 * *

    성 대위까지 모두 돌아간 뒤, 나는 길드장실을 방문했다.

    “몬스터 알을 맡기고 싶다는 의뢰가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쏟아지고 있어.”

    대호 형이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쏟아지는 정도인가요?”

    “당연하지. 담당 부서를 신설했을 정도니까.”

    “우오……. 벌써 그렇게 됐단 건가요?”

    “그렇다니까. 하기야 수요는 늘 넘쳐나고 있었지. 공급이 너무 부족했으니까. 우리 길드도 이걸로 곧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화룽이 그랬듯이.”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나 역시 마음이 들뜬다.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는 서광. 그런 서광과 어깨를 견주게 될 거라고는 회귀 전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길드 내부에서 필요 없는 짐 취급을 당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게다가 또 좋은 소식이 있지.”

    “뭐죠?”

    “알을 구했어.”

    “……!”

    전에 구해 달라고 말했던 신선 길드 전용 알이다.

    대호 형이 책상 아래에서 회색 알을 꺼내 든다.

    “카라만조의 알이야.”

    “카라만조의 알이라면, 성체가 되었을 때 탑승 비행이 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조류 몬스터잖아요.”

    대호 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길드장님한테 딱 어울리는 알이에요.”

    “마침 그런 알을 구할 수 있었어. 게다가 나 외에도 특별한 이동기나 비행술이 없는 헌터들이 있으니까.”

    “누가 뭐래도 길드장님께 제일 필요한 펫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길드장님이 먼저 가지셔야죠. 정말 잘됐어요.”

    “예전처럼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하하하. 길드장님 쪽이 기분이 더 좋지 않으세요?”

    “참 나.”

    길드장이 된 지도 꽤 됐는데 형은 아직도 수줍은 티를 냈다.

    물론 내 앞에서만인 것 같긴 하지만.

    “의뢰는 어떻게 받으실 생각인가요.”

    “네가 한 번에 맡을 수 있는 펫의 수가 정해져 있을 것 아니냐.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펫 위탁 의뢰를 받으려고 하고 있어.”

    “지금 이 알까지 생각하면 부화시킬 알의 개수가 세 개. 훈련시키고 있는 유체의 수가 두 마리니까……. 게다가 펌블에서도 알을 하나 받기로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당분간은 더 알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럴 것 같았다. 일단 들어온 의뢰는 전부 대기 상태로 두마.”

    “그렇게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대호 형이 사람 좋게 웃어 보인다.

    나는 형에게서 알을 받아 안아 들고는 가뿐히 사무실을 벗어났다.

    “가족들이 엄청 늘었네.”

    가족.

    그 울림 좋은 단어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어떤 위험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이 세상을 지켜내야 한다.

    * * *

    “안사홍 씨.”

    “오랜만입니다. 은하준 님.”

    단홍 상사의 문턱을 넘자마자 안쪽 방에서 안사홍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전 건강하죠.”

    그의 시선이 내가 매고 있는 포대기 안의 검은 알에 꽂힌다.

    “아직 부화하지 않았군요.”

    “죄송해요.”

    “죄송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에는 태어날 시기가 있는 법.”

    “알고 계셨나요?”

    “무엇을……?”

    “이 알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요.”

    “글쎄요. 하하, 알이라면 자고로 그런 것 아닐까요? 우리가 먹는 계란도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안사홍은 빙긋이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미 단홍 상사까지 와 버렸으니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단순한 꿈이라면…….

    “최근에 그 차원에 다녀온 것 같아요.”

    내 말에 안사홍의 표정이 단박에 변했다.

    “뭔가……. 알아내신 겁니까?”

    “동생분의 영혼 구슬을 본 것 같은데.”

    “……! 그래서, 어디에 있는 겁니까?! 내 동생은 안전한가요?”

    이렇게 흥분한 안사홍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지, 진정해 주세요. 사실 이게 확실하지 않아서요.”

    “뭐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죠?”

    “모든 것이요. 그 차원에 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꿈처럼 확실하지 않아서요.”

    “괜찮습니다. 허망한 꿈일지라도 단홍이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제게 필요하니까요.”

    그의 목소리는 절실했다.

    “……일단 제가 본 것만 알려드리자면, 확실히 동생분의 얼굴을 봤습니다. 그리고 사홍 씨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나이 든 모습이었지요.”

    “그렇……군요.”

    “분명 헤어지게 된 시점에서부터 무사히 지낸 것 같습니다.”

    “……후.”

    안사홍이 비틀거렸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감정을 갈무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누가 지금 이런 상황에서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가족의 행방에 관해서 알게 된 지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이 틀렸다면…….

    누구보다 그를 돕고 싶었기에 내 손도 떨리고 있었다.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나요?”

    “잠이 든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잠이 들었다고요?”

    “그게 바로 이상한 점이었어요. 다른 영혼 구슬들을 보았을 땐 대부분이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거든요.”

    이렇게 말하니까 다른 사람의 소중한 기억을 함부로 엿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고 꽃을 봤습니다.”

    “꽃……?”

    “벚꽃으로 보이는 꽃 무더기 속에 여동생분이 누워 계셨습니다. 두 눈을 꼭 감고 잠든 것처럼 보였죠…….”

    “벚꽃이라뇨. 설마. 그건…….”

    안사홍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신금천화교. 분명 그 단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그쪽에서 대체 왜 제 여동생을.”

    “저도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네요. 다른 실마리는 없으니까요.”

    “크윽…….”

    신금천화교가 관련된 일이라는 건 내 추측일 뿐이다.

    단지 벚꽃이 보였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야기를 듣자마자 안사홍 역시 신금천화교를 떠올렸다.

    ‘사람을 그렇게 오래도록 납치해서 괴롭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확실히 평범한 곳은 아니다.’

    안사홍을 몇 년씩이나 희망 고문하기만 하는 행태가 그랬다.

    “지난번에 물어보셨다시피, 제게도 신금천화교를 추적할 방법은 마땅히 있지 않습니다.”

    안사홍은 참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전에 신금천화교를 추적하기 위해 그에게 부탁했을 때 이미 들어본 말이었다.

    안사홍은 차원을 오가는 손님들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딱 그뿐이었다.

    본인이 직접 차원에 간섭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다른 차원에 접속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로 신금천화교를 추적할 수 있지는 않았다.

    “사홍 씨의 손님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차원의 손님들은 순순히 부탁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거래죠. 그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저도 합당한 물건을 준비해야 하고요.”

    “그렇게 말했었죠.”

    “이런 도움을 얻기 위해서 그들에게 지급해야 할 대가는 엄청날 겁니다. 특히나 차원의 손님들은 냄새를 잘 맡거든요. 고통의 냄새를요. 분명 나를 괴롭게 하는 편을 더욱 즐길 겁니다.”

    “그런…….”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지는 않겠어요.”

    “사홍 씨…….”

    “단홍이가 신금천화교에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는 잠깐 숨을 골랐다.

    “차원의 손님들이 아니더라도 내게는 손님들이 있죠. 안 그래도 은하준 씨의 부탁으로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얻고 있던 참입니다.”

    “정말인가요?!”

    “아직 쓸 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어쩌면 곧 녀석들의 근거지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신금천화교의 근거지를 알아낼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성과다.

    물론 아직 기다려야 한다지만 말이다.

    “계속 알아봐 주시고 계셨군요. 감사합니다. 사홍 씨.”

    “아닙니다. 어차피 그놈들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나쁜 놈들입니다. 제 동생이 아니더라도 놈들을 잡아야 하니까요.”

    “네. 맞아요. 그놈들이 저지른 일…….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안사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준 씨는 다시 그 차원에 접속할 수 있도록 집중해 주세요. 신금천화교의 단서를 찾는 건 제가 더 힘써 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큰 도움이 못 되어서 죄송해요.”

    그는 화들짝 놀라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움이 되지 않다니,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역시 여동생분이 관련되어 있다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이때까지 살면서, 단홍이를 잃어버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저를 도운 사람이 없습니다.”

    “네?”

    “아무도 돕지 않았고 도우려 하지 않았고 도울 수 없었죠. 하지만 은하준 씨는 다릅니다.”

    안사홍의 검은 눈동자가 일렁인다.

    슬픔을 품은 눈빛이다.

    “이만큼이라도 뭔갈 알아낸 게 이번이 처음이란 말입니다. 은하준 씨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제게…….”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흘러넘치는 슬픔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아려 왔다. 내가 본 것이 진짜라면 좋을 텐데. 꿈이 아니라면 좋을 텐데.

    “우린 할 수 있을 거예요.”

    “네.”

    “반드시 여동생분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네…….”

    “우리 둘 다 힘을 내자고요.”

    안사홍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마 도움이 될 물건을 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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